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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이해하는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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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가)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문화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는 자주 예술, 문학, 음악, 회화와 같은 고차원의 정신적인 것과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학자들이 그것을 사용할 때는 문화는 그것을 포함하지만 훨씬 더 넓은 의미를 지닌다. 문화는 사회의 구성원들이나 집단들의 생활 방식을 가리킨다. 문화는 복장, 결혼 관습, 가족생활, 직업 유형, 종교 의식과 여가 활동을 포함한다.
문화는 개념적으로 사회와 구분될 수 있지만, 이들 개념 간에는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사회는 개인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상호 관계의 체계이다. 문화는 사회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동일하게 사회는 문화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문화가 없이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화의 의미에서 우리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표현할 언어가 없을 것이며, 사유하고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은 상당히 제한될 것이다.
인간 문화의 다양성은 쉽게 관찰된다. 가치와 행위 규범은 문화에 따라 상이하며 흔히 서구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는 영아 교살을 최고의 죄악으로서 간주한다. 그러나 전통적 중국 문화에서 여자아이는 흔히 태어날 때 교살되었는데, 가족의 재산으로서보다는 부담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는 굴을 먹지만 개고기를 먹지는 않는다.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인도인은 돼지고기를 먹고 쇠고기를 기피한다. 서구인에게 키스는 정상적인 성행위이지만, 많은 다른 문화권의 경우 행하지 않거나 혐오스러운 행위이다. 이러한 상이한 행위들은 사회를 구분 짓는 문화의 상이성을 단편적으로 보여 준다.
[앤서니 기든스, 『현대사회학』에서 부분 발췌]
(나) 문화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
(1)(2) (3)
(다) (전략) 오늘날 아랍의 이미지는, 낙타를 탄 유목민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아니라, 무능력하고 안이한 항복하는 자세이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래, 아랍은 더욱 위협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아랍은 ‘셈족’으로, 다른 대중에게는 악의 근원, 주로 석유부족의 근원으로 생각된다. 아랍은 이스라엘이나 서양의 존립을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1943년 이스라엘 건립 시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로 간주되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소유권도 문화적 또는 민족적인 실체도 없는 하찮은 유목민으로 여겨졌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는 아랍인은 성욕과다의 변태자이거나 피에 굶주린 악한을 연상시킨다. 아랍은 반 시오니즘이라는 입장이외에 석유공급자라는 부정적인 특징도 주어졌다. 1973-1974년 석유 보이콧에 의해 석유에 대한 권리를 그들이 갖고 있는 것이 의문시되어, 해군은 아랍의 유전지대에 침공해야 한다는 제의가 자주 나타났다. (중략)
아랍과 이슬람연구는 오늘날까지 순수한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의 도그마가 남아있다. 그것은 ① 합리적으로 발전해온 인도적이고 우월한 서양과, 탈선적이고 정체되어 있으며 열등한 동양의 사이에 절대적이고 체계적인 상위가 있다. ② 동양에 관한 고전적인 추상개념이, 현대 동양의 여러 현실로부터 직접 나오는 증거보다 더 바람직한 것이다. ③ 동양이 영원히 획일적이고 자기를 정의할 수 없다고 하는 것,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일반적이고 체계적인 어휘가 불가결하고, 학문적으로 ‘객관적’이라고도 하는 주장이 생겨남. ④ 동양이 본질적으로 두려운 것이라고 하는 것,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그마의 중핵은 여전히 건재하다. (중략)
미국은 오늘날 지구상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깊숙이 중동에 관계하고 있으며, 정책입안자들에게 조언을 주는 중동의 전문가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오리엔탈리즘에 물들어 있다. 그들은 서양의 모방으로서 동양을 보고자 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여러 가지 결함이나 개탄스러운 전문용어, 거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 종이처럼 얇은 지적인 도구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늘의 번영을 과시하고 있다. 그 영향력이 ‘동양’ 그 자체에까지 퍼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리엔탈리즘은 새로운 제국주의에 적응하여왔고, 그 중요한 패러다임은 아시아를 지배하고자하는 제국주의적 기도를 강화하는 역할까지 했다. 오늘날 아랍 세계는 미국의 지적, 정치적, 문화적인 위성국가가 되고 있다. (후략)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에서 발췌]
(라) 세계를 보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의 시각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유형은, 당시 기독교계의 ‘어른’으로 받들어지던 윤치호(1865~1945)처럼 세계의 지배자들인 유럽 게르만 계통의 민족, 특히 영국과 미국의 ‘앵글로색슨 인종’을 태생적으로 우월한 ‘초인간’들로 숭배하고 기리는 것이었다. 예컨대 윤치호가 한 프랑스 인의 책에서 발췌해 <동광>이라는 잡지(제11호, 1927)에 대서특필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세계에 우승권(優勝權)을 가지고도 최대 행복을 누리는 앵글로색슨 족의 교육이 그들로 하여금 제 일은 제가 하게 만든다. 영국 청년들은 안정(安靜)하거나 유약한 것보다 생존 경쟁을 좋아하고 자립을 존숭하고 전진하기를 좋아한다. (중략) 이는 그 사회 조직이 인생의 곤란을 우승하기에 가장 유효하게 된 까닭이다.”
