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자식이 고를 수 없듯이 태어나면서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타고 나는 것이 여럿 있는데 고향과 성씨와 성별 등이 아닐까 한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 할머니의 직업을 말이다.
이 동화책의 주인공 '물결'이가 그랬다. 물결이 할머니가 보신탕집을 하는 것은 물결이 의사와 무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을 물결이가 온통 뒤집어썼다. 그리고 비밀이 되었고 그 비밀이 덜컹덜컹 굉음을 내며 풀리는 과정이 이 책의 이야기 전개다. 그래서 재미가 크다. 감동이 곳곳에 숨어있다.
동화책은 이래서 읽으면 뻔하고 그렇고 그런 교훈이 강요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내게 있었는데 그것이 깨졌다. 물결이 이야기가 기존의 동화책 형식을 깨 주었다. 뻔한 소재인 보신탕을 아이들의 시선과 감성에 맞춰 풀어나갔는데 케케묵은 개고기 논쟁에서 분명 한 걸음 올라섰다고 보여 진다.
[버려진 개들의 (전용)마을]에 있는 개들의 식당에 특별메뉴가 있는데 바로 '사람고기'였다. 어떻게 사람고기를 먹을 수 있냐는 물결이의 외마디 외침에 들여오는 답변이 섬뜩하다. "어떻게 개고기를 다 먹냐?"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특별요리의 요리과정에 궁금증이 생겼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개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해 산 채로 불에 그을리면서 죽이거나 몽둥이로 때려서 죽이는 짓을 하기 때문이다. 존엄사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과연 개들도 맛있는 인간요리를 위해 그렇게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동화책이라서인지 그런 대목을 생략되어 있었다.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인간됨을 오만과 과신에서 벗어나게 이끌어 준다.
늘 예쁜 색동옷을 입고 고급 단추와 머리핀을 단 '시추'나 '요크셔테리어' 같은 애완용 개들이 완전히 노숙자 꼴을 하고는 털이 뭉텅뭉텅 빠진 채 어슬렁거린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쓰다듬을 때는 언제고 편의에 따라 길거리에 내다 버려서 유기견이 된 모습이다.
[버려진 개들의 (전용)마을]은 온갖 인간들의 의식적, 무의식적 동물학대와 잔인이 다 배어 있다. 습관이 되어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행태 하나하나가 투영되어 있다. 인간임을 참 불편하게 한다.
여기서는 인간에 대한 소유권은 개들이 쥐고 있다. 저런! 특히 그 소유권은 인간세계처럼 복잡해서 법정다툼까지 가고 하는 골치 아픈 방식으로 되어 있지 않고 먼저 발견한 개가 그 인간의 처분권을 가지게 되어 있어 아주 간단명료한 세상이다.
작가가 [버려진 개들의 (전용)마을]을 설정 한 것은 초등학교 2년생이자 개고기 집 손녀인 물결이가 토론시간 주제인 보신탕 개고기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여 준 뒤에 주제 접근의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개고기 때문에 단짝인 나희하고도 틀어져버린 물결이가 상심에 상심을 거듭하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하고 부모와 조부모까지 원망하기에 이를 즈음 불쑥 마을 화가 아저씨의 벽화 속 개구멍으로 [버려진 개들의 (전용)마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토론 주제가 난데없이 개고기 보신탕이 되는 것은 물론, 나희와 틀러지는 과정, [버려진 개들의 (전용)마을]에 들어가는 설정 등이 긴장과 전환의 빠른 이야기 전개를 도우면서 흥미를 키워가는 책이다.
특별요리로 개들의 식탁에 올려 질 위기에 처해진 나희!
친구를 구하기 위해 가장 폭군 '그레이하운드'와 결투를 벌이는 물결이와 물결이의 친구 개 '단비'.
개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인간이 만든 야만적인 기계인 '기계토끼'를 위장시켜 경주용 개인 그레이하운드와 시합시켜서 끝내 승리를 거머쥐는 물결이. 그리고 해방되는 다른 동물들.
이 책의 묘미를 찾으라면 개고기에 대한 저자가 제시하는 결론이 없다는 점이라 하겠다. 개고기 식용여부에 대한 논쟁을 축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생명 일반, 인간의 식탐, 자연계의 먹이사슬의 중요성과 보편적 적용 등이라 하겠다. 어린이들이 접근하기에 약간은 수준 높은 측면이 있지만 좋은 논쟁점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책은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내 소감이다.
(개들의 마을 사람이 사는 마을과 같이 버려진 개들의 마을에서도 미용실, 음식점, 수퍼 등이 있다. 인간 세상에서 그런 직업의 사람집에서 살던 개들이 이곳에서 해당되는 가게를 운영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가 많은 존재야. 먹이사슬이 딱~ 끊어져 버리잖아. 모든 것은 모든 것의 먹이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은 누구의 먹이도 안 되는 게 바로 그것이야" 하는 부분을 읽으면서 야 이거 나 죽으면 화장도 하면 안 되겠네. 그냥 생장을 하여 들짐승이나 날짐승 먹이가 되어야 겠구나 싶을 정도.
몇 가지 아쉬운 점.
"단비 너는 친구니까 잡아먹지 않아. 할머니 집 개 고기는 농장에서 식용으로 길러진 것이야" 라고 단비에 대해 물결이가 위로 말을 하는 대목이다. 친구 개와 식용개가 그렇게 구분되는 게 맞나? 개 입장에서.
"깨끗한 농장에서 건강하게 키워서 우리 할머니 보신탕으로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깨끗한 농장이 어디 있으며 있다손 쳐도 위생적으로 잡아먹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은 것인데 그게 개에 대한 어떤 위로가 될까 싶다. 돈벌이가 된다면 뭐든 하는 세태에 대한 너무 순진한 서술이라 하겠다.
물론 이런 점 역시 이 책이 제공하는 토론거리라고 여기면 되겠다. [내일을 여는 책]. 강다민 글. 수리 그림. 11,000원.
첫댓글 거맛있는디......
누구든 반려동물은 잡아먹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가 의사들 눈엔 실험실 쥐와 얼마나 다를까?
올해 처음 읽은 책..
지난 주에 두 번 먹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