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운명
(Abstract)
http://cafe.daum.net/mahan000/Hp8w/3
한종인
모든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인 혼에 대해서 모든 종교는 정확한 규명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단지 혼을 기정 사실화 하고 그 논의에 대해서는 금기 시 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란시아서는 비단 혼에 대한 정확한 기원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구성하는 다른 요소들, 몸과 마음과 영과 인격과의 관계를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혼은 하나님과 인간이 협력하여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 내는 합작 물로써 우리의 죽음을 넘어서 생존한다. 우주는 거대한 훈련 장소로 제시되며 자신이 기원한 행성을 시작으로 수많은 단계를 거쳐서 상승을 계속하여 마침내 파라다이스 우주 아버지의 현존 앞으로 나아 간다. 그 동안 물질적 존재로 시작한 혼은 모론시아 단계를 거쳐서 영적 존재로 변하여 우주적 영원한 정체성을 부여 받고 최종자의 지위를 얻어 장래 새롭게 창조되는 우주에서 봉사자가 된다. 우리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재로써 우리의 몸과 혼과 영이 역시 삼위일체가 되어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분투한다. 하나님은 우주 아버지의 인격 회로, 영원 아들의 영 회로, 무한 영의 마음 회로를 통하여 인간에게 영향을 행사하여 모두 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기 위해서 역사한다.
우리의 삶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정확한 목적을 위해서 온 우주에서 독특한 인격을 부여 받고 우주의 수많은 하늘 존재들의 도움을 입으면서 영생하는 주체 혼을 만들어 궁극적으로 영과의 융합을 통해서 우주적 시민으로 태어 난다. 우리의 자아는 동물적 진화의 결과인 몸이나 마음이 아니고 새로운 탄생으로 거듭난 영이다. 영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의 삶은 영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증명된다. “혼의 기원과 발전과 운명”이란 주제는 유란시아서의 핵심 주제로써 또한 우주 아버지가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세워 놓으신 우주적 계획의 핵심 주제가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창조하고 내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인 생각 조절자를 우리 가운데 내주하게 하시어 우리의 모든 고통과 모든 기쁨에 함께 하시며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끝없이 인내하고 감화시킨다.
우리 삶의 목적은 이 생각조절자와 조금이라도 더 나은 교제를 이룩하여 생존할 가치가 있는 혼을 창조하며 마침내 이 생각 조절자와 융합하여 영원한 우주적 정체성을 획득하는데 있다. 이 모든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혼자 분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셨다가 승천하신 예수이자 우리 지역 우주의 주권자이신 미가엘이 보낸 진리의 영, 그리고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인 성령의 도움으로 이 모든 일을 넉넉히 이룬다. 우리가 이 이중의 영의 도움을 거절하지 아니하고 순응하며 적극적으로 이 도움을 간청할 때 우리의 영원한 생존은 보장된다. 이런 정교하고도 확실한 생존 계획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다. 이런 계획을 사전에 알게 된 우리는 비록 지금은 현실의 가혹한 시련 속에서 분투하지만 이미 먼 다른 해변에서 반짝이는 영생의 빛을 보고 느끼고 그 빛을 따라 가는 존재들이다. 이 땅의 현실이 더 어두울수록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 더 다가올수록 더욱 더 그 빛이 밝아짐을 느끼는 존재들이다.