윤치호나 그를 받들던 기독교 우파 인사들에게는 ‘힘이 세고 기장이 가장 고귀한 앵글로 색슨 인종’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본이 바로 ‘동양의 영국’이었으니 친일 협력도 ‘태생적으로 허약한 조선 민족의 생존 방안’이었다. 1896년 일본의 근대화 모델이던 독일을 여행한 것을, 윤치호는 1927년에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별건곤> 제6호)
“독일의 벽촌이라도 도로가 청결하고 가옥이 조밀하여 어느 곳이나 물 부어 샐 틈 없을 듯 하고 밤을 굴려도 먼지 하나 안 묻을 듯이 정리되어 있고 길가에도 의복을 풀거나 발을 벗고 다니는 아녀자 하나 볼 수 없었다.”
예의 범절과 질서의 낙원인 셈이다.
[박노자, 『하얀 가면의 제국』에서 발췌]
논제1. (가)를 바탕으로 (나)에 나타난 문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에 대해 서술하시오(300자 이내).
논제2. 아래는 오리엔탈리즘의 세계관을 반영한 세계지도이다. (다)와 이 지도를 바탕으로 오리엔탈리즘의 세계관을 200자 내외로 설명해 보시오.
논제3. (다)의 관점에서 (라)에 나타난 ‘윤치호와 그를 받들던 기독교 우파 인사들’의 세계관을 비판하는 글을 4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논제4. (가), (나), (다), (라)를 참고하여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 1,200자 내외로 논술하시오.
※ 유의 사항
1) 답안 작성 시간은 <논제1> 40분, <논제2> 30분, <논제3> 150분임.
2) 제목을 쓰지 말 것.
3) 제시문을 그대로 인용하지 말 것
4) 자기 수준에 맞는 문제를 골라 작성하고, 차후 다른 문제도 반드시 풀어 볼 것.
문화를 이해하는 관점
출제 의도 및 예시 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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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 의도
최근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문화 사대주의나 자문화 중심주의 같은 편협한 관점이나 극단적인 문화 상대주의 등의 문제점을 바로 알고 문화를 해석하는 올바른 관점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예시 답안
<논제1>
문화를 보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다. (1)에서는 TV에 나오는 힙합보다 우리나라의 국악이 더 나은 문화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것을 자문화 중심주의라고 하며, 자신의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여겨 다른 문화를 천시하는 관점이다. (2)에서는 반대로 TV에 나오는 국악보다 힙합이 더 나은 문화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문화보다는 다른 문화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이다. (3)은 각 문화를 동등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이는 문화마다 가지고 있는 배경이나 역사를 감안해서 각각의 문화를 이해하는 문화 상대주의적 관점이다.
<논제2>
일반적으로 지도를 그릴 때 자신의 세계관의 중심을 지도의 중심에 그리게 되는데, 이 지도에서는 세계의 중심이 유럽으로 표현되어 있다. 즉, 지도를 그린 사람은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처럼 세계를 유럽 중심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관점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자문화 중심주의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으며,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은 서양의 우월하고 세련되고 정숙한 이미지에 대비되는 낙후되고 천하며 더러운 이미지의 지역으로 그려진다.
