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4년 10월 14일 이삿짐을 이삿집센타에 실코 ,나는 젊잔케 K.TX에 몸을
실코 ,정들었던 아니면 고생을 하였던 인생의 구비구비마다 그래도 헤쳐 나가면서
버터왔던 서울생활을 청산을 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66년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졸업식장에도 참석을 않 하고 책 몇 권과 잠바차림의
허름한 나주 촌놈이 겁 없이 호남선의 완행열차에 의기양양하게 꿈을 안고 상경길에
올랐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고 하여 자녀들이 있는 화순으로 향한 것이다.
그 소중한 아내도 여의고, 홀로 단신으로......
어떻게 보면 인생의 무상을 느낄 것이다. 사실 고향이라고 좋아서 고향으로 내려 오는 것이
아니다 . 어쩔수 없어서 내려 오는 것이다. 말이 그렇지 서울에서 5 십 년이다 .
여기가 나의 고향이고 ,정들었던 우정들,그리고 친척들 ,다 뒤로 하고 고향으로 귀향을 하였다.
서울을 오가며 1년은 그런데로 잘 지냈다. 여자친구하고 서로 만나고 연락도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고향이라고 어디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겠는가? 말만 고향이고 잠만 자고 지내는
침실의 고향살이 같다. 자녀들 하고는 그 안에 못 나누었던 부자지간의 사랑을 느끼며 ,나의
해야 할일 하나둘씩 해결을 하면서 ......
드디어 겨울철에 허리에서 신호가 오는 것이다. 하체의 중요한 또 하나의 다리에서도 시리고
이거 암만해도 어려워가는 질병이 오고 있슴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해에 전남대 화순병원에서부터
검사를 시작을 하는데, 결국에는 허리에서 통증과 함께 잘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까지 나이 7십에 처음으로 입은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건강하고
등산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겼던 건강하고 씩씩한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그렇게 하여 5년의 고통으로 전남지방에서는 유능하다는 병원을 다 다녀 이제 겨우 조금씩 걷고
통증이 없는데, 이제 홀로서 어느정도 걷고 좀 나아져서 기분이 좋았는데, 이거 요즈음 ....
큰 문제는 없는데 , 심장의 혈관이 좁아졌다나 하여 또 한 번의 환자복을 입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크게 걱정은 않한다. 이미 나이가 7십대 중반이 지나 8십대를 향하고 있는데,
아무리 약이 좋고 병원의 의술이 좋다지만 운명은 재천이라고 하늘에 다 맞긴다.
5년동안 아프지않고 하였다면, 그렇게 좋아하던 책을 보았을 것이고 글이라도 좋은 글을 만들었을
것이다. 올해에는 건강이 조금씩 좋아 공모전에는 다 참여를 하여,'무등일보사'에 시가 당선이
되어 나름대로 수확을 얻었다. 화순군민신문에는 나의 시(詩)가 나가고 ...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병고에 시달리면서 좋아졌다가 나쁘다가 서서히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
인생의 순리가 아닌가? 어디 나 뿐인가? 5공때 최고의 자리를 걸머 쥐고 권력을 휘드루고 수 많은
돈을 마련하여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고 5.18 광주의 민중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한 모 인사도
얼굴이 무척이나 수척하여 골수다발성암이라는 병까지 얻어 병원에 입원 치료를 하고 있는 분도
이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듯 .....
인생은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다 모든 권좌와 부(富)를 뒤로하고 저 세상으로 향하여 감니다
미련없이 큰 고통없이 가는 것도 행복인거 같습니다.인생은 생노병사의 고통속에 가는 것이
순리인거 같고 주위사람들의 고통을 시키는 일을 적게 하고 가는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다.
