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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하계 학교법인 [현대학원]교직원 연수 후기
0805(일요일)김포-인천-로마
여행은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다림이 있어 좋다. 언제나 마음 설레는 말이다.
울산공항 로비에는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는 몇 사람이 반겨주었는데 김포 공항을 거쳐 인천국제공항에서 로마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직항로라고 좋아들 하는데 11시간 정도의 긴 비행기 여행은 다소 무리인 것 같아 중간에 한번쯤 내렸다가 다시 비행하는 게 시간이 좀 더 걸릴지라도 나은 게 아닐까 했다.
비행기내식은 비빔밥과 소고기 메뉴가 나왔는데 참으로 좋았다.
공항에서 받은 일정에 principe hotel에서 clelia-place hotel로 변경된 줄도 모르고 버스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네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서
혜관(慧觀) 이 상 태
지중해는 바람에 넘어져 푸른 멍이 들었다
맹물 들이키고 벌써 헛배부른 로마는
돌아온 십자군 종아리 걷어 올리고
회초리로 어머니 발바닥을 치는 빗소리 그립다
양치기 더위 먹은 차선을 따라
분필자국 거리를 누비는 자동차도 현대
한글무늬 미니스커트 나와 누비고 다녔다
천정만 바라보며 색칠하던 네오나르도다빈치
하늘이 좁다고 이름 따서 공항 지었다는데
석회가루 분분한 구름 반점에 숨이 막혀도
길이 없어 언제 못 가는 곳 있더냐
상반신 얼룩 대물린 휴대폰 날개를 펴고
먼저 배운 한글 현수막 걸었다
아들이 바지춤 빳빳하게 세우고 팔을 흔들자
한반도 상표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하늘은 손가락으로 천하를 힐난하던 칠판
선생님 하얀 머리에 안개가 피어올랐다
2007.08.06.
[시작노트]
여행은 어디론가 떠난다는 기다림이 있어 좋다.
미지에 대한 갈망이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일찍부터 와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로 반겨주며 로마직항로라고 좋아들 하였는데
오랜 시장시간 비행기 여행은 지루해서
중간에 한번쯤 내려 재충전하는 것이 더 윤택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푸른 지중해에서 멍이 든 종아리 이미지를 따왔다.
선생님과 제자, 어버이와 대물린 아들의 연상을 접목하여
세계를 지배하는 대한한국 상표를 바라보았다.
0806(월요일)로마-바타칸박물관일찍 깬 새벽은 더디 오는지
방마다 불은 꺼졌는데 TV는 잠이 오지 않았다.
시차 극복을 못하고 일찍 눈이 떨어져 세수 하고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다.
출근하는 차량들이 로마로 달리고 있었다.
개가 지켜주는 주택 담장 안으로 소나무가 키 높이만큼 잘려서 우산 모양으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스넥바에는 아침을 빵으로 때우고 있는 구릿빛 얼굴이 낯익어 디카에 담았다.
새로 눈맞춘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만나는 외국 미소를 받아들고 웬일인지 기분이 좋았다.
성 베드로성당 가는 길은 담장 밑에서부터 시작했다.
썬크림 스프레이로 무장하고 지루한 행렬에 동참하여 1유로짜리 생수로 목을 축였다.
나무그늘을 찾아 담장에 기대고 베드로에게 편지 몇 자 쓸 수 있었다.
아침의 나라 한국에서 날아온 성지순례단과 만나서 동방의 빛을 초록 눈빛으로 나누었다.
여호와 유산으로 번성한 바티칸의 박물관은 카메라 셔터 신나게 지문을 찍었다.
웹디자인 전공하는 딸아이의 얼굴이 자꾸 모자이크 되어 정신없이 화면을 채웠다.
밤에는 피자테리아에서 일행과 맥주와 과일안주로 이국의 정서를 달래고 잠을 청했다.
언제부턴가 이파리 따가운 날
바람은 눈금을 긋고 잎맥으로 흐른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건널목도 없고
차선 넓힐 수 없는 모세의 손뼉소리
고전이 외로운 오존층이 첨탑에 깨어진다.
주마등 아래 조국의 이름 태우고 가는 현대
자동차 타이어 자국 따라 눈이 자꾸 간다.
