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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과 인제의 단풍 기행 2014/10/27 22:22 | 추천 0 스크랩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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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25.일요일) 홀연 짐을 꾸려 원통 행 뻐스에 몸을 실었다. 가을철 한점 바람처럽 다가온 가을의 일요일을 집에서 책이나 보면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강원도를 수없이 갔지만, 언제나 속초 아니면 강릉 양양 정도였다. 인제나 원통에 가본 적이 없었다. 내 머리 속에는 인제나 원통 하면, 군인들이 들끓는 퇴락한 군사도시라는 선입관이 뿌리박고 있었다.별 볼 것이 없는 군사도시라는 선입관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머리 속에 있었다.
그러던 차에 나의 영주초청문학의 밤을 주선하신 강규 시인이 인제에 살고 있어서, 단풍이 다 지기 전에 한번 가겠다는 나의 뜻을 강 시인이 들어주어서 인제 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초청강연을 마련해주신 강시인에 대한 감사의 방분이었다. 막걸리나 한잔 사고 싶었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원통까지는 정확히 100분이 걸렸다. 공교롭게도 강 규 시인이 전날 부산에서 있었던 요산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제를 비우고 있었다. 나는 그날 오후 3시 경에 인제로 귀환하는 강 시인을 만나기로 하고, 그가 문자로 알으켜준대로, 원통에서 마이크로뻐스를 타고 12선녀탕으로 가서 이 명소를 구경하였다. 일반적으로 설악산에서는 단풍으로는 12선녀탕과 오색약수터를 꼽는 것같다. 나는 오색약수터는 여러번 간 적이 있었으나 12선녀탕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원통과 백담사를 오가는 마이크로뻐스는 도중에 12선녀탕을 거치므로 우리는 이 차를 탔다. 동서울에서 7시 20분에 출발한 뻐스는 9시에 우리를 원통뻐스터미널에 내려주었다.
6.25 때 징집되어 동부전선에 투입되었던 사병이,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다... 라는 말을 했다는 데서 인제와 원통은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서 이 지역이 지독한 군사도시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날씨가 화창하게 개였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만산홍엽이 불타는듯이 시야를 메웠다. 우리는 12선녀탕을 천천히 걸어올랐다. 처음에는 꽤 넓은 인도였으나 점점 길이 좁아지고 자갈과 돌이 솟구쳐서 우리에게는 힘이 들었다. 간신히 계곡에 걸려 있는 나무 다리 세 개를 지내고서는 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계곡을 오르기를 포기하였다. 12선녀탕은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오색약수터는 물론이고, 수년 전에 다녀온 금강산 계곡보다 오히려 훨씬 더 깊고 아득했으며, 기기묘묘했고 정갈했으며 고즈넉했다는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12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할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금강산에 대해서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설악산의 아름다움은 금강산 못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다만 금강산은 쉽게 갈 수 없고 설악산은 가깝게 있어서 언제 어디서나 쉽게 가 볼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12시쯤에 12선녀탕에서 하산하여 입구에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더덕구이 백반이 식욕을 돋구었다. 2인분이 12000 원이었는데, 설악산에서 캔 더덕을 한 접시 가득히 주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백담사까지 만원을 주고 택시를 탔다.