목 차
I. 서론 -------------------------------------3
II. 본론
1. 기존 종교, 철학에서의 혼에 대한 입장- 4
2. 생명의 시작------------------------- 4
3. 일곱 보조 마음 영------------------- 6
4. 하나님의 형상----------------------- 8
5. 최상 존재와 혼의 관계-------------- 11
6. 혼의 운명 7단계-------------------- 16
8. 파라다이스 최종자------------------ 17
III. 마치는 말----------------------------- 17
혼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운명
한종인
서 론
유란시아서는 2097쪽이라는 방대한 서술 속에서 철학, 과학, 신학, 물리학, 화학, 인류학 등 수없이 많은 주제를 다루는데 그 중에서 혼에 관한 주제는 유란시아서의 핵심 주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동서 고금의 수많은 종교가, 철학자, 과학자들이 물었던 질문이 과연 인간의 기원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 생의 목적이 있다면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들이었다. 이런 질문들은 인류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물었고 그리고 지금도 묻고 있는 질문이면서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던 질문들이다. 이에 대해서 유란시아서는 아주 명확한 논리와 서술로 우리에게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아래 글에서 우선 기존의 철학과 종교에서 혼을 어떻게 바라 보았는지 간단하게 살펴 본 뒤에 유란시아서에서 말하는 혼이란 무엇이고 혼은 어떻게 만들어 지며 우리 존재의 다른 요소들 즉 몸, 마음, 영, 인격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 우리의 죽음을 넘어서 살아 남는 요소는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살아 남는지 그리고 혼의 최종 운명은 무엇이며 과연 살아 남아서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우리의 삶의 본질은 무엇이며 우리의 삶의 실제 목적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도표 1 혼의 개념에 관한 연구 과제
기존 종교, 철학에서의 혼에 대한 입장
서양 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는 약간의 개념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혼의 존재를 인정했고 그 혼은 사람이 죽어도 살아 남는 존재로 생각했다. 기독교 신학을 거의 완성했다고 할 수 있는 사도 바울도 플라톤의 이원론의 입장에 섰으며 이는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 성 어거스틴으로 이어져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오늘날 세상의 주요 종교라 할 수 있는 기독교, 불교, 유대교, 힌두교 등도 혼의 존재를 기정 사실화 하고 있다. 이런 모든 철학과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혼의 기원을 이야기하자고 하면 책 한 권으로 부족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되겠지만 이는 이 자리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생략하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세한 고찰을 하고자 한다. 모든 종교에서 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만 힌두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에서는 혼에 대한 토론을 금기 시 하고 있으며 사실 자세한 이론이나 원리 같은 것은 더 더욱이 밝혀진 바가 없다. 이는 아마도 혼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으며 다양한 주장으로 종교의 근간이 흔들릴 위험 때문에 그렇게 금기 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 유란시아서는 그렇게 자세하고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고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혼에 대한 이론을 전개한다. 철학이나 과학에서 어떤 원칙이나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모든 경우에 적용해 보아서 모순이 없고 그 가설을 무너뜨릴 반박이 없으면 그 이론이 정설로 인정된다. 비록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과학적 증명이 불가능해도 자체적으로 모순이 없고 어떠한 사실로도 반박할 수 없으면 그 이론은 정설인 것이다. 유란시아서는 이제껏 어떤 종교, 어떤 철학, 어떤 과학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고 설명하지 못했고 가설조차 세우지 못했던 혼에 대한 이론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나아가서 혼을 우리 존재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규정하고 바로 이 혼이 우리가 죽은 뒤에 살아 남아서 다음 세계로 나아가서 영원한 삶을 사는 주체가 된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제부터 그 이론과 과정을 생명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혼이란 생명이 있는 존재에게서만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시작
생명은 우연히 시작하지 않는다. 생명이 우주에서 우연히 탄생할 확률은 영에 가깝다는 것을 모든 과학자들이 인정한다. 하지만 유란시아서의 독자들은 생명이 우주의 생명 실험실에서 무수한 실험을 거쳐서 원형이 마련되고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 중의 하나인 생명 운반자에 의해서 준비가 된 행성에 심어진다는 사실을 믿는다.
“생명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생명은 (밝혀지지 않은) 존재의 건축가들이 작성한 계획에 따라서 구성되며, 직접 수입되거나 지역 우주의 생명 운반자들이 작업한 결과로서 사람이 사는 행성들에 나타난다….그들에게 생명을 고안하고 생명을 행성 구체들에 나르는 책임이 맡겨진다. 그러한 새 세계에 이 생명을 심은 뒤에, 그들은 그 발달을 육성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거기에 남아 있다.” [UB 36:0.1]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기독교 성경에는 하나님이 진흙을 빚어서 아담을 만들고 숨을 불어 넣어서 인간을 창조한 것으로 나오지만 유란시아서의 독자들은 사람은 먼 옛날 지금부터 5억 5천만년 전에 생명 운반자에 의해서 심어진 생명으로부터 진화된 것을 알고 있다. 생명 운반자들이 생명 존재의 유형을 개선하고자 매 10 번째 행성에서 새로운 실험을 하는데 유란시아는 이런 실험의 61번째 행성이다.
생명 운반자가 준비한 과정은 생명을 시작하기에 충분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두 가지가 빠져 있다. 첫째는 마음의 자질이고 둘째는 재생산 능력이다.
