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숲
왕신연
몸이 으슬으슬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한약재들을 큰 솥에 넣고 집에서 3시간을 달여서 먹었다. 내 몸뿐 아니라, 집 안 구석구석에 한약 냄새가 배어들었다. 창문을 열었다. 나는 익숙한 이 냄새가 싫지 않았다.
아버지는 한의사셨다. 그래서 감기약도, 소화제도, 영양제도 모두 한약이었던 나는 아직도 ‘양의사’에게 진료를 받거나 ‘양약’을 먹는 게 어색하다. 한약은 식혀서 유리로 된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남은 약재들은 버리려는데, 망설여졌다.
나는 창밖으로 인수봉과 백운대가 보이는 수유리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 살던 집 옆으로는 산에서 내려온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물가 한편에는 건물들이, 건너에는 커다란 버드나무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개울가 건물 중 한 곳에서 한의원을 하셨다. 개울은 내가 9살이 되기 전 아스팔트로 덮인 도로가 되었다. 우리 집은 한의원과 가정집이 아래위로 한 건물에 있었다. 언젠가부터 아버지는 집과 담장 사이 좁은 통로에 약을 달이고 남은 축축한 갈색 삼베 주머니를 나란히 열 지어 모아 놓으셨다. 그 탓에 우리 집은 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한약 냄새가 났다. 왜 버리지 않고 모으시냐고 여쭤보면 아버지는 그저 누군가 이걸 가져다 쓰는 사람이 있다고만 하셨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에 그 약재 주머니들을 가져가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더위에 빈둥거리고 있던 나에게 아버지는 할머니 한 분이 약재 주머니들을 가지고 가실 테니 들어다 드리라고 하셨다. 마당에는 허리가 완전히 ‘ㄱ’ 자로 굽은 조그만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와 약재 주머니를 함께 움켜쥐고 계셨다. 할머니가 한 묶음, 내가 양손에 두 묶음씩 약재를 들고 대문을 나섰다. 할머니는 굽은 몸을 지팡이에 의지하면서도 어른 머리 크기의 약재 주머니를 바투 쥐고 앞장서 걸으셨다.
우리는 아스팔트가 펄펄 끓는 큰 도로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섰다. 놀이터를 지날 때까지는 덥기는 했어도 그럭저럭 할머니의 마음 급한 걸음을 따라갈 수 있었다. 점점 골목이 좁아졌다. 중간중간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아무 턱이나 걸터앉으며 잠시 고된 숨을 고른 후, 뒤도 보지 않고 일어나 다시 걸으셨다. 다리에 부딪히는 게 싫어 팔 벌려 들고 가던 한약재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한낮의 태양은 한약재 찌듯이 날 찌고 있었다. 그늘진 골목의 시멘트 바닥에서조차 열기가 올라왔다.