그러나 백담사 사하촌에서 절까지 오르는 뻐스가 10분 간격으로 관광객을 실어 날랐으나,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서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려서야 차례를 잡을 수 있었다. 사하촌과 절간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거의 불가능한 것같다. 길이 먼 데다가 험하고 끊임없이 왕복하는 뻐스를 피할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백담사는 절로서는 별 볼 것이 없다. 석가여래를 모신 대웅전도 없고, 무슨 특별난 볼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아마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이 있을 뿐이다. 아미타블의 협시 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그래도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 상식적으로 알기로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보살이고,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보살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중이 어려웁에 처했을 때 관세음보살이라는 이릅을 외우기만해도 자비를 내려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대세지보살은 지혜를 베풀어 인간을 3악도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한다. 이런 절의 특징을 보완하기 위함일까, 경내에는 만해박물관을 만들었다. 만해가 바로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고 불자로서 임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2대 대통령이 잠시 머물렀던 요사체가 그대로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경내에 있는 백담다옥에 들러 십전대보탕을 마시면서, 오히려 나그네의 눈길을 끄는 절 주변을 메우고 있는 불타는 단풍에 눈길을 주었다. 강 시인의 문자가 한 시간에 한번 꼴로 오고 있었다. 나를 맞이하기 위해 부산에서 인제까지 한걸음에 달려오고 있다고 했다. 나는 강규 시인을 잘 몰랐지만, 이 주 전 영주에서 있었던 나의 문학초청강연을 주선하신 분으로 익히 알게 되었고, 사람이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인간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출신으로 모교에서 수의학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으로, 미국 FDA 연구원 경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백담사를 내려오는데 그 길고 긴 줄을 서서 근 한 시간을 또 낭비하였다. 백담사는 절로는 별로이지만, 그 위치가 아주 뛰어나다. 내설악 가장 깊은데 자리잡고 있는데다가 주변의 단풍과 계곡 물이 절품이라 절로서의 분위기는 단연 뛰어나다. 사람은 이런 장소라는 특정적 조건에 대단히 민감하다. 어떤 장소, 그것은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선험적이고 자연적인 조건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먼저 어디에선가 어떤 장소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아 하기 떼문이다. 날이 어두어진 후에야 우리는 사하촌에 내려올 수 있었고, 승용차를 가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강 시인 부부를 만났다. 어둠이 들어찬 설악의 밤길을 달려 우리는 인제와 원통 사이쯤에 자리잡고 있는 강시인의 집에 도착했다. 강 시인 부부는 방이 세칸있는 적벽돌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방 한 칸을 우리 부부에게 내주었다. 실내는 깨끗했고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부인께서 정성껏 마련하신 저녁식사를 내어놓으시는데 저으기 놀랐다.반찬 숫자가 많지는 않았으나 강원도를 느끼게 하는 산채가 그득하였다.강 시인과 나는 "인제막걸리"를 마시면서 가슴 속에 맺혀있는 상대에 대한 궁금증과 호감을 천천히 풀어삭였다.
사람의 일생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의 일생이다.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가 그 사람의 일생이다. 죽지 않고 오래 사니 이런 알 수 없는 선인을 만나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차례나 그의 인제행 승용차 안에서 좋은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제의했으나, 그는 굳이 자신이 집으로 데려고가서 부인이 장만하신 저녁식사를 내어놓은 것이다.요사이 부인들이 가장 귀찮아 하는 것이 집손님 저녁차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누가 모르겠는가. 인간의 아름다움, 인간과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 즉 우정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소설의 소제와 제재 그리고 주제에 목말하하는 나는 미칠 것같은 인간에의 갈증을 가지고 살고 있다. 정말이지 나는 인간의 위대함을 기여코 발견하고 그것을 나의 소설로 승화시킬 것이다.
괴괴한 음향이 가슴과 귓구멍으로 파고 들어 나는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숙면하였다. 서울 아파트에서 수없이 겪는 불면의 잠을 오늘밤은 미련없는 숙면으로 보낼 수 있었다. 새벽에 강 시인이 아주 좋은 데로 인도하겠다고 해서 그의 차에 올랐다. 소위 말하는 필례 계곡이었다. 필례계곡길은 지금은 조금 잊혀진 듯하다. 인제에서 속초로 넙어가는 지름길인데, 한계령길이 뚫리면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갔고, 오히려 필례 약수터와 서울 사람들의 별장지대로 유명해졌다. 필례라는 지명은 이 지역이 배를 짜는 필녀(匹女)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인 것이라고 한다. 필례계곡의 단풍은 단연코 압권이었다. 새벽에 잠이 덜 깬 나를 깨워 여기로 데리고 온 강 시인의 속뜻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인제 특유의 토속적인 식당에 가서 아칩식사를 하자고 내가 제의했으나, 강 시인은 대답하지 않고 또 우리 부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거실 한복판에는 부인이 마련하신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는데, 그 푸짐합은 필설로 다할 수 없다.요즈음 세상에 이런 부부가 다 있을까,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말자 강 시인은 자신의 일터인 자신이 경영하는 인제종합동물병원으로 갔고, 우리는 조금 후에 부인이 모는 차를 타고 그의 병원으로 갔다. 강 시인은 모두 세대의 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제일 처음 우리를 백담사 사하촌에서 픽업한 차가 디나스티 승용차였고, 집 앞에 세워둔 차가 현대사륜중형차였고, 멀고 험한 지역으로으 왕진용으로 오토바이를 구비하고 있었다. 그의 병원이 가지는 역량을 짐작케 했다.
