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1]부모님 유산인 이 밭을 묵혀? 지어?
호가 갈뫼(가을산의 우리말)인 친구가 엊그제 SOS를 쳤다. 내용인즉슨, 고향 집근처 3천여평의 밭에 독활獨活(땅두릅)을 심어야는데, 외국인노동자들이 농한기를 맞아 모두 철수하는 바람에 일손이 없어 어쩌지 못하므로, 같이 심어주면 안되냐는 것. 급히 남원 아영, 송동, 오수 대정에 사는 고교동창친구에게 전화, 확답을 받았다. 지난 목요일 아침 9시, 운암 선거리(신선 仙, 살 거居) 시목枾木마을(감나무골) 친구집으로 트럭을 몰고 괭이 하나씩을 들쳐메고 달려가니, 상황은 심각했다. 상주하는 베트남노동자 2명 포함한 6명에 지주地主 부부, 8명이 오전 오후 꼬박 매달려 2천평은 간신히 심었건만, 일손도 없는데 친구는 나머지 1천평을 어떻게 심을까? 더구나 우리가 도와주려 해도 뇌두腦頭를 자른 독활이 없어 심지도 못할 판이었다.
땅두릅, 먹어보기는 했지만 실물은 처음 봤다. 살짝 데쳐 초고추장 찍어먹으면, 우리가 흔히 먹는 개두릅보다 훨 맛있는 봄철 나물(?)의 일종. 뿌리줄기를 달여 오래 먹으면 관절과 신경건강에 좋다고 한다. 거친 산비탈 밭에 1m 간격으로 괭이로 한번 푹 구멍을 판 후 뇌두를 위로 향하게 해 흙으로 덮으면 된다. 밭 가운데는 뇌두를 가득 담은 푸대가 즐비했다. 그래도 보기 좋게 심기 위해 못줄을 뗐다. 못줄을 언제 보거나 떼 봤을까? 근대 농촌의 유물인 못줄은 이제 농업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터. 다년생 식물로 심은 지 3―4년에 수확을 해 뿌리줄기를 판다고 한다. 값이야 형편없어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밭을 묵힐 수는 없기에 관리차원에서 심는다는 게 독활이다. 가장 손이 덜 가므로. 독활은 첫 해 줄기가 나올 때 풀약(제초제) 한번 한 후 내팡개쳐도 풀을 이겨내며 저절로 잘 자라기 때문에 크게 손이 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란다. 풀약도 이기지 어려운 풀을 풀(메주콩, 들깨 등)이 이기는 경우를 나도 경험했기 때문에 안다. 이초제초(以草制草).
3년 된 독활을 캐내는데 어찌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있으랴. 포클레인이 5일간 작업, 5000kg에 900만원을 받았단다. 그나마 올해는 값을 조금 잘 받았다. 캐는 작업에만 베트남노동자 7명 5일 고용, 그 인건비가 하루 11만원씩이니 385만원에다 중장비 하루 60만원(300만원). 그동안 들어간 퇴비값도 100여만원. 그렇다면 자신의 인건비는 고사하고, 3년간 독활을 심어 캐 내다팔아 남는 돈이 100만원? 아니, 손해 보지 않은 게 다행일 것이다. 비단 독활만이랴. 지황 등 다른 농작물도 마찬가지. 그 넓은 땅에 고추를 몇 만 포기는 심겠지만, 탄저병에 걸리지 않게 농약을 수차례 해야 한다. impossible이 따로 없다. 막말로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의 농촌이 병든 지는 너무도 오래. 중앙아시아,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 외국인노동자가 없다면, “올스톱”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진짜다. 전국 농촌의 그 많은 비닐하우스 농사를 누가 지을 것인가? 인구소멸, 농촌 소멸이 시간문제인 것을.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게 밭농사. 그렇다고 아예 한 해라도 방치할 수 없는 게 무성한 풀들 때문이다. 명색이 고향에 돌아가 농사짓는 ‘초보 농심農心’도 금세 황무지가 되는 꼴을 어찌 볼 수 있을 것인가. 나의 경우도 갈뫼친구와 동병상련同病相憐.
친구들이 모두 ‘촌놈’출신들이라 일들을 잘 해 망정이지, 일손이 서투르면 걸그적거리기만 한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백 번 낫다. 농번기때는 부지깽이라도 도움이 된다지 않았던가. 1년에 서너 번 이런 ‘울력’(여럿이 힘을 합하여 일을 함)을 할 수 있는, 편한 상대의 고등학교 동창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 흐뭇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임실-남원지역, 도움이 필요하면 SOS를 치시라. 형편만 되면 누군들 가지 않겠는가. 도움을 요청한 친구도, 도와주는 친구도 ‘상부상조相扶相助’의 즐거움을 그날만큼 느낀 날도 흔치 않으리라. 같이 노동을 하면 할수록 그만큼 정이 깊어지는 것은 진리이거늘. 땀 흘린 후 같이 먹는 밥만큼 맛있는 게 어디 있으랴. 농촌일은, 특히 밭일은 혼자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양주兩主(부부)가 같이 해야 능률도 오르고 사랑도 깊어간다. 비닐을 쳐도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므로 부부의 정이 새록새록 깊어가는데, 도시를 선호하는 대부분의 우리 마나님들은 그 ‘간단한 진리’를 알지 못한다. 그날은 중간에 아름다운 형수(친구의 부인)가 새꺼리(새참)를 해왔다. 옛날 풍경을 생각해보자. 어머니는 못하는 게 없었다. 일을 하다가도 새참을 내올 때쯤 되면 집으로 달음박질을 해 뚝딱뚝딱 갈치조림을 하여 머리에 이고 막걸리를 손에 들고 들이나 밭에 나오셨다. 막걸리 두어 병에 찐 새우 껍질을 까주며 형수가 대령까지 하고 있으니, 노동요가 절로 나온다. 한 음치친구는 <막걸리 한잔>을 비롯해 <홀로 아리랑> <테스형> 등을 마구마구 불러제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요즘엔 해가 짧아도 너무 짧다. 5시반만 돼도 어둑어둑, 6시면 깜깜. 할 일은 태산이어도 접어야 한다. 내일까지 같이 해 나머지 1천평도 해결하면 깔끔하련만, 독활 뇌두가 없다니 중단한 친구의 밭일이 걱정이다. 형편과 시간만 되면 일은 잘못해도 문화선전대 역할이라도 할 터이니 언제든 연락만 하셔. ‘5분 대기조’처럼 달려갈 게. 돈도 안되는 것을 안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정말 비어있는 밭은 계륵鷄肋이다. 계륵. 부모님은 동산動産을 물려주시지, 돈도 안되는 계륵의 밭을 이렇게나 많이 물려주시면 어떻게 해?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