번화가 소음측정도 불가능한 베드로의 담장 아래
떠날 사람들이 무시로 모여드는 곳
길이 좁다고 갈 길을 못 가겠는가
늘 부족한 발가락 사이에 슬리퍼도 못 끼우고
발톱 문신할 수 없는 게 유죄다
말이 그랬다. 통해야 말이지. 바람 부는 것 같은데
소개받을 수 없는 열풍이 느닷없이 불어왔다.
0807(화요일)로마-폼베이-소랜토-나폴리
마차바퀴 긁고 지나간 봄베이 정박의 꿈은
수로를 당겨 손금 패인 수조에 눈을 씻고
걸음걸이가 뒤뚱거리는 샌달족은 껌을 씹는다
너는 유도화. 투사를 유혹하던 부채살 가냘프다.
원형극장 관람하던 푸른 깃발아래 화산재 뿌리고
오도 가도 못하고 화석이 된 춘화의 문틈에
대리석 깔고 끼얹던 뒷물이 햇살에 후덥지근하다.
크루즈 유람선에서 내려 절벽을 깎은 바윗길을 거슬러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향한다.
공중에 돌아앉아 사진 찍기는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산정으로 가는 줄에 매달려 바라본 소렌토의 파도는 물고기다.
파닥거리며 유영하는 햇살이 대리석 바닥에 산란하여 파랗게 질린 바다.
매달린 시선을 뽑아 당겼다. 당겨도 간격이 너무 멀다.
안타까움 어찌할까. 카메라 앵글을 탓할 수도 없다.
요트가 자리를 펴고 앉은 연안 아래로 천애를 이룬 시각이다.
내려다 볼 수 없는 바다의 꽃. 파도 향기가 낯설다.
나폴리는 가스등, 정신 전보, 전철, 고속도로가 세계 최초라는 자리를 굳히고 있는 항구이지만 지금은 낙후한 도시이다. ‘초원의 집’ 한식당 식사가 좋았다.
저녁 마치고 일행과 맥주와 과일 안주로 즐기고 잠을 청했다.
0808(수요일)플로렌스(미켈란젤로 언덕/시뇨리아광장/단테의 집)-베네치아
르네상스 발원지인 피렌체는 레오나르다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로시니, 라보엠, 푸치니, 단테, 마키아벨리, 포카치오 등이 태생하였고 널빤지에 돈을 놓고 환전해 주던 금융 중심으로 최초의 은행이 서고, 신 중심의 문화를 인간 중심의 문화로 바꾸어준 도시이다.
이탈리아 교육제도는 유아 2년, 초등 5년, 중학3년, 고등 5년, 대학 4~7년인데 최초의 볼로냐대학이 있는 도시이다. 초등 5년 전담임제가 눈길을 끌게 했다.
초등학교 등은 운동장이 없고 체육수업 등은 주변 학원에서 수강하고 확인서를 받아서 이수 하는데 효율적인 수업이 아닐까 생각했다.
시뇨리아광장에서 우박을 동반한 소나기를 맞았다. 저마다 우산을 받치고 30분 정도 처마밑으로 피신했는데 폭우는 이국의 옷자락을 물고 맨살에 젖어들었다. 단테의 집도 문이 잠겨 있어서 빗길에도 강행하는 여정에 짜증이 났다.
alexander-palace 호텔에서 변경된 nh-mantegna-ladova hotel 은 최신식이었으나 시골이라 주변 환경이 열악했다.
밤에 바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일행 모두는 불가하고 자리가 제각기여서 포기했는데 마침 옆방 김상곤, 최상식 선생님께 초대된 술자리가 좋았다. 뒤늦게 김종덕, 김태기 선생님이 합류하였다.
0809(목요일)베네치아(탄식의 다리/산마르코광장/두캘레궁전)-밀라노(두오모/스칼라좌)
비상문은 나갈 수 있지만 들어오지 못하는데 밖으로 나갔다가 ‘help me!’ 연발했다는 이야기로 아침부터 크게 웃었다. 아침식사는 동행하는 여행객이 100여명 더 늘어나서 자리차지도 어려웠다. 후식부터 먼저 가져다 먹는데 다른 식탁의 야쿠르트는 쳐다만 보고 눈을 맞추었을 뿐 손도 댈 여유가 없었다. 못내 아쉬움 더했지만 나중에 계란과 빵을 2인분 가져와서 룸메이트와 함께 했다.
