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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사명
□ 본문 : 창세기 50장 22-26절
2020년 3월부터 시작했던 창세기 설교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창세기 50장은 가나안을 소망하며 끝이 납니다. 그러나 이 소망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고난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사이에 35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여러 관련 사료들을 살펴보면 요셉이 죽고 약 40여년 뒤에 애굽은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출생할 무렵에는 아예 이스라엘 민족을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하기 까지 약 310년 동안 핍박을 받았습니다. 출애굽 후에도 곧장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합니다. 이런 고난과 훈련의 시간을 거쳐 믿음의 조상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가나안의 영적 의미는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도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성경이 성도를 나그네라고 말씀하는 이유는 우리의 집이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삶은 텐트생활과 같습니다. 잠시잠깐 머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을 향해 가는 성도는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나그네와는 다릅니다. 세상 나그네는 자신이 여행하는 곳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사람들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운이 좋은 것이고, 악한 사람을 만나면 재수가 없는 것입니다. 빨리 떠나면 됩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이 세상은 사명의 땅입니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기에 나그네이지만, 우리가 머무는 곳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그네처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남이요, 그 만남에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이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가 사명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 나라가 그 사람 속에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그 땅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한 것입니다. 그곳이 천국이요, 그곳이 가나안입니다. 이처럼 영원한 하나님 나라 가나안을 소망하는 성도는,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명을 위해 삽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살고 있던 가나안 일곱 족속을 정복해 나가는 것처럼, 성도는 영적전쟁을 하며 마귀의 지배를 받는 이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기도와 함께 선한 행실이 마음의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이고 이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이 소망, 이 사명을 위해 살아갈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1. 하나님이 돌보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항상 살피고 계십니다. 우리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허락 없이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악한 일을 만났을 때 이런 말씀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고 계시다면 어떻게 나의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요셉의 인생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돌보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렸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시는데 어떻게 요셉이 이런 악한 일을 당합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악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것이 하나님의 전공입니다.
요셉은 주인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갔습니다. 노예가 죄수가 되었습니다. 죄수 중에서도 가장 천한 죄수였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도 왕의 죄수들을 섬겼습니다. 이런 일을 만났는데도 하나님께서 요셉을 돌보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 그래도 변함없이 하나님은 요셉을 돌보셨습니다. 성경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39:21)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절대 절망가운데 있는 요셉의 인생에 절대 소망이 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라고 말하는 것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가운데 생생하게 경험한 은혜의 고백이며 간증입니다. 무엇보다도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떤 고난을 만나다 할지라도 결코 하나님의 돌보심을 잊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동시에 영원한 천국 가나안을 향해 가는 우리에게,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십니다.
※ 지난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선한목자교회 장로회 수련회가 일본에서 있었습니다. 선한목자교회 담임목사님 부부와 두 분의 부목사님, 그리고 장로님 부부 50분이 참가한 수련회였습니다. 첫날 월요일 저녁에 리프레시센터에서 이용규 목사님께서 선한목자교회와 일본의 형제교회가 함께 걸어온 과정에 대해서 나누어주셨습니다. 1995년 중앙영광교회가 세워지고, 요코하마영광교회가 세워지고, 치바영광교회가 세워지고 그 후로 계속해서 형제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지난 30년의 시간을 한 마디로 고백하면 하나님의 돌보심이었습니다.
힘든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고난이 끝나고 행복이 시작되어야 하나님의 돌보심을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이 노예와 죄수의 13년을 보내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돌보심을 알았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은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습니다. 요셉은 감옥 속에서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습니다. 요셉은 순간순간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로 13년의 혹독한 훈련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노예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죄수로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했기에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고난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고난을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악한 일을 만났습니까? 하나님은 그 악을 선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아픔과 상처의 관계를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돌보심은 고난이 끝나야, 악이 선으로 바뀌어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후에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고 대단한 일을 본 후에야 하나님의 돌보심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의 삶이 하나님의 돌보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치바영광교회를 개척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교회가 개척된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한국인소식지가 놓여있는 곳들, 예를 들어 한국인 식품점이나 가게, 식당 등을 찾아가서 교회전도지를 넣었습니다. 그때가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분식집이었는데요, 주인의 허락을 받고 전도지를 넣고 있었습니다. 가게 앞에서 오뎅을 팔고 있었는데 얼마나 맛있어 보이는지 몰랐습니다. 오뎅 한 그릇은 손이 떨리지만, 그래도 오뎅 한 꼬치 정도는 사먹을 수 있는 형편이었는데 마침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뎅과 눈을 맞추지 않고 전도지를 넣고 있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추운데 따뜻한 국물이라도 드세요.’ 하면서 종이컵에 오뎅 국물을 떠주었습니다. 얼마나 오뎅 국물이 뜨끈하고 맛있었는지 주인아주머니를 전도하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오뎅 국물을 얻어먹고 있는 내가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수고한다는 하나님의 격려였습니다. 그래서 그날 하루는 뱃속만 아니라 마음도 따뜻했습니다. 조금 서운한 것이 있다면 이왕 주시는 거 오뎅 꼬치도 하나 주시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아무리 답답한 일을 당하였어도, 아무리 악한 일을 만났어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 없이 살아있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 없이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크고 대단한 것만 하나님의 돌보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따뜻한 오뎅 국물을 먹여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오히려 꼬치는 하나 없고 국물만 주신다고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특새가 반이 지났습니다. 아직까지 한 번도 특새에 나오지 못한 분이 있다면 내일부터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특새를 통해 따뜻한 국물로 우리의 배도 우리의 마음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목사님, 그런 국물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내가 만난 이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기적이 필요합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적이 필요합니다. 