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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은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일본 여행을 다녀온 후 미루고 있던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내시경을 비롯하여 생화학적 검사 등을 종합적으로 받은 후 내시경과 관련된 결과는 소상하게 검진의가 보내준 결과문을 통하여 파악하였지만 생화학적 검사를 비롯한 이외 것들에 대한 결과는 아직 모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신체에 대한 처음 겪게 되는 변화가 감지되는 경우가 많아져 내원을 우선 시하는 습관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시각각 변화는 몸 상태와 감정선의 다변화를 스스로 인지하면서 스스로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의학적인 소견과 문제는 전문의와 직접 대면하여 해결한다는 이유가 많아졌기에 궁여지책에서 세운 일입니다. 젊어서는 건강과 관련하여 선택의 폭이나 해결의 방법 또한 너른 편이었지만 노년의 삶에서는 퇴화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강검진 하기 전 병원에 제출하는 문진표 하단에는 검진결과에 대한 종합의견서를 받는 방법에 대한 선택이 있습니다. 메일, 우편물로 발송, 전문의와 대면이 있습니다. 내원하여 상담으로 적어 놓았는데 내원의 시간이 없어 아직 방문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하루 건너 종합검진을 한 병원 안내 데스크에서는 메일을 보내오고 있지만 서둘러 다녀 올 시간이 없는 것이 저에 요즈음 생활환경입니다. 이런 원인은 12월 안고 있는 시간적 특수성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이든 시작은 여유롭지만 거의 끝나갈 시간에 봉착하게 되면 무언인가 쫓기듯 나이가 들수록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유로움은 평생 지니고 살아온 삶의 철학이었는데 이에 반한 생활이 요즈음 저에 노년의 시기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정서적인 불편함이 생산해 내는 조급함의 영향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노년시기에 감정에 대한 훈련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골몰하게 됩니다.
늙는다는 것은 생의 축복으로 출발한 생명의 환희심에서 출발하여 일정기간 성장시기를 지나고 나면 자신의 확고한 존재성을 남기기 위하여 치열한 조건 속에서 타인들과 겨루며 존재감을 쌓아가며 성공의 발판을 만들지만 어느 시기가 찾아오면 열정은 사라지고 꿈마저도 잊힌 채 삶의 시간은 퇴락의 후원으로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하여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저는 잊힌 세월이라 하기도 하고 스스로 망각의 시간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조적으로 느림보의 늪에 빠져버렸다고
고뇌하기도 한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참여의식만큼은 놓지 않으려 애를 쓰는 편입니다. 남을 돕는다는 일만큼은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스스로 자애하며 소중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동안 개인적으로 허무의 실체를 경험하였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대립의 각은 토지와 관련된 분쟁이었습니다. 이 분쟁을 설득과 타협을 거듭해 가며 서로 선의의 결과를 토출 하여 선의적인 합의서를 작성하여 쌍방의 인감날인을 끝으로 종결하려는 순간 권위적인 사고(思考)가 불쑥 튀어나와 한 순간 이 모든 것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이때 경험한 당혹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애의 처음 경험이었습니다. 이 당시 권위자의 무지(無知)는 십여 년 후 소송법(訴訟法)으로 환생하여 저를 다시 불러내는 동기를 만들어 놓습니다. 금년 4월 17일부터 개입한 일이 12월이 되어서야 종결되는 듯합니다. 금년 8월 상대의 소송비용을 일부 물어주고 합의토출하여 소송을 취하시킬 수 있었으나 토지경계를 구분 짓는 석축공사는 고소인이 분쟁 토지에 심어 놓은 농산물 수확이 끝난 후 11월 후반을 넘기면서 겨우 종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해를 넘기지 않고 배수관로시설과 석축공사를 마무리 질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책임진다는 것은 늘 부담이 따르지만 책임의 결과가 완성되면 심리적 상태가 이완되기 시작하면서 찾아오는 평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의 성취입니다. 이 순간을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합니다. 10시간 이상의 고난의 길을 걸어 모든 것을 극복하는 순간은 바로 정상에 섰을 때입니다.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파노라마는 극치의 순간으로 몰입시켜 줍니다. 절정이라는 단어 안에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정신세계입니다. 