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3. 29. 토요일
날씨.. 한바퀴만 뛰어도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너무 눈부셔서.....
벌주긴 별로 좋지 않은 날씨다. 왜? 민망하니까.....
우리 선생님은.......
아침 자습으로 연상게임을 했다.
10가지 문장을 완성하는 놀인데. 아이들의 대답이 참.. 재밌다.........
무엇보다도 4번 문항의 반응이........가장 기대된다.......
4. 우리 선생님은 ( )...... 6명의 대답이 나를 미소짓게 한다..
축구를 안해서 아주 조금......
체육을 별로 안합니다.
체육하는 것을 싫어해서 그렇지 제일 좋은 선생님입니다.
체육하기 싫은 분
체육을 안해서 조금... 그렇습니다.
학교에 오면 체육을 싫어한다.
^^ 이 얼마나 솔직한 대답인가?
내가 그렇게 체육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나? ^^
하긴 생각해보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은연중에 체육은 다른 과목 보충시간으로 활용해도 괜찮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지 관리를 다시 해야겠다. 체육이 싫은 건 아니다.. 단지. 내가 못하니까.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서...자꾸만.. 빼먹는 것 뿐이다.
오늘도 체육 때문에 엄청 고민을 했었다. 뭘 해야 하나? 사실. 그냥 공하나 던져주면 그만이다. 재밌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꾸만 다른 반이 신경이 쓰인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
교육과정 진도 맞춰서 체계적으로 수업하고 계시는 선생님들 보면.. 괜히 우리반은 공부도 안하고 노는 것 같아서. 민망할 따름이다.
어제는 청소 끝나고 지들끼리 복도에서 배드민턴을 하다가 3반 선생님께 엄청 혼이 났었다고 한다. 그 온화하신 3반 선생님이 혼을 내셨으면 알만하다 알만해... 휴~
어제일도 맘에 걸리고 해서. 오늘은 좀 빡시게 굴려보리라 결심을 하고 혜수랑 민정이 두명을 불러냈다. 선생이란 사람은 떠드는 사람을 적으라는 비인격적을 일들을 시켜놓고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교무실로 돌린다.
송부요청 3일이내에 처리해야 하는 공문을 벌써 24일째 잡아 두고 있었으니... 오늘 중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수업시간에는 이러기 싫은데.. 어쩔 수 없었다..
벌서 9시 20분이다..... 일교시가 딱 반이 지났다. 바쁜 마음에 헐레 벌떡 뛰어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3층 계단부터 떠드는 소리가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역시 우리반이다.
문을 벌컥 열어 제끼고. 째려본다.
“떠든 사람 누구야? 김중훈 너 목소리. 저 끝에서부터 들리더라.. 너 왜 고함 질렀어?”
“저 아닌데요~ 저는 조용히 책읽고 있었는데요...”
“아니라고? 정말 아니야? 그럼 누구야 방금 고함지른 녀석?”
잘못 짚었나 보다. 정말 아니란다... 벌써부터 아이들을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 시작한다.
떠들면 무조건 중훈이랑 정언이 그리고 정이 진우가 떠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애들부터 다그치게 된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벌써부터 편견에 사로 잡힌 교사가 되어가고 있다. 싫다..
칠판을 보니.. 김성수 한명 뿐이다. 아니다. 성수만이 아니다.
“한번이라도 칠판에 이름 적힌 사람 다 일어서. 이름불러..”
“좋아 12명. 선생님이 분명히 약속했지? 떠들어서 다른반에 피해를 줄 경우. 운동장 10바퀴라고? 사회책 펴~!”
“그리고 오늘 숙제 안 한사람 누구야? 날씨 일기 안 써온사람 말야? 손들어 번쩍 들어.. 그사람들은 남아서 다하고 간다. 알았지? 사회책펴”
쉬는 시간도 없이 진도를 빼고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기색도 없다. 오히려 미안한건 나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도 나다. 내가 먼저 선생님으로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벌을 안서도 되고 아이들은 벌을 서야한다. 휴~
음악시간이 너무 소란스럽다. 소고소리 단소소리가 머리를 쥐어뜯는 것처럼 아프게 한다.
신경이 너무 예민해진 탓도 있겠지만.. 순간의 감정이 또다시. 아이들을 올가맨다.
