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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국민 발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그리고 의원 발의 법안 비교
민주노총, “10만 국민 발의, 온전하게 입법하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산업재해 1,714건.
2017년 산재 13,187건 중 구속 1건, 정식기소 613건(4.64%), 약식기소 10,934건(82.91%).
5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재판 중 90.72%가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
산안법 위반 재범률 97%.
결국...
연간 산재 사망자 수 2400명.
이렇게 해서 얻은 오명,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 1위’.
▲ 사진 : 뉴시스
지난 9일 정기국회 종료일. 노동3권을 제약하는 노동법 개정안이 통과돼 노동계 규탄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과로 노동을 부추기는 탄력근로 단위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 안건조차 상정되지 못했다. 그리고 정기국회는 마무리됐다.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와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11일부터 국회 본청 계단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민주노총 비대위원 이상진 부위원장도 함께였다.
15일부터 릴레이 동조 단식이 줄을 잇고 농성과 단식,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오체투지까지, 혹독한 한파 속에서도 온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즉각 제정”의 목소리도 하늘을 찌를 듯 하다. “공수처법 등을 밀어붙이는 힘,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의 개악을 밀어붙인 힘”이 있는 180여 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힘을 쓰라”는 지탄의 목소리가 높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13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빠른 시일 안에 통과시키겠다”며 임시국회 내 통과를 언급했다. 임시국회 종료일은 2021년 1월8일이다. 민주당에선 박주민 의원에 이어 이탄희 의원, 최근 박범계 의원까지 중대재해 처벌법을 발의했다. 박범계 의원 안은 기존안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민주당은 17일 정책 의원총회를 열고 당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 6월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국민의 힘 임이자 의원(12월1일)도 중대재해법안을 발의해 놓은 상태다.
▲ 11일 시작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 6일째. [사진 : 뉴시스]
이낙연 대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병석 국회의장 등이 잇달아 단식 농성장을 방문해 중대재해법 임시국회 내 처리를 약속하면서 중대재해법 제정을 하나씩 가시화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의원들의 발의한 법안은 그 내용에서 차이를 보인다. 10만 국민의 동의를 얻어 발의한 전태일 3법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자식을 대신해, 목숨까지 걸며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당사자와 산재 피해 가족들의 요구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의무는 어디까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처벌 수위’가 아닌 기업의 최고책임자, 원청책임자, 그리고 기업 자체에 책임을 묻는 ‘처벌의 범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국민 10만 명은 실질적인 경영책임자, 원청책임자의 처벌을 담은 중대재해법을 발의했다.
우선,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과 달리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발의한 안은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업의 책임 강화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름부터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안전 의무를 어디까지 부여할 것인가’에 있다.
10만 국민 발의안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의무에 ‘포괄적 안전 의무를 부여하며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 유해한 작업의 도급금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의 조항이 포함됐다. 박주민 의원 안이 이와 다르지 않으며, 강은미 의원 안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유해·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며 그 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의무의 범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닌 그 범위를 제한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지켜야 할 의무는 줄어들게 된다.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 안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안전 및 보건에 대해 확인하고 이행’해야 할 4가지 조항을 두는 식으로 안전 의무를 제한했다. 4가지 의무란 ▲안전·보건 조치에 필요한 조직과 인력, 예산을 편성하고 그 운영을 정기적으로 점검 ▲근로감독관의 지적사항 ▲자신이 관리하는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 및 제조물에 대한 점검 ▲그 밖의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 등이다. 이런 제한적인 의무 규정으로 인해 4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는 그 책임을 피해갈 수 있다.
▲ 지난 8일, 정기국회 종료 하루 전 국회 앞. 노동법 개악 중단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제정 촉구 선전전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의무 위반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 처해지는 처벌은 어떤 내용일까?
10만 국민동의로 발의된 중대재해법엔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주민 의원 안은 2년 이상 징역 또는 5억 이상 벌금을, 강은미 의원 안은 3년 이상 징역 또는 5천만원 이상 10억 이하의 벌금을, 임이자 의원 안은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1억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임이자 의원 안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제한적으로 뒀지만 징역형의 수위는 높게 부과하고 있다. 처벌을 피해갈 가능성을 넓게 열어두고, 처벌 수위는 높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조치나 보건조치 위반으로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2018년 기준 5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경우 90.72%가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을 받아왔다.
