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석 시인의 시와산문집 [초승달을 보며]가
2012년 7월, 도서출판동방기획에서 나왔다.
임영석 시인은
1961년 충남 금산 출생으로
1985년 [현대시조] 천료 등단하였다.
그동안 [이중 창문을 굳게 닫고], [배경], [고래 발자국]외 시집을 낸 바 있다.
다음은 임영석 시인의 '시인의 말' 일부이다.
"...내 마음에 우담바라와 같은 마음 꽃을 피우기 위해
마음 밭을 가꾸었지만, 우담바라는커녕, 그 흉내도 내지 못한 부실한 꽃만 피웠다.
또 실패를 할 것이다 믿으면서 시집을 낸다.
다음에 제대로 해보기 위한 디딤돌을 놓기 위해서다."
다음은 유종인 시인이 쓴 작품 해설 '마음의 낙법(落法)과 시조의 도설(圖說)'에서
발췌하였다.
"... 진리가 화석(化石)처럼 아니 버력처럼 버려져 나뒹구는 시절에 우리는
마음도 외돌토리처럼 천민자본의 휘황한 그늘에서 강퍅해지고 메말라가는 걸 본다.
무용한 쓰레기로 내쳐진 진리의 버력돌과 물신(物神)으로부터 소외당한 마음의 부석돌이 만나도
그때는 이미 서로를 모르기 십상이다.....
.... 다시 그 무력해진 마음에 천민자본의 힘꼴깨나 쓰는 팔뚝 문신이나 어깨들이 들이닥친다 해도
주눅이 들 듯한 그 마음은, 그럼에도 여사여사한 사정을 품은 채로 부석돌의 마음을 차돌처럼 아니
대추나무 속살처럼 나름 여물어 궂기지 않고 살려내는 것이 또한 결기이자 알심이다.
그러므로, 마음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마음에는 마음이 든다. 마음에는 묵었어도 진솔의 새 마음이면
그만이 되는 거다. 그러므로 마음에 돈을 들이지 않았으니 마음에는 마음 하나만 순정하게 다시
소낙비처럼 들이쳐도 그 메마름 일단 해갈하겠다.
임영석은 이 해묵은 마음의 차력을 다시 들고 나온 시조계(時調界)의 역사(力士)다.
기골이 장대하고 숯 검댕이 눈썹에 근골이 우람한 거친 숨소리의 역사가 아니라
구순하고 낫낫하게 삶의 굴헝에 빠진 마음 밖의 마음들을 버릴 수 없어
손바닥과 몸의 터럭과 기름때가 낀 손톱 밑에라도 갈마들어 지니고 다니는 눈썰미가 좋은 차력사(借力士)다.
그가 지닌 이 마음은
결코 저잣거리 약장수를 낀 차력사가 가슴에 대고 텅텅 두드리는 두꺼운 철판이나
타조알만한 차돌보다 가볍거나 간단한 것이 아니다.
마음은 마음을 지나쳐 몸을 축낼 수도 있으니, 마음에 마음을 상하는 일 또한 삶의 도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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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筆寫) / 임영석
는개 속 소나무는 솔잎이 붓끝 같다
아기울음 막 달래고 안도하는 엄마처럼
푸르고 푸른 말들을 허리 굽혀 받아쓴다.
당신이 볼 때에는 위태로운 절벽이지만
소나무는 그 절벽이 깨끗한 화선지다
목숨을 걸고 받아 쓴 풍경만을 펴 놓는다.
나이 오십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
소나무는 수십 년을 허공에 써 놓고서
저 혼자 읽고 있는데 그 글들이 신비롭다.
천둥치면 천둥소리 바람 불면 바람소리
는개에 젖어들면 그 글들이 다 지워져
다시 또 받아 적는데 그 상상이 늘 푸르다.
*
는개 내리는 휴일 아침, 치악산 국형사 푸른 소나무는 안개 옷을 두껍게 껴입는다.
입석사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소나무는 벼랑의 높이를 안개로 채워두고 제 자리의
품을 굽어보지 않는다. 사람과 달리 치악산은 자연의 변화에 늘 안성맞춤의 자세를
보이며 앉아 있다. 치악산 밑에 자리잡고 산 지 15년이 되다보니, 나도 어느새 치악산
숨소리를 들으며 치악산의 모습을 바라보는 습관이 저절로 생겼다. 봄 숲, 여름 숲,
가을 숲, 겨울 숲, 모두 제 개성의 눈도장 같은 모습을 지닌다. 물론 늘 겉모습만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그 겉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늘 떠돌던 바람을 잡아주는
나뭇가지의 애타는 마음에 울고, 새록새록 는개에 젖어 꿈을 꾸듯 고요한 숲의
자취에 취해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헛기침 한 번 하지 못하고 늘 돌아선다.