버스로 1시간 반 달려서 가이드와 합류하고 배편으로 베니스에 갔다. 모두가 활기찬 모습이어서 참 좋았다.
베니스는 백향목을 바다 늪에 박아 놓고 그 위에 대리석을 깔아 만든 123개의 인공섬이다. 인공 뱃길을 만들었는데 해상도로는 육상도로처럼 가드레일도 있고 속도 제한도 한다. 베니스는 ①해일이 없다. ②모래와 자갈이 없다. ③ 자동차가 없다.
산마르코광장에 관광객은 물 먹을 데가 없는데 분수대에서는 비둘기에게 한가롭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산마르코성당은 유리세공과 모자이크 기술이 좋아 화려했다. 배낭여행 와서 1박 2식에 20유로 주고 민박에서 나왔다는 건양대학교 학생을 나무그늘 밑에서 만나 반가웠다. 돌아오는 길에 현지가이드가 옵션을 걸어 30유로짜리 해상택시로 온 사람들과 같은 시각에 배로 다시 돌아와 합류하였다.
반복되는 스파개티 지겨운 점심에 베니스 가이드는 떠나가고 4시간 반 동안 가이드 없이 밀라노로 버스가 출발했다. 휴게소에서 1.8유로 하는 환타를 사서 나누어 먹었다. 수족관에 이끼 낀 물이 흐르는데 물고기가 유영하고 호랑이발톱나무 분재에서 익은 씨앗 세 개를 가져왔는데 기후가 비슷하니 심어 볼 요량이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만년설을 향해 셔트를 눌러 주었다.
gland-malpena hotel로 도착하여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0810(금요일)밀라노-인터라켄(융프라우 등정/산악열차)
한적한 곳에 호텔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벽 산책을 하고 오는데 동료가 나왔다. 함께 아침 배경으로 촬영을 하고 6시 30분에 식사했다. 식사 시간이 모자라 7시 출발 시간에 맞추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허둥지둥 차에 오르니 내 자리는 없다. 운전석 뒷자리에 마련하고 열심히 메모하면서 4시간 걸리는 스위스로 간다.
16km 터널을 지나 thunersee 호수 물빛이 산색이다.
brienzersee 호수 사이에 있는 interlakan ost 도착하여 가이드 만나 식사하고 산악열차를 탔다. 산정으로 올라갈 때 곳곳에 그림 같은 집과 풀밭에 방목한 염소와 양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구름폭포는 정말 잊지 못할 장관을 이루었다. 총각봉 eiger와 처녀봉 jungfrau 사이에 관음봉 monch가 있어서 아직도 만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간에 굴을 뚫은 관망대가 2곳 있는데 얼음동굴로 들어서면서 가져간 새우깡 봉지를 택배 하고 얼음과 만년설을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산정에는 생각한 대로 추웠지만 기념사진을 찍고 관망대 휴게소로 내려와 커피와 딴은 컵라면을 먹으며 몸을 풀었다. 내려오는 길에 grund 역에서 산악열차에서 하차하고 호텔로 도보로 왔다.
알프스에서 한국인이 경영한다는 elgerblick-village hotel에서 저녁에는 맥주로 목을 축이고 밤 야경 튜어에 김상곤 부장과 함께 했는데 뒤이어 온 사람과 합류하여 호텔 바에서 맥주를 먹었다. 뒤이어 온 김두겸실장 일행을 바에서 만나 반가왔다. 정말 멋있는 알프스의 밤인데 단 하루여서 너무 짧고 못내 아쉬웠다.
0811(토요일)인터라켄-루체른-쮸리히-카이로
모처럼 늦게 눈이 떨어졌다. 6시다. 이제는 용변이 수월하다. 늘 같은 아침이지만 어제 찍은 풍경 속으로 산책하는 건 기분이 좋았다. 8시 출발시간인데 한 시간의 여유가 마음부터 풍요롭게 했다. 아침 식사 시간 눈시린 사과 향기 스치고 건네준 삶은 계란의 뜨거움이 오랫동안 온몸에 맴돌았다. 아침마다 고단위 칼로리로 양식을 하니 입맛이 돌아왔나 보다. 모두가 얼굴 표정이 밝고 알프스 정기를 받아 생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맑게 갠 유리잔에 거품을 물고
무심하다. 눈 뜨고 만년을 기다려 준 알프스
밤마다 발이 시려도 잠재우지 않는다.
