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복교연·강경민 상임이사)이 4월 27일 '총체적 위기 앞에 선 한국교회의 대응'을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교대학원 김선일 교수(실천신학)가 발제하고, 낮은마음교회 오준규 목사와 광주 다일교회 김의신 목사가 각자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를 사례로 발표했다. 40여 명의 참석자가 발제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한국교회의 위기'에 대한 김선일 교수의 문제의식은, 한국교회의 윤리적인 실패보다도 지금 한국 사회의 문명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킨다는 데에 있었다. 개인과 개인이 분리된, 공동체가 붕괴된 이 시대의 문화 위에 한국교회의 위기와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공동체가 무너졌다는 구체적인 지표가 있다. 김 교수는 2013년 OECD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OECD는 주기적으로 '행복 지수(Better Life Index)'를 조사하는데, 한국은 늘 하위권이었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안전(9.1)과 시민 참여(7.5), 교육(7.9)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공동체(1.6)는 최하위였다. 공동체 지수는 사회적·정서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와 사회적·성적 차별 등을 통한 삶의 만족도를 나타내는 점수다. 여기에는 '힘들고 필요할 때 주변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 혹은 단체가 얼마나 있느냐'는 질문도 있다.
▲ 김선일 교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지역사회 섬김은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 대 인간의 교제가 중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이렇게 파편화한 한국 사회에 교회가 있다. 김선일 교수는, 사회에서도 지역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한국교회도 이미 지역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프로그램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교회의 봉사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개인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봉사는 단지 프로그램으로만 존재할 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개인적인 교제, 인격적인 대화가 없다. 이런 봉사조차도 전도의 전초 단계로 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한다면, 교회가 지역사회에 하는 활동은 시혜적 차원의 '서비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들어가면 먼저 그 지역의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지역 주민들과 동화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지역사회와 동화되지 않아요. 지역사회를 단지 봉사 사역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교회가 주민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만들고 인생의 동반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그런 어울림이 일어난 상황에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전도라는 것도 내면의 진실한 교제에 이르는 이웃·친구가 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 들어가 그들과 동화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그럴 때 단지 '서비스'가 아닌 '케어'가 일어난다고 했다.
김선일 교수는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문화가 이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문화를 '복음의 문화', '선교적 문화', '구원의 문화', '전도의 문화' 네 가지로 나눴다. 쉽게 말해 복음의 문화와 선교적 문화는 공적인 영역이고, 구원의 문화와 전도의 문화는 개인적인 영역이다. 김 교수는 이 네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특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교회들이 하나님나라의 공적 복음, 세상에 하나님나라를 구현하는 총체적 선교를 강조하는 나머지, 개인 차원에서 느끼는 구원의 은혜와 인간 대 인간의 진솔한 교류를 통해 시작되는 전도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프랜차이즈 포기한 목사, 민주 정관 폐기한 목사
김선일 교수의 발제가 끝난 후, 낮은마음교회 오준규 목사와 광주 다일교회 김의신 목사의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각각 개척교회와 기존 교회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는 목사들이었다.
▲ 오준규 목사는 프랜차이즈 교회를 포기하고 달랑 가족과 함께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는 건강한 작은 교회가 이 시대 한국교회의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오준규 목사는 3년 전 경기도 구리시 한 상가 2층에 낮은마음교회를 개척했다. 한 대형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오 목사는, 대형 교회 지교회를 담임할 수 있는 길을 포기했다. 아내와 두 딸이 개척 멤버였는데, 지금은 등록 교인이 80명이 됐다.
작은 교회지만 활동은 남부럽지 않다. 개척 초기,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다 보니 예배당을 도서관으로 꾸몄다. 그러면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독서 모임과 커피 학교를 열었다. 저자를 초대해 북 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한 교인의 재주를 살려 리본아트 교실도 열었다. 전 교인들과 교회에서 '쿼바디스'를 보고 김재환 감독을 초대해 한국교회를 논하기도 했다. 지난 4월 12일은 '세월호 기억 주일'로 정해 리멤버0416에서 활동 중인 강영희 집사, 세월호 의인으로 불리는 김동수 씨와 간담회를 열고 교회 근처 공원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관련 기사: 한 작은 교회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한국 최초로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을 교회에 접목해 '회복적 교회', 나아가 '회복적 마을'을 꿈꾸고 있다.
민주적인 정관도 만들었다. 목회와 행정을 분리했다(목사는 설교 준비와 교인 심방, 양육에 힘을 쏟는다). 담임목사 임기제를 실시하고, 매월 교회 재정 상태를 교인들에게 보고한다. 교인이 200명이 넘어가면 교회 분립 준비를 시작한다. 절기 헌금은 모두 외부에 후원한다. 낮은마음교회는 교인 개개인이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 후원하는 경우도 헌금으로 친다. 그렇게 하니 후원하는 단체나 개인이 50곳이 넘는다.
지금 오 목사는 작은 교회,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를 그리고 있지만, 처음에는 그런 의미조차 알지 못했다. 사역하면서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그들과 교제하면서 작은 교회를 지향하게 됐다. 삶과 연계된 신앙 공동체를 위해서는 지역 교회가 중요하고, 썩지 않고 끊임없이 개혁하려면 덩치가 작은 게 용이하다고 봤다.
