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흐른다면?
[강석기의 과학카페 119] 분자유전학 연구로 요동치는 고인류학
얼마 전 지하철을 탔다가 자리에 앉아있는 한 중년의 외국인 남성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낮은 이마와 돌출된 눈 주변 골격, 길쭉하면서도 넓적한 코, 툭 튀어나온 입, 불그스름한 옅은 갈색 머리카락, 손등에 수북한 털. 한마디로 현생인류의 가까운 친척인 네안데르탈인의 복원모형이 연상되는 외모였기 때문이었다.
문득 2010년 말인지 2011년 초인지 정확하지는 아니지만 테라젠바이오연구소 박종화 소장을 만났던 것이 생각났다. 박 소장은 생명정보학 분야의 권위자로 아시아 인종의 기원을 밝힌 국제공동 연구에 참여했고 그 결과는 2009년 ‘사이언스’에 실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필자가 박 소장을 찾아간 건 네안데르탈인의 게놈과 한국인의 게놈을 비교해 한국인의 게놈에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얼마나 남아있는가를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기 위해서 였다.
●내 몸속에 흐르는 고인류의 피
2010년 5월 7일자 ‘사이언스’에 네안데르탈인 게놈 해독 연구결과가 발표됐는데 놀라운 내용이었다. 현생인류의 게놈에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과연 섞였을까 하는 의문은 오래된 논쟁이었고 미토콘드리아DNA 분석 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에서 이 연구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연구를 이끈 독일 막스플랑크진화인류학연구소 스반테 패보 박사는 둘 사이에 관련이 없다는 가설을 입증하려고 연구를 시작했는데 허를 찔린 셈이다.
그럼에도 연구결과에 신뢰가 가는 건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유럽인과 아시아인에만 있고 아프리카인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 즉 현생인류가 수만 년 전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과 아시아로 퍼졌고 이때 이곳에 살고 있던 네안데르탈인을 만나 혼혈이 일어났다는 시나리오와 잘 맞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을 읽다가 필자는 문득 한국인 게놈에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몇 %나 섞여있는지 알아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박 소장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흔쾌히 동의했지만 막상 작업을 시작하자 실무적으로 문제가 있어 더 진행하기 어려워 결과를 보지는 못했다.
아무튼 그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박 소장은 현생인류에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였다고 확신한다며, 유학생활을 할 때 정말 현생인류가 아닌 것 같은 외모의 사람들을 간혹 봤다는 말도 했다. 얼마 전 필자가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경험이 아니었을까. 물론 우리 둘 다 비교해부학 지식이 없기 때문에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을 구분하는 골격의 특징을 몰라서 이런 생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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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이워 엘레루 유적지에서 발굴된 1만3000년 전 인류의 두개골. 형태를 비교분석한 결과 고인류와 현대인류의 특징이 섞여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플로스 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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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박 소장은 재미있는 ‘예언’을 하나 했다. 2010년 결과가 나오기 전 사람들이 미토콘드리아 게놈 분석을 토대로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관계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건 미토콘드리아 게놈이 모계유전을 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것. 즉 네안데르탈인 남성과 현생인류 여성이 만나면 상염색체는 섞이지만 미토콘드리아 게놈은 여전히 100% 현생인류의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는 100% 네안데르탈인이다.
따라서 현생인류의 계보에 네안데르탈인이 유입됐을 경우 세대를 거치면서 상염색체는 생식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재조합을 통해 섞이므로 2010년 결과처럼 ‘현생인류 게놈에 네안데르탈인 게놈이 2.5% 들어있다’는 식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미토콘드리아 게놈은 ‘모 아니면 도’일 것이라는 것. 지금까지 알려진 미토콘드리아 게놈 데이터는 모두 현생인류의 계보에 속하지만(사람들의 미토콘드리아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생인류의 공통조상이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나타났다고 추정하고 있다), 더 많은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분석하다보면 어느 날 기존 범주에서 벗어난 게 툭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것.
아무튼 네안데르탈인 게놈 유입 확인 뒤에도 분자유전학의 도움을 받은 고인류학은 연이어 엄청난 발견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10월 12일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은 그 정점으로, 시베리아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수만 년 전 미지의 인류(데니소바인으로 명명)의 손가락뼈에서 추출한 DNA를 분석해 게놈을 거의 완벽하게 해독했다는 내용이었다.
