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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
[K 생각] ㅡ 병든 사회
동네의 한 치과가 영업이 잘 되었습니다. 치료도 잘 하고 친절하다고 평판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역 카페에 서울대 치대 출신 의사가 동네에 새로 개원했다는 소식을 올리자 동네 사람들(환자들)은 그 새로 생긴 치과로 몰려갔습니다.
검증도 되지 않은 그 서울대 출신 치과 의사의 무엇이 동네 민심을 손바닥 뒤집듯 뒤바꾸었을까요?
물론 위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미국 뉴옥에 있을 때, 아랫 동서가 라식 수술을 한다고 하길래, 어느 병원에서 하느냐 위험하지 않느냐 걱정하며 물었더니, 동서는 그 의사가 라식 수술을 몇 번 했고 성공률이 몆 퍼센트라고 알려주며 절 안심시켜주더군요.
막연한 기대심리에 기대서가 아니라, 경험과학적 판단 기준으로 수술을 맡길 의사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맹목적으로 쏠리는 현상을 보여줍니다. 검증된 사실들을 외면하고, 검증되지 않은 희망사항들로 중요한 판단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위의 가상의 치과 의사 이야기에서처럼, 오랫동안 정성껏 친절하게 치료를 해주던 치과 의사를 한 순간에 배신하게 되는 비양심적 만행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 다음의 수순으로 남는 것은, 이솝 우화 <여우와 신 포도>에서의 여우처럼 자기합리화 뿐이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면, 이솝 우화 <꼬리 잘린 여우>에서의 여우처럼, 염치도 창피도 모르는 사람으로 뻔뻔해질 수 밖에요.
이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병든 사회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 아닐까요? 또한 아이들에게도 미래는 어둡지 않을까요?
* 검증되지 않고서 당선된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년을 떠올리며 쓴 글이었습니다.
2. 2023
[K 생각] ㅡ 동물농장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동물농장에 내려진 '제1계명'은,
이렇게 역설로 바뀌어져 있다.
* [역설(逆說 paradox)이란?] ㅡ 2010.7.2 / kjm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않으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이다.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의미를 파악하려면 주의깊은 음미가 필요하다.
역설의 목표는 듣는 사람의 흥미를 끌고 신선한 사고를 일으키는 데에 있다.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가 그 한 예이다.
"가장 많이 고친 사본이 대개는 가장 부정확한 사본이다"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격언은 오래된 문학적 역설의 본보기이다.
조지 오웰의 反이상향 풍자소설 '동물농장 Animal Farm(1945)'에서, 동물들의 집단농장에 내려진 제1계명은 다음과 같은 재치있는 역설로 바뀌어져 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그러나 詩에서 역설의 기능은 단순한 재치나 흥미의 유발에만 있지 않다.
현대의 비평가들은, 詩에서 역설이란, 詩語의 일부를 이루는 기교로써, 오류와 진실 간의 긴장을 동시에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반드시 전혀 의외의 단어들을 늘어놓는 것뿐만 아니라, 단어의 일반적인 의미를 계속적으로 미묘하게 바꾸는 것으로도 가능하다고 본다.
역설이 두 단어로 압축된 경우를 예로 들면, '소란한 침묵', '고독한 군중', '살아 있는 죽음' 등이 있는데, 이를 모순어법(oxymoron)이라고 한다.
* [고전적 착각] ㅡ 2023.3.14 / K
2022년 작년 1년 동안 반도체 수출이 반토막이 났다. 우리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슈뢰딩거의 고양이' 혹은 '회색 코뿔소'로도 비유가 되겠지만, '제논의 네 가지 역설' 중 한 가지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내게 화살을 쏴도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제논(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의 궤변(착각)은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내게 쏜 화살은 화살을 쏜 지점(A)과 '나' 사이의 중간 지점(B)을 반드시 지나게 된다.
그 중간 지점(B)과 '나' 사이의 중간 지점(C)을 화살은 반드시 통과하게 된다.
또 화살은 C지점과 나 사이의 중간(D)을 통과한다.
그렇게 무한히 분할을 거듭하다보면, 나는 영원히 화살에 맞지 않게 된다는 주장(착각)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의 인식(착각)이 이와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ㆍ아직은 죽지 않았잖아~
ㆍ펀더멘털은 아직 튼튼해.
ㆍ우리 경제규모는 1997년과 비교도 안 되게 커.
ㆍ올해 말엔 200억불 무역수지 흑자 낼 거야.
ㆍ올해 초부터 70일간 무역적자가 227억불.
ㆍ227억불은, 2022년 1년간 무역적자의 절반.
