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적 예언
미카 7,14-15.18-20; 마태 12,46-50 /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2026.7.21.
오늘 독서인 미카 예언서를 쓴 미카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아모스와 호세아, 남 유다 왕국의 이사야와 비슷한 시기에 남 유다 왕국에서 활약한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가르치신 길을 벗어나서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는 우상숭배에 몰두하던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 왕국의 침공에 의해 멸망 당하는 사태를 지켜보았고, 비슷한 타락상을 겪고 있는 남 유다 왕국도 머지않아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 당할 것을 내다본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리라는 희망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 근거로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히브리들을 해방시켜 주신 하느님의 자비를 들었습니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근거로 미래를 내다보는 이런 예언을 ‘회고적 예언’이라 합니다. 이는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되 그저 연대순으로 일어난 현상을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하느님의 뜻이 머지않은 미래에 펼쳐질 전망을 읽어내는 예언 행위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바리사이들이 모함을 했고, 이 소식이 예수님의 친척 형제들에게까지 전해지는 바람에 그 친척 형제들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예수님을 붙들어서 집으로 데리고 가려고 쫓아온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그 친척 형제들은 예수님과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분께 대한 믿음은 별로 없었던 사람들이었으므로, 예수님으로서는 이런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런 다소 불편한 상황에서 군중을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와 친척 형제들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으시고도 그분들을 맞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의도적으로 군중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을 넘어 새로운 가족의 기준을 제시하시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가족과 직업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온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 사람들이 당신의 가족이라고 천명하셨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미카 예언자가 제시했던 회고적 예언이 실현되듯이, 메시아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신 예수님으로서는 새로운 이스라엘로 내세운 제자들을 부각시키신 발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집트 탈출 당시 열두 지파의 연합체로 시작된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재건하시기 위하여 제자들을 열두 명으로 선정하셨습니다. 훗날 열두 제자는 열두 사도단을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열두 사도를 초석으로 세워진 그리스도 교회도 지난 이천 년의 역사를 흘러오면서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처럼 동서방 교회로 분열되기도 했고, 다시 서방 교회가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들로 분열되기도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한 죄를 저지른 벌로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의 포로가 된 것처럼, 자본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자본주의 진영과 이를 개혁하겠다는 명분으로 출현한 공산주의 진영에 의해 포위된 것 같은 처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자본이라는 물질을 가치 척도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무신론적인 혐의가 다분한 사상체계입니다. 향후의 세계가 과거 이스라엘처럼 신정체제가 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지만, 신앙이 세상을 움직이는 주도적 가치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그렇습니다.
결국 미카 예언자가 제시한 회고적 예언의 근거를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에 두고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메시지를 끌어내자면, 가톨릭 신자들이 지금보다 더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하느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길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회고적 예언은 이러합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시대의 징표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읽어 내고 우리의 현실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그분의 가족 즉 메시아 백성이 되고자 노력하는 길이 그것입니다. 우리 사회와 민족 그리고 아시아의 복음화 과업까지 전부 그렇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미카 예언자가 하느님께 바친 탄원 기도는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에게 절절한 메아리로 들려옵니다: “주님, 과수원 한가운데,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미카 7,14.18-20) 교우 여러분! 기도로 살아가며 말씀을 행하려는 우리가 바로 또 다른 야곱이요 아브라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