“생명의 공식과 생명의 원형이 올바르게 조합되고 적절히 조직되면 생명 운반자의 존재로 생명을 시작하기에 충분하지만 그러한 모든 살아 있는 유기체는 두 가지 필수적 속성이 결핍돼있다. 하나는 마음의 자질이고 다른 하나는 재생산 능력이다.” [UB 36:6.3]
지역 우주의 어머니 영은 아직 생명이 없는 원형에 “생명의 불꽃”을 제공한다. 그리고 마음을 부여한다. 생명의 불꽃은 하나님의 영이다. 생명은 아버지로부터 나와서 아들을 통해서 영에 의해서 시작된다.
“…..그러나 생명을 활성화시키는 불꽃의 성질과 근원을 우리는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 생명이 아버지로부터 아들을 통해서, 영으로 말미암아 흐르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UB 36:6.7]
동물과 인간의 마음은 모두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의 선물이다. (UB 36:6.3 참조)
도표 2 생명 운반자의 역할의 한계와 우주 어머니 영의 역할
한번 부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은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의 회로에 접속되어 우주 어머니 영의 대리자 격인 일곱 보조 마음 영을 통해서 통제된다. 일곱 보조 영은 퍼스낼리티(인격)가 아니라 하나의 회로이다. 우주 마음의 기원은 무한 영이며 인간의 마음은 지역 우주 어머니 영에 의해서 수여된 개별화된 회로이다. (UB 9:5.4 참조)
생명 운반자들은 행성에 생명을 심어 놓고 그것의 발전을 지켜 보면서 관리한다. 그들은 이 생명의 진화가 진행되어서 필사 인간이 나타날 때까지 생명을 돌본다. 인간이 나타나면 그들은 행성을 떠나는데 그들이 떠나기 전에 관리를 위해서 행성 영주가 수많은 보조자들과 봉사자들을 데리고 행성에 온다. (49.5.22)
도표 3 우주 어머니 영의 두 가지 증여
3. 일곱 보조 마음 영
이들은 인격도 아니고 하나의 실체도 아니며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의 한 수준이며 이를 통해 무한 영이 개별화된 각 인간의 마음에 접속한다. 일곱 보조 마음 회로들은 직관의 영, 이해의 영, 용기의 영, 지식의 영, 조언의 영, 예배의 영, 지혜의 영인데 지역 우주어머니 영을 대신하여 물질 마음들에게 개인적인 사역을 베푼다. 우주 어머니 영은 이들을 통해서 지역 우주 내의 살아 있는 창조체들의 마음에 동시에 접속한다. 앞의 다섯 보조 마음 영들은 지적인 단계의 어떠한 생명 조직에서도 처음부터 기능하지만 마지막 두 가지 보조 영은 어느 정도의 의식의 수준이 진화를 거쳐야 활동하기 시작한다. 필사 마음은 지혜의 영이 기능하기 시작하면 즉시로 지역 우주 어머니 영의 회로에 연결된다.
도표 4 일곱 보조 마음 영
순전히 동물적인 진화 마음이 영적 수용력을 갖추면 (예배의 영과 지혜의 영이 기능하기 시작하면) 성령 곧 지역 우주 어머니 영에 연결되고 그리고 나면 아버지의 영적 현존, 생각 조절자를 받을 준비가 된다. 하지만 증여 아들이 진리의 영을 모든 보통 마음에 부어 주고 나서야 모든 필사자들은 생각 조절자를 받게 된다. 이 아들의 영은 보통 인간의 개인적 수용능력에 따라서 기능과 힘이 절대적으로 한정된다. 이 이중의 영 연합이 세상을 덮고 있으며 진리를 가르치고 사람의 마음을 영적으로 계몽하며 그들을 신성한 운명인 파라다이스 인도를 위해서 사역한다. 성령의 역사는 삶이 신성한 인도에 온전히 순종할 때 그 영향이 가장 크게 증가한다.