징벌적 손해배상, 공무원 처벌에서의 차이
강은미 의원 안과 박주민 의원 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도 제도화했다. 강은미 의원 안에는 해당 사업주, 법인 또는 기관이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 경우,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의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을 지게 했고, 박주민 의원 안은 최저한도를 높여 손해액의 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상하도록 했다. 10만 국민 발의안에도 손해액의 10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할 책임을 물었다. 또, 형사처벌이 이뤄진 경우 영업정지나 허가취소까지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
임이자 의원 안엔 없지만 강은미, 박주민 의원 안에 있는 것은 또한 ‘공무원 처벌’에 대한 내용이다.
10만 국민 발의안에도 중대재해에서 공무원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드러나는 경우 그 책임을 분명히 묻고 있다. 재해의 원인엔 담당 공무원의 부실한 관리·감독이 있고, 심한 경우 부정한 청탁과 뇌물이 오간 정황이 종종 발견돼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당 공무원과 공무원 책임자의 책임을 묻는다.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야기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3천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강은미 의원 안은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공무원에게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상 3억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으며, 박주민 의원 안엔 업무 결재권자인 공무원이 자신의 권한과 관련된 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야기했을 경우,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상 3억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필요한 이유
한편, 지난 14일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박주민 의원과 이탄희 의원의 안을 수정·보완한 중대재해법안을 발의했다. 사업주, 경영책임자의 포괄적 의무를 보다 구체적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과 두 의원 안에 들어있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삭제한 내용이다.
두 의원 안의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사업주가 ▲산재 발생 이전 5년 동안 3회 이상 안전·보건의무를 위반했거나 ▲재해 관련 증거를 인멸한 경우 책임을 ‘추정’하는 내용이다.
10만 국민의 발의안에도 ▲사고 이전 5년간 사업주, 법인, 기관의 경영책임자 등이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 또는 관련 행정청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사업주, 경영책임자 등이 당해 사고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거나 현장을 훼손하는 등 사고 원인 규명, 진상조사, 수사 등을 방해한 사실이 확인되거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행위를 하도록 지시 또는 방조한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이는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한 행위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대표이사를 대신해 안전보건업무를 총괄하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를 두고 있어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게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체계가 무너지고, 사망사고에 내재한 구조적인 원인에 대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 합당하고, 그렇다면 그 형사책임을 지는 자는 최고경영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인과관계 추정 조항을 아예 빼버리는 것은 “사실상 경영책임자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설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단식농성장 방문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 故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故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그동안 중대재해에 대해 ‘안전관리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법망을 요리조리 피하고 솜방망이 처벌만 받아온 경영자들은 “중대재해법이 기업을 옥죈다”, “가혹한 처벌”이라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16일 경총,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30개 경제단체가 똘똘 뭉쳐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법안 제정의 여론이 높아지면서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을 외면한 정치권도 ‘제정하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중대재해법안의 ▲사업자 의무의 명확성 ▲인과관계 추정 조항 ▲안전관리·인허가 담당 공무원을 처벌하는 특례 조항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유예 부칙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 민주당은 50인 이하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에겐 적용을 유예하는 방향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중대재해가 집중되고 있는 50인 미만에 사업장의 적용 유예는 법 제정의 의미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은 “정치권이 이구동성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이야기하지만 말만 무성하다. 10만의 노동자, 시민이 발의한 법률제정안은 보이지 않고 의원들 몇몇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한 법률안 제출만 무성하다”고 우려한다.
민주당이 17일 중대재해법 관련 의총에서 구체적인 입장을 정하면 입법 절차에 속도를 낼 것이 전망된다. 민주노총은 민주당 정책 의총을 향해 “논의를 할 거면 제대로 해라. 노동자,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에 두고 10만의 발의 취지에 맞도록 논의하라. 온전하게 입법되도록 논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은 14일부터 올해 마지막 날까지도 국회 앞 농성투쟁을 비롯해 전국 동시다발 결의대회를 전개하는 등 중대재해법 제정 투쟁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