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문-2
2007 Daniel's Digital Artworks(1950)
Original Image size 6000 x 4568 Pixel(78.4M) Resolution 300dpi, RGB Mode, JPEG Format.
얼마 전, 나의 동기가 또 한 사람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는 몇년 전부터 자기의 지병으로 인한 죽음을 예견하였음에도 마지막까지도 자기 가족에게
죽음을 비밀로 하였고 자신의 죽음을 조용히 대비하였다고 한다. 가까운 친구 두 세 사람만이
추측을 하였는데 그런 연고로 유독 그들이 더욱 그를 그리는 마음이 더 애닲았던 모양이다.
나의 친구 중 또 다른 한 사람은 K대학을 나와 제조업을 하다가 어느 날 종적을 감추었다.
10여년이 지난 후, 그가 스님이 되어있는 사실을 알고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더구
나 그는 한국의 조계종이나 천태종이 아닌, 국내파가 아니라 미얀마에서 10년을 수련하여 입적
한 스님으로 한국 불교계에 원적이 없는 원류 남방불교계의 스님으로 현재 경주에서 사찰이라
기 보다는 '마하보디선원'이라는 일종의 불교수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다음 글은 앞서 언급한 친구의 죽음에 대하여 선문선답한 내 친구들의 이메일 교신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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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거사님
죽음을 공부하자는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째는, 죽음은 종말, 끝이 아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거사님께서는 '죽음은 죽었다'는
저의 표현을 다소 잘못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은 대부분 죽음을 외면하고 죽음을 모
른 체 하고, 죽음을 도외시 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그것은 죽음이 마치 끝인 양하는 사고방식
에서 온 것일 겁니다. 대개는 죽음은 종말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윤회나 그 외의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죽음을 종말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종말, 끝이라는 말은
존재가 비존재로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는 인식의 기능이 있는 존재에서 인식의 기능이 없는 존
재로 환원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종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존재가 비존재가
되는 법은 없으니까요. 모든 것은 순환의 법칙 속에서 존재하니까요. 존재란 새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소멸되는 것도 아니지요. 이것은 과학에서도 질량 보존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비슷한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죽음을 대개의 사람들은 죽음을 종말로 암암리에 받아들이고 있으니, 또한 죽음에 대한
의미를 전혀 사고해보려고 하지 않으니, 의미를 부여 받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이니, 그래서 '죽음은 죽었다'고 표현한 것일 뿐입니다. 죽음은 실재로 죽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경종을 주기 위한 꼬집음의 표현이었을 뿐입니다.
죽음에 대한 다음 얘기는, 여기 지난 죽음 강좌의 후속편을 보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불교의 윤회 부분은 매우 많은 얘기가 필요한 부분인데, 지난 법문에서는 시간이 여의치 않아 핵심
부분만 언급하였습니다. 기회가 있으면 그 부분의 자세한 공부을 생략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꾸만 죽음에 대한 사고를 더 필요로 하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산 같은 건강 기원합니다. 정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늘 붓다의 메따와 함께 하시길,,,,,,,,,,,,,,,,,,,
Nyanaloka 합장
첫댓글 가장 사실적인 나무는 한쪽 바람 늘 맞은 이승,은은히 줄지워 맞은 구름은 저승의 막연함.죽어 봐야 알지! 그 모르는 검은 문으로 가는지,않 가는지를....죽어 보면 알것을....
대체적으로 참 잘 본다. 아래의 검은 문은 죽음으로 들어가는 문이 맞다. 대강 니가 말한 그런 내용으로 그린 것인데 니 해설이 더 멋지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