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러産 석유 이어 가스에도 가격상한제 검토”… 에너지 大戰
푸틴 “참여국에 수출 않겠다” 압박에 가스 통제로 러 수익 제한 맞대응
獨, 러 가스 의존도 10% 아래로 낮춰… 佛, 올겨울 사용 가스 92% 비축
러 “에너지 위기로 EU결의 무너질것”… 우크라産 곡물 수출 통제도 고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産) 석유에 이어 가스에도 가격상한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EU의 러시아 원유 가격상한제 도입 방침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여국에는 에너지를 수출하지 않겠다”며 압박한 데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하다. EU와 러시아의 ‘에너지 전면전’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
○ EU vs 러시아 ‘에너지 대전(大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극악무도한 전쟁을 벌일 수 있게 하는 러시아의 수익을 차단해야 한다”며 “9일 EU 에너지장관 회의에서 러시아산 가스 가격상한제를 제안하겠다”고 밝혔다. 가격상한제는 러시아산 에너지를 일정 가격 이하로 구매해야만 해상 운송을 허용하는 제도로, 사실상 러시아 에너지 수출을 통제해 러시아의 수익을 제한하겠다는 구상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발표는 같은 날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에서 “원유 가격상한제에 참여하는 국가에는 석유나 가스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EU가 러시아에 에너지 주도권을 더 이상 빼앗기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사실상 러시아에 에너지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통제’로 우크라이나를 압박한다는 점은 EU의 딜레마다. 푸틴 대통령은 동방경제포럼에서 “흑해로 수출되는 우크라이나 곡물 대부분은 도움이 절실한 아프리카 국가가 아니라 EU 국가로 보내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곡물 수입 국가를 제한하는 방안을 튀르키예 측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흑해를 봉쇄해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막았다가 세계 식량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난에 직면하자 지난달 이를 해제한 러시아가 다시 ‘곡물 통제’ 카드를 꺼낸 것이다.
○ “러시아 가스 위력 약해졌다”
EU가 선뜻 에너지 대결에 나선 배경에는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어느 정도 대비를 마쳤다는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독일을 비롯한 EU 국가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동안의 에너지 비축과 대체 에너지 확보 노력이 에너지 무기화 위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가스 수입 비중이 높은 EU 국가들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해 러시아 천연가스에 전체 에너지 소비의 49%를 의존했던 독일은 가스 수입원을 다변화하고 공공기관 실내 온도와 야간 조명 사용을 제한하는 절약 조치를 시행했다. 이 결과 지난달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10% 이하로 낮췄다.
프랑스는 올겨울 사용 가스의 92%를 비축해둔 상태다. 이탈리아도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40%에서 23%까지 낮추는 데 성공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초기 40%였던 EU의 파이프라인을 통한 러시아 가스 수입 비율이 9%까지 떨어졌다”며 “그동안의 노력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EU 비회원국인 영국 리즈 트러스 총리는 인상하려 했던 가정용 에너지 요금을 향후 2년간 사실상 동결한다고 밝혔다.
NYT는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의 독립이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여전히 의문”이라며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에너지 위기에 따른 경제적 고통으로 EU의 결의가 결국엔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카이로=강성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