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상
여든넷 고씨 어르신
리어카에 실려 와
쓰임을 다한 것들이
마침내 부려진 곳
한 번 더
밥값 하려고
찢기고 부서진다
멀미
요새는 걷는데도 멀미가 나네요
산벚나무 화살나무 은근한 눈짓에
덩달아 볼 붉은 진달래
환해지는 산비탈
속사포 랩 새 울음
출렁이는 물빛 허공
뒤늦게 당도한 꽃 폭죽 터지자
빙그르 우주가 돈다
바람꽃 이는 먼 산
마음이 하는 일에 까닭이 있던가요
꽃멀미 핑계 삼아 무시로 뛰는 심장
이게 다 당신 때문입니다
늦은 밤 문자 한 통
거품 속에 피는 꽃
이태리 타월로도 밀지 못한 삶의 흔적
두렷이 남아 있는 이랑진 몸을 본다
제 몸의 물기만으로 싹을 키운 감자 같은
행여나 아플세라 어린 나를 씻기시듯
바스스 부서질까 살그래 애만진다
지금껏 내가 파먹어 아모리진 봉오리
여자도 어머니도 모두 다 내려놓은
한떄는 단물 솟고 향내 나던 앞섶에
가짓빛 마른 꽃송이 거품 속에 다시 핀다
일몰증후군*
풀벌레 수런대는 둑길을 걷다 보면 입던 옷 벗어놓고
먼 길 떠난 사람처럼
달팽이 떠나고 없는 빈집을 만난다
너무 가까워 상처까지 나누었을 집에서 집을 찾아 헤매
던 어머니는
새하얀 망초꽃 머리 곱게 빗고 주무실까
바람이 가는 쪽으로 풀들이 쓰러진다 실없는 농담 같은
날들이 그리워서
어머니 누운 곳으로 나도 자꾸 넘어지고
울음 잔뜩 머금은 해걷이바람 속에 능소화 떨어지듯 스
러지는 저녁놀
갈 길도 돌아갈 길도 문득 아득해진다
* 인지장애 환자가 해질무렵에 보이는 여러 증상들
- 시집 『같이 울던 저녁놀』 책만드는집,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