생각 조절자는 일곱 보조 마음 영의 사역과 그것으로 인해 성령의 회로에 연결되기 까지는 인간의 마음에 들어 올 수 없다. 창조체 마음은 마주치는 선과 악의 가치 사이에서 선택하는 도덕적 결정을 함으로써 예배의 충동과 지혜의 기능을 보여야 한다. (108:2.2)
생각 조절자는 지역 우주의 정부에서 초우주 정부를 거쳐서 파라다이스를 지나서 디비닝턴의 조절자 예비 군단으로 오는 자료들을 검토한다. 이 자료들은 1) 가계에 대한 세라핌의 보고서와 2) 삶의 영위에 대한 계획된 원형들이고 이 자료에는 아래의 내용이 포함된다. (108:1.2)
세습된 전력들: 유전적으로 조상에게서 받은 기질 들
잠재적 지적 자질 예측: 지적 가능성
영적 수용능력, 아버지 뜻을 행하고자 하는 헌신의 정도
자원하는 조절자들은 자신이 내주하게 될 대상에 대해서 특별히 세가지 자질에 관심이 많다. 1) 지적인 능력 (정신적인 지적 잠재성과 지혜의 영의 작동 여부) 2)영적 수용성 3)지적, 영적 능력의 종합적 능력 (이것의 정도가 성격의 힘을 개발하고 생존 가치에 대한 확신에 기여한다) 대기하고 있는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가장 이상적인 “실행 계획(working pattern)”이 인격의 접촉과 마음의 영성화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계획으로 사용된다.
도표 5 생명의 기원부터 생각 조절자의 도착까지
4.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성경 창1:26)
성경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그 동안 기독교 신학에서 수없이 많은 잘못된 해석을 낳았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 중 좋은 면을 하나님의 속성으로 연장시켰다.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고 그 하나님 형상을 따라서 만들어져서 그렇다든지 사람이 서로 타인과 이타적인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이라서 그렇다든지 하나님이 지구를 다스리도록 위임한 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든지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외부의 모습대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결국 다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의 주장하고자 하는 필요에 맞게 독단적으로 만들어진 듯하다. 하나님의 형상에서 우리가 닮은 것을 찾아야 하는데 거꾸로 우리의 형상 중 좋다고 여겨지는 성질을 하나님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론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어서 전후가 완전히 전도된 것이다.
유란시아서는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 안에하나님의 영이 내주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 이상의 진실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육체적 혹은 물리적인 유사성을 말하는 것이나 물질적 창조체의 제한된 속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초라한 물질적 창조체 안에 우주 아버지 영의 단편 즉 생각 조절자가 선물로써 현존하는 것이다” [UB108:6.3]
따라서 기독교 성경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3:16) 라든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는 말이 중요한 진리가 되는 것이다.
도표 6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3) 사람은 몸과 혼과 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란시아서 머리말 5편에 보면 인간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 다섯 가지가 나온다. 몸과 혼과 영과 마음과 인격이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위의 그림이다. 왜 몸과 혼과 영을 대응하게 삼등분으로 그리고 마음과 인격을 별도로 중심에 바깥에 놓은 이유는 인격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혼이 자라고 몸이 쇠하고 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중심 같은 것으로 다른 요소를 하나로 잡아 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마음은 몸과 혼과 영이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육체로 사는 동안 잠시 빌려서 쓰는 작업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몸과 혼과 영의 트리플 개념은 유란시아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많은 부분이 나온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카 5장 23절에 “너희 영과 혼과 몸이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온전히 보존되기를 하노라” 라든지 우리나라 전통 사상에서도 인간은 정, 기, 신으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정은 몸이요 기는 영이요 신은 혼이라고 할 수 있다. 혼은 아주 오래된 말로 정신 나간 사람보고 혼이 빠졌다느니 혼비백산이라든지 여러 군데 나온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 가고 백은 땅에 묻혀서 썩는다.
4) 유란시아서는 다시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퍼스낼리티(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영원한 정체성이 없고 우리에게 와 있는 하나님의 영은 영원한 정체성은 있으나 퍼스넬리티(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UB 5:6.7 참조) 그래서 둘이 열심히 상호 작용을 거쳐서 불멸의 가능성이 있는 혼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이 혼이 죽음을 넘어서 생존하는 우주의 실체이다. 이 실체는 다시 맨션세계를 거쳐서 거기서 또 열심히 훈련을 받고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할 때에 영과의 융합이 일어 난다. 그래서 참으로 고귀한 영생의 우주적 실체가 탄생하는 것이다.
도표 7 혼의 개시 요소
5)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인간의 본질에 관해서 우리에게는 동물적 유산으로 진화의 소산인 몸이 있고 우주 어머니 영이 부여한 마음의 회로가 있고 하나님이 증여하신 생각 조절자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질이 우리의 마음인가? 아니면 몸인가? 아니면 우리의 혼일까? 아니면 영일까? 몸과 마음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영속하는 것은 우리의 영과 혼밖에 없다.
