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부인과 승무원 원제 스웹트 어웨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관능적이며 동시에 계급적 불평등을 파헤친 영화는 그러니까 다음에서 언급한 영화들의 대모로써의 자격이 차고 넘치는 영화이다. 골디 혼과 커트 러셀 주연의 < 환상의 커플 (원제 오버 보드)>, 해리슨 포드와 앤 헤이시 주연의 <식스 데이 식스 나잇>, 그리고 동숭동의 단골 레퍼토리인 연극 <병사와 수녀>등등. 작년인가 마돈나와 그의 남편인 영국 감독 가이 리치가 리메이크해서 안티 아카데미 상인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영화상) 5개부문을 석권한 <스웹트 어웨이>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바로 이탈리아의 열혈 공산당원이자 여류감독인 리나 베르트뮬러 감독의 1974년도 작, <귀부인과 승무원>이다.
사르디니아 해변의 화려한 요트 세뇨라에서는 부유한 라파엘라 부부와 친구들이 여름을 즐기고 있다. 선원 중 한명인 제나리노는 그들의 명령을 묵묵히 수행 하면서 그들의 안하무인의 태도를 참아낸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부는 어느 날, 제나리노와 라파엘라가 고무 보트로 동굴 여행을 떠나면서 갑작스런 엔진고장으로 보트는 무인도에 다다르고, 이때부터 둘의 관계는 뒤바뀌기 시작한다.
사실 무인도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육와 영을 합엘하게 된 남과 여의 이야기가 어디 한둘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헐리우드 영화가 남과 녀의 심리적 육체적 결합을 통해 대통합되는 계급적 환타지로 대미를 장식하는 데 비해, 이탈리아의 영화 <귀부인과 승무원>은 이러한 속성을 철저히 걷어 차 버리며 통쾌하게 계급성을 드러낸다.
라파엘라는 자신을 시중드는 남자 제나리노에게 땀 냄새가 난다던가 스파게티가 맛 없다는 둥 온갖 투정을 부린다. 우아함을 목에 두른 채 내숭덩어리 백조로 살아가는 그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제나리노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무정부주의적 과격함과 멜로 드라마의 신파를 함께 버무린 영화는 섬에서의 불시착 이후 막나가는 정도가 너무 쎄서 심지어 블랙 코미디의 모습마저 띤다. 더 이상 돈이 필요 없게 된 제나리노는 라파엘라를 짐승 다루듯 때리고, 라파엘라는 이를 사랑이라고 받아들이며 그의 발아래 무릅을 꿇는다. 영화의 절반 이상을 할애 하는 제나리노와 라파엘라의 밀고 당기는 싸움과 육체적 결합은 표면적으로 귀부인과 승무원을 어느 에로 영화 못지 않게 관능적인 열기로 이글이글 타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스타급 여성감독인 리나 베르트뮬러는 기존의 모든 통념에 조소를 보내며 귀부인과 승무원을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정치적인 드마라로 변모시킨다. 계급이 역전되자 이번에는 지독한 가부장제와 성차별이 남과 여를 찾아 들고, 인간을 치장하는 모든 외피를 손에 놓아 버린 두 사람은 해변에서 그야말로 ‘알몸의 삶’을 즐긴다. 그러니까 가부장제의 기원을 생존과 야만의 시대에서 찾는 리나 베르트뮬러는 이 지구상에 단 두 사람만이 존재하더라도 권력 관계는 존재할 것이며, 그것을 거뭐쥔 자는 누구나 오만과 이기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데 야멸 찬 동의를 보낸다.
그러니 마돈나가 나와 갑자기 귀부인과 하인의 사랑 타령으로 가득한 멜로 드라마로 방향 선회한 스웹트 어웨이가 마돈나의 모든 아성을 그야말로 ‘스웹트 어웨이 (파도에 씻겨 밀려난)’ 것도 당연지사.
<귀부인과 승무원>은 가차없이 자본주의 사회를 조롱하는 리나 베르트뮬러의 매력이 절절히 넘쳐난다. 이번 여름, 격렬하고 관능미 풀풀 넘치는 아트 하우스 영화의 백미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