죄수 요셉이 한 순간에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기적이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런 기적은 하나님만이 행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감옥이 궁궐로 변하고, 죄수가 총리가 되는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요셉이 죄수에서 총리가 된 기적은 한 순간이지만, 그 기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 기적이 일어나기까지 하루하루 노예의 삶을 인내했습니다. 요셉은 그 기적이 일어나기까지 하루하루 감옥의 삶을 견디어 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습니까? 날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국물 한 컵의 돌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국물 한 컵의 돌보심으로 오늘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국물 한 컵의 돌보심으로 일 년을 인내하고 그렇게 십삼 년을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죄수가 총리가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제가 24년 동안 치바영광교회를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크고 놀라운 역사 때문만이 아닙니다. 흔들릴 때마다 저를 붙잡아 주었던 것은 날마다 베풀어주시는 국물 한 컵의 돌보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의 삶속에서 국물 한 컵의 돌보심을 감사하십시오. 아무리 힘든 노예생활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국물 한 컵의 돌보심이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감옥생활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국물 한 컵의 돌보심이 있습니다. 국물 한 컵의 돌보심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돌보심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찾아보십시오. 반드시 있습니다. 국물 한 컵의 돌보심을 찾고 그 돌보심을 감사하며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럴 때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번 특새에 국물 한 컵의 돌보심을 찾고, 국물 한 컵을 감사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24절의 ‘인도하여 내사’는 사역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누군가에게 시켜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입니까? 바로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다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모세인지 요셉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누군가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은 인도자가 있습니다. 그 인도자는 모세와 비교할 수 없는 인도자이십니다. 모세는 온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인도하여 내실 구원자의 모형일 뿐입니다. 우리의 인도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의 길로 영생의 길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셨습니다. 할렐루야!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나님 아버지 보좌 오른편에 앉으신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죄 악으로 가득 찬 이 땅을 복음으로 정복해나가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인도하신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장애물이 있다면 제거하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때와 똑같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방해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행하는 기적 앞에 바로의 방해는 무너집니다. 모세가 인도할 때 이스라엘 자손 앞에 있던 홍해가 갈라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했던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모세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에,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사명을 감당합니다. 영적 싸움을 싸우며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갑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은 사람의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고 따라가는 자는 절대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지혜가 인도하는 길은, 그 길이 아무리 바른 길로 보이고 성공의 길로 보여도 그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사명의 길은 내 힘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영적 싸움을 싸우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세울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으로만 세울 수 있습니다. 사명의 길을 가는데 왜 지치고 피곤합니까? 진리를 길 생명의 길 승리의 길을 걸어가는데 왜 자꾸 흔들립니까? 내 힘으로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새 힘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달려가도 걸어가도 피곤치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찬양하며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하늘의 지혜와 능력 주십니다.
3.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약속하신 하나님이 친히 이루십니다. ①출애굽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②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③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역사에 쓰임 받을 뿐입니다. 잠시 있다 사라져버리는 인생인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임 받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까? 기도입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62:6,7)
이 말씀을 새번역성경으로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들을 세웠다. 그들은 밤이나 낮이나 늘 잠잠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하신 약속을 늘 주님께 상기시켜 드려야 할 너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상기시켜 드려야 한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 예루살렘이 세상에서 칭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주님께서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한다.”
약속을 하신 분도, 약속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늘 상기시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실 때까지 쉬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하신 약속을 잊어버리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고 쉬고 계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됩니다. 우리가 특새로 모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크고 놀라운 역사가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십니다. 복음이 세상 구석구석에 전파되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십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하나님 나라는 완성됩니다. 하나님은 이 일에 우리를 부르셔서 기도와 전도로 동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자녀인 우리들에게 주시기 위함입니다.
25절 말씀입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은 애굽 땅에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 충성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는 또 한 가지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나안의 소망을 계승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애굽에서 살지만 애굽이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였습니다. 그것도 기근의 멸망에서 애굽을 구한 영웅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권세와 애굽의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동시에 이스라엘 자손이 소망할 곳이 오직 가나안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할 뿐만 아니라 이것을 잊지 않도록 여기서 자신의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올라가라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맹세시킵니다. 요셉은 다음 세대에게 말로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사명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명은 기도와 복음전파입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집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사명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도 우리의 뒤를 이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 리프레시센터에서 선한목자교회 장로님들과 함께 일본을 위해 기도하는데, 기도회를 인도하시는 장로님께서 이런 기도제목을 내놓으셨습니다. ‘일본의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을 찬송하게 하소서.’ 이 기도제목을 듣는 순간 제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저에게, 우리 교회에 주신 기도제목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말 그 날이 오기를 사모하고 사모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과 사명으로 살아가는 부모 세대와 다음 세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께 영광!
치바에서 김성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