유란시아서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물질 세계에서 너희는 몸이 영(靈)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이 육체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물질인 눈은 참으로 영에게서 태어난 혼의 창문이다. 영은 설계자요, 마음은 건축자요, 육체는 물질인 건물이다.”[UB 42:12.12]
“우리는 인간의 여행을 떠난 영인가? 아니면 영의 여행을 떠난 인간인가?”
생각조절자의 고향은 모든 구체들 보다 더 파라다이스에 가까운 디비닝턴이다. 7 개의 신성한 아버지 구체 중 하나가 생각조절자의 고향인 디비닝턴이다. 각 지역 우주에서 어떤 필사자가 성령의 회로에 접속이 되고 나면 그 자료가 지역 우주 정부를 거쳐서 초우주 정부를 지나서 파라다이스를 경유해서 디비닝턴 조절자 예비 군단이 있는 곳에 전달된다. 그 자료가 도착하면 그 필사자에 대해서 지원 신청을 받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영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영이 우리를 고르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발상의 전환을 하면 우리라는 자아는 아메바로부터 시작해서 원숭이를 거쳐서 진화된 이 물질 자아가 우리가 아니라 바로 디비닝턴에서 시작된 영이 바로 우리의 자아가 되고, 아니 되어야만 하고, 그렇다면 우리는 영적인 여행을 떠난 인간들이 아니라 인간의 여행을 시작한 영인 것이다. 그러니 영 입장에서 보면 사람을 고르는 것이 타고 다닐 자동차 하나 고르는 정도일 것이다.
다시 인간의 구조로 돌아 가서 생각해 보자. 인격은 아버지의 인격 회로에 연결되어 있고, 마음은 어머니 영 다시 말해서 성령 회로에 연결되어 있고 영은 아들의 모든 영 회로에 연결되어서 영 인력의 끌림을 받아서 아버지께 이르게 한다. 마음(물질 마음으로 몸에 해당), 영, 인격 이 모두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연결이 다 되어 있어서 멸망하고 싶어도 참 멸망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요즈음 컴퓨터들은 예전처럼 하드디스크 같은 저장부품이 별로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전부 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디서 작업을 하더라도 다 본체인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또 필요하면 거기서 자료를 불러와서 다시 작업을 하면 된다. 우주 아버지와 영원 아들 그리고 무한 영은 이 본체를 구성하는 수퍼 컴퓨터이고 우리들은 다 지역에 떨어져 있는 단말기들인 것이다. 우리의 모든 자료 (다시 말해서 우리의 모든 체험)는 다 단말기에 기록되는 순간 수퍼 컴퓨터에 동기화되고 세상의 모든 체험은 다 본체 컴퓨터에 모이게 된다. 유란시아서는 이 수퍼 컴퓨터를 바로 최상 존재 Supreme Being이라고 부르고 결국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의 체험 중 기록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멸망한 자들의 기록까지 모두 포함해서 전부 최상 존재의 완성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멸망하더라도 거기서 가치 있는 경험은 보관하겠다는 참 대단하신 하나님이다. 그래서 유란시아서에는 이런 말이 있다.
