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걷기 좋은 명품길
북한산 둘레길
소나무숲서 사색하며 평창마을 지나 성너머 하늘길 걸어
우이~수유~정릉~구가~산성~송추까지 13구간 44km
북한산둘레길이 마침내 열렸다. 올 초 시점구간인 '순례길' 개통 이후 8개월 만으로, 9월 7일 수유뷴소에 문을 연 둘레길탐방안내센터에서 개통식을 갖고 사업시행 1년 만에 우이령길을 포함해 총 44킬로미터가 개통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만든 국립공원의 첫 둘레길로 우이동~정릉~은평뉴타운~북한산성~효자동에 이르는 북한산국립공원의 북한산 구간만 우선 개통했다. 도봉산 구간(26km)은 내년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지난 8월 말, 취재팀과 함께 개통식을 1주일 앞두고 최종 점검 차원에서 둘레길을 찾은 공원시설팀 김준석 계장은 "최근 탐방행태는 지리산 숲길, 제주도 올레길, 변산 마실길 등 걷기문화 확산으로 다양한 유형의 걷기 탐방 수요가 많다"며 "국립공원 내에도 이에 맞춰 다양한 국립공원 탐방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북한산 저지대 자락을 연결하는 북한산둘레길을 조성하게 됐고 이중 서울시 구간인 북한산을 이번에 개방한 것" 이라고 밝혔다.
최근 몇 년 새 한국사회의 걷기열풍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던 지리산둘레길과 제주 올레길, 이 중 지리산둘레길이 이른 바 '대박'이 나는 과정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그저 지켜만 봐야했다. 그 주체는 산림청으로 사단법인 숲길에 의뢰해 관련 지자체와 협의해서 만든 길인데, 공단은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북한산둘레길 개통은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공단이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고 개통을 앞당기기 위해 엄홍우 이사장부터 직접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길이 연 1000만 명이 찾는 북한산의 둘레길이다.
비법정탐방로인 샛길의 합법화
북한산둘레길은 현재 탐방예약제를 시행중인 우이령길(6.8km)을 포함해 우이동 소나무길을 출발해 수유리 순례길~휜구름길, 정릉 솔샘길~사색의길, 구기동 평창마을길~성너머길~하늘길, 산성지구 마실길~내시묘역길~효자마을길, 송추 충의길로 한 바퀴 돈다. 이 길을 이틀에 걸쳐 둘러보았다.
국립공원 웹사이트에서 북한산둘레길 홈페이지의 메인사진으로 올라와 있는 일명 '스카이워크'가 있는 하늘길을 맨 처음 걸어보기로 했다. 기점은 작은 불광사가 있는 장미공원. 들머리인 불광역 1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인도에 둘레길 로고가 박힌 표지대가 반긴다. 걸어서 10여분이면 불광근린공원에 닿는다. 이처럼 대중교통이 좋아 북한산둘레길은 어디서나 접근이 쉽다.
북한산성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기존 등산로에 세워졌던 방향표시판과 별개로 둘레길만의 통일된 이정표를 모두 새로 했다. 구간 곳곳에는 나무에 묶어 놓은 수목표찰이 있어 처음 가는 길이라도 길 찾기에 대한 걱정을 없앴다. 샛길로 인해 식생이 파괴되거나 위험한 길은 나무데크를 깔았고, 계단으로 된 곳에는 발 디디는 곳에 노란 페인트를 칠해 야간 산책 때 발을 헛디디지 않게 배려했다. 오른쪽으로 법정탐방로 외 출입을 막는데 요긴했던 철조망은 그대로였다.
숲 사이로 아파트가 보이더니 전망대가 나왔다. 하늘길 최고의 뷰포인트이다. 2부 능선을 옆으로 가는 길에서 산자락의 결 따라 유선형의 데크를 깔았다. 5미터 이상의 기둥을 박고 산세를 살려 60미터 가량 이어진 길은 '붕 떠가는' 느낌이다. 이곳에만 8천 여 만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 총 공사비 30억 원여 중 거의 절반이 길이 안 좋은 은평구간에 집중됐다고 한다.
북한산둘레길 조성의 한 계기가 되기도 했던 곳이 바로 은평구간이다. 박기연 탐방시설팀장은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이후 웰빙형 산행인구 확산과 은평 뉴타운과 같은 북한산 주변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공원경계부에 조성됨에 따라 탐방객이 급격이 늘어나 자연자원 훼손 방지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었다"고 말했다. 둘레길을 그 대안으로 본 것이다. 공원 내 중요자원이 분포하고 있는 고지대를 보로하기 위해 저지대의 자락길로 탐방객을 분산 유도하는 게 둘레길의 목표로 설정됐다. 또 그간 이용에 어려움이 있었던 어린이나 노인, 장애우 등 사회적 약자층에게 공원이용의 편의성을 제공하려고 사업이 추진됐다. 궁극적으로는 '역사와 문화, 자연과 인간이 살아 숨 쉬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길'을 만드는데 방점을 찍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길이 북한산 둘레길인 것이다.