오르막길과 계단이 눈앞에 보였을 때, 여기가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고, 어릴 때 찾아냈던 교회에서 집까지 오는 ‘비밀 길’들 중 한 곳이라는 걸 알았다.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갈 때는 늘 큰길로 다녔지만,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다니곤 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고만고만한 집들은 각각의 작은 정원에 꽃과 나무를 한두 그루쯤은 가지고 있어서 그럴싸한 골목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중 이 골목은 적당히 외지고 경사져서 참 마음에 들었었다. 가뿐히 통통거리며 뛰어다녔던 그 길을 그날 나는 축 늘어져서 양손에 갈색 삼베 주머니를 들고, 앞서가는 할머니의 걸음과 별 차이 없이 한 발짝씩 겨우 나아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멈춘 곳은 짧고 가파른 계단 위, 파란 철제 대문 앞이었다. 할머니를 따라 들어간 대문 안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한 작은 마당이 있었다. 분명 좁은 공간이었는데 웅장하게 자란 키 큰 나무들이 사람 하나 겨우 다닐 수 있는 간격으로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숲 같던 나무들 사이로 누군가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왜 이제 와!” 나무 사이로 힐끗힐끗 보이던 사람이 소리쳤다. 혼내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말없이 어딘가로 들어가셨고, 할머니를 혼내던 목소리의 주인이 내 앞에 나타나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똑같이 허리가 ‘ㄱ’ 자로 굽은 또 다른 할머니였다. 이후 두 할머니는 뭔가 이야기를 시끄럽게 주고받았는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나는 작은 마당 한편에 들어앉은 일본식 주택의 마루에 걸터앉아 할머니가 건네줬을 뭔가를 마시며 정신을 차리려고, 그리고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이 장소를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요즘도 나무들을 볼 때마다 그 마당의 나무들이 무슨 종류였을지 생각한다. 고개를 들지 않았던 내 시야에는 나무 기둥만 보였다. 그 표면이 소나무와 달리 매끄러웠던 기억으로 봐서는 그저 모과나무나 단풍나무, 벚나무였겠지 싶다가도, 구불거리며 자라지 않았으니 마로니에 계통 나무였나, 아니면 측백나무였나…… 늘 그렇게 희미한 기억 속에서 ‘마당숲’ 풍경은 참 쉽게 모습을 바꿨다.
집까지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와서 그 할머니 집에 대해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 한약 가져간 할머니를 혼내던 할머니가 그 집 가정부다. 그 집 나무들, 그게 다 우리 한약 먹고 그렇게 자란 거고. 두 할머니가 그렇게들 사신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때는 왜 두 할머니 허리가 그렇게 똑같이 휘었는지, 그 집 물에 문제가 있는 건지, 가정부 할머니가 주인 할머니를 혼냈던 거라니. 참 이상하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그 집 마당숲을 보셨던 거다. 아마도 그날을 제외하고는 죽 아버지가 그 약재들을 할머니 댁까지 들어다 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우리 집 담 사이 좁은 공간에는 한약 보따리가 줄지어있었다.
나는 할머니들의 마당숲이 늘 궁금했다. 원래 숲이었던 곳을 그대로 두고 집을 지었던 건 아닐 거 같다. 그저 널찍널찍 심었던 묘목들이 점점 자라면서 그런 작은 마당의 빼곡한 숲이 된 건 아닐까. 자녀를 돌보고, 집안을 가꾸던 그 정성 그대로, 떠나간 가족 대하듯 나무들을 가꾸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옛 동네 근처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그 집을 찾아갔다.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난감한 우중충한 봄날 오후였다. 오래전 다니던 길을 눈에 담고 싶어서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탔다. 하지만, 내내 문자에 답장하느라 창밖은 거의 보지 못했다. 잠깐씩 고개를 들고 내다본 버스 창밖 풍경은 아파트가 더 많이 생겼다는 점 정도가 달라져 있었다. 내가 내린 곳은 언니와 동생이 다녔던 유치원 정문 앞이었다. 큰길을 따라 좀 걷자, 높이 솟은 붉은 벽돌의 건물이 보였다. 옛날 우리 집터에 새로 지어진 5층 건물이었다. 주변 건물들도 그새 높아진 탓인지, 집 앞의 아스팔트 도로가 좁게 느껴졌다.
30여 년 전 그 할머니를 뒤쫓아 걸었던 것처럼 도로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 놀이터 옆을 지났다. 원래 이곳에 있었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2층 높이의 미끄럼틀은 사라지고 없었다. 2층 침대에서도, 창고 옥상의 장독대에서도, 웬만하면 일단 뛰어내리던 나도 그 미끄럼틀은 그럴 엄두를 못 낼 만큼 높았다. 비가 막 갠 탓인지 노는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를 지난 후로는 핸드폰으로 지도를 보며 길을 더듬어 갔다. 멋진 정원과 나무들이 좋아서 대문 창살 사이에 얼굴을 대고 구경했던 집들 모두 이름만 거창한 다세대 건물로 변해 있었다. 단 두 집만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었다. 할머니의 마당숲 집과 그 옆집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보고 그 집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계단 위, 무너져가는 담장 뒤로 8~10미터는 됨직한 높은 나무가 연보라색 포도송이 같은 등나무꽃을 주렁주렁 달고 높이 솟아 있었다. 고양이 몇 마리가 담장 안쪽에서 날카롭게 울어대다가 곧 조용해졌다.
