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기(1948)는 목포 시단에서 보기 드문 별이다. 투명하고도 슬픈 별이다. 그 별 속에는 선천의 순수와 후천의 상처가 함께 살고 있다. 지상에서 순수한 것들은 결국 상처의 옷을 입는다. 그러므로 순수와 상처는 필연이자 악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별은 순수와 상처의 보석으로 인하여 반짝인다. 반짝인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지만, 아픔이 많은 자에겐 울먹이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외따로 떨어져 앉아 스스로를 가두는 별이다. 지상에서 외로운 그에게 천상의 별은 우주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이자 교신의 대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별(別)하여 있는 그에게 천상의 별은 또한 무한한 아픔과 그리움의 상징이다.
목포산 토박이로 50여 년 이상을 한반도의 끄트머리에 붙박혀 살고 있는 그는 197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1985년 계간 『시와 의식』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한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그간 첫 시집 『씨』(1986)를 비롯한 7권의 시집과 소설집 3권을 펴낸 바 있는 그는 그러나 최근에 들어와 시쪽으로의 경사를 보이고 있다.
두 영역을 동시에 밀고 나간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문학적 역량에 따른 문제이다. 게다가 당사자만의 불가피한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학적 에네르기의 분산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이러한 어정쩡한 모습은 다소 불만스러운 게 사실이다. 두 가지를 성공적으로 이끈 경우가 어디 그리 흔하던가.
그의 시는 존재의 의미를 묻는 것과 삶의 주변을 스케치한 것들이 주종을 이룬다. 어법은 간결하고도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최근에 발간된 그의 다섯 번째 시집 『산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1999)를 보면 다소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순간적이고도 기발한 착상에 기댄 소품류 성격이 많다는 점이 그것이다. 게다가 네 번째 시집에 이어 인물 소묘식 시들도 지나치게 많다.
스스로 안고 있는 삶의 고통과 상처만을 깊게 파고들어도 버거운 판에 시적 관심을 굳이 딴데로 돌릴 필요나 여유가 과연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다섯 번째 시집에는 몇 편의 가작이 있다. 「멸」이나 「님」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인용한 시 「멸」은 가장 더럽고 하찮은 것이 가장 아름답고 심원한 세계로 통할 수 있음을 묘파한 수작이다. 변기에 걸터앉은 채로 운명한 시인이 이 시의 모티프다. 이 모티프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충격을 지니고 있다.
죽음의 장소가 다른 곳도 아닌 변기요 죽은 사람또한 일반인이 아닌 시인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통 사람들 같으면 '참, 지저분한 곳에서 죽는 경우도 있구나' 정도로 그치겠지만, 시인의 생각은 다르다. 조승기 시인의 상상력이 여기에서 빛을 발하는 바, "변기"를 "우주로 나아가는 출구"로 연결시킨다. 가장 더러운 똥오줌을 휘몰아 삼키는 변기가 광대무변한 우주로 통한다.
그러므로 변기는 "답답한 지구"에서 "자유로운 우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처인 것이다. 그런데 변기를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나"라는 몸뚱아리가 아니라 "오물"(똥오줌)이다. 그것도 굳고 걸리작거리는 오물이 아니라 잘게 부서져 형체를 알 수 없는 오물이다. 똥오줌이 무엇이던가. 우리 몸을 통과하는 동안 잘 발효되어 완전 변신한 음식물 찌꺼기가 아니던가.
그것들이 밑거름이 되어 다시 음식물을 기른다. 그러므로 밑바닥까지 두루 거쳐 잘 발효된 정신은 제 나름의 깊은 맛과 향기를 지니는 것이며, 그 맛과 향기가 우주의 본질에까지 가 닿는 것이리라.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가 한 편 더 있다. 삼학초등학교 부근에 있었다는 섬을 노래한 「똥섬」이 그것이다. 이 시는 향토적 소재를 취하되 천편일률적인 구태를 벗어나고 있다. 소위 목포에서 향토시 창작이라는 명분 아래 틀에 박힌 시나 짓고 있는 시인들은 이 시를 찾아 다시 한번 정독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