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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사면을 바라보라
창세기13:14-18
2022년 새해를 맞이하신 성도 여러분들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은 마6:33절에 먼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그 외,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도 약속하셨습니다. 2022년 첫 주일을 먼저 주님께 드리는 여러분들에게 한 해 동안도 풍성하신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의 자세와 각오 가운데 출발하지만, 올해의 분위기는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코로나 19 감염병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 한해도 예배를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아야 할 것 같고 기관부서활동에도에도, 작년에 이어서 점심식사도 당분간 힘들 것 같습니다. 성도들의 직장이나 성도들의 가정생활에도 많이 힘들 것 같은 여러 가지 우울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또한 지나가게 될 줄 믿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속인다할지라도 다시 한번 희망을 갖고 새해를 출발해야 할 줄 믿습니다.
1. 우주 만물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역할은 세상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국민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지구와 하늘의 별은 물론 모든 행성이 역할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만약 집에 있는 TV나 냉장고, 가스레인지가 그 역할을 모르고 제멋대로라면 큰 문제입니다. 자동차 엔진과 모든 부속이 그 역할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전혀 움직일 수 없고 큰 사고를 내게 됩니다. 모두가 어김없이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기에 오늘의 2022년 새해가 밝아서 평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지금까지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은 성도 여러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직분을 감당하고 헌신하였기에 여기까지 온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에 가장 큰 두 가지 역할이 나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하나님과 사람의 역할입니다. 만약 그 역할분담을 정확히 모르고 살아간다면 복잡하고 힘들게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아브람과 롯은 조카와 큰 아버지 관계입니다. 하나님게서 축복하셔서 두 가족이 같이 생활하기에는 그 지역이 좁아서 일꾼들이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좋은 곳을 먼저 택하라고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룻은 사람 눈에 보기에 좋은 곳인 요단들인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택하여 떠나갔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조카 롯과 헤어지고 난 후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2.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본문의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 14절과 15절입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이 말씀을 주실 때는 조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였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아브람이 여호와의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 땅에 들어올 때 조카 롯도 함께 왔습니다. 롯의 아버지 하란이 일찍 죽었기에 삼촌이 조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데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 되어집니다. 아브람과 조카 롯은 이국땅에 살면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축복하는 가운데 조카 롯도 많은 재산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많은 재산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재산은 양들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 양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크게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무래도 서로 좋은 곳에서 양들을 치기 위하여 목자들이 서로 다투지 않았나 생각되어 집니다. 이 문제를 그냥 방치할 수가 없었던 아브람은 조카 롯과 헤어질 것을 결심합니다. 이국땅에서 하나밖에 없는 혈육과 헤어지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롯도 이제 많이 성장했고 재산도 많이 가졌기에 헤어져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말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삼촌으로서 조카에게 선택권을 주고 자기가 원하는 곳을 선택할 권리를 주었습니다. 결국 롯은 한 마디 양보도 없이 물이 풍부한 요단 온 들판을 택하여 그곳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롯이 떠난 후에 아브람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마음이 몹시 찹찹하지 않았겠습니까? 가나안 땅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골육인데 함께 살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마음이 어찌 안타깝지 않았겠습니까? 도처에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또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면서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걱정과 더불어 인간적으로 조카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입니다. 조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을 때 ‘삼촌 저는 아직 젊으니까 어디든지 괜찮습니다. 삼촌이 먼저 선택하십시오.’ 그런 양보의 말 한 마디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물이 풍부하고 양을 치기에 좋은 요단을 택하여 떠나가는 조카를 보면서 인간적으로 왜 섭섭하지 않았겠습니까? 조카와 헤어지는 아픔과 걱정과 섭섭함이 어우러져 고개를 떨구고 있었을 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오늘 14절과 15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은 먼저, ‘너는 눈을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는 눈을 들라고 말씀하셨을 때 분명 아브람은 눈을 떨구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 아브람이 눈을 떨구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을까요? 아브람이 잘못해서가 아니고,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큰 실수를 해서도 아닙니다. 후회와 회한의 감정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조카 롯을 보내면서 걱정스러운 마음과 섭섭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착착한 마음을 갖고 고개를 떨구고 있었을 때 하나님은 ‘너는 눈을 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스포츠 경기를 보다 보면 감독이 선수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말라, 얼굴을 들어라.’ 고 말하는 것을 종종 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고 네 실수가 아니다. 상대방이 잘해서 그런 것이니까 미안해하거나 죄송해할 것 없다. 다 잊어버리고 열심히 하라’는 뜻입니다. ‘너는 눈을 들어라.’ ‘조카가 떠나가는 것이 네 잘못이 아니다. 네 실수가 아니다. 조카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제부터 나를 더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내가 너를 인도할 것이다.’ 하나님도 아브람을 향하여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그 허전하고 섭섭한 마음을 아셨기에 찾아오셔서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디베랴 바닷가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고개를 들지 못하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내가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이 다 주를 버려도 나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핍박과 죽음이 눈앞에 닥치자 두려움에 빠져버린 베드로는 어린 소녀 앞에서도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게 됩니다. 