비록 한 순간이지만 이러한 순간은 자주 접할 수 없는 행복이기에 반복을 서슴지 않고 계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처럼 얻은 행복의 도취 상태로 화도에서 양양고속도로 위로 올라섰습니다. 남양주 ic를 빠져나오면서 처남으로부터 온 전화 2통이 떠올랐습니다. 올림픽대로로 들어서서 다시 유턴하여 서울 집 근처 휴게 공간에 차를 세운 후 전화를 걸었습니다. 교육사업을 하는 대교 회장과 대학 같은 학과 동문이면서 학사장교도 같이 한 관계로 새로 설립된 대교여행사 대표이사를 역임한 처남은 평생 대한항공과 대교에서 여행과 관련된 업무를 한 사람입니다. 요즈음 다시 관광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화를 한 요지는 바로 베트남인으로 6개월 국내로 들어와 연대 의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연수하러 온 베트남 의료인들과 진천백곡 호수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겨울 낚시를 하며 산막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려고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냐는 전화였습니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후로 머무르며 동안 보수공사로 소흘하게 난방 보일러 시스템을 비롯하여 각종 실내 물건들을 온전하게 계절에 맡지 않게 해 두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춥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일단 내가 점검한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 하고 바로 산막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산막으로 향하는 길은 늘 저에게 설렘을 모아준답니다. 여행을 결정하고 기획을 한 후 배틀에 앉아 날줄과 씨줄을 이용하여 직조하듯 여행 일정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들을 세세하게 체크리스트를 만들면서 마음에 찾아들기 시작한 설렘은 행복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후배와 어느 날 둘이 여행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형님! 여행이란 의미는 무엇인지요? 참 맑은 눈을 지닌 녀석이라 질문도 참 맑게 하는구나 생각하면서 그 후배에게 들려준 여행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여행이란? 설렘으로 시작하여 자유의 편안함 속에 머물다 엮어진 추억 속에 나만의 시간을 남기는 일이 바로 여행의 본질이라 생각 한다. 이 말을 전해 들은 그 후배도 즉시 격 없이 저에 생각을 공유하겠다고 하더군요. 설렘, 자유, 추억 속의 나만의 시간은 여행의 근본이다. 이런 기분을 들게 해주는 곳이 산막의 정체입니다. 모든 것이 메마른 계절 겨울, 텅 빈 들녘, 텅 빈 나뭇가지, 쓸쓸한 겨울의 하늘마저 공허감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나마 상록수가 있고 사철 푸르른 사철나무가 큰 위안을 줍니다. 겨울잔디 누렇게 변색되어 여름절기의 모습은 간데없고 차바퀴가 누르자 서걱거리는 서릿발 신음 소리가 정적을 깨우는 것 같았습니다. 현관문 핸들이 전해 오는 창백한 기운이 저에 마음을 몸서리치게 하지만 고요와 서늘함이 공존하면서도 무엇인가 자유의 따듯함이 전해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는 싸늘하고 집 안 곳곳에는 여름 사물들이 여름의 호시 절처럼 놓여 있고 걸려 있었습니다. 철을 떠났어야 할 것들이 혹한의 시간에 방치되어 있으니 시베리아 벌판에 서서 떨고 있는 자신이 상상되더군요. 보수공사가 끝나면 전부 정리하려 하였지만 마석의 일로 인하여 드나들다 보니 이런 환경이 조성된 것입니다. 외부와 관련된 공사는 완성되었고 실내공사 중 실내환경을 거스르는 작업은 없어 엄동시기 내에 편안하게 매일 조금씩 하다보면 영춘화가 피기시작할 무렵 종료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서둘러 보일러실로 달려가 4에 위치에 거꾸로 져 있는 원형 다이얼을 돌려 7의 위치로 바로 세워주고 철제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산막에서 제일 먼저 빛이 사라지는 동쪽방향 벽면 외부에 달려 있는 급수라인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온재로 전부 감싸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나무빗장을 채워 냉기류가 넘어들지 못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실내로 들어와 겨울 난방 보조전기난로를 켜 놓고 커튼을 전수 동계용으로 갈아 주고 이부자리들도 동계용으로 교체한 후 청소를 끝냈습니다. 정돈이나 질서를 고양시켜 놓으면 깊은 한가함이 몰려오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긴장으로부터 탈출이라 여기며 평생 경험하고 살아 온 행복의 한 부분입니다. 이 정도 해 놓으면 머물다 가도 좋다는 판단이 서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9시경, 지금 상경은 어렵다는 판단에 내일 오전 7시에 출발하기로 계획을 변경한 후 간단한 주안상을 만들어 석식 겸 여흥 겸 즐기다. 