“항상 기억하라―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필요하다. 우주 최종의 신성한 운명에서 영원한 인격 체험을 충만하게 마침내 이루는 데 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필요하다.” [UB 195:10.3]
5. 최상존재와 혼의 관계
연어 이야기:
연어는 산란기에 깊은 계곡에서 알을 낳아서 이 알들이 부화하면 넓은 바다로 나아 간다. 연어는 태어 나서 바다로 나갈 때까지의 기간에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기억하고 회유를 한 뒤 그 냄새에 의존하여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 온다고 한다. 연어가 바다로 나아 가는 이유는 1m 까지 자라는 연어가 좁은 강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이고 다시 강으로 돌아 오는 이유는 새끼 연어는 바다에서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갖고 있고 바다에서 살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온 연어들이다. 우리의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 혹은 자아는 우리의 몸이 아니다. 몸이란 어떤 식으로든지 죽어서 썩어서 다시 우주의 원소로 환원될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자아가 아니다. 마음은 죽음을 넘어서 살아 남지 못한다. 마음이란 우리가 세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체계에 잠시 빌려준 회로 같은 것이다. 결국 우리의 정체성은 마음과 영이 만들어 낸 우리의 혼이다. 하지만 그 정체성은 우주적 확인이 된 정체성이 아니라 일시적인 정체성이다. 그 혼이 겪는 모든 이야기가 부본이 작성 되어서 초우주 기록실에 저장이 되는데 이를 transcript라고 하는데 transcript에 또 성적표라는 뜻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이 모든 성적은 우리의 개인 기록일 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의 성적이기도 하고 우리 나라의 성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우리 나라의 성적이 바로 최상 존재로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창조체들과 우주들은 높든지 낮든지 최상위 안에서 진화한다. 그리고 그들이 진화함에 따라서 이 우주 시대의 모든 유한한 활동들의 통합된 총화가 나타나게 되어있다.” [UB 117:2.9]
우리의 본성은 영:
혼은 마음과 영에 의해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만들어 지는 것이니 혼의 고향이 하늘 나라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혼은 아버지가 하나님의 영이고 어머니가 인간의 마음이니 아버지의 고향이 아들의 고향이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유란시아는 이 이야기를 머리말 5장 2절에 아래와 같이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혼 즉 모론시아는 영을 날줄로 하고 물질을 씨줄로 하여 짠 직물이다.
“모론시아는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개재하는 광대한 수준을 표시하는 용어이다…. 모론시아의 날줄은 영이요 씨줄은 물질이다.” [UB 0:5.12]
혼이란 영을 아버지로 해서 태어 나지만 그리고 우주 아버지로부터 부여 받은 인격과 함께 죽음을 넘어서 생존하지만, 오직 일시적인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다. 영은 원래 아버지의 신성한 구체 디비닝턴에 있던 우주적 영원한 정체성을 갖고는 있지만 인격을 갖고 있지 못했던 존재인데 세상에 나와 세상을 실컷 체험하고 혼을 만들고 결국은 그 혼과 영원히 융합하여 최종적 우주적 실체로써 영원 속에서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봉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그러면 우리의 연어는 우리의 몸일까? 아니면 우리의 마음일까? 아니면 우리의 혼일까? 우리의 연어는 영이다. 영이 본향을 떠나서 잠시 몸을 얻어서 활동하다가 그 결과로 혼을 낳고 그 혼과 결합하여 이제 인격을 얻고 당당한 인격체로써 다시 본향으로 돌아 간다.
참으로 정교한 이론이다. 이런 엄청난 아름다운 이야기가 유란시아서 곳곳에 넘쳐 난다. 그 중에서도 혼의 이야기가 진정 압권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말들을 어떻게 믿느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유란시아서를 썼고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초창기 유란시아서 출산에 지대한 역할을 한 새들러 박사가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인도의 타지마할이나 이태리의 베드로 성당 같은 엄청나게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 섰을 때 그 건축물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할 말을 잃었을 때 그 건물을 누가 지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실물이 눈 앞에 있는데 그 건축가의 자격 유무를 따지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혼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운명의 이야기는 혼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주인공은 디비닝턴 출신의 영의 이야기이다.
영으로 거듭남:
예수님 당시에 훌륭한 학자이었던 니고데모가 밤에 몰래 예수님 면담 요청을 하여서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보통 기독교에서 죄를 뉘우치고 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 동안의 죄를 뉘우치고 육체를 죽이고 영을 새로 받아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자아는 원래가 육체가 아니라 영이고 앞으로도 계속 육체가 아니라 영인 것이다. 우리가 영으로 거듭난 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육체가 아니라 영인 것을 깨닫고 영의 생각, 영의 행위, 영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두 가지 본성: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 안에는 두 가지 본성이 살고 있다. 영적인 본성과 육체적인 본성이다. 영적인 본성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영이고 육체의 본성은 본능과 적자 생존의 진화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 나의 몸이다. 이 둘이 하도 싸워서 사도 바울은 탄식을 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우리는 언제부터 인가 이 두 가지 본성 중에서 육적인 본성이 우리이고 영적인 본성은 하나님의 것으로 우리가 거듭나서 성취해야 할 무엇으로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본성은 영이다. 잠시 육체에 머물면서 내가 육체인지 영인지 잠시 헛갈리며 살지만 우리의 지위는 본래 영인 것이다.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디비닝턴 동기생들인 영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형제이고 한 아버지를 모시는 가족이다. 이렇게 자신도 또 남도 다 영으로 인식할 때에 갑질도 사라지고 성범죄도 사라지고 다툼도 사라질 것이다. 유란시아서는 영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말한다.