이러한 실패를 생각할 때 베드로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하고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듯 갈릴리 호수로 와서 고기를 잡으며 과거의 실패를 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나타나셔서 ‘고개를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과거의 쓰라린 실패를 묻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시면서 수제자로서의 위치를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위로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셔서 실망과 낙심과 허전함과 슬픔에 사로잡힌 자들을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아브람의 하나님이요 베드로의 하나님이요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도 우리들을 향하여 ‘너희는 눈을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일 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떨구셨던 적이 있습니까? 실패입니까? 실수입니까? 아니면 슬프고 답답하고 분하고 서운해서 고개를 떨구었습니까? 어떤 이유에서든지 고개를 떨구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하여 오늘 주님은 아브람을 찾아오셨듯이 2022년 새해를 맞이한 우리를 찾아오셔서 ‘너는 눈을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과거 때문에 실망하고 낙심하고 슬픔에 사로잡힌 자를 찾아오셔서 고개를 들리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실패를 생각하여 고개를 들지 못하는 자를 찾아오셔서 고개를 들라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섭섭하고 원통해하는 자들을 찾아오셔서 내가 갚아 줄 테니 고개를 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주님을 바라보면서 지나간 해의 모든 감정을 떨어버리고 주님 안에서 눈을 들어 새해를 맞이하는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새로운 희망을 주심
여호와 하나님은 또한 새로운 희망을 아브람에게 주고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하나님은 실망한 아브람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지금 조카 롯으로 인하여 많은 실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좋지 못한 땅을 갖게 되었다는 실망감도 있었을 것이고 함께 살았던 자식 같은 조카가 떠나간다는 사실에서도 섭섭함과 아쉬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일말의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내가 네 자손을 주겠다. 땅의 티끌같이 번선하케 하겠다.’ 에덴동산 같은 아름다운 요단들판을 빼앗겨 실망을 느꼈을 아브람에게는 동서남북 모든 땅을 너에게 주겠다는 희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엣 날 한 부족의 추장이 연로하여 병상에 눕게 되자 내일을 이끌어갈 새 추장을 세우기 위해 세 아들을 불렀습니다. ‘너희들은 내일 아침 저 앞에 있는 높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무엇이든지 한 가지씩 가지고 오너라.’ 아들들은 각자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큰 아들은 높은 곳에서만 자라는 참으로 희귀한 꽃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둘째 아들은 오랜 풍상에 젖어가면서 바위에 붙어있는 바위 이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셋째 아들은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고 대신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저 높은 산의 정상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저 남쪽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푸른 초원이 있고 강이 흐르고 우거진 숲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농사도 지을 수 있고, 목축도 할 수 있는 곳으로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보다 훨씬 여건이 좋아 보였습니다. 추장님께서 우리 부족을 저 준령너머 푸른 강이 흐르는 초원지대로 옮겨주시면 우리의 장래는 희망이 더 크다는 것을 보고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추장은 대단히 만족해하면서 ‘너는 희망을 가져왔구나. 내가 죽거든 네가 추장이 되어 우리 부족을 저 남쪽 푸른 초원으로 인도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2022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도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2022년 새해도 우리 앞에 그렇게 전망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낙관보다는 비관할 수밖에 없는 여건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여건이 어렵다하여도 희망을 가질 때 우리는 어려움을 이기며 더 발전하고 더 성장하고 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처럼 여러분의 가정이 믿음의 명문 가문이 되어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더 성장하고 평안하여 든든히 서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더 성장하고 더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건강이 치료하고 회복되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희망이란 모든 삶의 기틀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최대의 선물인줄 믿습니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아브람을 향하여 하나님은 너는 눈을 들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서남북을 너에게 주리라. 네 자손을 땅의 티끌같이 많게 하리라’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출발할 때 우리 앞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4. 실천하는 믿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행동을 명하시고 있습니다. 17절 말씀에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장차 주실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하실 뿐 아니라 언약대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희망을 받았으면 이제 그 희망을 믿고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약속을 받았으면 이제 그 약속을 믿고 행해야 합니다. 믿고 순종할 때 그 약속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대명동에서 사역할 때, 건물 주인이 부도나서 수천만원 전세금까지 따 떼이고 교회가 오갈 때 없을 때 얼마나 힘들었습니다. 개척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하나 세워볼려고 그렇게 기도하고 발부등치고 노력했지만 건물주인이 도망가고 차지못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이 실망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온 사방에 두루다니면서 교회장소를 물색하는데 마침내 이곳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셔서 오늘 날까지 주님의 선한 일에 쓰임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은 실제로 그렇게 행하였습니다. 18절을 보면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했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기 위하여 그는 장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언제 어떤 말씀을 하시더라도 즉각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을 때 그는 즉각 순종하여 떠났습니다. 아들이삭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는 지체하지 않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러한 행함이 있었을 때 아브람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새해 첫 주일을 드리는 성도 여러분, 금년에는 아브라함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실망 낙심하나 고개를 떨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는 희망과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받은 대로 실천하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큰 역사를 체험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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