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복판 금융시설 이용 "곳곳에 장애물"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로 가까운 ATM기마다 이용 못해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하지 않으면 차별행위에 해당
도로명 주소 도입후 대한민국 1번가는 세종대로가 아닌가 싶다. 광화문 앞에서 서울역사거리에 이르는 도로다. 그 중간에 시청이 있고 국보1호 숭례문이 있다. 며칠전 시청앞에서 숭례문오거리에 이르는 도로를 지나면서 이곳에서 지난 겨울에 겪었던 일을 떠올렸다.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해 연말 어느 날 저녁이었다.
서울의 중심부 시청과 숭례문 사이의 어느 호텔에서 고등학교 동창들의 송년회가 열렸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보고 싶어 휠체어를 타고 추위를 뚫고 행사에 참석했다.
한달 전 집안에 경조사가 있었고, 많은 동창생들로부터 부의를 받았던 터라 모이는 기회에 얼마간의 기부금으로 답례를 하고 싶었다.
계좌이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럴 때 기부금은 현금을 봉투에 넣어서 전달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미처 현금을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에 근처의 은행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해야 했다.
지도를 보니 호텔 근처에 국민은행 남대문 지점이 있었다. 아직 행사를 시작하려면 10여 분 이상 남아서 호텔을 나와 숭례문오거리에 있는 국민은행으로 갔다. 위치는 세종대로 50이었다.
이 건물 1층은 국민은행에서 남대문종합금융센터와 KB증권 강북CIB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제법 큰 규모이다.
저녁 시간이라 사무실로 들어가는 서터는 내려져 있었지만 주출입구 옆에 있는 현금인출기실에는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그러나 출입구에는 한뼘 정도 높이의 턱이 가로막고 있어서 휠체어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건물을 둘러보니 건물로 들어가는 통로는 2개가 더 있었다. 그러나 영업시간이 지나서 폐쇄되어 있기도 하지만, 모두 계단이라서 휠체어는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주출입구를 단차로 가로막아 휠체어 장애인의 출입을 거부하는 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지난 겨울 및 현재) ⓒ소셜포커스
하는 수 없이 다른 곳의 ATM기를 찾아야 했다. 도로 건너편에 신한은행이 보였다.
오거리의 복잡한 신호체계로 인하여 겨울밤의 추위 속에 한참을 기다린 끝에 길을 건너 신한은행으로 갔다.
마침 길을 건너자 건물 밖에 ATM기가 있었다. 신한은행 본점 건물 옆에 설치된 이 ATM기는 인터넷 지도에도 특별히 표시가 되어 있는 걸 보면, 신한은행에서 이 ATM기의 위치홍보에까지 신경을 쓸 만큼 의미있는 시설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ATM기도 휠체어 장애인에게는 접근조차 불가능한 차별시설이었다. 한뼘 높이도 안되는 단차 때문이다.
바로 옆에 거대한 건물이 이 은행 본점이니 건물로 들어가면 1층 로비쯤에 ATM기가 있을 것 같아 다시 은행 건물로 향했다. 도로와 건물의 로비층에 높이 차이가 있어서 통로는 경사로 형태로 되어있다.
이번에는 그 통로가 문제였다. 보도는 휠체어 이동을 어렵게 하는 요철구조다. 휠체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통행에도 불편한 구조다. "미끄럼 방지를 위한 것이라면, 휠체어 접근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왜 하필이면…"하는 생각이 든다.
신한은행 본점 건물 옆에 있는 ATM기(지난 겨울 및 현재) ⓒ소셜포커스
신한은행 본점건물로 들어가는 통로(지난 겨울) ⓒ소셜포커스
난관을 극복하고 건물 주출입문 앞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출입문이 문제다. 회전문이 2개나 있고, 다른 문도 있었지만 자동문은 보이지 않았다. 회전문이나 여닫이문의 경우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장애인이 혼자 출입할 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다.
그래서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의하면 “국가ㆍ지방자치단체의 청사는 장애인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출입구 중 1개 이상을 자동문 형태로 하도록”하는 규정이 있다. 민간 건물에까지 부담을 주고싶지 않아서 공공청사에만 의무사항을 둔 것 같다.
이 건물이 국가기관 청사는 아니라서 법을 어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건물이 공중시설인 은행이고 더구나 국내 굴지의 금융기관 본점 건물이라면 법적의무를 떠나서 이러한 규정은 지켜져야 한다. 요즈음 골목의 구멍가게도 웬만하면 자동문을 갖추고 있다.
아무튼 필자는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 하나로 혹한의 겨울밤에 ATM기 한번 이용하려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가장 중심지에서 이처럼 수많은 난관을 거쳐야 했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 차별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에서는 우리는 절대로 장애인을 차별한 사실이 없다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 제1항에는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장애인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제3항의 요지는 “정당한 편의라 함은 장애인이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반 수단과 조치를 말한다”는 규정이다.
신한은행 본점건물의 정문 출입구, 자동문은 보이지 않는다. ⓒ소셜포커스
앞에 있었던 국민은행의 사례를 좀더 따져보자. 그 은행은 현금인출기 사용뿐만 아니라, 휠체어 사용자는 아예 은행을 이용할 수 없는 구조다. 그 은행의 주출입구는 구조상으로 조금만 신경을 쓰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경사로를 충분히 갖출 수 있어 보였기 때문에 더욱 원망스러웠다.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의하면 바닥면적이 500㎡ 이상 금융시설의 경우 주출입구의 통로에 단차가 발행하지 않도록 시설을 갖추도록 되어 있다. 그 국민은행 건물은 등기상 1층의 면적이 1,300㎡가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일단 규모와 용도상으로는 장애인 통행을 위한 기본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다만 이 건물은 이 법령이 생기 전의 지어진 건물이고, 민간소유라서 의무대상에서는 면제되어 있다. 1997년도 관련 법 제정시 그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하더라도 국가 등 공공시설에 대해서만 법정요건을 갖추도록 했었다. 민간시설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건물의 1층이 국책은행의 시설이라면 문제가 좀 다르다. 법적 의무를 떠나서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사진에서도 보는 바와 같이 당해 시설에 경사로를 만드는데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지도 않다.
장애인에게 편리한 시설을 갖추면 장애인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해질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좀더 편리해진다면 건물가치도 올라갔으면 올라갔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행위에 대한 여러 건의 결정사례에 따르면, 법령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현저한 경제적 부담 등 부득이한 사유가 없음에도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차별행위라고 했다.
국민은행에서는 그 건물이 국민은행 소유가 아니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나올 지 모르겠다. 국책은행인 국민은행이 진정으로 이동약자를 배려하거나 국민의 이동평등권을 생각한다면 건물주를 설득하든지 양해를 구해서라도 편의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국민은행이나 흥국생명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이번에 숭례문오거리를 지나면서 작년 겨울밤에 고통을 주었던 그 곳들을 둘러보았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그리고 흥국생명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여 문제점이 있는 시설은 하루속히 시정하기 바란다.
그리고 다른 지점에는 문제가 없는지도 살펴보기 바란다.
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건물의 모습 ⓒ소셜포커스
은행 출입구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국민은행의 다른 지점 ⓒ소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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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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