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말랐던 삼나무에 꽃바람이 분다는 달 2월입니다. 꽃님들께서도 벌써? 한 달? 하시며 1월이 꽤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지요. 저도 어느 사이 60도 중반을 넘고 머리엔 함박눈을 가득 이고 보니 세월이 쏜 화살 같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진심으로 이해가 되는 요즘입니다.
찾아 오는 가족들도 얼마 없지만 그래도 우리 설을 앞두고 집에 찾아올 식구들을 생각하며 음식을 장만하는 일을 지금부터 하나씩 하고 있는데 하나하나에 얼마나 정성이 들어야 음식이 제대로 만들어지는지도 깨닫고 평생 그 일을 하시던 오신 지금은 별이 되신 어머니의 노고도 새삼스럽게 알게 됩니다. 육남매었던 우리집에 둘째인 나는 늘 어머니 옆에서 일을 거들었는데 어머니를 돕는 일이 아닌 그냥 그 일 들을 하는 것이 당연히 하는 나의 일이었었지요.
명절이 다가오면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종갓집 종부셨던 어머니를 도와 불린 콩을 맷돌에 갈고 콩 물을 베보자기에 짜서 가마솥에 끓이는 두부를 만들었어요. 두부를 만드는 일은 아주 조심스러운 작업이어서 불을 지피고 두부물이 넘치지 않게 불조절을 하며 불을 땝니다. 솔솔 김이 오르는 과정까지만 하고 그 다음은 어머니를 부르면 되지요. 미리 받아 놓은 간수를 국자로 떠 넣는 일은 아주 성스러운 작업 같았어요. 조심스런 손길로 간수를 넣으시면 우유 같던 콩물이 몽글몰글 해지며 달큰하고 고소한 향기가 피어 오르곤 했지요.
또 조청을 만드는데 삭힌 식혜를 베보자기에 짜서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식혜 물을 저어야 하지요. 키가 다 자라지 않은 나는 팔이 짧고 다리도 짧으니 부뚜막에 올라앉아서 식혜 삭힌 물을 저었지요. 내 키의 반만 하던 나무 주걱으로 식혜 물을 젓다 보면 추운 겨울이라 부뚜막 위는 따뜻해서 좋기는 하나 팔이 아프고 어깨가 빠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딱히 아프다고도 안 하고 끝내 조청이 거의 다 될 때까지 저었었지요. 그때쯤엔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한지라 어머니께 주걱을 넘겨 드리면 조청 고는 일은 내게선 끝이 나는 것이었어요. 주걱을 받으신 어머니는 작은 단지에 조청을 나눠 담으시고 나머지는 좀 더 졸여서 엿을 만드셨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든 조청으로 약과도 만들고 다식도 박고 갱엿도 만들었어요. 그리고 잘 익은 김장김치에 두부와 고기를 넣고 만두피를 쉴 새 없이 만들어 만두까지 빚으면 이젠 허리를 펼까 하지만 밤에는 가래떡을 써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떡을 써는 일도 어머니와 내가 둘이서 했는데 언니는 거들려고도 하지도 않지만 떡 모양을 예쁘게 썰지 못한다는 이유로 어머니는 언니를 떡 써는 일에서 제외했지요. 그래서 이래저래 부엌살림 돕는 일은 내 몫이었어요. 동생들은 어려서 안 시키고 위에 하나 있는 언니는 만두도 예쁘게 못 빚으니 하지 마라, 송편도 예쁘게 못 빚으니 하지 마라, 불을 때는 것도 소여물을 써는 것도 둘째인 내가 하고요. 그 덕분에 늘 어머니 곁에 있어서 시루떡 안치는 것을 보고 인절미 만드는 것도 식혜와 다식을 만드는 일을 그냥 다 배우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이란 것이 어머니의 보조일 때와혼자 다 해야 하는 완전히 다르지요. 작년에 어머니가 안 계신 것을 실감하는 일이 있었어요. 쌀 다식을 만드는데 어머니께서 쌀을 볶으라고 하신 것만 기억이 나고 쌀을 쪄서 말리셨다는 것은 잊어버린 것이었어요. 분명히 쌀을 볶아서 쌀가루를 만들어 다식을 박았는데 돌덩이같이 되는 것이었어요. 무슨 문제가 있구나 했는데 무슨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죠. 매우 간단하지만 시간을 요구하는 쌀을 불려서 쪄서 말리신 과정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었지요. 그래서 올해는 쌀을 쪄서 말려서 쌀가루 준비를 했고 다식은 성공적으로 만들어질 것이랍니다.
