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래 ─
written by kaciell
* 나는 절대적이란 말을 싫어한다. 절대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률이 언제나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 러셀 (영국의 철학자·평론가)
-인화
요즘 내겐 문젯거리가 있다. 정말 골치 아파 죽을 지경이다.
" 카르딘니임∼♡ "
" 휘익- 단장님은 좋겠네요! 귀여운 애인도 있고! "
" 복도 많으셔!! 키득키득∼ "
으으― 그래. 바로 내 골칫거리는 바로 요녀석 세레나이다, 사실을 얘기하자면... 음- 그러니까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친구 분의 집에 방문한 후부터 20여일이 지난 오늘까지 이 겁 없는 세레나라는 아이가 날 보고 반했다며 계속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세레나는 열 일곱의 귀여운 타입의 여자아이. 정말 귀찮아 죽겠지만... 우리 가문보다는 못해도 세레나의 가문도 만만히 볼 수 있는 가문이 아니기 때문에 어찌할 수가 없다. 게다가.,. 게다가!! 세레나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의 친구 분이라니. 더욱 만만히 볼 수 없다. 그래서 무시도 못하겠고. 휴-
" 저기, 세레나님. 앞으로는 이렇게 찾아오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제 일이 있고. "
" 카르딘님.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 "
아- 한 가지 세레나에 대해 소개하는 걸 잊었군. 세레나는 원맨쇼의 대가이다. 미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착각병 증세... 게다가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고무보다도 질긴 애다.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애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 세레나님, 저도 제 일이 있습니다. 그것도 산더미같이... "
" 흑- 카르딘님. "
" ...... "
" 제가 제 이름에 「님」자 붙이지 말고 그냥 다정하게 세레나라고 불러 달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어쩜. 제 말을 잊으신 건가요? 그런 심한 말씀을 하시다니... 세레나, 정말 실망했어요. "
세레나는 내 뒤편으로 뛰어갔다. 내가 그럼 쫓아갈 줄 알고? 네 쇼에 장단맞출 순 없지. 그리고 실제로 난 정말 바쁘다고. 페하께 일주일간의 레이클린 기사단에 대한 보고를 해야하고. 내 방에 산더미 같은 보고서와 기타 등등 문서들도 처리해야하고 부하들도 봐줘야 한다고!!
나는 급히 알현실로 향했다. 곧 페하를 뵐 수 있었고 보고서를 들춰가며 말씀을 올리고 있는데...
" 카르딘경. "
" 예, 페하. "
"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일주일간 뭔가 큰 변고가 있었나? "
" 아니요. 전 주와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만. "
" 그렇다면 그만 됐네. 그대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 알아서 잘 하겠지. 나도 하루종일 그런 보고나 듣고 있으려니 매우 힘들군. 그런 딱딱한 얘기만 하는 경도 힘들지 않나? "
당연히 힘들지요...
" 아...아닙니다. "
" 서투른 거짓말을 그만 두게나. 그것보다... 소문으로 듣자하니 애인이 생겼다지? "
으― 페하의 귀에까지 들어가다니. 그냥 세레나가 쫓아다니는 것뿐이라고요!!
" 예? 애...애인이라니요. 당치도 않을 말입니다. "
" 비록 소문이란 것이 믿을 것이 못 되나 그다지 거짓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경도 곧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하하- "
" 페...페하... "
" 됐네 어서 가보게. 청춘사업에도 모자랄 시간을 이렇게 허비해서야 쓰나? "
" ......예... "
후유- 덕분에 일찍 끝난 것 같긴 하지만 정말 미치겠다∼ 감히 왕께 변명하기도 뭐하고...
" 카르딘님,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계시는 겁니까? "
" 아아- 라티엘님... "
참고로 울이는 모습을 인간으로 바꾸면서 이름도 좀 바꾸었다.
" 어찌 이 하찮은 것에게 존대를 하십니까? "
또 참고로. 울이를 갑자기 귀족으로 넣을 수 없어서 평민으로 대충 되어 있다.
" 그래도 이 나라 제일의 정령사가 아니십니까, 당연한 것이지요. "
"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
" 아- 그게... "
나는 어찌 상황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였다. 그 모습을 본 라티엘은 웃으며 말했다.