걷는다. 석회석 바닥에 화강암이 나올 때까지
달려가는 산정의 바람은 차갑다.
디카로 찍어 담을 수 없는 야생화
화분에 심어 가져가고픈 마음이야
이상기온으로 산사태가 자꾸 난다.
광속이다. 콧노래는 어스름 사이로 소식 없고
로밍 되지 않는 문자메시지다.
장미꽃 향기 한 잔 풍치로 깨물어도
이빨 아픈 별은 보이지 않았다.
접속할 수 없는 하늘과의 만남창을 투시하는데 매 한마리가 날아올랐다.
바라볼수록 아득한 알프스에서 다만
나를 기다려 달라고 바람소리 전한다.
루체른에서 바위에 조각한 ‘빈사의 사자상’을 바라보니 측은하고 말없이 슬프다.
카펜교 자유시간 50분. 참으로 오랜만에 여행하는 분위기였고 걸어서 사진도 찍고 여유를 즐길 수 있어 참 좋았다. 오메가 시계탑 광장에서 만나 공항으로 출발했다.
스위스의 교육제도는 유치원 2년부터 시작되는데 사회성과 예의범절, 게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생활 등으로 저들끼리 자유롭게 하는 교육을 실시하며 신고정신을 가지게 해 준다. 초등학교 6년을 거쳐 중학교부터 22명의 아동들을 정교사 1명과 부교사 1명으로 구성하여 교육하며 교사+부모+아동심리학자가 합의하여 진학을 협의한다. 수요일은 모두가 오전 수업만 한다.
중학교부터 학점 선택제로 운영하는데 졸업제이며 입학은 자유롭다. 18세부터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을 하여 일하면서 공부하고 대학교는 20%정도만 진학한다.
김나지움에는 중학교에서 1~2명 정도 진학하고 경제, 수학과 과학, 언어, 예술 분야로 나누며 1학년에서 30% 탈락하고 다시 A급 학생들을 선발한다. 학교 어디를 가도 페스탈로찌 정신을 접목하여 ‘머리로 배우고 손으로 익히고 가슴으로 느끼는 교육’을 실천한다. 칼백의 ‘일한 만큼 먹고 살아라’ 하는 교육철학을 접목하고 있다.
코리아타운에서 김치찌개로 식사하고 밥은 추가되었는데 참 입맛이 좋았다. 1시간 반 버스로 쭈리히 공항으로 이동하여 암스테르담으로 1시간 반, 다시 카이로로 4시간 반 가야 한다. 기내식은 파스타와 피쉬였는데 빵과 쨈과 꽁깍지요리와 쥬스를 곁들였다. 에어프랑스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는 기압조정도 에어컨디션도 조정해 주지 않아서 귀가 멍한 게 하루가 지나도록 고통스러웠다. 새벽 2시경 도착하여 예정을 바꾸어 7시까지 공항 의자에서 노숙하고 다시 룩소로 1시간 반을 가야 했다. T/C를 불러서 물어봐도 이미 잘못 짜인 스케줄이라 어쩔 수 없는 일정이라니 이번 여행 중 가장 고통스러운 하루였다.
0812(일요일)룩소(왕가의 계곡/맨논 거상/합세수트/룩소신전/카르낙신전)-카이로
룩소 clelia-place 호텔에 도착 9시경 아침도 거르고 잠에 들었다가 11시 45분 모닝콜로 일어나 사워하고 나왔다. 베개와 이불에서 나던 향이 샤위액에서 나는 걸 보니 이집트 고유 향수인가 보다. 잠시 낮잠만 잔 호텔이지만 1달러를 두고 나왔다. 이집트는 1달러에 생수가 2병이란다. 나의 여행이니 내가 즐겁게 생각하고 여행을 즐기면 될 일이라고, 잘못 짠 여행사 스케줄 때문에 오전에 잠을 자야하는 어려움도 현대인들은 잘 감내해내고 있었다.
오후에는 발굴 순서의 번호를 달고 있는 왕가의 계곡으로 갔다.