세신 후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유난히 동창에 흰빛이 들어 커튼을 열고 밖을 보니~~ 세상에나~~ 밤 사이 엄청난 눈이 쌓인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연금된 것입니다. 이 정도의 폭설이라면 처남은 모든일정을 포기할 것이라고 판단되어 그래 느긋하게 2일 쉬고 가자 결심하고 식재료 확인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긴축으로 식사를 정리한다면 4일 정도는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렇게 점심을 챙긴 후 편안한 심보로 보내는 중에 두런두런 사람들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데크에 다섯 명의 외국인이 서 있고 털모자와 방한복 어깨로 눈이 수북하게 쌓인 처남과 처남 대학동창이 짐을 들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서울에는 눈이 오지 않아 출발하였는데 안성과 이어진 엽돈재를 넘어서자 눈이 산처럼 쌓여 어렵게 넘었으나 산막으로 오르는 길은 도저히 오를 수없어 차를 마을회관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걸어 올라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래서 본의 아니게 그 대열에 합류가 된 것입니다. 그 후 한 번도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은 그날 적설량의 두 배를 넘기며 쉼 없이 내렸습니다. 월요일 오후 긴한 약속이 있어 제설작업에 매달렸습니다. 눈 삽으로 치우고 이어서 염화칼슘을 뿌려 결빙을 막으며 사투를 이어갔습니다. 처남친구 광수 씨가 도움을 주어 산막 안쪽 제설은 맡기고 저는 외부도로에 치중하였습니다. 제설작업이 막바지에 도달한 무렵 처남이 저녁을 먹자고 찾아왔습니다. 이 정도 해놓으면 내일 오후에 한두 시간 정도 제설작업을 하면 산막을 벗어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실내로 들어와 고기요리를 하기 위하여 불판과 기타 식재료를 준비하고 고기파티 판을 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듬고 자르고 섞는 일은 제가 하고 굽는 것은 광수인형께서 그리고 묶은지를 형평 것 익히는 일은 처남이 맡았습니다. 손님들은 교자상 앞에 나란히 앉아 대기하고... 술은 손 님들이 소주와 막걸리를 선호한다 하여 보내고 우린 보드카, 그리고 앵두주 준비하여 입주하며 보냈습니다. 잔을 부딪치고 외치며 송년의 밤을 함께 보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처남이 갈비탕을 끓여 함께 나눈 후 낮 12시경 주변을 들러보고 귀경하겠다며 모두 떠났습니다. 한국의 산 특히 북한산, 도봉산에 오르고 싶다 하며 가이드를 요청해 와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여 연초에 북한산과 도봉산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숲에서 새가 떠났을 때처럼 산막도 적막함이 흘러들었습니다. 모진 바람이 풍경을 툭 건드리고 떠날 적 마다 물고기 추는 진절머리를 치며 청동 주머니를 매몰차게 두드려 종소리의 맥이 적막한 산막 사이로 맴을 돌다 백설이 난분분하는 숲 속으로 도망치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맑은 날 보다 풍경소리는 절제된 음으로 모든 사물들을 평화의 결 속으로 침잠시키는 날은 바로 폭설이 내린 날입니다. 기차의 기적소리가 낮게 길게 들리는 날은 폭설이 내린다는 말이 있듯이 적설(積雪)은 소리를 잡아가두는 마술을 부린답니다. 적막함과 적설 사이에 홀로 남은 저는 깊은 사색을 통해 한 해를 추억하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은 아니지만 나름 저에 방식대로 보낸 것 같습니다. 곧이어 다가 올 성탄과 송년을 앞 두고 스스로 기도문을 만들어 몸과 마음에 묻으며 또 한 해를 나이태 속 안으로 인쇄해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혹독한 겨울 건강하게 이겨 내시고 밝고 향기로운 빛과 꽃 향기 그늘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시간을 마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 나름대로 소통하며 곁에 계셔 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사람 안에 인적이 끊기는 것 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조만간 한 번 뵙고 함께 한끼의 식사를 나누며 덕담 속에서 한 해를 보내는 즐거움을 나누도록 해 보겠습니다. 언제나 평화 그리고 샬롬~~~ 살아 있음에 공존의 인연은 지속되어 외롭지 않다는 마음 고백을 하며 맵고 추운 겨울 숲을 걷다 되돌아 와 이 글을 내려 놓습니다.
첫댓글 글을 읽고 갑니다. 새삼 느끼고 있지만 세베리노 형제님의 글은 제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올해를 잘 보내고 내년에도 건강하게 지내기를 소망합니다
형님! 심한 감기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차도가 있으신지요? 혹한이 이어지는 년말 년시가 될 것 같습니다. 외출 시 잘 여미시고 동장군을 이길 수 있는 복장을 잘 챙기시기를 소원합니다. 형님의 배려와 관심과 소중한 댓글 늘 마음에 쌓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조만간 한끼의 식사자리를 시간이 허락하시는 분들과 갖을 계획입니다. 연락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