데니소바인은 네안데르탈인과 가까운 인류로 밝혀졌는데, 놀랍게도 현생인류 가운데 뉴기니아와 호주에 사는 원주민 게놈의 5%가 데니소바인 DNA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수 만 년 전 시베리아를 지나던 한 현생인류 집단에 데니소바인이 유입됐고 이들이 뉴기니와 호주에 정착한 것. 그 후 어느 시점에서 시베리아의 데니소바인은 멸종했을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결과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들의 게놈에는 유럽인이나 아시아인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인류 흔적이 2% 정도 남아있다는 것. 아래 그림은 지난해 5월 3일자 ‘네이처’에 실린 런던자연사박물관의 고인류학자 크리스 스트링어 박사의 기고문에 나온 그래프로 현생인류의 게놈에 유입된 다른 인류의 흔적이 지역에 따라 다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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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유전학의 도움을 받은 최근 고인류학 연구결과는 현생인류의 게놈에 고인류의 DNA가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거주 지역에 따라 기여한 고인류가 다르다. 네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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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인류의 Y염색체 가진 현생인류 발견
특이한 외모의 외국인을 보면서 수년 전 박 소장과의 만남이 떠오른 건,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네안데르탈인의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개념이라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미국인간유전학저널’ 3월 7일자에 박 소장의 ‘예언’이 실현된(개념적으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일부가 현생인류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Y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것.
미토콘드리아 게놈이 모계를 통해 전달된다면 Y염색체는 부계를 통해 이어진다. 감수분열 과정에서 Y염색체 가운데 일부는 X염색체와 재조합을 하지만 대부분의 영역은 재조합이 안 된다. 각각 성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독자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Y염색체 역시 현생인류의 여정을 추적하는데 유용한 지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염기서열 데이터는 미토콘드리아 게놈과 마찬가지로 전부 현생인류의 범주 안에 있었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23앤드미(23andMe)’ 같은 개인 게놈을 분석해 결과를 알려주는 회사들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SNP(단일염기다형성) 분석을 통해 주로 특정 질병에 걸릴 가능성 같은 건강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의뢰자의 계보도 알려준다. 대다수가 이민자의 후손인 미국인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조상을 찾는데 관심이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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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미국인 일부가 미지의 고인류 Y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아프리카인 수천 명의 Y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카메룬의 음보족 가운데 11명의 Y염색체도 현생인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인간유전학저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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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프리카계 미국인 고객들 가운데 일부에서 Y염색체의 SNP 데이터가 현생인류의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나타난 것. 깜짝 놀란 회사는 이 결과를 미국 애리조나대 생명공학부 마이클 햄머 교수팀에 알려줬고 연구자들은 이들의 Y염색체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해 정말 그렇다는 결론을 얻었다. 즉 이들에게 Y염색체를 준 조상은 현생인류와 대략 34만 년 전에 갈라진 미지의 인류였다는 것. 연구자들은 이들을 ‘A00’이라고 명명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A00의 Y염색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아프리카 10개국 5648명의 시료를 분석했고, 그 가운데 11명(0.19%)이 A00에 가까운 Y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 11명은 모두 카메룬 서부지역에 살고 있는 음보족(Mbo)에 속해 있었다. 시료 가운데 174개가 음보족의 것이었으므로, 이들 가운데 6.3%가 현생인류의 것이 아닌 Y염색체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한편 아프리카계 미국인 가운데 일부가 A00 유래의 Y염색체를 갖는 건 이들의 조상이 15~19세기 서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꾼에게 잡혀 미국으로 건너온 이들 조상의 일부가 이 염색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류 최악의 반인륜적 범죄의 결과가 놀라운 인류의 비밀이 밝히는데 일조한 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날 음보족이 살고 있는 곳에서 800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나이지리아의 ‘이워 엘레루(Iwo Eleru)’ 지역에서 약 1만3000년 전 인류의 뼈가 발견됐는데 형태를 분석한 결과 현생인류와 고인류의 특징이 섞여있었다는 것. 이는 오늘날 음보족 일부가 현생인류의 것이 아닌 Y염색체를 갖고 있다는 결론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더 분석해보면 이들의 계보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그림이 그려질 것으로 예상했다. 문득 나의 Y염색체는 어떤 계보를 담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