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딸아이가 남자들이랑 어울려 산에나 다닌다”며 배낭을 불태우기도 했고 로프를 다 잘라 버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산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이명희의 고집과 어머니의 배려 덕분이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어머니는 산을 좋아했고 딸을 이해했다.
아버지가 잠들면 몰래 배낭을 넘겨주었고, 그 길로 산에 가곤 했다.
이명희는 과감하고 자유로운 몸짓으로 산에 빠져들었다.
산을 알게 해준 타이탄 산악회에 얽매이지 않고 늘 새로운 바위꾼들과 어울렸다.
탈레이사가르 원정에서 사망한 최승철, 김형진 등 하드프리 등반을 즐기는 클라이머들,
거벽 등반을 즐기는 골수회 멤버들과 어울려 등반했다.
1995년에는 토털클라이머 정승권의 실내암장을 찾아 훈련하고 크랙 등반을 하며 힘을 키웠다.
실내 암장에는 여자인 그를 얕보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턱걸이 3개 하고 내려오는 사내 앞에서 15개를 하자 남자들도 그녀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낭가파르밧에서 운명을 달리한 고미영과 함께 선운산에서 암벽 등반을 하기도 했다.
선운산에는 규모는 작지만 어려운 암벽 등반 루트가 많아 집중적인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오르고 추락하고를 계속 반복했다.
바위 실력은 조금씩 늘었으나 이명희는 더 큰 산, 더 큰 바위로 훨훨 오르고 싶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외국의 거대한 벽을 오르고 싶었다.
거벽 등반을 위한 필수 요건인 인공 등반을 배운 뒤, 그 해에 바로 1000여 미터의 거대한 직벽,
미국 요세미티 엘캐피탄으로 갔다.
청화 산악회의 박주훈(로체샤르 등반 중 실종)과 요세미티의 대표적인 루트 노즈(The Nose)를 올랐다.
며칠이 걸린 등반에서 식량이 떨어진 이들은 바위틈에서 먼저 올라간 팀이 두고 간 캔을 발견, 고맙게 먹어 치웠다.
다음 날 눈을 뜨니 캔 주변에 똥오줌이 잔뜩 묻어 있었다.
원효대사는 해골 바가지의 물을 모르고 맛있게 마신 것에 놀랐으나,
이명희는 “낮에 발견했더라도 맛있게 먹었을 것”이라며 거벽 등반에서 그런 배부른 여유는 없다고 말한다.
4박5일 만에 노즈를 완등 했지만 5월에 인공 등반 교육을 받고 9월에 대암벽 엘캐피탄에 갔으니
용기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한편으론 무모했다.
히말라야의 위험한 절벽에서 맺은 결혼 약속 |
첫댓글 득표 고향 사람이네.. 잘 보았습니다.
댕큐 교훈이 어머니 고향이기도 하지.. 양평은 산악이 많으니 그럴만도하지...자랑스러운 양평인입니다
노의현이도 양평이 고향이지요. 잘 봤어요.
정말 멋있는 산꾼의 이야기에 한참을 빠져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