@ 간월암
[간월암(看月庵)]
간월도가 예전에는 피안도(彼岸島), 간월암은 피안사(彼岸寺)라고 불린 적이 있다.
신라때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그 출처가 분명하지는 않다.
밀물이 들어오면 물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도 불렀다.
고려 말에 무학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고 하게 되었다.
무학 대사의 득도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사가 태어난 곳이 간월암에서 멀지 않은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 이기 때문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법어를 일갈하신 성철스님도
만공스님이 권해서 간월암에서 수행할 정도로
스스로를 가두고 수행정진하기 좋은 절해고도(絶海孤島)였다.
천수만의 작은 섬이었던 간월도는 1984년 간척사업(정주영 공법) 덕에 육지와 연계되어 뭍이 되었다.
서산방조제가 세워지면서 간월도 앞 바위섬(간월암)도 뭍과 연결되었다.
하루 두 번은 배 없이도 오갈 수 있다.
그래서 간월암 홈페이지 통해 물때를 미리 확인해야만 한다.
만공(滿空)선사가 1942년 8월부터 3년 동안 이곳에서 조선독립을 기원하는 1000일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마치고 회향한 지 3일 만에 광복을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간월암이 세간에 알려졌다 한다.
만공선사는 일제강점기 만해스님이나 용성스님(민족대표 33인이자 조계종 범어문중의 시조)처럼
직접 독립운동 일선에 나서진 않았지만 선원에서 정진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선학원을 만들어 한국불교 말살 정책을 피던 조선총독부의 핍박에서 벗어나
독신 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헌신했다.
스스로를 인간 부처라 일컫고 근세 선불교의 중흥을 이끈 ‘괴짜 스님’ 경허대사의
셋째 제자로서 스승의 족적을 만인에게 알리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 조계종 최대 문중 가운데 하나인 덕숭문중(덕숭산 수덕사를 중심으로 하는 문중)이
경허스님 만공스님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조선불교 초기 대표적 선승인 무학대사와 근대불교 선종(禪宗_대승불교의 하나의 조류이며 달마대사가 창시자)의
중흥기 법통을 이은 만공선사의 정신이 간월암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을 비롯한 세 제자들을 중심으로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불교 이야기를 담은 최인호 작가의 장편소설 ‘길 없는 길’이나
유작소설 ‘할’에는 간월암의 여러 풍광이 묘사되기도 했다.
벽초(碧超)선사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9살 때 탁발 나온 만공 선사에게 감화돼 수덕사로 출가했다.
그의 부친 연등 스님도 함께 출가해 그는 연등을 은사로 삼아 만공의 손상좌가 되지만,
실제로는 만공이 거두고 다듬은 직제자였다.
그는 만공을 따라 금강산 유점사와 오대산, 지리산 등
명산 대찰을 찾아 무섭게 정진해 생사의 철벽을 타파했다.
1930년에 수덕사로 돌아온 그는 1940년부터 무려 30년 간 주지를 지냈다.
빈한하기 그지없던 수덕사를
오늘날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백양사와 함께 5대 총림의 하나로 일군 이가 벽초선사였다.
1945년 8월 16일, 일제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만공스님은
무궁화 꽃잎을 따다가 벼루에 얹고 먹을 갈아서 쓴 글.
“세계는 한 송이 꽃.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라.
어리석은 자들은 온 세상이 한 송이 꽃인 줄 모르고 있어.
그래서 너와 나를 구분하고, 내 것과 네 것을 분별하고, 적과 동지를 구별해 다투고 빼앗고 죽이고 있다.
허나 지혜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라. 풀이 있어야 짐승이 있고, 네가 있어야 내가 있고,
내가 있어야 네가 있는 법, 남편이 있어야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어야 남편이 있고, 부모가 있어야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어야 부모가 있는 법. 남편과 아내도 한 송이 꽃이요, 부모와 자식도 한 송이 꽃.
이 세상 모든 것은 한 송이 꽃이라는 이 생각 한 가지를 바로 지니게 되면 세상은 편할 것이요,
세상은 한 송이 꽃이 아니라고 그릇되게 생각하면 세상은
늘 시비하고 다투고 피 흘리고 빼앗아 죽이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참 뜻을 펴려면,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참새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심지어 저 미운 원수들마저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요.
다른 교를 믿는 사람들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니,
그리하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라.”
스님은 당시 이렇게 예언하셨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가 독립했으니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간월암은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 함께 달이 떠올랐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우리의 일정이 여의치 않아 그 풍경은 다음에 다시 와 보기로 하고,
마음을 달랜다.
@ 안면암(安眠庵)
@ 꽃지해변과 게국지
할미 할아비바위는 아름다운 풍광만큼 아름답고 애절한 전설을 지니고 있다.
신라 제42대 흥덕왕(826~836년)때 해상왕 장보고는 청해(완도)에 진을 설치한 뒤
서해안의 중심지인 안면도(건승포)에는 전략적 전진기지를 두었는데,
이 기지의 책임자로 '승언'이라는 장군이 파견됐다.
그는 부하들을 친형제처럼 여기고 어질게 대하니 부대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이런 승언장군에게는 '미도'라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으며
이 부부들의 금슬은 너무 좋았고 사랑은 날로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장보고는 승언장군에게 급히 군선을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장으로 떠나는 승언장군은 사랑하는 아내와 기약없는 작별인사를 나눈 뒤 군선을 이끌고 출정했다.
여러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초조해진 미도 부인은 바닷가 높은 바위에 올라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일편단심으로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몇년이 지나도 장군을 돌아오지 않았으나 미도 부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밤낮으로 수 십년을 기다리다 결국 이 바위 위에서 숨을 거둔다.
이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할미바위'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깨는 듯 하더니
할미바위 앞에 큰 바위가 우뚝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할아비바위'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KBS 주말 드라마 '저 푸른 초원위에'에서 꽃다리와 해변의 해넘이가
두 주인공의 사랑을 나누는 황홀한 배경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곳이다.
'꽃지'라는 이름은 예부터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난 데서 유래했다.
안면도 꽃지해수욕장에 인근에 위치한 딴뚝통나무집은 멋진 외관과 최고의 맛을 자랑하며,
자연속의 정갈한 맛을 제공하기에 여행하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태안의 토속음식인 게국지를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안면도에서는 처음으로 메뉴를 개발하여
손님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아, 이제는 모든 식당들이 따라하는 메뉴가 되어버렸다.
게국지는 게장 국물에 묵은지나 배추, 우기지 등을 넣고 끓인 찌개를 말한다.
그런데, 이 게장 특유의 비린내 등으로 낯선 외지인들은 먹기가 거북스러울 때가 많았다.
이창우 대표는 이 점을 착안해 관광객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입맛으로 개발해
게국지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자평한다.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씨푸드 경영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맛집이기도 하다.
@ by the O
첫댓글 지나간 시간들이 새롭습니다.
하늘이 훼방놓아 가거도~만재도에서의
3일간을 다음으로 미루고서!
흔쾌히 동행의 발걸음을 해주신 덕분에..
뜻깊은 여정이었다고
정리함과 더불어
감사함을 나눠봅니다,
밥먹댁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