100명의 아들 중에 13번째 아들인 람세스 3세의 지하세계. 북으로 수호신 코브라와 남으로 독수리를 두고 죽어서 황천을 항해할 배와 지하의 신 오시비스에게 대답을 대신해 줄 ‘사자의 서’를 가지고 갔다 한다.
여왕이 지은 장례신전에는 황소 세 마리와 링을 놓고 죄를 저울질을 했다. 독수리 두 마리 신의 그림자가 신전 밖으로 맴돌고 있었다. 도보로 20분 거리인데 음기가 세긴 센가 보다. 더워서 혀 빼물고 축 늘어진 어깨 사이로 바람도 지나가지 못한다.
오는 길에 맨논의 거상에서는 공기 빠져 나가는 소리 들었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 목소리일까?
카이로 거리의 지붕은 하늘이다.
둘레로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으나 창은 작고 밖에는 비가 오지 않아 지붕이 없는 집이 많다.
휘발유 값이 세계 5위인 한국인에게는 리터당 200원 정도인 산유국이 부러웠다.
람세스가 불러낸 코브라는 이빨이 없다.
오직 혀. 헉헉거리는 열사의 가쁜 숨을 내뿜을 뿐이다.
손 내밀고 황천으로 가는 뱃길에는 독수리가 날아오른다.
열풍도 침묵하고 나의 승천을 기다리는데
날갯짓하며 파닥거리는 건 눈빛이다.
빛과 바람을 섞어서 벽화를 그리고
파라호를 지켜주는 수호신들은
기진한 관광객을 안내하는 천사다.
파라호! 파라호! 누가 등 뒤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
오척 단신의 그림자는 어느 박물관 목관을 나와
잠이 들 깬 눈으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가.
당신은 나의 순례자. 따라 갈 수 없는 지하 신전을 지나
내세에 이렇게 만나기로 한 적이 있는가.
땅속 깊이 들어갈수록 호흡이 가빠지는데
무엇이든 길이대로 권력이 주어지는 게 아니다.
지신을 일으켜 땀이 차고 숨이 막히는 건
내가 하늘이 되어 안식을 지키고 있는지 몰라.
6척 88kg 나는 어디에 땅을 파고
남근을 세워야 하는가? 지척에는 바람도 없는 사막
시신이 불러낸 독수리 한 마리 먹이를 찾고 있다.
돌아온 카이로 cataract hotel은 오성 호텔이라서인지 방을 배정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비즈니스 센터에는 컴퓨터가 4대 있는데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만 연다고 했다. 방갈로식 호텔 룸을 찾는데도 안내를 따로 받아야 했다.
오성 간판에 맞지 않게 녹물이 나온다고 딴은 에어컨이 안 된다고 밖으로 나왔다.
안내데스크로 가서 어려운 영어로 T/C방을 확인하고 연락하여 다음날 방을 바꾸어 주기로 했다.
0813(월요일)카이로(피라미드/스핑크스/이집트박물관/룩소신전/나일강 크루즈 선상식)
피라미드는 4만명 동원에 10년 걸쳐 만들 수 있는 750만톤 무게의 51도 삼각형 탑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큰 바위를 깎아 올려놓았을 뿐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첨단의 피라미드가 경이롭다.
스핑크스는 우리나라 김복만 패션쇼 ‘빛과 소리’를 주제로 하여 낯이 익었다. 양쪽 피라미드를 두고 신전을 지키는 스핑크스는 떠나는 이의 발길을 사로잡는 눈이 측은하게 보였다. 차마 ‘빈사의 사자’ 관상이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신전에는 순양의 머리와 사자의 몸을 하고 있는 스핑크스가 줄지어 서 있고 라오스 「제사상」은 상자 모양의 화강암이었다. 신전에 제물을 놓고 하루 8번씩 제사를 지냈단다.
무엇이 두려워 파라호는 다시 하늘로 높이 올라가려고 했을까?
밤새 악몽에 허우적거리다가 잠이 들 깬 눈으로 떠나는 세월.
새로이 바람으로 만나 다가오는 그리움 어찌 하리. 다만 침묵할 수밖에.
