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는 학원 간다고 못 온댄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절까지 오르는 길에서 숨이 가뿌다.
아들 놈의 걸음도 빠르지만 지난 밤 문선배와 마신 막걸리 영향이 크다.
2월 퇴직하신 그 분을 진즉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동양 고전을 읽고 한자를 공부하시며 작은 학교에 방과후 한문도 가르치신다고 한다.
혁신도시에 사무실이 마련되면 놀러 오고 같이 어울리자 하신다.
논어 맹자를 배우고 천자문을 다시 익히는 그 분의 일상이 좋아보인다.
가게 앞 거리 탁자에 앉아 막걸리를 다섯병이나 마시고 왔다.
한결이의 걸음은 빠르다.
일곱살 때 쌍께사 민박집에서 자고 의신에서 대성골을 종일 장터목에 이를 때도
규철이랑 앞으로 사라져 바위에 앉아 있곤 했다.
가끔은 규철이 안보이면 우릴 찾으러 다시 내려오곤 했다.
동백골엥서 물 한모금 마시고 해불암으로 오르는 비탈에서는
아비의 숨소리도 듣지 않고 앞서 가 버린다.
몇 번 천천히 가라해도 어느 새 전만큼이다.
한강이라도 왔으면 내 곁에서 걸어 줄 텐데.
한편으로는 예전의 체력을 회복해 거침없이 짙은 숲 비탈을 오르는 그놈이 다행이기도 하다.
당뇨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한 거에 비하면
하는 일없이 밤 새워 뭘 하든 저리 건강이라도회복했으니 다행이다.
해불암 앞의 수도꼭지느느 말랐다.
느티 단풍 그늘에 앉아 대웅전을 바라본다.
대웅전 글씨가 단아하다.
600m를 27분이라고 써 둔 가파른 길이다.
벌써 저 만큼 앞에서 난간으로 쳐 둔 밧줄을 잡고 오르고 있다.
108계단을 나도 쉬지 않고 오르니 바위 끝에 앉아 있다.
사방이 훤히 뜷려 맑다.
서쪽의 좌우로 함평ㅇ 바다 건너 무안 해제 반도의 땅들도 보인다.
오른쪽응로 산줄기도 첩첩이다.
그늘에 앉아 간식을 머근 사람 사이를 피해 동쪽으로 간다.
무등의 덩치가 좋다.
용진산 어등산 앞으로 월야 해보의 논들이 물을 담고 있다.
상무대는 산에 숨어 있고 사창의 아파트와 멀리 불태산 귀봉 아래쪽으로 장성의 아파트도 보인다.
연실봉 표지석에 서라하고 사진을 찍어주고 셀카로 같이 찍는다.
웃지 않고 멀리만 보더니 어느 때 ㄴ고개를 나 쪽으로 숙여준다.
정상 바위 아래로 와 간식을 먹으려는데 앉기가 마땅찮다.
노루목 가는 입구에서 길을 벗어나 시원한 바람 터에 앉는다.
꼰대의 훈계를 않으려 노력하며 그와 대화를 나누려하지만 쉽지 않다.
일상을 공유하지 못한 탓이리
직업없이 멋진 삶을 사신 장일순 선생님을 말하고
요즘엔 유영모 선생의 책을 관심깊게 본다며, 돈버는 공부보다
좋은 삶을 사는 공부를 하라고 한다.
넌 장점이 많으니 차분하게 책을 읽으면 남보다 성취가 빠를 거라고
여전히 훈계조로 말하고 있다.
대선 후 새 정부가 서고 청문회 정국을 보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감각은 나보다 더 정확한 것 같다.
아버지가 영향을 어떻게 미친단 말인가?
믿을 수 밖에.
노루목 쪽으로 가는 앞에 위험한 길과 안전한 갈림길이 나타난다.
난 위험한 길로 가자하니 그는 돌아와 바위로 올라간다.
나더러 왜 위험을 감수하혀냐며 불만이다.
난 그게 더 스릴 넘친다고 한다.
해안의 바위같은 뾰족 바위들은 미끄럽지 않다. 틈에 손가락을 넣고 나를 끌어올려
앞쪽을 딛는 힘이 있으니 다행이다.
두 발 딛고 서서 저 멀리를 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노루목 넘어 노적봉 법성봉 쪽으로 길을 걷는다.
난 봉우리 조망처마다 바위 끝에 다녀온느데 그는 기다리고 오지 않는다.
저 대장녀의 풍광을 그에게 감흥을 주지 못하나 보다.
하긴 난 무슨 감흥을 얻는지--
런닝화를 신은 아들은 마른 내리막길엥서 몇 번 미끌어진다.
스틱 하나를 준다.
호랑이 굴에서 난 들여다보는데 그는 멀리서 본다.
한 떼의 산객들이 불갑산 호랑이 이야기를 하고 머무는 사이를 지나 내려가는데
뒤에서 날 부른다. 핸드폰을 떨어뜨렸댄다.
덫고개에서 불갑사로 내려간다.
세심정 한자 글씨는 예전 것인데 샘을 덮은 건물은 새로 바뀌었다.
불갑사 대웅전의 바깥과 안의 특성은 그에게 관심이 없다.
보리밥 집에 들러 7천원 짜리 밥을 비벼 먹는다.
한 사나이가 들어와 보리밥에 막걸리를 시킨다.
나도 막걸리 한잔하고 운전대를 맡길까 하다가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