" 세레나님 때문이시군요. "
" 아- 어떻게? "
" 벌써 성안에 소문이 파다한 걸요. "
" ...... "
이띠... 내가 못살아∼
"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라티엘님도 아시다시피 전... "
' 여자를 사귈 수 없다고∼!! 내가 여자란 말이다!! '
" 그렇게 걱정되시면 대사제이신 스페민트님이나, 현자이자 시간의 마도사이신 이카미스님을 찾아뵈어 조언을 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
그러고 보니 진영인 시.간.의 마도사였지!! 미래에 어떻게 될지 알아보면 그래도 한 시름 덜을 수 있을 거야. 무슨 좋은 방법이 나타날 수도 있지!
" 아, 고맙습니다. 라티엘. 그럼 나중에 또 뵈요!! "
나는 급히 진영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얼마간 뛰다 걷다 하여 힘들게 도착한 내 눈에 펼쳐진 것은...
" Fire pillar "
[ 화르륵― ]
" 아아악- "
바로 다섯 명의 검은 옷의 남자들이 불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 지...진영!! 무슨 일이야!! "
" 이카미스입니다만. "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
나는 진영의 말에 어이가 없어져 화내듯 크게 소리쳤다.
" 암살자들과 싸우던 중이었습니다. "
" 암살자? "
" 네. 곧잘 저런 식으로 오곤 하죠. 최근에 좀 뜸하다 싶었더니 또 시작이군요. "
뭐...뭐야? 곧잘 이라고? 그럼 한 두 번이 아니란 소리야?!!
" cyclone "
진영의 마법주문에 의해 암살자들은 멀∼리 날아갔다.
" 어...어떻게 된 거야? "
" 우선 앉으시지요. 흠- 일리노스님의 아드님이라면 아실텐데요? 종종 암살자들이 들이닥친다는 것을... "
진영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내게 자리를 권했다. 난 의자에 앉으며 되새기듯 말하다 질문했다.
" 그래. 아주 가끔씩 보긴 했어. 아버지가 갖고 계신 권력이 탐이 나서 협박 등으로 보낸 거거나 아버지를 제거함으로써 권력획득을 하기 위함이었지. 하지만 넌 권력과는 상관이 없잖아? "
" 무슨- 큰 관련이 있지요. 그리고 카르딘님, 여기는 성내이고 보안도 되지 않는 실정입니다만. "
진영의 말에 난 아차 싶었다. 그래. 여기서 우린 기사와 마도사의 관계...
" 아... 죄송합니다. 이카미스님. "
" 아닙니다. "
진영은 가볍게 웃으며 일어나 어디론가 가더니 찻잔과 주전자를 가져왔다.
" 마침 차를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반갑지도 않은 손님들이 찾아와서 시간을 지체했네요. 차 좀 드시겠습니까? "
" 아- 예. 그보다. "
정작 궁금한 건 가르쳐주지 않자 나는 조바심이 생겼다. 진영은 쪼로록 소리가 나도록 차를 따르며 말했다
" 말씀드리지요. 그들이 저를 노리는 이유를... 현재 국왕 샤를리오 헨 M. 베이하노 레이클린님에게는 왕자님이 안 계십니다. "
" 예. "
사실 전하의 첫째부인께서는 의원들의 말에 의하면 몸이 약해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많은 대신들이 전하께 둘째 부인을 들일 것을 권유했지만 전하는 끝끝내 거절하셨고. 결국 후계자를 정할 생각이신 모양이다.
" 그래서 후계자 문제가 생기게 되었죠. 물론 아직 이른 문제라 생각될지도 모릅니다만, 사실 전하께는 병이 있기에... "
" 병이라니요?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는데요? "
" 심장병을 앓고 계시지요. 어떤 때 비명횡사하셔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병이지요. 전하의 죽음이 오늘이 될지 10년 후가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수도 근처에 있는 몇몇 귀족들뿐이지만 여기저기로 소문이 퍼져나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후계자 문제가 시급해졌어요. "
말도 안돼- 아직 젊은 30대 초반이신데 그런 병을...
" 많은 사람들은 아르나드님이나 카르딘님이 되시리라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
나는 진영의 말에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 네? 뭐라고요? 형이나 저요? "
" ......원래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왜냐하면 카르딘님의 아버지이신 마내퍼제님이 원래는 왕이 되셨어야 하는 것이었으니... "
이건, 놀람이라고 하기보다 황당하다고 하는 게 적당한 것 같다. 아버지가 왕이 되셨어야 했다니!!