오벨리스크는 낚싯대 끝이 뽀족한 모양이고 태양신을 숭배하는 쌍으로 구성하였다. 카르낙신전에는 투트모스1세가 2개, 하투수스 여왕이 2개를 세웠다. 하나는 「태포리」라 하여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고 하나는 「아툼」이라 하여 지는 태양을 상징한단다.
134개의 오벨리스크가 있다는데, 1개의 바위로 세운 장엄한 높이가 세계문화유산 제 1호를 칭할만했다.
다음에 태어나면 태양이 되어라.
바위를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 하나로 총과 칼과 바꾸고 도로를 만들다니
18년 걸쳐 운반해 간 콩고드 광장에 검은 색칠을 하고 있다지
첨단을 바라보는 카돌릭은 무엇을 더 줄 수 있겠는가
나의 이름은 파라호. 오벨리스크에도 새겨 넣을 수 없는
아스완의 그리움 어이 하리. 프랑스 나폴레옹에 잃어버린 공화국
이집트의 영광은 기자 피라미드에 빈 껍질만 남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소원도 내세에 이루지 못한 채 돌이 되었다.
점심은 외교관저가 있는 카이로의 한국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다. 카운터에서 인터넷 전화로 한국 가정으로 몇몇이 연락을 하였다.
카이로는 ‘승리자’를 일컫는 말이다.
여자들은 초경이 시작되면 율법에 따라 ‘희잡’이란 두건을 둘렀다. 눈만 보이게 머리를 감추는 ‘라카프’나 몸 전체를 가리는 ‘차도르’를 입고 살았는데, 외국 문물을 받아들인 상류층 자녀에서부터 점점 전통을 벗고 생활하는 추세라고 한다.
오후 카이로 박물관에서 치적이 가장 많았던 '쿠퍼왕'인데 손가락 크기만한 조각상 하나만 남긴 걸 보니 '진정한 영웅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갈대를 붙여서 종이를 만든 파피루스에 그려진 그림이 이채로왔고 4500년전 쿠퍼왕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침실이며 사우나 시설과 커턴고리까지 발달한 문화를 향유하고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왕의 무덤은 무두 도굴되었는데 왕의 명부에도 없이 18세에 요절한 'tutankhamun(투탕카문)' 왕릉에서 부인이 드린 꽃다발을 보고 경탄했다. 목관4개 안에 석관, 목관, 순금관, 미라 순으로 나온 것을 비롯해 많은 유물을 보고 당대의 찬란했던 고대 이집트문화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저녁은 nile maxim vivanda 유람선에서 선상 만찬을 했다.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만찬 기념사진을 무단으로 찍더니 이집트 상술로 5달러에 대부분이 한국인 관광객에게 팔았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라인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람선 조명은 오색 물소리를 낸다.
먼 곳 지평선을 바라보는 눈 그리매
그늘진 강의 주름살이 물결을 접는다.
그렇다. 기다려 주지 않는 바람은 벌써 스치고
언제부터인지 뒤따라간 보랏빛 강물
보름날 향단이 댕기 같아서 붙잡고 싶다.
다만 흘러가는데 머리카락 휘날릴 줄 몰랐다.
시종을 이끌고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이 꼭
손을 들고 ‘나요, 파라호는 나’라고 외치고 있다.
놓쳐버린 건 볼펜이 아니다. 알고도 적지 못하고
몰라서 부르지 못한 수신부재의 통신음
선상에서 부르는 축하 생일은 언제 올까
강물로 흐를 수 없는 우리는 마냥
바위로 서있는 파라호를 조각하고 있다.
마지막이니 전체모임을 갖자로 했으나 끼리끼리 자율로 하자고 했다. 야외 수영장에는 마침 저녁부터 12시까지 술이 없는 파티로 시작되는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학교끼리 가지고 온 먹거리를 모두 들고 호텔바로 나와 파티를 열기로 하고 맥주를 시켜 먹었다. 방 배정이 무단으로 바뀌어 연락이 닿지 않은 사람을 힘들게 찾아 함께한 이국에서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깊어갔다.
