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도 실버타운이 있다. 벌써 문을 연 지 10년이나 됐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흰돌 실버타운'. 아파트 3개 동에 207세대, 모두 258명이 살고 있다. 한적한 교외에 지어진 전원형 실버타운과 차별화된 도심형 실버타운으로, 추가로 70여 세대가 입주를 희망하며 청약을 한 채 대기하고 있을 정도로 수요가 많다.
망미동 '흰돌 타운' 250여 명 거주
식당·문화센터 등 편의시설 풍부
매일 아침 간호사들이 건강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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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 실버타운' 전경. 사진제공=흰돌실버타운 |
·개별세대 임대·편의시설 공동 이용녹내장을 앓고 있는 정상희(74·여) 씨는 지난해 10월 남편과 함께 이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시력이 점점 나빠져 장보기가 힘들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정년퇴직 후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더니 이제는 마트에서 싱싱한 재료를 고르기가 어려울 정도가 됐어요. 여기 들어온 뒤로 밥 걱정은 안 해도 돼서 좋아요. 식당까지는 비 안 맞고 이동할 수 있도록 동선도 잘 짜여져 있어요."
정 씨가 살고 있는 집은 56㎡(약 17평·분양면적 기준)가 조금 넘는다. 165㎡(약 50평)가 넘던 아파트 살림을 정리하는 데만 3개월이 더 걸렸다고 했다.
"자식들 독립하고 늙어서까지 큰 집 지키며 살 필요 있나요? 살림도 꼭 필요한 것만 추렸어요. 새로 인생을 꾸려나가는 기분이에요."
흔히 실버타운이라 불리는 '노인 복지주택'에서는 입주자가 아파트처럼 개별 세대를 임대해 독립적인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나 공동 식당, 헬스장, 문화센터 같은 편의시설을 제공받을 수 있어 일반 아파트 생활보다 편의성이 높다.
정 씨의 남편 김종주(77) 씨는 오전 6시면 어김 없이 일어나 아파트 1동과 2동 사이에 있는 배드민턴 코트를 찾는다. 배드민턴을 좋아하는 입주민들과 게임을 즐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김 씨는 "실버타운 안에 당구장도 있고 게이트볼장도 있다"며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은 물론이고 함께할 수 있는 동년배 이웃들이 있어서 더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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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에 사는 노인들은 악기 연주와 노래, 당구 등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마음이 맞는 다른 입주자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사진제공=흰돌실버타운 |
·입주보증금 6천300만~1억2천100만 원정 씨와 김 씨 부부가 살고 있는 56㎡형의 경우 입주보증금이 6천300만 원이다. 퇴소 뒤 돌려받을 수 있는 돈으로 전세금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외에 입소 비용 2천500만 원(1인 기준)을 더 내야 한다. 부부(2인)가 함께 입주하면 700만원이 추가된다. 입소 비용은 계약 기간인 10년 동안 각종 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용으로 보면 된다. 매달 내는 관리비와 식비, 생활비는 별도다.
84㎡(약 25평)형은 입주보증금 9천만 원에 입소 비용 3천500만 원이 필요하고, 111㎡(약 34평)형은 입주보증금 1억2천100만 원에 입소 비용 4천500만 원이 필요하다.
관리비는 월 10만5천~11만8천 원, 식비는 한 끼당 2천850원이다. 식사는 국을 빼고 1식 4찬이 제공되며, 영양사가 식단을 관리한다.
'흰돌 실버타운' 김재범 과장은 "대기업에서 지은 서울의 고급 실버타운과 비교하면 시설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겠지만 비용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며 "개소한 지 10년이나 돼 시설 개보수 차원에서 식당 리모델링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 내에는 사회복지사 1명과 간호사 2명도 근무하고 있다. 특히 간호사들은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2시간 가량 각 세대를 방문해 혈압, 당 수치를 재는 등 기본적인 건강 관리를 해 준다.
지난 2000년 10월 이곳에 입주했다는 권옥성(77·여) 씨는 "심장이 안 좋은 편인데 아침마다 간호사들이 집을 찾아와 확인해 주니 안심"이라며 "응급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비상벨도 설치돼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60대 젊은(?) 노인들 많이 왔으면…"천주교 법인인 로사사회봉사회에서 운영하는 이곳 실버타운 내에는 각종 체육·문화시설 외에도 성전(성당)이 마련돼 있어 천주교 신자들에게 특히 호응을 얻고 있다. 입주자의 65% 정도가 천주교 신자다.
60세 이상이면 입주가 가능한데, 현재 이곳의 최연소 입주자는 65세, 최고령 입주자는 92세다. 성비는 남녀 1 대 1.5 정도 된다.
5년 전에 이곳에 입주했다는 구필순(79·여) 씨는 "60대 젊은 노인들이 타운에 더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밥 걱정이나 외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독립 생활과 남은 청춘을 만끽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 씨의 아파트 책상 위에는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옮겨적은 종이가 놓여져 있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밋빛 뺨, 앵두 같은 입술, 하늘거리는 자태가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중략)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그대는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일 것이다.'
문의 흰돌 실버타운 051-758-6231.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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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타운에 사는 노인들은 악기 연주와 노래, 당구 등 좋아하는 취미 활동을 마음이 맞는 다른 입주자들과 함께 할 수 있다. 사진제공=흰돌실버타운 |
■ 실버타운이란
60세 이상 '노인 복지주택'… 부산에 2곳, 전국 19곳실버타운은 입주자들의 입주금으로 운영되는 노인 주거단지를 말한다. 입주자가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무료 양로시설이나 노인요양시설과는 차별화 된다. 보통 노후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의료, 오락, 체력 단련 시설 등을 갖추고 식사 관리, 생활 편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법적으로 실버타운이라는 용어는 없다. 노인복지법에 규정된 '노인 복지주택'이 흔히 말하는 실버타운의 개념에 가깝다. '노인 복지주택'은 노인에게 주거시설을 분양 또는 임대해 주거의 편의·안전 관리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해 주는 주거복지시설이다. 독립된 주거 공간을 분양·임대하기 때문에 단독 취사 등 독립된 생활을 하는데 지장이 없는 60세 이상(최소 부부 중 한 사람)의 노인이 이용 대상이다.
보건복지부의 '2010년 노인 복지시설 현황'(2009년 12월 31일 기준)에 따르면 전국의 '노인 복지주택'은 모두 19곳(2천354세대)이다. 대부분이 서울(9곳)·경기(4곳) 지역에 집중돼 있고, 부산에는 '흰돌 실버타운' 등 2곳이 있다.
입소자의 비용으로 운영되는 유료 양로시설도 실버타운과 성격이 유사하다. 경남의 경우 지난 2008년 문을 연 창녕군 고암면 '서드에이지'가 '고품격 실버타운'을 표방하고 있다. 창녕군에 따르면 법적으로는 양로시설과 노인요양시설로 분류돼 있으며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운영한다. 이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