육적으로는 우리보다 부자가 더 부럽고 권력자가 더 부럽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다. 오히려 육체적으로 안락하고 물질적으로 풍부한 것이 우리의 영성을 키우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몸이고 돈이고 집이고 모든 것은 잠시 빌려서 쓰다가 다 버리고 갈 것들이다. 버리고 가야 할 물건들에 신경을 쓰다가 정작 중요한 자신의 영적인 성숙을 소홀히 하여 영적으로 지진아가 되어 진리 구별 못하고 헤매다가 이 생을 마지막으로 우주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가 정작 부러워해야 할 사람은 소위 일곱 정신원의 달성과 관련하여서 셋째 원에 도달하여 개인 수호 천사를 받은 사람이나 첫째 원에 도달하여 생각 조절자와 대화를 할 정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다. 유란시아서에 의하면 “땅에 있는 자기 동료들, 특히 가난과 어려움에 빠진 귀중한 존재들의 복지를 위하여 사욕 없이 수고하는 데서 나타나는 비이기적 자질, 이것 이 행성에서 위대함을 재는 참다운 척도이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계에서 위대함의 명시는 자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은 “한 도시를 정복”하거나, “한 나라를 뒤집어엎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혀를 복종시키는 자”이다.” [UB 28:6.20]
혼의 개시, 진화를 돕는 제언들
도표 8 혼의 진화를 돕는 제언들
(1) 깨인 기도: 깨인 기도는 외부적, 개인적 하느님을 인식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내부적 비인격적 하느님, 내주하는 조절자를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신의 현존은 자연의 어디서나 또는 심지어 하나님을 아는 필사자들의 삶에서 발견되기보다 안에 내주하는 신비의 감시자, 파라다이스의 생각 조절자와 네가 교통을 시도할 때, 아주 넉넉히, 아주 확실히 발견될 수 있다. 우주의 아버지의 영이 너 자신의 마음 속에 사는데, 창공에 멀리 떨어져 있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큰 잘못인가! [UB 5:2.3]
예수는 말했다:
“너희 모두는 아버지께 너희들의 마음과 몸의 감정들을, 마음의 더욱 높은 충성과 그리고 더욱 만족스런 영의 체험으로 변환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UB 155:5.15]
(3) 삶의 규칙의 여섯 수준(육체, 느낌, 지성, 형제 사랑, 도덕, 영적 수준)
a. 일상적인 가르침의 영적 해석
b. 하느님이 그들을 취급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취급함
c. 모든 문제에 대한 태도는 당신의 최상의 희망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4) 마음은 너의 배, 조절자는 너의 항해사, 인간의 의지는 선장이다.
“ 마음은 너의 배요, 조절자는 너의 항해사, 인간의 의지는 선장(船長)이다. 필사자의 배의 주인은 신성한 항해사가 하늘 가는 혼을 영원히 살아남는 모론시아 항구로 안내함을 믿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오로지 이기심, 게으름, 죄 지음을 통해서 사람의 의지는 애정을 가진 그러한 항해사의 안내를 물리치고 궁극에는 자비를 거절한 악한 모래톱 위에, 죄를 품은 바위 위에, 필사자의 생애를 결딴낸다. 너의 승인을 받아서 이 충실한 키잡이는 시간의 장벽과 공간의 장애물을 거쳐서 신성한 마음의 바로 그 근원까지 그것을 지나서 계속, 아니 조절자들의 파라다이스 아버지에게 이르기까지 너를 안전히 데리고 갈 것이다. [UB 111:1.9]
(5) 예배는 봉사와 병행되어야 한다.