0814(화요일)카이로-듀바이-인천
아침 모닝콜 05시, 식사 06시 일정이었으나 꿈틀거리다 사워하고 나니 06시 12분이다. 식당에는 벌써 반이 넘게 와 있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일어나 많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이집트 현지 가이드는 경북대학교 출신으로 이집트를 보면 '지도자를 잘 만나야 국민들이 잘 살고 좋다'는 걸 느꼈단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먹여 살리는 나라가 이집트인데 ‘피라미드가 돌로 보이면 가이드 직업을 접고 다른 직업을 찾아라’는 말로 시작하여 가이드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번 여행단은 가이드 말을 잘 들어 주어서 좋았단다. 우리 현대인도 참으로 즐거운 이집트 여행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부치고 물표를 개인이 보관하기로 했다. 출국신고서를 작성하고 장거리 이국인과의 자리가 불편하다는 민원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위로 받은 좌석표를 배분했다. 기내에서 선뜻 자리를 바꾸어 달라는 말을 건네기가 어려운데 좌석은 필요할 경우 바꾸어 앉으라고 말로 때우고 넘어갔다. 중간에 듀바이에서 내려 기내에서 기록해 둔 품목과 가격 비교를 하면서 쇼핑을 하고 여유를 가져서 기분 좋은 얼굴로 다시 비행기로 올랐는데 빈자리 몇 개마저 모두 다 찼다. 긴 여정을 접고 비행기에서 내려 인천공항에서 세관신고서와 입국신고서를 작성하였다.
0815(수요일)인천-김포-울산
07시에 도착하여 10시 10분발 울산행까지 김포공항으로 공항리무진으로 이동한 다음 각각이 여유를 즐기고 무사하게 울산에 도착하였다. 한 여름 긴 여정을 함께한 현대인들이 각각의 가정으로 무사하게 돌아가는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귀가하였다.
좋은 점
① 현대학원 사무국에서 여행을 주선해 주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② 이탈리아, 스위스, 이집트 연수가 좋았다.
③ 현지 가이드 학생 아르바이트 역할이 인상깊었다.
건의사항
① 이탈리아 2일 +스위스 2일 +(유럽 1개국 추가 2일) +이집트 2일. (개인 분담금 없도록 일정 조정.)
② 현대드림튜어 t/c 역할 전혀 못함.(유경험자로 교체 : 호텔 사전 정보 가지고 있을 것.)
③ 여행사와 계약자 협의하여 일정 짤 것.(11일 02시 도착 07시 출발 비행 스케쥴 잘못 짜서 공항에서 노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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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먼 여행길 다녀오셨네요~~다행입니다. 건강하게 다녀오셔서 이렇게 글도 사진도 올려주시고..차근차근 글과 접목시키면서 봐야 하겠는걸요. 좋은 체험하고 오셨습니다. 좋은 글 지속적으로 기대하고 있을께요. 날씨가 너무 더워 전 지금 땀을 뻘뻘 흘리는 중입니다. 늘 건안하시길 빕니다.
유럽 여행 다녀 오신다고 수고 하셨습니다 멋진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남은 여름 건강하게 지내기길 바랍니다.^^
마무리를 보고 한참을 웃습니다. 바쁜 일정이 많이 아쉬우셨을듯하네요. 저는 늘 여행하면서 그렇거든요.그래도 곳곳에서 감성들 잘 다독이셔서 멋진 시를 쓰셨으니 부럽습니다. 이집트에서 만나셨다는 가이드의 말에도 귀 기울입니다. 피라밋이 돌로 보이면 이 직업을 접어라/는...가져오신 호랑이발톱나무분재 잘 키우시길 바랍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 안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 다시 하며 머물러봅니다 슬그머니 공개하신 몸무게와 키처럼 곳곳에 스며있는 자화상 같은 글,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멋진 글.
지상을 관통하고 오셨군요. 저도 언젠가는 꼭 누구랑 같이 가보고 싶군요. 무사히 다녀 오시고 후기도 올려 주시고 여전히 바쁘시네요.
저는 실실 자꾸만 웃음이 나오는데...어짜까요.^^ 뭐랄까요... 걍..근엄+풍경를 들여다 볼 이상태 선생님 표정이 연상되야서리...죄송합니다. 그래도 호호호... 암튼, 근사한 여름나기를 하셨네요. 3꼭지 읽었어요. 천천히 부채 부쳐가면서 읽을게요. 하고요. 저도 언젠가 가얄텐데...우리 두레문학에서 단체로 문학기행이라도 가면 안되까요? 3년짜리 계 부어서리...전 유럽을 싹쓸이 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