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포항-경주-영천 봉좌산 (615m)
봉좌암 터 잡은 낙동정맥 조망명산
봉좌산은 포항시 기계면과 경주시 안강읍, 영천시 임고면의 경계에 자리한 요충의 산이다. 운주산(791m)을 지나 남녘으로 내려가는 낙동정맥의 주능선에 자리한 봉좌산은 봉좌암으로 불리는 신비로운 정수리를 가진 산이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아직도 이름이 없고 그 정수리가 주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 대간고 정맥의 종주를 마쳤다는 웬만한 산꾼들도 알지 못하는, 말 그대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나는 십년 전 낙동정맥 종주시 봉좌산을 지났다. 12월22일 아침 인내산(533m)에서 시작된 산행이 일행의 부상으로 지체되어 봉좌산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8시. 손전등을 밝힌 야간산행이라 사진촬영이 불가능했고 차가운 날씨에 부상당한 동료의 건강을 위해 지척에 자리한 정상등정을 포기하고 이리재로 하산한 아쉬운 산행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했던가. <사람과산> 독자들을 위해 나는 10년만에 다시 봉좌산을 오를 기회를 잡은 것이다.
봉좌산 원점회귀산행의 들머리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교회인 포항 죽도천주교 봉계공소다. 철 십자가가 빨갛게 녹슬고 현재는 문을 닫아 자그마한 폐농가처럼 보이는 공소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콘크리트길을 이어 삼거리에 이른다. 삼거리 사이에 자리한 말미평지 둑에 있는 아름드리 왕버들을 사진에 담노라니 봉좌산의 신비로운 정수리가 하얀 구름 속에서 신비롭게 솟구쳤다.
손수레를 끌고 오던 김정한(80세)씨가 말을 걸어온다. 지도상의 말미평지는 안말골못이며 왕버들의 수령은 2백년, 봉좌산의 정수리는 탕건 형상이고, 경주 김씨 집성촌인 이곳 차동마을은 옛날에는 250호를 헤아렸으나 지금은 100호 정도만 남았단다. 그는 경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김종섭 시인이 이곳 출신임을 강조한다.
기계면의 사료를 조사해보니 차동마을의 역사는 4백년을 거슬러 오른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1592~1598)의 참혹한 병화를 당한 우리 겨레가 다시 병자호란(1636)의 병화를 만난 이듬해인 1637년, 월성 김씨 입향조인 김언헌 공이 칡넝쿨을 걷어내고 마을을 일구었기에 벌치동이라 하던 것을 간단히 치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이 고향인 김정한씨는 취재산행을 왔다는 말에 분옥정에 꼭 들려가라고 위치를 일러준다. 우리는 산행을 미루고 우정 날머리 길옆에 자리한 분옥정을 찾았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67호인 분옥정은 조선 숙종조 성균생원이며 가선대부인 돈옹공 김계영의 덕업을 찬양하기 위해 순조 20년(1820) 3월에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용계정사라고도 불리우는 분옥정은 주변풍경을 고려하여 출입을 건물 뒤편으로 하고, 전면은 계류를 향하도록 배치하고 있다.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평면목조기와집이다.'
입구 안내판에 적힌 내용이다. 분옥정을 들어서면 수령 400년의 보호수인 용비늘 소나무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뒤이어 수령 300년의 향나무와 그 오른쪽으로 하늘을 뚫을 듯 솟구친 참나무 거목이며, 소담스레 피어난 상사화가 묘한 조화를 빚어낸다.
2백년의 세월을 간직한 용계정사의 마루에 올라선다. 힘찬 필력의 용계정사 현판이며 화수정기, 돈옹정기 등 옛 선비들의 글과 시가 가득히 걸려있다. 굽어보는 계곡에는 옥구슬을 뿜어내는 듯 세찬 골물이 흘러가고 다섯 가지의 붉은 노송이 한껏 운치를 자랑한다. 꺼멓게 세월에 쌓인 마루에 앉아 차와 담소를 나누자니 저절로 신선이 되는 듯하다. 참으로 멋진 고옥이다.