계단을 올라 가까이 가본 담장에는 초록색 빗금들과 함께 ‘강북구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라는 검은 글씨가 적혀 있는 노란 테이프가 둘러있었다. 테이프가 없더라도 콘크리트 블록을 대충 쌓아서 만든 듯한 담장은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마당숲을 지붕처럼 덮은 등나무는 담을 넘어 가로등과 전봇줄까지 덮었고, 담 안쪽은 대낮인데도 컴컴했다. 대여섯 칸 정도의 계단 위에 있는 녹슨 철문은 페인트도 다 벗겨져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었다. 계단은 칸마다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수북했고, 낙엽이 가득 담긴 파란 비닐봉지 뭉텅이들이 제일 위 칸에서 대문을 막고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 이 집 앞을 치우려 했었나 보다. 녹슨 대문에는 햇빛에 바래고 습기에 번져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은 공·폐가 건물로 허락 없이 출입을 금지합니다.’라고 적힌 코팅이 된 흰 종이가 매달려 있었다. 빽빽한 나무들과 등나무가 뒤엉킨 사이로 큰 구멍이 난 지붕의 일부가 겨우 보였다.
까치발로 서성이는 낯선 사람이 영 불안했는지, 건너편 빌라 2층 창가에서 개 한 마리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조용하던 동네가 나 때문에 시끄러워진 것 같아 그곳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북적이는 지하철에서 마당숲을 생각했다. 내 기억 속 마당숲은 두 할머니의 극진한 보살핌 아래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덩치만 커진 철부지 도련님이었다. 30여 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마당숲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버린 폐인의 모습이었다. 문득 이 지하철을 타기 시작한 것도 마당숲을 만났던 그해부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의 풍경을 샅샅이 뒤지듯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풍경이랄 게 없고, 사람들과 마주 보고 앉아 있어야 하는 지하철이 영 불편했다. 지난 30여 년간 나는 지하철로 한 시간 이상 거리의 학교와 직장을 열심히 다녔다. 마치 땅속으로 멀리멀리 퍼진 뿌리 곳곳에 영양분을 공급하듯, 나는 나의 젊음과 에너지를 그렇게 열심히 퍼 날랐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어떤 부분이 내 열정과 시간을 먹고 나무처럼 자랐을까. 내 앞에 앉아서 졸고 있는 학생도, 핸드폰 게임에 푹 빠져 있는 저 아줌마도 모두 자신들의 나무들을 품고 있겠지. 나는 내가 키운 그 나무들이 만든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적당히 햇빛이 들고 다양한 꽃과 풀 사이에 오솔길과 연못이 있는 향기로운 정원보다는 할머니들의 마당숲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 더운 여름날, 뒤따라오는 나를 돌아보며 힘들지 않냐는 말 한마디 건넬 줄 몰랐던 할머니의 모습과 내가 닮았는지 궁금해졌다. 마주 보고 있는 창문에 내 모습이 보였다. 내 얼굴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조명이 만든 깊은 그림자에 묻혀 있었다.
창밖이 밝아지며 내 모습이 사라졌다. 눈앞을 휘리릭 달려가는 철교의 구조물 뒤로, 멀리 펼쳐진 한강 풍경이 느릿느릿 지나갔다. 무거운 비구름 대신 엉성한 구름만 몇 점 남은 붉은 저녁 하늘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ㅡ2026 상상인 신춘문예 수필부문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