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조재도
밥솥 밑바닥에 보리쌀 촘촘히 깔고
어머니는 쌀 한 줌 가운데 놓았다
달걀노른자 같았다, 부글부글 밥이 끓어
고신내 구수하게 퍼지면
어머닌 눈부신 흰 쌀밥만 옴쏙 따로 퍼내었다
할아버지 밥이었다. 나머진 둥글넓적한 주걱으로
홰홰 설설 저어
한 그릇씩 뚝딱 퍼 담았다, 우리들 밥이었다
거뭇머뭇한 깡 보리밥
씹을래도 이빨 사이에서 미끈덩미끈덩 미끄러지던 밥
찬물에 말면 낱낱이 풀어지던 헤식은 밥
풋고추 한 줌에 고추장 듬뿍 꿈맛 같던 밥
산초나물 기름에 애오이 썰어 넣고 썩썩 비비면
입안 가득 침부터 고여 오던 밥
그 보리밥을
나를 키운
없어서 못 먹던
꺼끌꺼끌한 보리밥을
오늘 다시 먹네, 웰빙이다 뭐다 하는 식당에서
열두 가지 반찬에 이름뿐인 보리밥을
1인분도 팔지 않는 보리밥을
옛 추억에 배부르게 먹네
저녁나절 노랗게 지던 해 그리워하며 먹네
《좋은 날에 우는 사람》, 애지
<시 읽기> 보리밥/조재도
추억이 배고플 때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을 자근자근 씹어 먹고 싶어집니다. 다들 가난했던 그 시절, 욕심내도 가질 것이 없었기에 욕심도 없었습니다. 고무줄놀이에 신났고, 좁은 골목을 운동장 삼아 뛰어다니며 놀았습니다. 골목을 지나던 어른들은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가난했지만 넉넉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노을이 마주선 친구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면 여기저기서 아이 이름을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진아야, 선아야, 밥 먹어라!”
그러면 우리는 어미 새 품으로 찾아드는 어린 새처럼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밥에 김치뿐인 밥상이어도 행복했던 시절, 다섯 형제를 그윽하게 굽어보던 젊디젊은 아빠와 엄마가 있는 그 시간이 그리울 때면 가만가만 추억으로 걸어들어갑니다.
―정진아 엮음, 『맛있는 시』, 나무생각,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