" 사실 마내퍼제 공작님의 본명은 마내퍼제 헨 M. 베이하노 레이클린. 현 국왕이신 샤를리오 전하의 이복형이지요. 전 국왕에겐 두 부인이 있었는데 첫째 부인께서 낳으신 분이 마내퍼제 공작님이고 둘째 부인의 아들이 샤를리오 전하. 하지만 첫째 부인께서는 한창 유행했던 전염병으로 돌아가셨지요. 사실 샤를리오 전하의 친 여동생 되시는 분도 계셨는데 그 때 전염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그 후 마내퍼제 공작님을 후계자를 정한 뒤 55살의 나이로 국왕은 돌아가셨고. 욕심 많던 둘째 부인은 마내퍼제 공작님께 죄를 뒤집어 씌어 후계자의 자리에서 박탈시킨 후 자신의 아들인 샤를리오 전하를 국왕의 자리에 앉혔어요.
하지만 샤를리오 전하는 어머니의 소행을 모두 알고 있었죠. 그래서 어머니의 뜻에 따르지 않은 채, 후계자의 자리에서 박탈되어 갈 곳이 없어진 자신의 이복형에게 최고의 귀족자리를 주었어요. 또한, 어머니의 죄를 사과하며 모든 권력을 넘겨주었죠. 사실 아시다시피 자상하신 마내퍼제 공작님은 공작 자리로만 만족한다고 하셨지만 동생의 어쩔 수 없는 부탁에 대부분의 권력을 위임받았죠. "
그런 일이 있었나? 어째 아버지의 아들인 나보다 진영이 더 잘 아는 것 같네- 진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말했다.
" 어쨌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아르나드님이나 카르딘님이 후계자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
" ...?!... "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신 진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이곳이 얼마나 더럽고 위험한 곳인지 잘 아는 마내퍼제 공작님은 자신들의 아들들이 그 자리에 앉기를 원하지 않았고. "
말을 잠시 중단한 진영... 아니 이카미스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왜지?
" 대신 다른 사람을 후계자로 지목했지요. "
" 누군데요? "
나의 질문에 진영은 계속 딴 소리만 늘어놓았다.
" 후계자를 협박해서 후에 권력을 가지려는 귀족들이 많이 있어요. 또는 제거해서 자신들의 자식들이 후계자가 될 가망성을 높이려는 사람도 있고. 또는 정통 후계자라고도 볼 수 있는 아르나드님과 카르딘님이 후계자로 오르기 바라는 사람도 많이 있지요. "
" 그러니까 그 후계자가 누군데요? "
나는 궁금함에 다급해져서 물었다.
" 정말 모르시겠어요? 제가 말한 것처럼 그런 귀족들은 흔히 그 후계자에게,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전개되게 하기 위해 암살자란 걸 보내지요. "
" 설마... "
진영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 이카미스님은 제 아버지의 제의를 승낙한 것입니까? "
" 뭐, 일단은..."
' 무...무슨 소리야? 너 국왕이 될 생각이었어? 권력을 갖고 싶다 그거야??? 게다가 아니면 아니고 맞으면 맞는 거지 일단은 뭐야??? '
" 그보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
혼란에 빠져있던 나는 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맞아- 내가 찾아온 이유...
" 저... 제가 요즘 세레나님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는 것 알고 계시죠? 조언을 얻고자 찾아왔습니다. "
" 조언이라니요? "
진영이는 마시던 차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 그러니까. 그래도 현자라 불리는 분인데 무슨 조언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
나는 굳이 시간의 마도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진영은 잠시 나를 쳐다봤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에 섬뜻함을 느꼈다. 그리고는 조용히 차를 다시 한 모음 마시는 진영에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 이...이카미스님. 왜 그러십니까? "
내 물음에 잠시 침묵하던 진영은 조용히 말했다.
"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세레나님께 잘해 드리라는 것뿐입니다. 나중에 헤어질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대한 잘해드리세요. 아무리 잘해줘도 후회가 남을 것입니다만... "
그 말에 나는 정말 안심이었다. 결국에는 헤어진다는 소리니까. 얼마나 걱정했었던지... 역시 물어보러 오길 잘했어! 그런데 아무리 잘해줘도 후회가 남는 다니?