이번 짧은 여행에서 수의사인 강 시인을 만나 대화하면서 나는 동물이 가지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그 가치를 조금 다르게 느끼게 되었다. 인간은 잘난 척하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지구상에서 인간의 존재는 동물이 있기 때분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개 소 말 돼지 고양이 닭 등은 언제나 인간과 그 존재를 같이 하는 것같다. 극도의 개인주의의 발달로 점점더 외로와진 인간에게는 동물의 존재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같다. 나는 서울에서 자신의 승용차에 커다란 개를 옆자리에 싣고 다니는 사람은 보지 봇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개가 아픈 것은 자식이 아픈 것과 똑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개와 고독을 같이 나누기 때분이다. 마침 인제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에서 상사 한 분과 하사가 개 한 마리를 끌고 왔는데, 개의 안질이 심해서 강원장이 가운을 입고서 개를 잡고서 개의 눈에서 흰 굼벵이같은 것을 꺼내는 시술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최근에 안과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았는데 그 장면을 연상케했다. 나와 똑같이 주사를 놓고 안약을 떨어뜨리고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리고 귀대했을 때의 주의사항을 일러주는데, 나의 주치의가 나에게 한 말과 비슷했다. 환자가 아니라, 아픈 동물을 안거나 끌고서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어서, 우리는 부인이 모는 승용차를 타고 인제에 있는 박인환문학박물관 구경에 나섰다. 마침 월요일이라 박물관은 문을 닫았으나, 우리는 정원에 서 있는 박인환의 초상을 불 수 있었다.문학박물관건물은 인제박물관 한 켠에 서 있었다. 박인환은 인제출신으로 경성제일고보(경기고)를 졸업하였으며, 평양의전을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29세에 요절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목마와 숙녀' 이다. 부인이 원통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어서 우리는 서울행 뻐스에 올랐다. 가을 따라온 나는 눈이 시리도록, 머리 속이 훤해지도록 단풍 타는 강원도의 산악을 보았다. 단풍처럽 타들어가고 있는 부질없는 나의 존재를 보았다. 내가 예상했던 우중충한 인제와 원통은 어디에도 없고, 몽불랑 사면에 꿉결처럼 박혀 있는 산악도시처럼 화창한 가을 햇살 속에 불타는 다사롭고 반짝이는 인제와 원통이 나의 뇌리에 남아 멤돌고 있다.
목마와 수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나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습에 가벼웁게 떨어진다. 그러나 내가 잠시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인제 출신 박인환시인을 기리기 위한 인제시 소재 박인환문학관에서 12선녀탕의 계곡, 금강산 계곡보다 더 아름답다 12 선녀탕계곡에 걸려 있는 다리 12 선녀탕 계곡에서 만나는 첫번째 다리 12 선녀탕 계곡의 만산홍엽 입구에서 본 백담사 전경
백담사 가까이 있는 건봉사의 옛 모습
만해가 33인으로 참여해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태화관의 모습
백담사의 주전 극락보전
정소성이 백담사에서 구입하여 선물한 만해의 글
필례계곡을 걸어가는 강규시인과 김갑영(정소성) 정소성과 강규, 필례계곡에서 필례계곡에서 필자 필례계곡의 앞 도로에서 깁갑영 필례계곡에서 필자부부 강규 시인 경영의 동물병원 수술대 앞에서 병원의 간판 두 군인이 끌고 온 개의 안질을 시술하고 있는 강규 박사
백담사로 가는 왕복뻐스를 기다리는 사하촌의 관광객들, 순번을 기다리는 줄이 최소한 300 미터는 되는 것같다.
백담사 경내의 만해 동상 필례 계곡의 강규 시인
강규 시인의 집 거실에서 김갑영과 강시인부인
인제 종합동물 병원에서 강규와 정소성 원통의 시장거리
인제의 어느 노인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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