음식을 만드는 일 뿐 아니라 이불 호청을 다듬이질 하는 것도 제 몫이었는데 다듬이질 하는 것은 아주 신이 나서 두두렸던 기억이 아네요. 시원한 대청 마루에 앉아 똑딱 똑딱 다다다다닥 방망이 소리는 경쾌하고 재미있어서 박자를 마음대로 만들어가며 두두렸어요. 연한 풀을 먹어 말린 이불 호청에 입으로 물을 푸후푸후 뿌려서 이불 호청을 어머니와 양끝을 잡아 당기며 이리저리 다시 개면서 다듬이질을 하다보면 어느 사이 꾸겨졌던 이불 호청이 반드르르 해지고 "어머니의 잘 했어요." 칭찬이 끝나면 뿌듯한 마음으로 빨래줄에 한껏 맨드롬 해진 하얗고 눈부신 이불 호청을 널어 말렸지요. 다시 어둔 밤이 되면 어머니와 마주 앉아 이불호청 꿰메기도 했는데 각자 다른 중간쯤 자리를 잡고 꿰메면 이불 하나 호청 깁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풀을 먹이고 다듬이질이 된 이불호청은 빳빳해서 골무를 껴야만 바느질이 되었어요. 나는 손가락이 작이서 어른의 골무를 끼고 바느질을 하다보면 골무가 자꾸만 빠져서 애를 먹곤 했었지요.
웃음이 절로 피어나는 행복한 추억이고 모든 것이 어머니 덕분입니다. 어머니께서 남기신 고장난 늙으신 아버지랑 사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요. 낡고 오래된 불편하여 어쩌다 쓰는 살림들은 정리를 하기도 했지만 커다란 다라와 스텐 그릇들은 여전히 요긴하게 잘 쓰이고 있어요.
살림중에는 어머니께서 쓰시던 절구공이와 내가 쓰던 절구공이가 있는데 어머니가 쓰시던 것은 금이 가도 좀 작아서 금이 가고 작은 것은 정리해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넣어 두었어요. 어머니의 손길이 묻어있는 저 절구공이를 버리기까지는 아마도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 예감이에요. 명절이지만 제사를 안 지내지만 동생들이 오니 어머니께서 하시던 음식을 이것저것 준비합니다. 추석에 김치를 꺼내던 작은 올케가 “어머니 김치 냄새에요.” 하며 웃더군요. 반찬들을 먹으며 한결같이 어머니 맛이라고 좋아하던 동생들을 먹일 생각에 하나하나 만드는 재미가 크고 덕분에 설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바람재 들꽃님들은 어떤 음식들을 준비하고 계신지요?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고 이런 것이 사는 재미 아니겠어요. 꽃님들 2월도 따뜻한 마음으로 예쁘게 잘 사시고 함박눈 가득히 머리에 인 캔디는 봄 바람 살랑이는 춘삼월 초하루에 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별노래님의 별꽃입니다.
첫댓글 늘 느끼는것중 하나가
글을 잘쓰시는분들은 기억력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더라구요.
얼추 50여년이
지난 일들을 어찌 지난달에 한것처럼
기억해서 쓸스있는지 참 .