치악산이란 산, 수백만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자연의 도서관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하나, 돌 하나, 그 모든 것이 제 마음의 글을 품고 있다. 그림으로 담아가는 사람,
사진으로 담아가는 사람, 마음으로 담아가는 사람, 아무리 담아가도 그 모습 늘
푸르고 싱싱하고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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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를 보며 / 임영석
내 몸도 껍질 속에 뱅, 뱅, 뱅, 뒤틀려서
뼈 없는 서러움에 파도 소리 갉아먹고
오롯이 살고 싶었던 그런 날이 있었다.
입과 항문이 하나라서 숨길 수 없는 슬픔
소리의 벽이 되어 커가는 줄 몰랐는데
내 몸이 먹히고서야 그 소리가 보인다.
생각하니 영혼이란 것, 껍질속의 소리 같다
당신이 내 몸을 다 파먹지 않았으면
어떻게 살아서 꿈꾼 내 마음을 전할까?
*
모든 소리는 제 몸을 다 내준 떨림이고 울림이다. 그 떨림 하나하나가,
그 울림 하나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선율이라 생각하면 세상의 소리는
아름다운 보석이 아닐 수 없다. 그 보석 같은 소리를 듣고 살아도
행복한 마음을 갖지 못했으니, 내 두 귀는 쓸모없는 소리에만 집중해
살아왔다는 것이다. 정말 들어야 할 것은 못 듣고, 듣지 않아도 될 소리들만
가득 듣고 살았으니, 내 몸에서 맑은 소리가 울려 나올 리 없다.
내가 나를 귀하게 대접하지 못하고 능멸한 대가이니, 누구를 탓하랴.
소라를 보라, 제 입으로 먹은 것, 제 입으로 배설하고 토해내도 소라의 몸이
더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은 어떠한가. 먹이 사슬의 상층에 있다는 사람은
제 굶주림만 생각한다. 물론 자연주의자들도 있디만, 대다수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내는가. 그도 부족해 자연의 파괴는 일상이고
생명의 소중함보다는 욕망의 그릇에만 집착해 살아간다. 내 마음 그릇 하나
몸에 담고 살아가지 못하니, 내 몸에서 맑은 소리가 울리지 못하는 것,
그 울림과 떨림을 위한 마음 그릇을 만드는 게 내 삶의 궁극적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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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靑山圖) / 임영석
산에서 산을 본다
산 너머 산, 그 너머 산,
산이 산을 업고 업어
청산도가 그려졌다
해 지면
업었던 산이
다시 업혀
그려진다.
*
내게 산은 내 마음의 울타리와도 같다. 큰 산은 큰 울타리가 되어주고,
작은 산은 작은 울타리가 되어준다. 때문에 나는 별도의 내 마음의
울타리를 만들지 않는다. 아침에 눈 뜨면 치악산이 보이고, 저녁에
퇴근하다 보면 치악산이 작은 산들을 업고 어둠속으로 들어간다.
큰 울타리 속의 작은 울타리들 모습이 엄마 등에 업혀 걸어가는 듯 보인다.
여름의 치악산을 그 신록의 풍경이 푸르다못해 검푸르다.
그 풍경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봄에는 산목련이 피고,
여름이 가까워지면 칡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붉은 단풍이 들고,
겨울이 되면 가슴 하얗게 덮은 눈꽃이 핀다. 어느 것이 그 본 모습인지
쉽게 구별되지 않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치악산은 작은 산들을 업고, 손잡고,
내 마음의 울타리 속으로 걸어오는 듯하다. 내가 원주로 온 것은
치악산과 섬강에 사로잡혀 왔다. 이 자연의 보물 하나를 마음껏 바라보고
느끼고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복이다. 나는 매일 치악산이
그려 놓은 청산도를 바라보며 산다. 그 청산도를 그려 놓으신 분,
그 마음을 배우기 위한 것이 내가 치악산 밑에서 살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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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시인의 치악산 이야기를 읽으면서
광주사람들의 무등산 사랑이 떠오른다.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외지에서 살다 온 이가 말했다.
"광주사람들은 유난히 무등산을 사랑한다.
다른 지역에도 산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 산에 대하여
광주처럼, 사랑하자 가꾸자 보호하자, 이렇게 말하지 않더라."
무등산 발치에서 태어나
그 산속으로 조릿대를 찌러 가는 엄마 마중을 다니고
그 산이 만든 고개를 넘어 학교를 다녔던 나는
지금은 무등산에 자주 올라가지 않는다. 다만 바라볼 뿐이다.
그럼에도 무등산은 나에게 언제나
마음의 의지처, 품이 넓고 큰 어머니, 삶의 스승, 그저 있는 것만으로 든든한 벗...이다.
임영석 시인의 치악산 사랑을 이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