윤석열 정부는 집권 후 지난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제논의 궤변만 믿고, 요행만 바라나?
* 사족 (kjm _ 2026.5.28) :
오세훈 "뭐 아직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https://vt.tiktok.com/ZSx4Qqtvo/
3. 2023
[K 생각] ㅡ 돈 이야기
"돈은 돌아야 돈이다." ㅡ 최배근 교수 (최배근TV)
무너지는 건설사 살려주고 금융회사 돈 벌게 해주는 데 쓰였다면 돈이 기업과 가계 등 시중에 안 돌게 된다. (최배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TIMES (미 잡지사)가 "금융위기의 주범은 누구인가?"라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주범 1위는 조지 부시 대통령, 2위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고, 3위는 놀랍게도 '국민 자신들'을 꼽았다. 부화뇌동해서 함께 놀아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최배근)
유추하면, 2020년과 2021년 코로나 팬데믹 정국과 맞물려 유동성 폭증으로 인한 부동산 폭등 때, "벼락거지"라는 선동적 기사들로 도배시킨 언론의 부추김에 부화뇌동했던 이른바 우리나라의 '영끌족'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는 지 자문해 볼 일이다. (K)
돈을 100 찍어냈는데 돈이 돌면 1,000의 효과를 볼 수 있지만, 돈을 1,000을 찍어 풀어도 사람들이 지하금고(부동산 같은)에 묻어두어 돈이 돌지 않으면 100의 효과도 볼 수 없다는 논리. (통화정책의 효과)
* [돈 이야기] ㅡ 2022.6.12 / kjm
1. 돈(money)과 통화(currency)는 다르다.
2. '돈'은 양적으로 고정된 화폐지만, '통화'의 양은 유동적으로, 늘어났다 줄었다 한다.
3. '통화'는 발행, 지불, 결제, 저축 등으로 사용한다.
4. 통화지표 : M0 - M1 - M2 - Lf
5. 통화지표(currency index)란,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양을 나타내는 척도(기준)로서, 유동성 정도에 따라 통화(M1), 총통화(M2), 총유동성( M3)의 세 지표를 이용한다.
6. 통화지표 개요
M0 :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통화
M1 : 실제로 시중에서 유통되는 통화
M2 : M1에 예금과 적금을 합한 것
M3 : M2에 주식과 채권을 더한 것 (Lf)
ㆍLf : liquidity aggregates of finance institutions
(금융기관 유동성)
ㆍM3라 부르지 않고, Lf로 부르는 이유는,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면 비상상황이 아니라, 나아가 위기상황이기 때문.
7. M0와 M1 차이 : 2008년, 2015년, 2020년의 비교
M0그래프에선,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돈을 주었고,
M1그래프에선, 중앙은행이 개인들에게 직접 준 겁니다.
* [양적완화 & 양적긴축] ㅡ 2022.6.3 / kjm
1. 명칭은 코로나19이지만, 실제로는 2020년부터 경제가 셧다운 되었다.
2. 그러자 FED(미 연준)은 어마어마한 양으로, 어마어마하게 빠르게, 달러를 찍어서 풀었다. 이것이 '양적완화'다.
3. 또한 동시에 금리도 0.25%로 거의 제로금리에 가깝게 낮추었다.
4. 코로나 극복을 위해, 돈도 풀고, 금리도 인하한 것이다.
5. 그 결과가, 어마어마한 시장 유동성 범람과, 자산 가격의 인플레이션이다.
6. 코로나 확산이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하자, 테이퍼링(tapering)을 실시한다. 즉, 양적완화를 줄이는 거다. 즉, 돈을 새로 마구 찍어서 권리(채권)를 사주면서 맞바뀌주던 짓을 서서히 줄인다는 뜻이다.
7. 그런데, 많게건 적게건 주는 것(give)을 멈추고, 이젠 반대로 회수(take)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양적긴축'이다. 즉, 미 연준(FED)이 달러를 다시 거둬들인다는 뜻이다.
8. 진행 순서대로 정리하면,
1) QE(quantative easing, 양적완화) : 시장에 돈을 푸는 것 (채권을 사주는 것)
ㅡ 코로나 직후 연준 자산 4.2조 달러, 그후 연준 자산 9조 달러. (연준 자산 : 채권 보유액)
2) Tapering (테이퍼링) : 돈 푸는 속도와 양을 줄이는 것
3) QT (quantative tightening, 양적긴축) : 시장의 돈을 거둬들이는 것 (채권을 되파는 것)
ㅡ 현재 계획은, 매달 120조원씩을 회수하겠다는 것. 즉, 자산 규모를 8월까지 450억 달러씩 줄이고, 9월부터는 950억 달러(120조원)씩 줄일 계획이다. (120조원은, 우리나라 1년 예산의 1/5)
※ 인플레를 방치하면 시장이 붕괴된다. 가격을 예측할 수 없게 되고, 수요량와 공급량을 계획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인플레를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을 빅스텝(0.5%), 자이언트스텝(0.75%) 이렇게 연속 강하게 하는데..