수직→수평이동, 어린이와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 배려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니 공사 허락 좀 해주세요."(공단 직원)
"내가 공사 좀 한다고 할 땐 손도 못 대게 하더니. 안 돼요!"(토지소유자)
길은 은평뉴타운을 벗어나 삼천사쪽으로 이어지는데 국립공원 경계를 넘나든다. 그런데 공단이 공원 내에서 진행하는 사업, 특히 지난해부터 둘레길을 조성하며 토지소유주들의 반대로 추진 속도에 제동이 걸리기 일쑤였다.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했지만 지주가 반대하면 제대로 작업할 수 없었다. 탐방시설팀 직원 서너 명이 돌아가며 지주들을 만나 설득하는 데 하루를 다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2~3달 설득하고 사유지 주변에 펜스, 목책 등을 설치해주는 조건으로 겨우 허락을 받아내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 북한산국립공원의 경우 전체 면적 중 40퍼센트가 사유지다. 지리산(17%)이나 소백산(19%)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해상국립공원과 경주국립공원을 제외하면 북한산보다 사유지 비율이 높은 국립공원은 계룡산(48%) 뿐이다. 북한산둘레길만 보면 총 44킬로미터 중 42퍼센트가 공원 바깥이다. 시점구간이었던 순례길(3.4km)의 경우는 2킬로미터 이상이 사유지였다. 내년에 개통될 도봉산 구간을 합치면 사유지는 50퍼센트가 훌쩍 넘는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공단이 공원 내 사유지를 정비, 보수할 때 소유주에게 '무상사용 요청'을 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대부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공단의 한 관계자는 "지주들이 사유지라며 가건물을 짓거나 나무를 베는 불법행위를 하다 벌금을 내는 등 그동안 마찰이 적지 않았다"며 "이처럼 자기 땅을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단 측이 공사를 한다고 하니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토지보상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단의 1년 예산은 1500억 원. 이 중 사유지 매입을 위해 편성된 예산은 10~20억 원에 불과하다. 이로 인한 고충은 둘레길 조성 기간 내내 공단 실무자들의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그렇다고 새로 조성한 길은 없습니다. 샛길과 샛길을 잇고 마을길로 잠시 돌아서도 가고 예전의 묵은 길을 찾아 연결해 둘레길로 연결했습니다. 인위적으로 길을 내는 게 돈도 더 많이 들고 시간도 배로 걸리죠."
김 계장은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다. 애초 계획보다 앞당겨 둘레길을 개통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길, 편안한 길, 걷기 좋은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그간의 수고를 털어놓았다.
일일 평균 3만 명,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기 전의 4만 명에 비해 지금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북한산을 찾는 탐방객들은 많다. 수도권 천만 시민의 허파인 북한산이 더 이상의 훼손을 줄이고 자연을 보존해 오랫동안 이용하기 위해서 정상 위주의 등산인들을 산 아랫도리로 끌어내리려는 의도가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걷는 동안 가늠해볼 수 있었다.
산 아랫도리서 산봉우리를 보다
길은 부드러웠다. 8월 더위를 감안하면 흘리는 땀도 많지 않았다. 흙길은 마사토가 되기도 했고 황토길이기도 했다. 때로는 마을을 통과하면서 시원한 얼음과자를 입에 물었다. 북한산성초교를 지나서는 아치형 다리를 이용해 계곡을 건넜고, 절 마당에 들어서서는 두 손 모아 합장했다. 효자비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굿당에서 새 나오는 묘한 기운을 받았다. 빔골과 사기막골을 거쳐 찻길가로 나오는데, 이어지는 길은 별로 환영할 만한 길이 아니다. 송추로 가는 아스팔트길 옆 인도를 따라 교현리 우이령 입구까지 가는 '충의길'. 군대에서 삽질해본 남자라면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한동안 이 길을 다녔을 곳이기 때문이다.
쇠귀고개 입구, '우이령길'은 현재 고현리쪽 500명, 우이동쪽 500명에 한해 일일 입장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이른바 김신조 루트로 잘 알려진 이 길은 지난해 40여년 만에 일반에 개방돼 예약탐방재로 이미 운영 중인 구간이다. 그러나 아직 도봉산 구간이 연결되지 않은 관계로, 온전한 둘레길이 되게 하기 위해 우이령길을 포함시켜 우선 개방한 것이다. 그러나 김 계장은 "군부대와 환경단체 등과 협의해 내년 도봉산 구간 개통과 상관없이 우이령길 구간에 대한 탐방예약제 해제를 검토 중" 이라며 "시기는 단정할 순 없지만 가급적 빠른 시일 내 협의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우이령길을 제외한 둘레길은 짧게는 1.5, 길게는 5킬로미터로 구간이 나뉘어져 있다. 그래서 반나절에 두세 구간, 하루에 대여섯 구간으로 끊어 자신이 가고 싶은 구간을 가는 길이다. 도중 힘이 든다 싶으면 또 언제든지 내려서면 마을과 닿는 산책길이다. 그래서 다시 불광동 장미공원으로 돌아와 반대쪽 구기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북약수터를 출발해 사각정자를 거쳐 올라서니 서울시에서 선정한 조망대가 있다. 족두리봉, 향로봉,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 등 북한산 내로라하는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굳이 그처럼 이름난 봉우리에 오르지 않고도 아름다운 풍광을 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 둘레를 가며 북한산을 좀 더 입체적으로 가슴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서울성곽과 연결되는 탕춘대성을 만나고 '성너머길'은 평창마을로 바통을 넘겨준다.