" 좋은 조언 고맙습니다. 이카미스님. 저는 일이 있어서 그만 가볼게요. 그리고, 제가 감히 참견할 일이 아니란 건 알지만 그 후계자 자리...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시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
" 예. 충고 감사드립니다. "
진영의 후계자 얘기에 좀 꺼림칙하긴 했지만 엄청난 고민 한가지를 해결한 기쁨에 웃으며 나의 일터(?)로 향했다.
-진영
인화는 환하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세레나가 굉장히 부담이 됐었나보다. 하긴, 정체의 위험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후회 없이 잘 대해 주길... 아무리 잘 대해주어도 후회가 남겠지만.. 아까 잠시 인화와 세레나의 미래를 보았다. 인과응보. 원인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는 법. 인화와 세레나가 만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 그것은...
어차피 정확한 건 아니다. 단지 확률이 가장 높은 미래라는 것...
미래를 알면서도 모른 척 행동해야 한다는 것. 정말 쉽지 않지만 알려줘선 안 되겠지. 그 미래가 슬픈 것이어도 기쁜 것이어도 다 그 사람의 것이고 그 사람은 그것을 발판으로 또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니까. 미래는 정해져 있지만 그 정해져 있는 수 갈래의 많고 많은 미래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건 자기자신. 그래...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거니까.
그래도 과거는 몰라도 미래를 보는 건 여전히 괴롭다. 다 안다는 것은 결코 좋기만 한 것이 아니다. 특히나 지금 인화의 것과 같은 미래를 봤을 때는 보고만 있기 힘들기 때문이다.
" 휴우- 숨어있지만 말고 어서 나와. "
나는 목소리 톤을 깔고 차갑게 말했다. 내 뒤에 하나 둘 사람이 나타났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나타나다니- 자꾸 이러면 나도 벅차다고...
" Sleep (재우다) "
무슨 마법을 사용할까 고민하던 나는 간단히 끝내기로 하고 제일 편리한 주문을 외쳤다.
"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한 실력자인데? 역시 위저드급 마도사군요. "
' 내 마법에도 안 자는 녀석이 있다는 말이야?!? 실력이 줄었나? '
나는 고개를 돌려 내 마법에도 끄떡없는 녀석을 쳐다보았다. 지팡이를?
마도사인가?
" 미리 방어막을 쳐두길 잘했지. 소개하죠. 전 흑마도사 디제. "
골치 아픈 놈이군. 보통 마법을 두 부류로 나누는데 흑마법과 백마법. 백마법은 일명 신의 힘을 빌린다는 건데... 위력은 별로 지만 높은 수준까지 익히면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흑마법은 악마의 힘을 빌린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면서 그 만큼에 해당하는 위력의 마법을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체로 백마도사가 많고 주로 흑마도사에는 무언가에 혈연이 되어있는 미치광이들이 많다. 그리고 초급자더라도 흑마법을 사용하면 위력이 크기에 상대하기도 귀찮아진다. 아... 내가 이렇게 잘 아는 이유는 마도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때 흥미가 있어 조금 배우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역시나 내 생각에 따라 디제라고 소개한 흑마도사는 자신의 손등을 칼로 죽 그어 피를 내더니 주문을 외웠다. 피는 곧 불로 화하였고 내게로 날아왔다.
" Shield (방패) "
[ 콰광― ]
이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보다 쉽지.
" 별로. 충고해줘봤자 별로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지만 흑마법... 그만두는 게 좋지 않나? "
" 충고 고맙지만 당신이 상관할 문제가 아닙니다. "
" 아니― 그냥. 당신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모르지만 혹사당하는 당신의 육체가 불쌍해서. "
말을 끝낸 나는 또다시 재빨리 주문을 외웠다. 먼저 역시... 불에 대응하는 건.
" Ice. (얼음) "
디제는 내 이번 공격도 막아내었다. 호오- 대단한데? 그럼 좀 더 강력한 걸로 가볼까?
" 쿠쿠쿡.. 오늘은 이만 하도록 하죠. 사실 말해서 전당신의 암살자가 아닙니다.. 언젠가 싸워야 할 상대.. 그냥 대면하러 온 것이죠. 그 정도 실력이면 괜찮겠군요. 다시 만날 때까지 몸조심하도록 하세요. 목숨을 노리는 자가 꽤 많더라구요. 후후후- "
디제는 꺼림직한 웃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정말 재수 없게도 웃네. 그나저나 언젠가 싸워야 할 상대라니... 그리고 나도 내 목숨 노리는 자가 많은 건 안다고.