“조용히 해~ 선생님이 단소 넣으라고 몇 번 말했어? 다들 운동장으로 나가. 10시 50분끼지 줄서서 대기해.. 운동장 10바퀴다. 알았지? 그리고 한명이라도 줄 안서있으면. 운동장 5바퀴추가다 알아서 해~ 나가!!”
‘내가 왜이럴까? 이러면 안돼 스미골~~~~~....................’
갈수록 느는건 신경질이요. 애꿎은 애들만 괴롭다....
운동장에 나가자마자. 또 사건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이것이 우리반이다.
“선생님 선생님 큰일 났어요. 허남규 이마에 찢어진데 또 찢어져서. 피 억수로 많이 났어요. 그래서 지금 양호실 갔어요...”
“왜? 왜 찢어졋는데? 무슨일이야? ”
“허준호가 때렸어요`”
“허준호 나와.. 왜 때렸어? 다른 사람은 운동장 뛰어. 4바퀴는 그냥 뛰고 1바퀴는 전력질주다 알겠나?”
“왜 그랬어?”
“예..제가 먼저 말할께요 사실은요. 허남규가 줄 똑바로 안 서길래. 한번 밀고 똑바로 서라고 말했는데. 재가 치잖아요. 그래서 때렸습니다.”
“뭘로?”
“주먹으로 한 대 쳤습니다.”
“야~ 니가 깡패야? 어디 사람을 쳐~!! 너도 맞아볼래? 그러다가 사람도 죽이겠다. 엉??”
“허남규.. 넌 선생님 말이 말같이 안들려? 너 때문에 전체가 벌을 받아야겠어? 어?”
너희들은 손잡고 운동장 5바퀴 뛰어~ 뛰어가~!“
5바퀴나 뛰었는데도 아이들은 전혀 힘든 기색이 없다. 너무 당황스럽다.
심지어 웃으면서 까지 들어온다...... 기합은 빡시게.......... 좋다..
오늘 한번으로 끝내자.. 이게 마지막이다.
“남자들 다시 3바퀴 뛰어~ 뛰어가.. 여자들 제일 마지막에 들어온 3명 다시 뛰어 뛰어가~!”
“다른 사람 차려~ 눈감고 기다려~”
침묵이 흐른다. 2반 선생님이 보고 있다. 부끄럽다. 민망하다.
“오늘 아침에 떠든 사람 12명 나와~!
“오리걸음으로 운동장 한바퀴~ 줄 맞춰서 걸어라. 입열지마. 똑바로 안하면 다시 한바퀴 추가다. 시작~!!”
여기저기서 쳐다본다. 얼굴이 후끈거린다...... 벌주는 것도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모든 시선에 초연할수 있어야한다. 학부모 시선. 선생님 시선 지나가는 동네 꼬마들 시선까지도.........
꿋꿋이 내가 할 일.... 오로지 벌주는 일에 전력하고 있는데.. 복병이 등장한다.
저기서 교감선생님이 걸어오고 계신다.. 모른척 하시고 그냥 가시면 좋으련만........
점점 가까워온다.... 제발..... 그냥 가세요..........인사는커녕 눈도 못 마주친다.......
이런걸 불행중 다행이다라고 하나?. 나를 한번 씩 보더니. 그냥 아무 말 없이. 지나가신다.........신규 주제에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
오리걸음..오리걸음?.......이건 정말 내가 받아야하는데.. 내가 자리를 비워서 애들이 떠들었으니까. 내가 지켜야할 자리를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학교에서 심심찮게 행해지고 있는 벌의 대부분은 사실은 선생님들이 받아야 할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다. 4반아.......
이렇게 또 하루가 흘러가고........ 언제나 그랬듯이 잘못한 일들만 생각나는 오후다.
이런 나도 선생님이라고 따라와 주는 4반이 너무 고마우면서도 너무 미안하다.
우리 선생님은............
좋으신 분이다. 예쁘다. 자상하시다......... 21명이 그렇게 대답했다........
또 승경이는 저는 ( 김선혜 선생님 )을 좋아합니다. 라고 적어주었다.........
나는 승경이에게 잘해준게 없다. 하지만..... 승경이는 내가 자기 선생님이란 이유하나만으로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이게 아이들이고.............
홧김에 벌주고 괴롭히는 나는 선생이다..........
첫댓글 초보 김선혜 선생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열심히 하자..화이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