"교회 개척할 때 상가 주변을 둘러봤더니 그 지역에만 작은 교회가 12개 있더라고요. 일일이 가서 목사님들께 인사를 드렸어요. 그중에 몇 분은 이런 말을 해요. '내가 원래 200~300명은 목회할 수 있는데 여기 터가 안 좋다', '오 목사도 여기서 오래 할 생각 말고 빨리 다른 곳으로 떠나라'. 그런 경험을 하면서, 대형 교회도 문제지만 건강하지 못한 작은 교회가 더 큰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개척 초기 <변방을 찾아서>(신영복, 돌베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의 내용이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했어요. '변방이 창조적인 공간이 되려면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해야 한다', 저는 주류의 복제가 아닌 변방의 원형이 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건강한 작은 교회의 위엄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목회자와 교인 모두가 이 위엄을 잃지 말고 당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의신 목사는 광주 다일교회에 부임해, 교인들과 논의 후 정관을 폐기했다. 교인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게 아닌,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데 주목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김의신 목사의 이야기는 민주적 교회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김 목사는 7년 전 광주 다일교회에 부임했다. 전임 목회자가 종교사회학자였고 상당히 구체적으로 민주적인 정관을 만들어 놨다. 민주적인 교회이니 당연히 분위기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 처음 다일교회에 부임했을 때 분위기는 삭막했다고 김 목사는 회고했다. 직분자 임기제를 시행했는데, 재신임되지 못한 사람이 교회를 떠나기도 했고, 연임되기 위해 선거운동 비슷한 모습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관을 만들 때는 좋았다. 그러나 그것이 점점 교인들을 옭아매는 율법처럼 변했다. 주변 다른 교회에서 정관 좀 참고하자고 한 적도 있었는데, 김 목사가 "아직 시험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김 목사는 교인들과 논의 후 민주적인 정관을 '폐기'했다. 그는 "단지 교회 상황에 맞는 선택이었다"며 정관을 폐기한 것을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그 대신 2010년, '다일교회의 신앙과 약속'이라는, 조금은 헐거운 선언을 만들었다.
"교인들과 함께 고민했습니다. '긍정적인 문구로 만들자', '지향하는 것으로 만들자', '제약하는 것보다는 자발적 헌신을 가지고 함께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자', 이게 교회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막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북돋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낼 수 있게 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직 미숙한 수준의 약속이지만 서로 함께 지켜 나가면서 이뤄 가는 공동체적 문화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정관은 사라졌지만 교회 운영에는 문제가 없다. 가령, 다일교회는 약속에 근거해 '모든 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배'를 목표로 한다. 이에 대한 작은 실천으로, 회중 기도를 15명의 장로가 도맡지 않고, 교인 150명이 돌아가면서 한다. 새신자에게 이런 시스템을 이야기해 주면서, 교회가 무엇을 약속했는지 - 모든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인 예배를 꿈꾸기 때문이라는 것을 교육한다.
다일교회에는 굳이 신자,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모임이 많다. '하늘나무'라는 인문학 모임을 5년째 진행하고 있고, 14개 지역사회 단체와 결연해 봉사 활동을 한다. 광주씨앗학교와 광주청소년씨앗센터를 만들어 공교육 회복 운동도 벌이고 있다. 최일도 목사의 다일공동체와 단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시작한 밥퍼 운동을 13년째 하고 있다. '초록장터'라는 이름으로 2주에 한 번씩 장이 선다. 4개 농촌 마을과 결연해 벌이는 친환경 먹거리 운동이다. 재정도 투명하게 사용한다. 목회자가 세금을 내고, 재정 사용 내역을 교인들에게 공개하며, 재정 중 20% 이상을 외부 사역에 사용하고 있다.
▲ 포럼에는 40여 명이 참석했다. 포럼은 저녁 7시 30분부터 10시까지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새로운 목회, 공동체적 실험이 필요하다
위기라고 얘기하는 것도 식상해진 한국교회. 뭔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실험의 목적은, 비신자들을 전도해 다시 한 번 교세를 불리는 게 아닌, 분리된 개개인과 인격적 교제를 시작해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는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김선일 교수가 발제 마지막에 든, 미국 마스힐교회(Mars Hill Church)의 예는 참석자들을 고무적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미국 교회의 물량주의와 번영신학을 모방해 왔던 한국교회가 이런 흩어지는 교회도 따라할 수 있을까.
교인 1만 5,000명의 메가 처치 마스힐교회의 전 담임목사는 마크 드리스콜(Mark Driscoll)이었다. 그러나 드리스콜 목사는 여성 비하와 전 사역자들을 향한 막말 등 거듭되는 실추로 결국 사임했다. (관련 기사: 갈수록 드러나는 마크 드리스콜의 점입가경) 이후 마스힐교회는 여러 개의 독립 교회로 해체됐다. 이 중 가장 큰 규모인 벨뷰(Bellevue) 캠퍼스는, 소그룹 중심의 선교적 공동체 운동을 주도했던 제프 밴더스텔트(Jeff Vanderstelt) 목사를 초빙해, 대규모 모임 중심이 아닌 일상의 선교적 공동체, 흩어지는 교회로의 리모델링을 실험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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