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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 KBS 이사회가 김의철 사장을 해임 의결했고 대통령 재가가 이루어졌다. 이로써 김의철 사장은 2008년 정연주, 2014년 길환영, 2017년 고대영에 이어 네 번째로 임기 중간에 해임된 KBS 사장이 됐다. 이 중에 길환영 사장을 제외하고 세 번이 정권교체 직후에 있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해임이라는 의혹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은 정치권력과 부침을 같이하는 ‘정치 병행성’(political parallelism)의 늪에 빠져있다. 이로 인해 정치 지형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은 심각한 내홍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KBS 사장 해임에 대한 이러한 의혹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딱 부러지게 반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번 김의철 사장 해임 역시 그런 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문재인 정권은 언론노조를 앞장세워 KBS를 비롯한 공영방송을 정권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 공영방송들은 정권교체 이후에도 임기 보장이라는 방탄막을 치고 대통령과 정권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가짜뉴스 카르텔의 한 축’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김의철 사장 해임의 주된 이유인 편파보도로 공영방송 독립성이나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김의철 사장 해임이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라는 비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어쩌면 이것은 어떤 인물이 차기 KBS 사장으로 선출되고, 그 이후 KBS 보도가 어떠한가가 판단해줄 문제일 수도 있다.
또 다른 주요 해임이유는 심각한 경영악화다. 인터넷·모바일 매체가 급성장하면서, KBS를 비롯한 지상파방송사 광고수입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지상파방송들의 경영상태가 급추락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작년만 하더라도 KBS와 달리 SBS·MBC는 엄청난 흑자를 기록했다. 부동산 처분, 긴축 경영 같은 다른 이유들을 감안해도, KBS가 효율적으로 대처했다면 적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유추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김의철 사장을 해임해야 할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현 사장 체제로는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은커녕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치적 편파보도는 정치성을 표방하는 언론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김의철 체제에서 절대 개선될 여지가 전혀 없다. 특히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경영 위기 대처 능력이 전무하다는 것은 결정적인 해임 사유다.
그 점은 수신료 분리 징수 대응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초기에 분리 징수를 ‘도서정가제’에 비유하면서 큰 문제 없을 것으로 오판했고, 분리 징수 이후에도 수탁징수자인 한국전력과 협상테이블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상 넋 놓고 있는 상태다. 이는 정치권력과 유착해 공영방송을 장악해 온 정치 노조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쟁 중에 지휘관을 교체하는 이유는 작전에 실패한 경우보다 지휘 능력을 상실한 경우가 훨씬 많다. 한국전쟁 중에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을 해임한 것도 정치적 판단 차이나 작전 실패 때문이 아니다. 중공군 개입 이후 맥아더 장군은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또 다른 상륙작전’을 주장하는 등 판단력과 냉정함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KBS 사장 해임에 대한 평가는 갈릴 수 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상반될 수도 있다. 분명 해임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 역시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급변하는 정치적·경제적 상황에서 대처 능력을 상실한 공영방송 수장을 그대로 앉혀 놓는다는 것은 결국 공영방송 몰락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 한 가지만으로도 사장을 해임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