<논제3>
윤치호와 그를 받들던 기독교 우파들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경험했던 유럽 사회를 이상향이라고 생각하고 이들의 문화를 우월하다고 여기며, 상대적으로 우리의 문화를 천박하다고 주장하는 문화 사대주의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를 단지 현상으로만 바라보고 그러한 문화가 형성된 과정을 무시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각각의 문화에는 그러한 문화가 나타나게 된 맥락과 환경적 배경이 있다. 가령 우리나라 개고기 문화에는 무더운 여름철을 나기 위해 단백질을 비롯한 많은 영양분이 필요 했는데, 당시 조상들의 단백질 섭취가 쉽지 않았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던 동물이 개였기 때문에 단백질 섭취 수단으로 가장 쉬운 것이 개고기였다는 맥락이 담겨져 있다. 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개를 잡아먹는다는 것만으로 우리 문화를 천박하다고 여긴다면 그 문화를 올바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유럽의 문화도 그러한 문화가 나타나게 된 과정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은 결코 올바른 문화 이해가 아니다. 문화는 그 사회의 환경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반드시 우월하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논제4>
최근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여 다른 지역 간의 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세계화가 가속화되고 다른 나라와 지역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은 아직 세계화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최근엔 인터넷을 통해 유럽을 비롯한 경제적으로 발달한 나라들의 문화를 많이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를 동경하고, 또는 그들의 문화를 절대적 잣대로 여기고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문화 중에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것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가 모두 올바른 것은 아니며 더군다나 다른 문화에 비해 우월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소를 숭배하는 문화가 있다. 이는 전통적으로 소를 이용한 벼농사를 주업으로 삼는 인도인들에게 노동력의 원천인 소를 아끼고 잘 보살펴야 벼농사를 잘 지어 사람들이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난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사람들의 입장에서 소는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우유와 고기를 제공하는 식량일 뿐이다. 유럽 사람들은 열량이 낮은 밀농사만 지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에 열량이 많은 고기와 우유를 필요로 했고, 여기에 서늘하고 습윤한 기후가 풀을 잘 자라게 하는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소를 식량으로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각각의 문화에는 그 문화가 나타나게 된 환경적 영향과 역사적 배경이 있는 것이기에 이를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현상만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문화 인식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즉, 우아하게 고기를 먹는 식사 문화가 우월하며, 쌀을 주식으로 하는 식사 문화나 소를 숭배하는 문화가 천박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문화를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에도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의 한 부족은 추장이 죽으면 노예를 같이 죽여 추장을 시중들도록 하는 문화가 남아 있다. 이 경우 문화를 그 사회의 맥락과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인 생명 존중 사상이나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바라 볼 때 결코 옳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대주의적 관점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가 최소한의 잣대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넓고 그 만큼 문화는 다양하다. 마음을 열어 색안경을 벗어 던지고 상대방의 문화를 인정하고 바라본다면 진정한 세계화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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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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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1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 에드워드 사이드