어는땐가 부터 일이 무서워진 저는
명절 또한 간단히 간단히를 외치며
사는데 체력또한 부럽네요
캔디라는 이름이 아주 잘 어울리셔요
2월 편지도 잘 읽고
덕운에 어릴적 설날도 떠오르네요
초하루 편지 감사합니다
감사함으로 가득한 일상
제 워라벨이여요
정성가득담은 다식이 맛보고 싶어요
행복한 2월 보내서요
자목련님 감사합니다~
기억력이 좋았는데
요즘은 깜박깜박 자주 그러더라고요.
설날까지
하루에 한 두 가지씩
이것저것 해 보는데
만드는 재미에 자꾸 일을 벌리네요.
조금 힘든 날은
종일 쉬며 체력 보충을
하지요~
제가 기억하는 저의 어릴적의 모습하고도 비슷합니다.
어머니는 많이 바쁘셨고, 숙모님 뒤를 쫄쫄 따르며 일을 도울 때가 많았는데 잊었던 그 순간이 떠올라 울컥해 집니다. 진정성 있게 배우기보다는 그저 까불기에 바빠었던 어릴때 그 시절....
곧 설날이네요.
저는 조카들에게 어떤 추억을 안겨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면서 분주한 마음을 안고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겠어요.
터져오는 봄소식과 꽃편지의 힘으로 2월을
선물처럼 받았습니다.
바람재 꽃님들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2월 되십시오
우리 나이쯤엔 거의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자랐을 거에요.
추억속으로 자리한 어르신들 기억에
마음이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설날이 온다는 건
가족들 만날 생각에
행복하네요.
감사합니다~
캔디님 기억속의 풍경들이 하나같이 같음에 놀라기도 하며
옜날이 떠 올라 가슴까지 콩닥거리게 됩니다.
젊은애들은 전 보다 카페의 빵을 찾는 시절이라
우리집 신식 며느님 ㅎㅎ 은
설 지나고 나가서 밥 한 끼 맛난 것 사먹자 합니다 ㅎㅎ
그래도 제 맘은 서운 해서
전 몇 가지와 만두는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명절 잘 보내셔요^^
언니, 시골살림이며 설 준비며 우린 비슷한 시절을 살았지요. 요즘은 명절이든 아니든 밖같 음식에 익숙해졌고요. 그래도 신식 며느리 덕분에 외식하시네요.
저는
나가도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맛난것도 없고
집밥이 최고네요~
한 권의 수필집을 읽은 듯
마음이 따뜻해지는 꽃편지입니다. 고맙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하는일을 옆에서 도와주는?
아니 주도적으로 해내는 그림을 상상해 봅니다.
손끝이 야물어 엄마 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는 기특한 아이가
지금의 캔디님이시네요.^^
큰집이었던 우리집 설날 풍경이랑 비슷해요.
손도, 마음폭도 넓은데다, 솜씨있고 부지런한 엄마 덕분에
풍요로운 명절을 보내곤 했지요.
할머니가 계셔서 늘 두 분이서 모든걸 해내셨기에
학교 갔다오면 모든게 끝나있고 조청 쑤어 엿을 만들 땐
한밤중 아이들 다 재우고 두분이서 하셨던 기억이 있네요.
방문을 열면 안된다며 아이들도 잠들고 방문객도 없는 한밤중에
둘이서 마주보고 엿을 치던 기억은 납니다.
조청 고운다고 불을 많이 땐 방에 찹쌀유과를 말리던 기억도요.~~
이 모든게 추억이 되어 다시 맛볼 수 없는 음식이 되었는데
캔디 님은 엄마 하시던대로 직접 하고 있으니
별이 되신 엄마가 흐뭇하게 보고 계실 듯 합니다.
복 많이 받으시기를요.^^*
어머니의 손맛을 제대로 닮아야 하는데
그 정성은 못 따라가고
그저 흉내만 내고 있답니다.
두부를 만들때
가마솥에서 펄펄 끓던 콩물이 한 그릇 먹고 싶네요.
