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행복한 귀향, 서울나들이 두 번째/아름다운 소통
2022년 8월 29일 월요일의 일이다.
오전 9시 20분에 문경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울 동서울터미널로 향하는 우등버스에 올랐다.
이날 서울 서초동의 횟집인 거제 지심도(只心島)에서 점심 약속이 되어 있어서였다.
17년 전인 2005년으로 거슬러, 내 검찰에서의 마지막 보직인 대검찰청 감찰부 감찰 제 2과 감사담당 검찰수사서기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당시, 나와 가까이 지냈던 선후배 수사관들의 모임인 ‘서리풀’ 회원들과 함께 하는 점심이었다.
내가 지난 8월 15일에 고향땅 문경으로 영구귀향하기 전의 약속이었다.
“내가 고향땅 문경으로 영구귀향을 했어요. 아직 며칠 되지 않아서 이삿짐도 다 못 풀었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이번 모임에는 발걸음을 못하겠어요.”
총무를 맡은 경인현 법무사에게, 내 일찌감치 그렇게 통보했었다.
그런데 만날 날이 다가오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어차피 덜 푼 이삿짐이니 하루 늦춘들 무슨 상관이겠냐는 생각을 했고, 우리들의 그 ‘서리풀’ 모임이 결성되게 된 것이, 내가 31년 9개월의 검찰수사관 생활을 끝내고 ‘명예’라는 이름으로 퇴직하는 것을 계기로 한 것이어서, 그 모임의 핵심 주인공이랄 수 있는 내가 빠진다는 것은 좀 비겁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생각한 것이 소통이었다.
나이와 계급 같은 신분을 따지거나, 특별히 전문적인 조건을 따져서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애로 함께 한 모임으로, 전혀 격의 없는 일상의 대화로 어울려온 우리들이었다.
곧 아름다운 소통이 우리들 만남의 요체였다.
그 소통이 그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요. 만사 제쳐놓고 그 자리에 발걸음 할 게요.”
내 그렇게 통보를 바꿔야 했다.
그리고 그 때를 맞춰 상경길에 올랐던 것이다.
‘카톡!’
버스가 충주 초입의 유주막 삼거리에서 충원대로로 접어들었을 때쯤에, 그렇게 내 핸드폰으로 카카오톡 메시지 한 통이 수신되고 있었다.
검찰에서 오랜 세월 인연을 맺은 여성수사관인 김사경씨가 띄워 보내준 메시지였다.
‘좋은 글 다섯 가지’
그 제목의 글로 꽤나 길다 싶었다.
나는 그 어느 누군가가, 그 어느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걸어오거나 메시지를 띄워 보낸다 해도, 하나 짜증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홀히 하지도 않는다.
꼭 다 챙겨 읽고, 필요하다 싶으면 꼭 답을 한다.
이유 있어 그랬을 것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함이 아름다운 소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카톡!’ ‘카톡!’하면서 수신되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이라는 명분으로 그렇게 메시지를 띄워 보내주기 십상인데, 그 이전에 누군가로부터 이미 받아서 잘 알고 있는 글이라고 하더라도, 또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또 읽고 그에 적절한 답을 한다.
김 수사관의 메시지도 그랬다.
그동안 여러 곳에서 따로 한 편씩 받아서 챙겨 읽어 본 글이었지만, 이날의 내게 있어서는 특별히 새로웠다.
이날 점심 때 만나기로 되어있는 ‘서리풀’ 회원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대화의 자료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섯 편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다 새겨 읽었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에 이렇게 댓글을 붙였다.
‘글이 참 좋네. 내 카페에 소개해야겠네. 감사 감사’
내 그렇게 또 하나의 아름다운 소통을 했다.
그 다섯 가지의 이야기를 다 새겨 읽어 댓글을 붙였을 때쯤, 차창 밖 풍경에 올림픽대교가 잡혀들고 있었다.
다음은 그 다섯 이야기 전부다.
-이야기 하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화창한 날에 기분 좋게 언덕을 올라가던 소년은 길에 튀어나와 있던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돌덩이가 왜 사람들 다니는 길에 있지? 소년은 삽으로 돌부리를 캐내기 시작했습니다. 파헤치자 점점 돌의 크기가 드러났습니다. 땅 위에 보이는 돌은 사실 큰 바위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소년은 놀랐지만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리지 않도록 파내겠어!"
소년은 분한 마음 반, 정의감 반으로 거대한 돌에 달려들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삽을 놓았습니다. 안 되겠다, 포기하자. 소년은 파놓았던 흙으로 돌이 있던 자리를 덮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걸려 넘어졌던 돌부리도 흙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중얼거렸습니다. "왜 처음부터 이 방법을 생각 못했지?"
그렇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넘어지게 했던 내 인생의 돌부리는 누구에게나 있지요. 그것이 나로 인한 것이든 남으로 인한 것이든 파헤치지 말고 덮어 주세요. 그것이 더 쉽고 온전한 방법입니다. 덮어주는 삶도 아름답습니다.