첫댓글 아둥바둥 살던 젊은시절엔 날라다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 였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병원 신세도 져야되고
약국신세도~~ㅎ
허지만 삶의 순리라 부정은 않지만
나름 즐겁게 살려 노력합니다
일년에 두어번 보길도에 다녀왔지만
시국이 이래서 멈췄습니다
나주 함평 해남 지나 땅끝서 배를 타고 노화도 서 보길도로~~
눈에 어른 거립니다
동구리님의 글에 동감하면서
잠시추억에 젖어봅니다
선배님 글을 읽으면서
동감이 갑니다
나이는 어쩔수 없나봐요
저도 오늘 병원에
팔 다친 게 어혈이라 오래간다기에
병원다니다 덜하면 그냥 넘기고
했더니 딸이 저 몰래 오늘
병원 예약했다며 함게 동행하자기에
딸 눈에는 엄마가 미련해 보였나봐요
나이드니 친구들 소식도
아프다는 소식뿐
건강하다는 친구들 소식들으면
그렇게 좋을수가
선배님 치료 잘 받으시고
삶방 잘 이끌어 주셔야지요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칠십을 넘기며
죽음을 두려움없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있지요.
그러나 죽음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무서운거지요.
그래서 저의 마지막 소원은
<고통공포 최소한의 빠른 죽음>입니다. ㅎㅎ
심장혈관이 좁아지면
스텐트 시술을
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스텐트
시술을 하신다면
비교적 간단합니다.
수술이라고는 안
하고 그저 시술이
라고 하니 큰 부담
은 갖지 마시기 바랍니다.
쾌유를 빕니다.
🙏
빨리 쾌유을 빕니다
생로병사
권력도 부도
그 길은 어쩌지 못하지요.
순리대로 받아들이며
조금만 덜 고통스럽게
살다 조용히
떠날 수 있으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지요.
그동안 허리로
고생하시다 회복 되시어 활발히 활동
하시더니
또 병을 얻으셨군요.
이번에도 잘 치유
되시리라 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 잘 받으시고
지금처럼 글로
만나뵐 수 있기
바랍니다.
회복과 치유를 기원합니다.
잃어버린 5년이 아니라,
특별한 묵상의 5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힘내시고
좋은 글 많이 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적게먹고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데요.
저는 무보수로 아들정비소에가서 청소도 해주고 오일교환도 해주며
매일 바쁘답니다.
아직은 무병이네요.
건투바랍니다.
어느새 고향으로 가신 것이 7년이 되었네요
세월 빠른 것을 실감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아프지 마셔야할 터인데...
동구리님의 인생역정에
새삼스레 고개가 숙여집니다...
오래전부터 글로만 소통을 하다가..
약10년전쯤에 광주 무등산 초입에 위치한
어떤 음식점 모임에서 처음 만나 뵈었지요?..
그당시에 서울에서 거주를 하시는
동구리 선배님께서..
보잘것 없는 저를 뵈러
머나먼 광주까지 오셨던 그열정을
어찌 잊을수 있으리오!...
모임이 끝나고...
단둘이서 시내 선술집으로 진출해서
밤이 늦도록 술잔을
주고 받으면서
정담을 나누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합니다...ㅎ
암튼 항상 건안 하시고...
늘 건필 하소서!...^^
그렇게 세월이 가나봐요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세월 따라 흘러갑니다 병원 환자
그리고 죽음 어쩐지 슬퍼지내요
우리나라 의술이 엄청 좋아졌어요.
아드님이 의사라니 또 든든하고 자식들곁이라
고향에 잘 내려가셨네요.
50년 서울생활이 고향같기도 하죠.ㅎ
한동안 고향에 대한 사랑의 글도 쓰시고 활기찬 글들을 뵈었는데
편찮으시다니요?
의술도 좋고 약도 좋고 하니 좋은 소식있을겁니다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여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일일히 감사의 답글을 못달라 드림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당분간은 제건강상 카페 생활도 나의건강이 도움이 되는것 같지않아 당분간 자제할까 합니다.
이글로 모든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림니다 ......동구리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