4. 2023
[K 생각] ㅡ 계획
일주일 전쯤 카페 여사장님과 1시간 가량 대화를 가지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 대화에서 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 중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과 주어진 자리를 좋게 만들려는 사람들로 나뉜다. 사장님은 아마도 후자 쪽인 것 같다."
이유인 즉슨, 이 카페의 환경 조건은 좋지 않다. 2층이고 엘리베이터도 없다. 유동 인구도 적고 근처에 사무실 빌딩도 없다. 주차 시설도 불편하고 상업 중심가에서 먼 느낌이다.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손님이 붐부기가 어렵겠다. 그런데 커페 인테리어는 신경써서 참 멋있게 꾸몄다. 분위기도 좋고 정성스레 내려주는 커피맛도 괜찮다.
전자와 후자의 어느쪽이 더 낫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느낌적으로 구분이 될 뿐입니다. 새로 나온 차를 사고 1년 뒤엔 다시 새 차로 바꾸기를 반복하는 사람과, 소형차를 사서 차값에 버금가는 2천만원씩 들여서 차를 개조하는 사람, 들 다 각기 취향이 다를 뿐이겠지요.
마치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서, "저 성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라는 물음에 한 여인이 자청해서 답하기를, "나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과 손해를 주는 사람의 두 종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요.
또 사람들 중에는, 계획하고 사는 사람들과 계획 없이 사는 사람들의 두 종류가 있다고 보입니다. 계획이란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이니, 미래지향의 사람들과 현재지향의 사람들로 나뉘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론 가치지향적 사람들과 현실 이익지향적 사람들로도 볼 수 있습니다.
계획이란 말은, 기획project과 설계design같은 말과 차이는 있습니다만, 계획은 플랜(plan)과 프로그램(program)의 둘로 표현됩니다.
플랜은 미국의 마셜플랜(유럽부흥계획)처럼 긍정적 의미로 쓰이고, 우리가 1997년 말에 겪었던 IMF외환위기 때 IMF프로그램(IMF차관계획)처럼 혹독하고 고압적인 부정적 의미로 쓰여진다고 보입니다. 물론 제 주관적 해석입니다만.
긍정적 의미가 됐든 부정적 의미가 됐든 우리의 삶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무수한 계획들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남이 짜 놓은 각종 프레임들 속에 갇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계획 없이 산다는 것은 그만큼 내 생각과 행동들이 알게 모르게 제약을 받으며 수동적 방어적으로 움직여지는 기제로 작동케 됩니다. 달리 말하면, 주도권 상실, 주권 상실, 주체성 상실이 되겠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새 정부는 과연 어떤 계획이 있는 지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아십니까?
5. 2022
《시》
반지하방 보다는 옥탑방이 낫겠소
별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잖소
어두운 곳보다는 밝은 곳이 좋겠소
그대를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잖소
조금만 더 / kjm
6. 2022
[오늘의 명언]
오피니언 리더는 시대정신 리더다.
Opinion leader(OL) is Zeitgeist reader(ZR).
[오늘의 명언-2]
낭만과 열정이 없으면 인생은 사막이다.
7. 2022
시대정신..!!
나는 나 자신을 "오피니언 리더"라고 최근에 규정하고 있다. 한편으로 최최근에는, "공기와 같은 존재"라고도 바꿔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나만의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말하고 싶다.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해서 완벽하다고 자부하지는 않는다. 그저 백가(百家) 중에 하나일 뿐이다.
나의 철학은 주로 칸트의 생각을 기반으로 삼은 비판철학으로서, 비판과 재구성 작업을 주로 해서, 재구성에 초점을 맞춘다. 내가 재구성한 글들을 자주 포스팅하다 보니, 어떤 페북 친구는 나에게 "정리의 달인"이란 과분한 칭찬을 주기도 했다.
재구성이 미래를 향하다 보니, 예측을 많이 했고, 예측하는 발언들을 "예언"이라 썼다. 신통방통하게도 잘 맞추다 보니, 또 "쪽집게"란 수식어도 스스로 붙였다.