속이 뜨끈해질텐데요~
나영님 고맙습니다.^^
@캔디(양평,독골길) 울엄마는 떡국을 .동전처럼 동글동글 썰었지요.
우리 집안에선 그렇게 썰어야한다며~~~
일 다 끝나고 그 많은 떡국을 한밤중에 혼자 썰고 계셨지요. 동글동글하게 생긴 떡국떡
이젠 엄마도 안계시니
꼭 삐져놓은것 같은 떡집 떡국을 먹을 수 밖에 없네요.
엄마 안계시니 그리운게 너무 많아요.^^
2월의 초하루 편지를 읽으니 잊고 있던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닙니다.
안은화님
감사합니다~
기쁜 2월을 맞으시길요.^^
2월 꽃편지에 입이 딱딱 벌어집니다
어찌 그렇게 음식 만드는 법을 잘 익혀셨는지요?
전 감히 읽기만해도 입이
떠~~~억 벌어집니다
나이는 많아도 밥이나 익혀먹을 줄압니다
초하루 2월 편지받고 만능이신 캔디남을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백목련님, 우리때는 대부분 그렇게 컷지요.저는 유난히 어머니 밀착형 딸이라서
저절로 배워졌어요.
2월은 꽃바람으로 가득해서
많이 기쁘시기를 바랍니다.~
참 정성스럽게 사십니다.
나이 들었다고 대충 대충 간단간단 ~ 사는 삶 부끄럽게도 .
캔디님 사는모습이 떠올려지니 저도 행복해지네요.
생선 가게에 가면 생선 비린내가
향수 가게에 가면 향기가 난다는 옛 말처럼 캔디님의 정성스러운 삶 잘 배워야겠어요
선한 영향력~~♡
성탄목심 사람 사는거 다 비슷하지요~
성탄목님은
더 정성스럽게 살고 계신걸요.
간단하게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고
간단히 할 수 있으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랍니다.
감사드립니다~
솜씨 좋은 캔디님의 비결은 엄마 옆에서 직접 보고 듣고
몸으로 익힌 것이네요.
원래 둘째가 제일 머리가 좋고, 기술이 좋다고 하지요.
이래저래 할 일이 많은 캔디님,
그치만 몸에 무리가 오도록 넘 열심히 일하지는 마세요.
저는 대구 형님이 차려둔 제사상에 절하고 먹는 일만 하고 옵니다.
환갑이 지나니, 일복이 줄어서 크게 손이 가는 일이 없어서 무한 감사하지요.
별꽃이 방긋방긋, 곧 큰개불알풀도 꽃잎을 열겠지요.
기다림의 절정인 2월도 순식간에 휘리릭 지나가겠지요.
이렇게 시간이 가는 줄 요즘 들어 왕실감합니다.
둘째가 일 복이 많지요~
덕분에
인생이 더 즐겁고요.
설이라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정리하고~
어머니도 이러셨는데요.
저도 그리 살고 있습니다~
중부지방도 2월말쯤이면 별꽃이 필 수 있겠지요. 감사합니다.^^
캔디님의 어린시절이 저와 비슷한 걸보니 같은 연배인가 봅니다 ㅎ
주인공이 엄마가 아닌 할머니셨지요
모든걸 직접 손으로 하던시절
구경거리가 많았어요
떡국 떡도 집에서 반죽해서 썰어서 끓이는데 할머니는 생떡국이라고 하셨지요
갖가지 시루떡을 찔때면 화장실 갔다오면 떡이 설어서 안된다고 해서 다 찔때까지 꼼짝 못하고 불을 땠어요
지금도 그때 추억을 더듬으며 인절미나 쑥떡을 소꿉장난 하듯이 조금씩 만들어 먹어요
두부는 비지가 넘 많이 나와서 이젠 안하고요
그래도 정지간에 들어가기가 호랭이보다 무섭다는 나이라
뭐든 간단간단히 해요 ㅎ
초하루 편지가 풍성해서 명절기분이 물씬 나네요
고맙습니다
비슷한 연배가 맞나 봅니다~
우린 할머니께서 늦도록 애기나이를 하셔서
삼촌들이 비슷하게 자라니까
음식준비를 어머니와 제가 했어요.
