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행복한 귀향, 서울나들이 첫 번째/봉숭아 인연
그 인연, 어언 20여 년의 세월이다.
한국화가 고선(高仙) 양승예 화백과의 인연이다.
내 그 인연을 ‘봉숭아 인연’이라고 한다.
사연인즉슨 이렇다.
그때로 4, 5년 전에 친구가 된 어느 건설회사 간부와 꽤나 술을 마신 날의 일이었다.
이날 술판 끝에서, 상대적으로 나이가 좀 더 많은 나를 보고 그 친구가 ‘형’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취기의 호기였다.
그런데 호기가 기분이 좋았다.
내 그 기분을 눈치 챈 그 친구가, 술판 막판에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
“형님, 우리 집에 갑시다.”
취기가 깊긴 했지만, 그 말은 내 귀를 번쩍 띄게 했다.
반가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놀라서 그런 것이다.
그 깊은 밤에 술 취한 친구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는 것은, 어지간한 용기가 없이는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잠든 아내 깨워서 무슨 심부름을 시키려고 그러시나. 관두시게.”
취기 중에서도 정색하고 거절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이렇게 막무가내였다.
“술이 이렇게 고래가 돼서 집에 가시면 형수님한테 혼납니다. 우리 집에 가셔서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드시고 술이 좀 깨서 가세요. 그래야 내 마음도 편하지요.”
그 정도로 깊은 마음씀씀이를 차마 손사래 쳐 내치지를 못했다.
이렇게 타협안을 냈다.
“우선 아내한테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시게. 그러고 난 뒤에 내 따라가든 말든 할 테니.”
그래서 그 친구가 아내한테 밤늦은 전화를 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옆에서 엿들은 그 친구의 통화가 이랬다.
“집이 아닌가봐.”
“라면 좀 끓여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알았어. 나 지금 집으로 갈게. 얼른 오시게.”
그 아내의 답은 엿듣지 못했으나, 대충 짐작은 갔다.
통화가 끝난 뒤에, 그 친구가 내게 한 설명이 이랬다.
“아내가 MBC TV 드라마 ‘불새’에서 빨갛고 파란 색채의 불새 그림을 그린 화가입니다. 나는 잘 그리는 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잘 그린 그림으로 보이는가 봐요. 그래서 요새 인터뷰 한다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네요. 형님 라면 좀 드시게 해드리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요.”
그래서 그 부인이 화가인줄 처음 알았고, 이름이 ‘양승예’이고 호는 ‘고선’(高仙)임도 처음 알았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놓고 있음도 처음 알았다.
그 밤으로 그 부인의 홈페이지를 찾아들어가 봤다.
놀라운 인연은 그 순간부터였다.
문간에 걸려 있는 배경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였다.
남녀 둘이 듀엣으로 부르는 노래였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다.
확인해 봤더니, 우리 시대의 민중가수인 정태춘 박은옥 부부가 부른 ‘봉숭아’라는 노래였다.
애잔한 분위기가 그대로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내 양 화백과의 만남을 ‘봉숭아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노랫말, 곧 이랬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메어주던
곱디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정말 오랜만에 양 화백을 만났다.
그것도 우연한 만남이었다.
지난주 토요일인 2022년 8월 27이 오후 4시쯤의 일로, 서울 동남쪽 종합물류센터인 ‘가든 파이브’ 툴동 4층의 ‘Between’ 카페에서였다.
이날 그 카페에는 ‘제임스 정의 7080하모니카 콘서트’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공연이 기획되어 있었는데, 나는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그곳 ‘가든 파이브’에서 사업을 하면서 그 공연을 후원한 김용균 친구가 시 낭송을 부탁하는 초대가 있어서 거길 갔고, 양 화백은 이날 공연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세자미앙상블’의 일원으로 거길 와서 만나게 된 것이었다.
양 화백과의 만남도 기뻤지만, 연주자로 또는 관객으로 이날 공연에 발걸음을 한 모든 이들과의 만남도 기뻤다.
특히 목포에서 천 리 먼 길을 달려와서, ‘꽃물’과 ‘목포의 눈물’ 그 두 곡을 연주한, 예술원하모니카 회원들과의 만남은 더 기쁜 인연이었다.
목포 시내에서 버스킹 연주를 한다고 했는데, 내가 낭송한 티베트 제 14대 달라이라마의 ‘The true meaning of life’라는 명언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특별히 나를 지목해서 그 버스킹 연주에 초대를 해준 것이 그랬다.
그러잖아 머잖은 장래에 열차를 타고 목포로 달려가서, 거기서 신안 홍도와 증도를 들러볼 참이었다.
간 김에, 그 초대의 현장에도 달려가 볼 작정이다.
봉숭아 인연으로 이어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인연이 사뭇 기다려진다.
첫댓글 이 아름다운 글에 홀딱 혼줄 놓아버렸네!
멋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