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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신, 야묘도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종이에 수묵담채, 22.5 cm ×27.2 cm, 간송미술관 소장 |
살구꽃이 활짝 핀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올해는 살구가 많이 열리겠네. ”
방 안에서 베를 짜던 안주인이 말했습니다. 햇볕 좋은 툇마루에서 돗자리를 짜는 주인 어른은 별 말이 없습니다.
“뚝딱, 뚝딱…….”
자리 짜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릴 뿐입니다. 잘 말려서 가지런히 손질한 골풀을 틀 위에 올려 놓고, 실을 매단 고드랫돌을 이리 저리 넘겨 돗자리를 엮어 나갑니다.
마당에는 갓 태어난 노랑 병아리가 짹짹거리고, 작은 애벌레나 지렁이 따위를 구해 온 암탉이 구구 소리를 내곤 합니다.
이 때, 한낮의 고요를 깨뜨린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 불청객은 바로 날렵한 몸매의 들고양이였습니다. 들고양이는 아무도 몰래 담을 넘어 살구꽃 그늘로 숨어 들었습니다. 기둥 뒤쪽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들고양이는 암탉이 먹이를 찾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통통한 병아리 한 마리를 덥석 물고 내빼기 시작했습니다.
“째잭!”
다급하게 구원을 외치는 병아리 소리에 놀란 암탉은 그제야 사태를 짐작하였습니다. 눈을 휘둥그래 뜨고 깃털을 잔뜩 세우며 고양이쪽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다른 병아리들은 이리저리 숨을 곳을 찾느라 조급하게 흩어지고 있습니다. 숨을 헐떡이며 넘어질 듯 뒤뚱거리는 모양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 저 놈이! ”
마침 긴 담뱃대에 막 불을 붙이고 있던 주인 어른은 냅다 소리를 지르고 일어났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마루 아래로 몸을 던집니다. 그 바람에 발틀은 뒤집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습니다. 주인 어른은 손에 쥔 담뱃대를 길게 뻗어 봅니다. 마음만 앞섰지 몸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마루 아래로 넘어지기 직전입니다. 머리에 썼던 탕건은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러 떨어졌습니다.
“애고, 저걸 어째! ”
방 안에 있던 안주인은 맨발로 달려 나옵니다. 주인 어른이 다칠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노련한 고양이는 여유 만만합니다. 쫑긋 세운 귀와 엉큼한 눈, 구부러진 긴 꼬리가 여간 얄밉지 않습니다.
‘야묘도추(野猫盜雛)’는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쳐 가다.’라는 뜻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김득신은 조선 후기의 화가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재미있게 나타내었습니다. 이 그림은 마치 카메라로 순간 포착하듯이 그려졌습니다. 허둥지둥 하는 사람과 동물들의 표정을 아주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보는 사람의 웃음을 자아 냅니다.
이 그림에서는 특히 암탉의 놀란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제 새끼에 대한 사랑은 마찬가지입니다.
고려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스님이 충청도 계룡산 아래 어느 마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나무 위에서 까치가 울어 고개를 들어 보니, 그 생김새가 이상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하얀 빛이었는데, 가슴은 빨갛고 꼬리만 검었습니다. 마을 사람에게 그 내막을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까치는 여기 나무 위에 집을 지은 지 7 년이나 되었답니다. 해마다 둥지에 새끼를 낳았는데, 올빼미가 다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까치는 너무 슬퍼서 울기만 했습니다. 1 년이 되었을 때 머리가 희끗희끗 하더니, 2 년째에는 머리가 전부 하얗게 되었습니다. 3 년이 되었을 때는 온몸이 하얗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마침 올해는 올빼미가 오지 않아 꼬리 부분만 다시 검어지기 시작했답니다.”
스님은 절에 돌아와 다른 스님에게 이 말을 전했습니다.
“머리만 새지 사람과 다르지 않군요. ”
이렇게 말하고 나서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지어 냈습니다.
자식 잃은 원망이 쌓여 눈같이 흰머리 이루고
핏자국은 가슴을 적셔 붉은 밭이 되었네
남의 자식 함부로 해코지하지 않으면
모든 부모 흰머리 하루 사이에 검어지겠네
출처: 소년한국일보 http://kids.hankooki.com/edu/culture_symbol.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