내가 예언해서 쪽집게처럼 맞춘 것들 중 굵직한 것 몇 가지만 추출해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 인공지능의 4차산업혁명의 도래와 포털의 성장, 박근혜의 탄핵, 플랫폼 정치의 확산,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선언 등이다. 허풍이 심해 보이겠지만 팩트다. 증명되는 사실이다.
오늘의 생각을 이어가겠다.
재벌, 검찰, 모피아, 미국의 패권주의 등을 "나쁘다"는 시각으로만 보면 답이 안 보인다. 이들은 존재할 이유가 있어서 생겨났고 나름의 긍정적 역할도 했다.
한국 산업화 시대에 꼭 필요했던 재벌의 존재다. 세계적으로 치안이 가장 잘 된 법치국가가 또 한국이고, 군사 쿠데타를 정리한 게 검찰이다. 또한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던 것도 금융모피아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벌이 대기업으로 탈바꿈하도록 시대가 요구할 때 저항하거나 미룸으로써 악의 축이 되고, 검찰의 정치질을 제어할 수단을 검찰조직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또한 악의 다른 한 축이 되었으며, 금융 모피아의 중추인 기재부가 정치성을 띰으로써 시대를 역행하는 세 번째 악의 축이 된다.
한편 21세기로 들어서면서, 20세기 미국의 달러 패권 시대가 저물어가는데, 미국은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억지를 부려서 또 국제적 악의 축이 되려 한다.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것이란 없다. 달이 차면 기우는 게 법칙이다. 그래서 '시대정신'이 중요한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를 읽지 못하면 급격하게 나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타락은 기본이요, 파멸에 이르는 길이 펼쳐진다.
이익의 문제에 매달리다가도, 문제의 성격이 존재의 문제로 바뀌었다는 것을 캐치해내지(깨닫지) 못하면, 그 또한 파멸로 들어선다. 여기저기서 그런 매몰된 모습들이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것은, 그 사회(공동체)가 '집단 오류'에 빠져 있다고 보면 된다.
개인적 사고와 집단적 사고가 밸런스(균형)를 잃고 공동체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났었다.
또한, 이익의 문제와 가치의 문제가 균형을 잃으면 존재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
따라서 시대를 읽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의 태양이 아닐 것이다. 내일의 태양이 어떨 지는 아무도 모른다.
8. 2022
[보편성과 간주관성]
공공(公共)의 의미..!!
공공(公共)은 public society로, 개인을 넘어선 '공적 영역'을 가리킵니다.
여기서의 공(公)은 '보편성'을 의미하며, 공(共)은 '간주관성'을 뜻합니다.
보편성(universality)은, "두루 통한다" 또는 "두루 해당한다"라는 뜻으로 읽히며 개인적 혹은 사적 영역을 배제합니다.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은, 개개의 주관성을 뛰어 넘어 "서로 통한다" 또는 "함께 지향한다"는 뜻으로 개인과 개인간의 소통과 융통을 전제합니다.
보편성이 '전체'라면 간주관성은 '부분의 합'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ㆍ공적(公敵)이라 하면 사회 전체의 적입니다.
ㆍ공익(公益)은 사회 전체의 이익입니다.
ㆍ공멸(共滅)은 같이 망하는 겁니다.
ㆍ공동(共同)은 함께 협력(연대)하는 겁니다.
ㆍ공통(共通)은 같은 관계 범주 속에 들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과학을 철학적으로 조명하는 과학철학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합인가"라는 논제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이 보편성과 간주관성을 기계적으로 동일시하거나 혹은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공(公)과 공(共)은 붙여 쓰기도 하지만, 혼용을 막기 위해서, 엄격하게 분리해서 사용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참고로~
보편성의 반대는 단독성입니다.
키에르케고르의 "神 앞에 선 단독자"라는 말 속에서, 神은 보편자요, 피와 살로 된 인간은 외롭고 불안한 단독자로 대비됩니다. 따라서, 보편은 '이념(idee)'으로서만 존재할 뿐, 구체화되지 않습니다.
일반성의 반대는 특수성입니다.
특수의 총합이 곧 일반입니다. 특수는 "어떤"으로 표현되고, 일반은 "모든"으로 표현됩니다. 따라서, '일반화'란 각기 다양한 특수들이 모아진다는 뜻입니다.
객관성의 반대는 주관성입니다.
객관은 나의 '대상'이며, 주관은 그 대상을 보고 듣고 만지고 생각하는 '나'입니다. 서로 다른 각자가 자기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생각하려고 하는 걸 '객관화'라 합니다.
통일성의 반대는 다양성입니다.
양태, 즉 모양과 상태가 다르게 여럿인 경우가 다양성입니다. 따라서 다양한 주관들의 통일, 주관과 객관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가 됩니다.