되돌아나온 삼거리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칡꽃향기 흩날리는 호젓한 길을 따라가니 봉좌산 기도원이 나온다. 1973년 박분태 수도사가 36,000평의 국유지에 설립한 기도원은 포항지역 교회의 수련회와 세미나에 이용되는 이름난 기도원이다. 기도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뒤이어 두 번의 돌탑지대를 지나 계곡을 건너 오른쪽 능선으로 길이 이어진다.
다래열매가 뚝뚝 떨어지는 계곡을 벗어나면 해발 500m 지점에서 두 번의 전망바위를 만난다. 전망바위에서 땀을 식힌 후 다시 남녘 능선을 이어가자 곧 주능선 삼거리다. 이정표가 나무 밑에 놓여있는 이곳에서 왼쪽(동쪽)은 봉좌산 정수리, 오른쪽(서쪽)은 낙동정맥 주능선으로 이어진다.
서쪽으로 3분 거리인 낙동정맥에 올라본다. 십년 전 손전등을 밝히고 추위에 떨며 지났던 그날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뒤돌아 동쪽 능선을 이어 봉좌산 정수리에 이른다. 북쪽 기계면에서 바라보면 참으로 유별난 형상의 그 정수리. 이 지역에서는 '봉좌암'으로, 더러는 '탕건바위'로도 불리는 정수리의 거대한 바위군은 이 땅의 수많은 산중에서도 찾기 힘들만큼 참으로 유별나다. 자그마한 정상 표석에는 높이가 600m로 잘못 새겨져 있다.
사진으로 본 정수리는 남쪽으로 삐쭉삐쭉한 바위가 펼쳐있고, 그 끝은 아찔 벼랑을 이루어 저절로 신비감을 자아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 하였던가. 명불허전의 정수리에서 동쪽을 굽어보며 감회에 젖는다.
잠시 후 마음을 추슬러 비경을 사진에 담으려는데 자욱이 안개구름이 피어난다. 일순 취재진은 거대한 봉황을 타고 하늘을 훨훨 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으니... 한참 동안 안개구름이 계속된다.
홍진에 찌든 산꾼시인에게 더 이상의 비경이 허용되지 않아 하산을 서두른다. 동쪽능선을 따르면 뒤이어 기도원으로 급경사길이 보인다. 우리는 동녘능선을 이어 어래산 삼거리에 이른다. 표지기가 여럿 보이는 이곳에서 오른쪽은 어래산과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의 옥산서원으로 이어진다. 갑자기 길이 희미해지는 동녘능선을 조금 더 이어가면 남쪽으로 내려가는 능선길이 보인다.
해발 410m에 있는 고사리 묵무덤과 그 아래 석축을 쌓은 경주 최씨의 무덤을 지나면 길은 더욱 아리송해진다. 그러나 왼쪽으로 조금씩 돌아내리면 뚜렷한 산길을 만나게 되고 해발 170m의 동자방마을에 닿게 된다.
1530년경 월성 최씨와 진주 강씨가 개척했다는 동자방마을에서 올려다보는 정수리의 모습이 초립동자의 모습이라서 '동자방'으로 이름을 정했다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조금 더 내려가면 봉계리 버스종점이다. 그 앞에 자리한 자그마한 동암지에서 봉좌산을 우러른다. 못물에 그림자를 비춘 저 봉좌산. 어쩌면 봉황이요. 어쩌면 탕건이요, 또 어쩌면 초립동의 머리를 닮은 신비로운 저 산세. 이 고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삶을 접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는 고향의 청산이 아니겠는가.