그러니까 내가 영이의 결혼을 위해 마내퍼제 공작님을 뵌 후 정확히 일주일 뒤 나를 다시 부르기에 난 영이와 하나의 결혼에 관련된 일인가 해서 공작님을 찾아뵀었다. 그러나 사실은 정말 뜻밖에 것이었다. 후계자에 대한 이야기.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으신 공작님은 내게 부탁했다.
후계자가 되어달라고. 자신의 자식들은 남자라고 거짓말하고 있으니 그걸 모르는 귀족들은 여자와 결혼하라 할 터인데 그렇게 되면 영이와 인화는 정체를 들켜 죄인이 될 수도 있다고. 아니, 그것이 잘 처리되었다 하더라도 후계자가 생기지 않을 것이 뻔한 일... 그렇게 되면 전 국왕에 이어 또다시 후계자가 생기지 않게 되니 저주다 뭐다 하는 헛소문이 돌 것이고 나라가 어수선해 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공작님은 계속 내게 사과했다. 미안하다고. 그런 위험한 일을 맡겨서. 자신은 자신의 자식만 아끼는 그런 못된 놈이라고. 허나 그런 못된 놈이 되더라도 자식들을 지켜주고 싶다고.
공작님에게 있어서 영이와 인화는 비록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친자식과 같은 자신보다 더 중요한 그런.. 존재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마내퍼제 공작은 내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 영이와 인화를 유난히 아끼는 공작님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사실 마내퍼제 공작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고작 5살도 되기 전에 죽었다고 들었다. 권력을 획득을 노린 한 귀족이 아이를 납치해 갔고 그를 안 다른 공작이 좋은 기회다 싶어 사람을 고용해 아이를 다시 납치해 오라고 했다. 만약 납치가 어렵다면 그 아이를 납치해간 귀족이 권력을 획득하지 못하게 아이만이라도 죽이라고. 결국 아이는 죽었다... 공작의 슬픔을 이해했던 것인지 사람들은 그 뒤로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를 금지시 했고 그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잊혀져 갔다.
이제는 다시 자신의 아이들이 권력 때문에 한낱 욕심 때문에 죽어가길 바라지 않는 것이겠지. 공작님이 왜 그렇게 자신의 아이들을 아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이 소중하다며 내게 이런 일을 떠넘길 걸, 어찌 생각하면 참 화가 나는 일이지만 도저히 난...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해본 결과. 후계자가 되어 암살자의 공격을 받는다면, 영이와 인화가 공격을 받는 것보다는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둘이 비록 이 대륙 최고의 검술을 자랑한다해도 기습당한다면 소용이 없을 테고 마법에는 더더욱 꼼짝할 터이니 마법과 검술을 다 사용할 수 있는 내가 공격당하는 것이 확실히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비록 나도 후계자를 가질 수는 없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으로 위임시키면 되니 하기로 했다.
그 후 자신이 유난히 아끼는 이복형의 제안이니 왕께서도 기꺼이 승낙하셨고, 내 부탁으로 후계자 선언을 하는 것을 미루었다. 신의 사자에 관계된 일이 끝나는 뒤로.
' 아- 그러고 보니 참 별별일 다하는군. '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주변에 널린 암살자들을 바람을 일으켜 멀리 날려보냈다. 난 암살자들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물론 다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그렇다.
사실 사람을 죽인 일도 있었다. 맨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 반쯤 미치는 줄 알았는데 스승님의 도움으로 제정신을 차렸다. 지금도 가끔 꿈속에 내가 죽였던 사람들이 보인다. 두렵고 꺼려지긴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얘들 중에도 아마 몇 명 있겠지. 이 세계에서 살인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슬슬 훈련도 할만큼 한 것 같다. 한달 반정도 했으니 대충 기본을 익혔겠지. 그 이상한 능력으로 우린 이미 사람의 한계를 넘어섰으니까. 그리고 신의 사자에 관한 일을 위해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익혀나가도 되니까. 전하께 말씀드리고 떠날 채비를 해야겠어.
아까 인화와 마셨던 찻잔과 주전자들을 정리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암살자 틈에 섞여 왔던 그 디제라는 사람을 떠올렸다. 그의 이름을 듣자 마자 한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붉디붉은 피. 아무래도 질긴 인연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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