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강용성
전남 담양이 2007년에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유는 전통한옥, 돌담길, 창평 쌀엿, 한과, 죽염된장 등 친환경 전통식품이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다.
슬로시티는 산업혁명으로 바쁜 생활에서 벗어나 생활의 여유를 갖자는 의미로 시작되었다. 즉, 빠름, 채움, 인공, 디지털시대에서 느림, 비움, 자연, 아날로그시대로 바꿔 생활하자는 것이다. 이탈리아 소도시‘그레베인 키안티’에서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를 먹으면서 시작된 운동이다.
5만의 인구와 친환경 농산물, 전통음식과 문화보존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슬로시티지역에 대형 상점이 들어서는 것은 제한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대형마트를 필요로 하지만, 슬로시티의 취지와 맞지 않다. 패스트푸드를 추방하는 그런 맥락과 일맥상통한다.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은 옛날부터 물길이 세 곳으로 나누어 흘렀다. 우측은 면 청사 쪽으로 흐르고, 좌측은 전통한옥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면 청사로 흐르는 물길을 복원하여 물레방아가 연일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다. 떨어지는 물소리는 슬로시티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잠시나마 눈길을 멈추게 하는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그 광장에는 2백 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어 사색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통한옥 쪽으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담쟁이넝쿨이 담벼락을 타고 쭉쭉 뻗어 자라고 있었다. 담쟁이 줄기가 담벼락에 붙어 있는 데 해를 거듭할수록 진갈색을 띠면서 서로 엉켜있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담쟁이넝쿨과 물, 아담한 한옥,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고샅길이다. 담장 밑에는 채송화, 나팔꽃 등이 심어져 있어서 운치를 더해 준다.
일본의 후쿠오카시청은 온통 나팔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창틀에 매어둔 끈을 따라 쭉쭉 감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 시청의 콘크리트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 건물이 거의 푸른색으로 뒤덮고 있었다. 시청 앞 광장에는 서너 군데 나팔꽃 포토전이 설치돼 있었다. 친환경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겼다.
삼지천 마을은 백 년 전부터 장흥고씨들이 기와집을 짓고 살아왔다. 그 기와집은 지금까지 허물어지지 않고 십여 채가 보존되어 있다. 그들은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남들보다 애향심이 남달랐다. 일찍이 의병활동에도 크게 활약했었다.
제봉 고경명 장군은 전남 장흥과 담양에서 의병을 모았다. 조선시대 문인의 몸으로 나라를 구하겠다며 그것도 6순의 나이에 기백을 버리지 않고 일제 침략에 항거했던 것이다. 결국 고경명 장군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생을 마감했다. 아들까지 처참히 죽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애국심과 충성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왜군과 물러서지 않고 싸우며 나라를 지키려던 그 모습이 내 가슴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란 말이 있듯이 학구열도 대단했었다. 상월정은 누구나 가서 공부할 수 있는 장소다. 월봉산자락의 중간지점에는 지금도 그 건물이 남아있다. 남극루를 지나 용수마을의 저수지를 지나노라면, 그 길목에는 오십 년이 넘은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신선한 공기와 자연환경이 면학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십 년 넘게 살아온 창평슬로시티 H위원장은 창평 쌀엿을 만들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 창평 쌀엿을 만든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온도가 높아 쌀엿이 녹아서 상품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전국 각지의 전화주문이 쇄도해 쌀엿 만들기에 진땀을 빼고 있다.
“날씨도 솔찬히 춥고 그런디, 요즘 쌀엿 맹그느라고 애쓰지요?”
“설날 때 전화주문량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요.”
“아, 그러요? 그 많은 주문량을 어떻게 맹글고 있소?”
“온 식구가 밤잠을 자지 않고 맹글죠. 피곤하지만 주문량은 꼭 맹글어 택배로 보내고 있소.”
H위원장은 쌀엿체험장을 운영, 주말에는 쌀엿 만들기 체험이 최고 인기다. 매주 토요일에는 달팽이시장을 열어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이 마을에서 키우고 가꾼 농산물을 판매도 하고, 점심도 마을부녀회원들이 친환경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는다. 떡메치기체험, 쌀엿체험, 딸기주스 만들기, 토마토 주스체험, 걷기체험 등이다. 골목길을 살펴보는 소달구지체험은 어린이에게 제일 재미있는 체험꺼리다.
나는 친환경 음식인 두부체험에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두부를 만드는지 유심히 지켜보았다. 우리 콩을 물에다 불려서 그 콩을 맷돌에 갈아 나온 흰콩을 흰 천에 놓고 짜는데 찌꺼기는 버리고 나머지 흰 콩물을 검정 솥에다 넣고 끓인 것을 보았다. 식힌 다음에 편백나무 틀에 붓고 간수 물을 치니까 김이 무럭무럭 나는 콩물이 어느새 응어리가 돼 뭉쳐졌다. 그 판자에 돌덩이를 올려놓고 한참 후 새하얀 두부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난 두부가 탄생한 것이다.
전통한옥에는‘빈도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독일인이 귀화해서 살고 있다. 6순이 넘은 빈씨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서 살고 있다. 한국의 정취가 좋아서 아버지 따라 어릴 적부터 살다 보니 정이 들었고 기후환경이 독일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그는 밀랍 꿀초를 만들고 있다. 버려진 밀랍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형태의 꿀초를 만들어 관광객들과 체험도 하고 판매를 하기도 한다. 노란 꿀초는 장식품으로 참 좋았다.
슬로시티는 느리지만 여유로운 삶, 유유자적하면서 풍요로운 삶,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K씨 한국슬로시티위원장은 전남 4개․군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이후 전주한옥마을, 하동, 예산, 청송 등 8개를 더 지정해서 12군데를 관리하고 있다. 세계 27개국 170개 도시가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아름다운 슬로시티가 정말 멋져 보였다.
(2014. 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