갈등과 분열은 따라서 통일을 지향해야만 하는 인간의 숙명이자 당위성입니다. 그리고 그 당위성(마땅히) 위에 필연성(반드시)을 얹어야만, 지구인으로서의 자격이 생깁니다.
따라서, 갈등과 분열은 통일을 위해서 존재해야만 합니다.
9. 2020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사건을 바라보는 눈]
결국은 '신뢰'의 문제였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윤미향씨를 "믿고 의지한"(신뢰한) 채로 30년의 세월을 함께했습니다.
그런 윤미향씨가 국회로 진출하면서 이용수 할머니는 이젠 누굴 믿고 의지해야 하는가 하는 허탈감과 함께 크게 서운해 하셨고 한편으론 배신감을 느끼신 겁니다.
그런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다 보니 서로간에 의사소통의 길이 닫혀버렸고, 오해는 깊어만 갔습니다.
이러한 본질적 문제는 제껴두고, 각자의 또다른 목적과 숨겨진 의도에 따라 사건을 부풀리고 왜곡시켜서, 자칫하면 이용수 할머니의 70년 간의 고통의 세월을 진흙탕 속으로 던져 더럽히고 윤미향씨의 30년 간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려는 더러운 음모의 토양을 만들지 않을까가 심히 우려됩니다.
그리고 또한 윤석열 검찰이 여기에 덤벼들어 법으로 역사를 헤집고 파헤쳐 흉물스런 모습으로 조작해 내지 않을까도 깊이 우려스럽습니다. 이건 검찰의 문제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금전적 횡령이나 배임같은 문제는 나중에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도 있는데도 굳이 전면에 나서서 문제의 본질을 가리거나 비틀려는 시도로밖에 안 보입니다. 검언이 또 다시 유착하는 게 아닌가 아주 걱정스럽습니다.
언론들은 마치 이용수 할머니가 폭탄을 터뜨려주기를 바라나 봅니다. 이용수 할머니의 90여년 인생이 망가지고 더럽혀지는 걸 걱정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언론들은 친일적 역사 시각의 부활을 노리는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윤미향씨의 사생활까지 마구 파헤치면서 자신들의 의도된 목적을 이루려 합니다. 그 목적은 아마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찾으려는 정의연 운동의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형해와시키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주 매우 친일스럽습니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합시다!
문제의 본질은,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씨 개인간의 신뢰의 문제요, 신뢰 회복과 화해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 되겠습니다. 또한 이용수 할머니의 총기가 흐려졌다는 걸 부각시키면서 잡다한 이유로 할머니를 비난하거나 폄훼해서는 정말 절대로 안 됩니다. 특히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루 아침에 오해가 풀리지는 않겠지만, 윤미향씨가 특히 노력해야만 이 갈등을 잠재울 수 있습니다. 회계 문제 등은 부차적입니다. 미래가 불확실했던, 정대협이나 정의연의 운동 초기에 얼마나 회계를 철저히 다루었겠습니까? 분명 헛점들과 과오들과 시행착오들이 있었을 줄로 압니다. 이제 이 사건을 계기로 운동의 성격이나 방향을 재정비하면서 정의연 운동 2기나 혹은 3기로 더욱 발전시키고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0. 2019
[공공(公共)의 의미와 분별]
공공(公共)은 public society로 개인을 넘어선 공적 영역을 가리킵니다.
여기서의 공(公)은 '보편성'을 의미하며, 공(共)은 '간주관성'을 뜻합니다.
보편성은 "두루 통한다" 또는 "두루 해당한다"라는 뜻으로 읽히며 개인적 혹은 사적 영역을 배제합니다.
간주관성은 개개의 주관성을 뛰어 넘어 "서로 통한다" 또는 "함께 지향한다"는 뜻으로 개인과 개인간의 소통과 융통을 전제합니다.
보편성이 '전체'라면 간주관성은 '부분의 합'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철학에선 "전체는 부분의 합인가?"라는 논제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간에서는 이 보편성과 간주관성을 기계적으로 동일시하거나 혹은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공(公)과 공(共)은 붙여 쓰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분리해서 사용해야 할 때도 있음입니다.
한 예로, 최근 일어난 사건 중 하나로...
한미 정상간의 통화 내용 유출 사건이 있는 바,
외교관들의 실수는 공(公)을 파괴한 행위이고, 이것을 대하는 자한당의 태도는 공(共)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강효상의 행위는 공(公)과 공(共) 둘 모두를 파괴시켰습니다.
작금의 황교안과 나경원은 너무도 후안무치해서 공공(公共)을 거론할 가치조차 없습니다만.
K / 2026.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