*산행길잡이
봉계공소-(3분)-삼거리-(30분)-봉좌산기도원-(1시간)-주능선삼거리-(7분)-봉좌산정수리-(20분)-어래산 삼거리-(1시간20분)-동자방(봉계리) 버스종점-(15분)-분옥정-(10분)-봉계공소
봉좌산의 신행기점은 벌치마을 입구에 자리한 죽도성당 봉계공소다. 공소를 지나 봉좌산기도원 팻말을 따라 시멘트길을 따라가면 고센농장을 지나 산중턱에 위치한 기도원이 나온다.
기도원 입구 왼쪽으로 산길이 이어진다. 돌탑지대를 두번 지나 계곡을 건너 오른쪽으로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뒤이어 파이프에서 물이 흐르는 샘을 지나 410m쯤으로 짐작되는 지능선에 올라선다. 이곳은 북쪽에서 바로 올라오는 능선길이 뚜렷하고 표지기도 몇 개 보인다.
정남녘으로 능선길을 이어가면 '연일정공유재지묘'를 지나 전망바위에 이른다. 다시 그 위에 자리한 두번째의 전망바위를 지나면 낙동정맥 주능선과 어래산을 잇는 해발 580m의 산줄기에 닿는다. 이정표팻말이 자리하는 이곳에서 서쪽의 낙동정맥 주능선까지는 3분 걸린다.
동쪽 산줄기를 이어가면 금세 봉좌산 정수리에 당도한다. 신비로운 봉좌산 정수리에는 '봉좌산, 600m'로 표시된 자그마한 정상석이 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하산 능선에 기도원으로 내려가는 팻말이 보이고 능선을 이어가면 어래산 삼거리를 만난다. 어래산을 거쳐 경주시 안강읍에 자리한 옥산서원을 구경하려면 이곳에서 표지기가 많이 매진 오른쪽(동남쪽)으로 내려야한다.
원점회귀산행을 하려면 10분 더 가서 왼쪽(북쪽)으로 능선을 내려서야 한다. 해발 350m 지점의 월성최공 무덤에서부터 다소 희미해지는 산길은 왼쪽으로 돌아내리면 동자방마을을 지나 봉계리 버스종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시멘트길을 따르면 분옥정과 봉계1리 마을회관을 지나 출발지점인 죽도천주교 봉계공소를 만난다.
*교통
포항까지는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수시로 버스가 출발한다. 4시간30분 걸리며 요금은 22,400원.
포항터미널에서 25분 간격으로 다니는 시내버스로 기계면까지 간다. 기계에서 봉계리까지는 71번, 706번 시내버스가 다닌다.
기계면에서 택시를 탈 경우 봉좌산기도원까지는 만원, 날머리인 봉계리 버스종점까지는 9,000원쯤 나온다. 기계택시 054-246-8151.
*잘 데와 먹을 데
무명산촌에 가까운 곳이라 들머리와 날머리에 식당과 숙박업소가 전혀 없다. 포항시내 시설을 이용하면 편하다. 죽도어시장은 부산의 자갈치시장에 버금가는 규모의 싱싱한 해물과 건어물이 가득하다. 값도 저렴해 연중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포항 제일의 명소다.
*볼거리
분옥정 반드시 들려야 하는 곳이다. 참으로 운치있는 계곡에 자리잡은 200년의 목조건물과 자연을 사랑하던 조상들의 멋과 예술이 남아있다. 아득한 세월을 증언하는 고목 거목도 만나게 된다.
옥산서원과 정혜사지13층석탑 남쪽 자락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는 정혜사지13층석탑(국보 제40호)과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옥산서원(사적154호. 보물413호인 독락당과 천연기념물 115호인 중국주엽나무도 있다)이 있다. 서원에는 아계 이산해, 석봉 한호, 추사 김정희 등의 내로라하는 당대의 명필들이 쓴 현판도 볼 수 있다.
글쓴이:김은남 1943년 포항에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을 지냈으며 92년 계간 <시세계>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시조집 <산음가1,2,3>, <시조시인산행기>, <일천탑의 시탑1,2>를 펴냈다. simsanmunhak@hanmail.net">simsanmunha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