비교문학자인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는 1978년 출간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서 동양을 다룬 서구의 문학, 문화, 사상, 역사에 내재한 오리엔탈리즘, 곧 동양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비판하였다. 1935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이집트의 영․미계열 학교와 하버드대 등 미국의 아이비리그에서 학위를 마친 그는 아랍 출신(동양)과 미국 학자(서양)로서의 내적 긴장을 소지한 이른바 경계인이었다. 그가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이 났을 때 유럽과 미국의 언론이 아랍 사회를 반서구적․위협적 존재로 접근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연구에 착수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본래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 동양의 언어와 문학을 연구하는 ‘오리엔탈리스트’의 연구업적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이 지난 2세기의 정치적 현실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간파한 사이드는 동양을 다루기 위해 기획된 체제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동양과 서양 간의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유색인과 여성에 대한 정복을 정당화하는 이념 등을 예리하게 비판하였다. 20세기 최고의 인문서로 평가되는 ‘오리엔탈리즘’은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지성계에 새 물줄기를 열었고 지금도 여러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유럽이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 친숙한 ‘우리 서양’과 낯선 ‘그들의 동양’으로 이분했다고 파악하였다. 가장 큰 대비는 ‘서구=문명’과 ‘동양=야만’이었다. 낙후한 동양인은 비합리적이고 타락한 어린애로,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어른인 서양인에 비해 열등하다고 간주되었다. 유럽은 근대 서구인의 동질적 시선으로 동양을 파노라마처럼 바라보고 열등한 타자(他者)로 정형화한 것이다. 서양을 가치의 중심에 두고 동양을 “불완전한 동양”으로 여긴, 동과 서라는 인위적 경계와 구분은 힘센 서양이 서양을 위해 서양과의 관계에 따라 동양을 규정하는 ‘정치적으로 옳지 않은(politically incorrect)’ 사고방식의 소산이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몇 가지 주요한 사항을 주장하였다. 첫째,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의 정치적 목적, 즉 유럽의 비서구 세계에 대한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했다는 것이다. “유럽 도서관에 있는 한 서가의 책이 인도와 아랍에 존재하는 모든 문학을 합친 것보다 더 훌륭하다”고 말하는 오만한 발언처럼 서양인은 동양 사회와 문화를 저평가하여 서구의 개입을 당연시하였다. 비합리적이거나 순진무구한 동양인은 이 잔인한 물질세계를 통치하거나 변화를 추진할 능력이 없고 따라서 아버지와 같은 서구의 도움으로만 진보와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둘째, 오리엔탈리즘은 서구가 자기 이미지를 구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동양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여 상대적으로 우월한 서구의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본디 정체성의 구성은 반대쪽 타자의 창출과 관련되는 법이기 때문에 서양이 우수하면 동양은 열등하고 동양이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이면 서양은 진보적이고 합리적이 되었다. 동양인이 나약한 여성과 미숙한 어린애라면 서구인은 그들을 돌보는 강한 가부장적 성인 남성이었다. 이는 백색 피부의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유색인을 가르쳐서 문명세계로 이끈다는 제국주의의 논리로 작동했다.
셋째,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을 거짓으로 기술하였다. ‘동양은 동양이고 서양은 서양이니, 그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네.’라는 영국 시인 키플링의 시가 시사하듯 서구는 열등한 동양을 창조하여 본질적인 것으로, 영구불변의 것으로 박제하였다. 동양인은 본래 부정적이며 늘 그렇기 때문에 둘의 간격은 좁혀질 수 없었다. 수동적인 동양은 과학과 상업 분야 등 인류 진화의 주류에서도 고립된 변화의 무풍지대였다. 광대한 비서구세계를 단일한 ‘불변의 동양’으로 왜곡한 오리엔탈리즘은 영화, TV, 사진, 그림, 광고, 문학, 학술서적, 신문과 잡지 등을 매개로 반복적으로 재현되었다.
◇ 사이드의 저서 ‘오리엔탈리즘’
‘오리엔탈리즘’에서 지적한 ‘발전한 서양과 낙후한 동양’이라는 식의 대비는 서구가 비서구 세계를 인식하는 고정불변의 공식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이라크전(戰)에 대한 미국의 입장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 있다. 일견 이라크 인을 판단력과 자기운명을 결정할 능력이 없는 어린애로 여기고, 영원히 어른이 못되는 ‘피터 팬’을 대신해 무지몽매한 지도자 후세인을 심판해주는 정의의 ‘샘 아저씨’를 자처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테러와 무질서, 전근대성도 질서와 안정, 선진문명을 소지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상투적 표현이다. ‘미국이 미숙한 이라크 인을 훈육하여 성숙한 어른으로 만든다.’는 명제는 ‘우수한 인종인 서구인이 미개한 동양인을 지배하여 문명세계로 인도한다.’는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의 논리와 흡사하다. 오늘날의 대제국 미국이 가르쳐서 ‘어른’으로 키우려는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 이란, 라이베리아, 북한 등 모두 비서구 국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제국주의를 지지한 동양에 대한 서구의 차별적 인식, 곧 오리엔탈리즘의 유산이자 계속이다. 여기에 도전한 이가 에드워드 사이드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쓴 목적이 서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 받는 아랍과 제3세계를 방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한 이 책의 출간 이후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비서구 문화의 상대적 진리에 주목하는 다양한 연구와 활동이 이어졌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이 제국주의의 정당화에 이용되었다고 밝힌 사이드의 통찰은 포스트콜로니얼(탈식민주의) 연구의 이론적 기반을 이루었다. ‘오리엔탈리즘’은 비서구인의 연구 활동, 하층민의 경험을 담은 역사서술, 페미니스트와 다른 마이너리티(소수자)의 담론에도 반영되었다.