동행한 이윤희(35세)씨와 김윤수(50세)씨는 평창동을 걷는 2시간동안 그리 표정이 밝지 않았다. 볼거리가 집이다. 시쳇말로 부자들이 사는 동네를 거닐게 되는데 '좋은 집 구경하는 길'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길가로 드라마에서나 본 것 같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저택들이 저마다의 건축미를 자랑한다. 상대적 박탈감이 없을 리 없다. 공단 관계자도 평창마을길은 전체 구간 중 그렇게 권하고 싶은 길은 아니라고 귀띔했다. 유쾌하지 않았던 기분은 '사색의 길'에 들어서 한결 나아진다.
수유동 둘레길탐방안내센터서 모든 정보를
정릉터널을 넘어가는 '솔샘길'에 드니 중간중간 쉬어가기 좋게 등의자와 쉼터가 나타난다. 다른 구간에 비해 훨씬 정비가 많이 이뤄졌는데, 이미 조성된 성북구의 대표적인 근린공원인 '북한산 생태숲'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체육시설공간을 지나니 솔샘 아래로 들꽃이 무덕져 피었다. 샘에서 흘러내린 물이 가로지르는 야생화 단지는 부러울 정도다. 빨래터지킴터를 지나 계속 산자락의 옆으로 간다.
최선경 여성문화해설사는 "길 주변으로 역사문화와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요즘 스토리텔링 같은 작업들을 많이 하잖아요? 일테면 빨래터라는 지명이 옛 조선의 궁녀들이 이용한 데서 유래한다는 등과 같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걷는 이들이 알 수 있게 콘텐츠를 풍부하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수유리쪽으로 가면서 길은 '흰구름길'로 바뀐다. 이 구간의 백미는 12미터 높이로 설치된 구름전망대에서 보는 풍광이다. 원형계단을 딛고 올라서니 북한산과 도봉산, 맞은편으로 이어진 수락~불암산의 산줄기가 서울 도심의 빌딩숲을 뚫고 펼쳐진 그림이 압권이다. 승복을 입은 화개사 보살님들도 올라와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화개사에서 목을 축이고 냉골을 가로질러 이른 곳은 최근 개통식과 함께 개관한 둘레길탐방안내센터. 여기서부터 '순례길'이 시작된다. 독립유공자 묘소 13기와 광복군 17위의 합동묘까지 모두 30여 기가 밀집해 큰 모역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순례의 길이다. 4.19국립묘지를 끼고 아치형 조형물로 내려서니 우이동 '소나무숲길'로 된다. 솔밭근린공원과 독립유공자 손병희 선생의 묘소가 여행자들을 맞는다. 올해로 일제강제병합 100년, 조국 광복을 위해 싸웠던 선생에게 예를 갖추면 미완의 북한산둘레길은 마침표를 찍는다.
*둘레길 길잡이
소나무숲길~순례길~흰구름길~솔샘길~사색의길~평창마을길~성너머길~하늘길~마실길~내시묘역길~효자마을길~충의길~우이령길 총 44km
지역, 테마별로 6개 지구 13개 구간-취향과 일정에 따라 골라가는 '산책로'
지난 9월7일 수유분소에 둘레길탐방안내센터 개관과 함께 공식 개통식을 가진 북한산둘레길은 6개 지구에 걸쳐 44km에 이른다. 우이지구 소나무길, 수유지구 순례길, 흰구름길, 정릉지구 솔샘길, 사색의길, 구기지구 평창마을길, 성너머길, 하늘길, 산성지구 마실길, 내시묘역길, 효자마을길, 송추지구 충의길 등 13개 구간으로 나뉜다.
북한산 자락의 아랫도리, 2부 능선을 횡으로 가는 둘레길은 모든 구간에서 접근성이 뛰어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디서나 쉽게 들머리에 이를 수 있다. 길 찾기도 어렵지 않다. 구간마다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통일된 둘레길 방향표시판을 설치해 두었고, 둘레길임을 알리는 고유의 로고가 박힌 수목표찰, 캡형 표지대 등 다양한 형태의 알림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어 가욋길로 빠질 염려는 없다. 둘레길에는 전망대 9개, 등의자 등 쉼터 35개소가 마련돼 걷는 이들의 편의를 제공한다.
탐방안내센터를 기점으로 전 구간을 한 바퀴 도는 데는 2~3일 걸린다.
*북한산 둘레길 구간별 명칭과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