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느질하는 여자』(김숨, 문학과지성사, 2015)에서, 작중 화자의 어머니이자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수덕은 평생 누비 바느질로 자신의 긴 인생을 살아내며 두 딸을 키워내고, 이윽고는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몸이 굳고 눈이 멀어가면서 정신마저 혼돈해지는 생의 마지막에 이르게 된다. 사실 바느질 중에서도 한 땀 한 땀 똑같은 행동을 끝도 없이 반복하는 누비질이야말로 면벽좌선(面壁坐禪)하는 수행승의 길과 다를 바 없으니, 옷감을 누비는 일이 옷을 입는 사람에게 복을 지어주는 일이라고 믿는 수덕의 인생 자체가 삶의 여정이자 수행의 과정이었으리라.
아래에 올린 Dolly Parton의 노래「A coat of many colors」가사 중에도 옷을 지으면서 어머니가 딸에게 구약성서 천지창조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 야곱이 유달리 귀여워하는 아들 요셉에게 여러 색깔의 천을 덧대어 만든 저고리를 선물로 주자 요셉의 꿈에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자기를 우러러 보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옷을 정성스레 지어 딸에게 입혀 주면서 어머니는 "아마도 이 옷은 너에게 행운과 행복을 가져다 줄 거야."라고 말하는 게 가사에 나온다.
얼마 전 오랫만에 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딸이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늘 어머니가 방바닥에 이불을 편 다음 정성스레 솜을 누비고 바느질을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까 나 역시 잊고 살았던 주인님의 그런 모습들이 주마등맹키로 떠오른다. 주인님은 직장 다니면서 가정을 꾸려나가려니 늘 시간이 부족하여 방학 때가 되어야 미뤄뒀던 일들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큰 일이 며칠에 걸쳐 그 많은 이불들에 솜을 넣고, 꿰매고, 마름질하는 것 등이었다. 겨울방학 때면 해마다 되풀이되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딸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구만.
가난 속에 가족을 돌보면서 양육하는 어머니의 대표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는 헌 옷가지를 갖고 바느질하는 장면이 아닐까 하는데...옛 사람들의 그림에서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흔히들 바느질하는 장면을 소재로 삼았다. 여인들이 천 조각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자식들의 옷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보노라면 숭고하다는 느낌마저 들면서 문득 눈시울이 더워짐을 느끼지만...에궁! 방년 열 다섯 여자 아이들은 꽃잎 떨어지는 모습에도 까르르 웃는다더만, 걸핏하면 눈시울이 더워지는 이 노인의 증상은 또 뭘로 설명할 수 있을런지..
그림은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Josse Impens, Francois Millet, Judith Leyster, 그리고 Vincent Van Gogh의 작품이며, 영상은 다음의 순서로 편집하였다. 말만 영상이지 실제에서는 가사를 음미하기 위하여 자막을 올려두었다고 보는 게 맞는 말이겠지? 가사를 보면 노래마다 어머니가 하는 일이 각기 다르게 묘사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으리라. 근디 여담이지만 세번째 그림이 쪼매 수상한디...은화 주머니를 보여주면서 바느질하는 여인에게 추근대는 남자의 모습이 재미있다. 400여 년전 그 시대로선 찾기 힘든 여자 화가가 이런 해학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1. House of the rising sun(The Animals)~아덜의 청바지를 깁는 어머니
2. Coat of many colors(Dolly Parton)
~여러 색의 천으로 옷을 만드는 어머니
3. Coal miner's daughter(Loretta Lynn)~손이 부르트도록 빨래하는 어머니
4. Love of the common people(Paul Young)
~낙심해서 돌아온 아덜에게 편안한 품을 내어주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