(6) “이 삶에서의 평화, 죽음에서의 생존, 다음 삶에서의 완전함 이 모든 것들이 창조체의 인격이 동의 (선택) 할 때 영 안에서 ‘지금’ 이루어 진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부를 창조체 인격의 의지에 복종하게 만들기를 선택하셨다.” [UB 111:5.4]
(7) “우주에는 정의라는 기본 법칙이 있는데, 자비는 이것을 피해 갈 힘이 없다. 시간과 공간의 영역에서 철저히 이기적인 창조체는 파라다이스의 사심(私心) 없는 영광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조차, 살아남기를 선택하지 않는 어떤 필사 인간에게도 영원히 살아남는 구원을 강제로 줄 수 없다. 자비를 베푸는 큰 허용 범위가 있으나, 결국 자비와 뭉쳐진 사랑조차 실질로 취소할 수 없는 정의의 명령이 있다. 다시 예수는 히브리 성서를 인용했다: “내가 불러도 너희는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뻗었어도 거들떠보는 자가 없었도다. 너희는 나의 모든 조언을 무시하고 내 책망을 물리쳤으며, 이 모반하는 태도로 말미암아 너희가 나를 불러도 불가피하게 대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생명의 길을 물리쳤으매, 너희가 고통 받을 때 나를 부지런히 찾을까 싶으나, 나를 찾아내지 못하리라.” [UB 146:2.5]
6. 혼의 운명 (7단계)
물질 생명체인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고 마음과 영의 협동 작업으로 탄생한 혼은 죽음에서 살아 남는다. 혼은 수호 세라핌에 의해서 맨션세계로 나아가고 살아 있던 동안의 모든 기억들은 생각조절자에게 보관되어 맨션세계에서 다시 모론시아 몸체를 매개로 하여 결합한다. 모론시아 생애를 사는 동안 몸체는 570번을 바뀌면서 성장을 거듭하는데 성장 방향은 점점 더 영의 지배를 늘려 나가다가 마침내 초우주 본부인 유버사로 나갈 때 쯤이면 완전한 영으로 변환된다. 영의 신분을 얻은 뒤에도 일곱 번의 신분 변화를 겪은 뒤 최종자로 하나님 앞에 선다.
도표 9 필사자 (혼) 의 운명
7. 파라다이스 최종자
이 단계는 우주 상승 여행의 일곱째 이자 마지막 단계이다. 우리는 모든 것의 영원한 근원이며 무한의 중심인 파라다이스에 도착한다. 우리의 여행은 물질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시작하여 값진 경험과 지식과 지혜로 풍부해 지고 예전에는 유한한 필사자이었지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탐구하는 여행으로 완전해 졌다. 파라다이스에서의 생활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최상의 기쁨을 느끼는 삶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즐겁고 기쁜 삶만을 위해서 한없이 오랜 시간의 훈련과 단련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파라다이스에서 상승 필사자, 천사 그리고 다른 영적 존재들과 같은 반열에 오른다. 우리는 최종자 군단의 구성원이 된다. 최종자 군단은 파라다이스까지 상승한 존재로써 다시 초우주에 나아가 다른 존재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그룹이다. 이들은 거주 지역인 초우주 내에서 활동하지만 외부 우주 공간은 지금 막 중요한 창조가 계획되고 있는 곳이며 최종자 군단이 이런 외부 공간에 임무를 갖고 나아가 봉사하게 될 것이다.
III. 마치는 말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사실 혼이라는 주제를 대체적인 개요만을 훑어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혼이 진화하는 과정, 혼의 발전을 돕기 위한 실생활의 습관들, 생각 조절자와 혼, 마음과 혼, 몸과 혼, 인격과 혼 등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혼에 관해서 기본적 사실들, 혼의 생존 과정, 혼과 일곱 정신 원의 관계, 균형 잡힌 혼의 성장, 혼과 초의식(Superconsciousness)과의 관계, 하나님 의식의 발전, 혼의 본질인 모론시아란 무엇인가? 인간의 혼의 진화와 최상 존재 (Supreme Being)와의 상호 의존성은 무엇인가? 최상 존재 그 자체는 무엇인가? 죽음 이후의 어떤 과정을 거쳐 부활이 이루어지고 혼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영 융합에는 어떤 종류가 있고 어떻게 영과의 융합이 이루어지는가? 영의 일곱 단계는 무엇인가? 융합 이후의 우리의 우주에서의 지위는 무엇인가? 하바나에 도착하면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가? 파라다이스에 도착 후 우리는 어떤 존재, 어떤 일을 하게 되는가? 혼의 마지막 운명 최종자 무리에 속한다는 사실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등 세부적으로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더 해야 한다. 유란시아서에는 이 모든 사실이 마치 수학적 정리처럼 상호 모순됨 없이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런 계시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이로 인해서 우리의 삶이 자초지종이 규명됨으로써 목적과 의미가 있는 삶이 가능해 진 것이 20세기와 그 이후에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의 축복이라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