-이야기 둘-
구두쇠 주인이 종에게 돈은 주지 않고 빈 술병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술을 사오너라.” 그러자 종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돈도 안 주시면서 어떻게 술을 사옵니까?” 주인이 말했습니다. "돈 주고 술을 사오는 것이야 누구는 못하니? 돈 없이 술을 사오는 것이 비범한 것이지."
종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빈 술병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얼마 후 종은 빈 술병을 가지고 돌아와서 주인에게 내밀었습니다. "빈 술병으로 어떻게 술을 마시니?" 그때 종이 말했습니다. "술을 가지고 술 마시는 것이야 누구는 못 마십니까, 빈 술병으로 술을 마셔야 비범한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은 주는 대로 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납니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자기에게서 나가는 것이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자기가 던진 것은 자기에게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인생을 자업자득 혹은 부메랑이라고 합니다.
오늘 당신이 심은 것이 내일 그 열매가 되어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것을 심고 있나요?
-이야기 셋-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의 성당에서 한 신부가 미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부 곁에서 시중들던 소년복사(服事, 교회의 전례예식에 성직자를 돕는 사람, 일반적으로 소년 소녀)가 그만 실수를 해서 성찬례에 사용하는 포도주 잔을 엎질러 버렸습니다.
잔은 깨어지고 포도주가 땅에 쏟아 졌습니다. 신부가 노하여 소년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시는 제단 앞에 나타나지 마라." 하고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비슷한 일이 다른 성당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그 성당의 신부는 화를 내지 않고 말했습니다. "괜찮다. 나도 어렸을 때 실수를 많이 했단다. 힘 내거라."라고 하면서 소년을 다독였습니다.
성당에서 쫓겨났던 소년은 커서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이 되었으며 독재자로 군림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셉 브로즈 티토'입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쏟고도 따뜻한 위로를 받은 소년은 성장해서 천주교 대주교에 올랐습니다. 그의 이름은 '풀턴 쉰' 주교입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 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인자한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칭찬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즐겁게 합니다. 유쾌한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삶의 용기를 줍니다. 함부로 뱉는 말은 비수가 되지만, 슬기로운 사랑의 혀는 남의 아픔을 낫게 합니다.
한마디 말!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어차피 하는 말, 긍정과 기쁨의 말로 하루를 시작하세요.
-이야기 넷-
얼마 전 미국의 한 노인이 자기가 기르던 강아지에게 우리 돈으로 1,560억을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강아지를 돌보라고 부탁한 사육사에게는 1년에 5만 불씩, 5천 만원의 연봉을 주겠다고 유언했습니다.
개가 죽고 난후에는 개의 유산 1,560억 원중 남은 돈을 동물보호소에 기증하도록 유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외동아들에게는 100 만 불만을 유산으로 주라고 유언하고 서거했습니다. 100만 불은 우리 돈으로 10억입니다.
그러자 아들은 너무나 忿을 못 참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내가 개보다 못합니까? 개에게는 1,560억을 주고 나에게는 10억을 주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판사님, 억울합니다. 바로 잡아 주세요."라며 변호사를 사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 젊은이에게 판사가 묻습니다. "젊은이, 1년에 몇 번이나 아버지를 찾아뵈었는가?" “ ……. ”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즐겨 드신 음식 아는가?" “ ……. ” "전화는 얼마 만에 한 번씩 했는가?" 대답을 못합니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버님 생신은 언제인가?" “ ……. ” 아버지 생신날자도 모르는 아들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때 판사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찍어 놓은 비디오를 틉니다.
"내 재산 1,560억을 내 사랑하는 개에게 물려주고 사육사에게는 매년 5천만 원씩을 주고, 내 아들에겐 100만 불만을 유산으로 물려줍니다. 혹 아들이 이에
대해 불평을 하거든 아들에게는 1불만을 물려주세요."
그리고 판사가 "자네에게는 1불을 상속하네."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얼마나 부모의 가슴에 한이 맺히게 하고 부모를 섭섭하게 했으면, 부모가 재산을 개에게 다 물려주고 아들이 원망하면 1불만 주라고 했겠습니까?
우리가 대접받는 자녀가 되는 길은 부모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이야기 다섯-
저녁 무렵, 젊은 여성이 전철에 앉아 있었다. 창(窓)밖으로 노을을 감상하며 가고 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한 중년(中年)의 여인이 올라탔다.
여인(女人)은 큰소리로 투덜거리며 그녀의 옆자리 좁은 공간에 끼어 앉았다. 그러고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밀어붙이며 들고 있던 여러 개의 짐 가방을 옆에 앉은 그녀의 무릎 위에까지 올려놓았다.
그녀가 처한 곤경을 보다 못한 맞은 편 사람이 그녀에게 왜 여인의 무례한 행동(行動)에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처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소한 일에 화(禍)를 내거나, 언쟁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우리가 함께 여행하는 시간은 짧으니까요. 나는 다음 정거장에 내리거든요."
함께 여행하는 짧은 시간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다툼과 무의미한 논쟁으로 우리의 삶을 허비하고 있는가? 너무나 짧은 여정인데도 서로를 용서하지 않고, 실수를 들춰내고, 불평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할지도 모르는데...
사소한 일에 화를 내지 마세요. 조금만 참으면 내릴 때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