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술 鄭文述(1938 ~ 2024)】「부 대물림 안 해" 515억 카이스트 기부, 전 미래산업 회장」
1938년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태어나 남성고등학교, 원광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하였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명예 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군 복무중 5·16을 맞았고, 혁명군 인사·총무 담당으로 일하다 1962년 중앙정보부에 특채됐다. 직장을 다니면서 대학을 다녔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집권하자 강제 퇴직되었다.
전량 수입하던 반도체 검사장비를 만들어 국산화했다. 199년 한국 최초로 나스닥에 올랐다.
1983년 벤처기업 미래산업을 창업하여 경영하였으며, 2001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같은 해 한국과학기술원에 300억원을 기부하여 정문술 빌딩으로 명명되고, 2002년 한국과학기술원 내 바이오시스템학과가 신설되었다. 2004년 국민은행 이사회 의장,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2013년 215억원을 기부하여 바이오·뇌공학과,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설립 및 양분순 빌딩을 건축하는 데 사용되었다. 2014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아시아·태평양 자선가 48인'에 선정되었으며,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창조장을 받았다. 2014년 기부 약정식에서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고 물러나겠다고 한 것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기부 그 자체 보다 기부 정신이나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우선 '기부는 지속적이고 생산력이 있어야 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소신으로 살아왔다.
"부자인 채로 죽는 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짓"라던 앤드루 카네기에게 감명을 받았다. 그는 KAIST에 대한 첫 기부에서 신뢰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해 보였다. 그가 "2개월 안에 개인 돈 300억 원을 KAIST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2001년 5월이었다. 그런데 정작 두 달 뒤인 7월이 되자 갑자기 반도체 불황으로 그가 보유한 미래산업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KAIST는 걱정이 된 나머지 주가 상황을 보아가며 기부 시기를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돈보다 신뢰가 중요하다"며 기부를 위해 처분하기로 했던 주식의 양을 더 늘려 당초의 약속을 그대로 지켰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다 있다고 평소에 말해왔던 그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거나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등의 '뻔한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 '뻔한 가르침'을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산은 독"이라며 자녀들에게 돈을 물려주지 않았고, 회사 경영권도 전문 경영인에게 넘겼다. 친인척은 회사 입사는 물론 회사의 건물출입도 할 수 없게 했다.
2024년 6월 12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 6월 15일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후 광주시안공원에 안장되었다.
대한민국 벤처 1세대 기업인이자 대가 없는 나눔을 실천한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지난 2024년 6월 12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고(故) 정문술 회장은 대한민국 벤처 산업의 기틀을 닦고,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보여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 벤처 1세대의 신화 창조
첫댓글 부자인채 죽는 것은 너무 부끄러운 짓이다" 엔드류카네기 /정문술
"이번 기부는 개인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였으며,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소중한 기회여서 매우 기쁘다."_정문술회장
"미래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미래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미래산업의 핵심 슬로건이자 정 회장의 도전 정신을 보여주는 말_정문술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