ㅎ 나이가 어린 삼촌도 있으니
울어머니 고생이 말이 아니었지요.
아직은 부엌일이 재미 있는걸 보면
일하고 살라는 팔자인가 봅니다.
콜라맘님 감사합니다~~
@캔디(양평,독골길) 참 생각 나는것이 많이 있어요. 저도 둘째인데요.
엄마를 좋아하고 마음을 도와 주고파서 엄마 껌딱지~~~
떡 불때는중 화장실 가면안되는 이유가 핑계가
궁금합니다.
저는9살때 엄마 찾아 논 못자리에 가 엄마는 없고 논에 들어가 어린피 뽑다
거머리가 여러마리~~
발목에 피가줄줄줄 무서워서 울고집에와
엄마가 너 피 아느냐고 물어서
자세히보니 다르더라했어요.
지금도꿈같아요.
징그러운 거머리 싫어요.
캔디님 편지 감사합니다.
@새우란 새우란님 떡을 그만큼 정성스런 불때기를 해야해서
그러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뜨면 불 조절을 못 하니까 뭐 그런거 아닐까 하네요.
맞습니다~징그러운 거머리!
스타킹을 신으면
거머리가 붙지 않는다고 했는데
스타킹을 신고 논에 들어 갔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네요.
모내기도 모심기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감사합니다.^^
초하루 꽃편지 맛갈나게 읽었습니다
캔디는은 기억의 부자입니다
행복한 기억이 많다는 것은
지금도 앞으로도 행복 하다는 이야기지요
기억의 부자라는 단어가 좋으네요~
시골에서 자라서
식구들이 많아서
다정하신 어머니셔서 좋은 기억이 많나봅니다.^^
감사합니다~
초하루~라서 신이 납니다 두근두근
아름다운 초하루 편지를 받았습니다
별꽃처럼 반짝입니다
캔디님 알러뷰♡♡♡
금방 다가오는 초하루네요.
또 금방 3월 초하루가 오겠지요.
하루하루 잘 살아 보려 하네요.
많이 기쁘시기를 바라며
감사합니다~
아이고, 정말 어머니 곁에서 별별 것들을 다 경험하셨네요.
그 덕분에 식구들에게 맛난 것을 먹일 기쁨에 젖어계시고요.
별꽃 님 말씀처럼 추억할 것이 많은 사람이 노년을 즐겁게 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캔디 님은 정말 행복하게 사시는 분입니다.
어머니 계실 때는 명절이면 조청을 고아서 유과와 강정을 만들곤 했는데
어머니 계시지 않으니 그것들이 가마득한 기억 속에서만 떠오르곤 하네요.
캔디 님 글 덕분에 잠시나마 옛날로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ㅎ 정쌤, 언니도 저 보고 별걸 다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거든요.
6남매 중에 유난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어서
어머니 집에 살게 되었나 봅니다.
이렇게 꽃편지를 쓰게 해 주신 정쌤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행복하게 유년을 보내셨네요.
무엇이나 뚝딱 만들어내는 캔디님의 뒤엔 엄마가 계시니 덕분에 우리도 어쩜 지나간 세대의 음식과 이야길 듣습니다.
생각해 보니 나는 딱 하나이네요.
가래떡을 뽑으면 엄마아버지가 같이 쓰시던 행복한 풍경 기억으로 내 손으로 썰지요.
강정 만들기는 보았으나 엄두를 내어보질 못 했어요.
종갓집 둘째는 손에 물 마를새가 없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어머니께는 감사하고
다시 태어나도 울어머니 둘째딸로
태어날 거에요.
ㅎ ㅎㅎ가을하늘님~강정 만들기 쉽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