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역 광장에 가득한 한가위 귀성객 - 국가기록원, 1977년
▲ 추석 귀성열차 안에서 선반에 얹혀가는 귀성객들 - 동아일보, 1968년
▲ 한가위를 맞이하여 서울역 광장에서 열차표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귀성객들 - 국가기록원, 1972년
1960~70년대는 귀성 수단은 열차가 주를 이루었다. 귀성을 앞두고 서울역 광장에는 열차표를 예매하거나 승차하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인파로 장관을 이루었다. 정원 87명의 3등 객차 안에 2백 30여 명씩이나 승차하기도 하여 객차 안에는 사람들이 앉지도 서지도 못하여 짐을 얹혀놓는 선반에 누워서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1970~80년대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후 열차와 함께 고속버스가 귀성 교통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976년 개발 전 허허벌판에 들어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은 시내에 분산된 터미널을 이전하여 영업을 시작하였으나 서울 인구 대부분이 강북에 몰려있던 당시 승객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하였다. 기업체나 관공서 등에서는 귀성버스를 마련하여 고향을 찾는 직원들의 편의를 도왔다.
▲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귀성객들 - 국가기록원, 1977년
▲ 한가위 귀성 전세버스에 오르는 영등포 조일공업 근로자들 – 동아일보, 1979년
▲ 한가위 연휴를 맞아 주차장이 된 궁내동 톨게이트 – 동아일보, 1993년
▲ 한가위 귀성길, 밤까지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
▲ 한가위 연휴를 나라밖에서 보내려는 여행객들의 공항 출국수속 모습 -조선일보, 1999년
1990년대는 한가위 연휴가 3일 동안의 공휴일로 지정(1989.2.1. 대통령령 공포)되고 자가용이 확산 보급됨에 따라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성객이 급격히 증가하여 ‘민족대이동’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귀성 수단이 열차와 고속버스에서 자가용으로 바뀜에 따라 민족대이동으로 인한 고속도로 정체가 본격화되어 ‘귀성전쟁’으로도 불렸다.
한가위를 보내는 시민들의 모습
▲ 동대문시장에서 추석빔을 사는 모녀– 동아일보, 1962년
▲ 한가위를 맞아 인파로 붐비는 종로3가 소재 서울극장 - 국가기록원, 1977년
▲ 성묘객으로 가득한 망우리 묘지- 동아일보, 1966년
▲ 한가위 대목을 맞아 길게 줄을 선 떡 방앗간 줄– 동아일보, 1970년
자료 출처: <우리문화신문>에서 기사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