식민지가 모두 사라진 오늘날에도 지구상의 절반을 ‘저주받은 자들’로 여기는 서구의 편견은 잔존한다. 무슬림은 여전히 잔인한 테러리스트로 인식되고, 인도는 늘 역동성이 부족한 신비한 나라이며, 일본은 가라테와 동일시된다. 사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그것을 전복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사이드의 말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경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어떤 사회가 다른 사회보다 우수하다고 믿는 건 누가 누구보다 행복하다는 주장처럼 어리석다. 글로벌화와 사람들의 교류와 이동이 활발해진 오늘날, 서양의 지배적 위치를 탈중심화하고 비서구 세계를 응시하며 오리엔탈리즘을 경계할 필요성은 그래서 한층 유효하다.
“…오리엔탈리즘은 유럽인의 경험 속에 자리하는 동양의 특별한 위치에 근거한, 동양과 타협하는 한 방식이다. 동양은 유럽에 인접할 뿐 아니라 유럽의 가장 크고 풍요하며 오래된 식민지였던 곳이고 유럽 문명과 언어의 근원이자 그 문화적 경쟁자이며, 유럽의 가장 짙고 가장 빈번히 재발하는 타자(他者)의 이미지들 중 하나이다. 나아가 동양은 유럽이 그 대조적 이미지, 사상, 성격, 경험으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옥순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에서 발췌]
자료2 【문화키워드 브런치】
대기업 마케팅전략실에 근무하는 김정미씨(32․여)는 자타가 인정하는 브런치족이다. 캐나다에 있는 부모님들과 떨어져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그는 매주 토요일이면 거의 빠짐없이 이태원․청담동 일대에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에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게 일상이 됐다. 김씨는 “작년부터 친구들과 브런치 모임을 갖기 시작했다”며 “늦잠 자기 쉬운 토요일 오전을 잘 활용하고 결혼한 친구들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씨가 즐기는 브런치는 브렉퍼스트(breakfast)와 런치(lunch)의 합성어로 우리식으로 따지면 바로 “아점”이다. 점심을 겸해 먹는 브런치는 해외에선 커피․빵 등과 함께 으깬 감자․베이컨․과일 등을 곁들여 먹는, 아침보다 가볍지 않되 일반 식사보다는 간소하게 먹는 음식. 브런치가 일상화된 미국 등에서는 문 앞만 나가도 브런치 가게가 즐비하고 가격 역시 매우 싸다. 그러나 이 같은 소박한 브런치가 국내에선 호화 식사로 둔갑한 지 오래다. 이태원․청담동․방배동 일대에 늘어선 브런치 식당들은 웬만한 저녁식사 한 끼 가격인 2만~3만원에 브런치를 팔고 있다. 빵과 샐러드에 국한되던 메뉴는 프랑스식․이탈리아식․뷔페식 등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브런치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토요일 저녁 와인클럽을 찾는 분위기로 최대한 차려입고 나온다.
이에 따라 국내 브런치 바람이 본래의 의미는 퇴색된 채 왜곡․발전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주5일 근무가 보편화된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진 자들만의 문화” 또는 “강남 스타일”이라는 인식이 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여성들의 사치와 허영 심리를 기반으로 브런치 바람이 급속도로 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친구들과 먹는 브런치를 막연하게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유학파인 김씨 역시 이런 점을 일부 수긍한다. 김씨는 “한국에서 브런치 문화가 ‘하이엔드 문화’로 다소 왜곡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분위기 좋은 곳에서 눈치 안보고 3~4시간 마음 편히 식사하고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라고 반박했다. 6,000원짜리 설렁탕을 20분 만에 먹고 카페에 가느니 원스톱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브런치 식당이 여러모로 편하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아점 문화가 전통적으로 존재해온 한국에서 호화로운 서양식 브런치 문화는 좀 생뚱맞다.”며 “젊은이들의 허영 심리가 다분히 반영된 반면 전통적인 가족형태가 해체되고 싱글 족들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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