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저기서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고 고등학교 배정도 끝난 모양이다.
교회 청소를 하는데 목사님 딸 둘이 저녁 외출을 하다 인사를 한다.
어디 가느냐니까 이번에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동생 교복을 맞추러 간단다.
교복.
지금은 갖가지 개성을 살린 멋있는 교복들이 많지만 엄마 때만 해도 그렇질 못했다.
거의 짙은 감색 투피스에 흰 카라가 달린 비슷한 디자인의 교복.
그래도 솜털 보송보송한 얼굴에 조금은 촌스런(?) 옷태였을지라도 그 감동만큼은
지금 학생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했고 옷이 귀하던 시절이었으므로 교복은 유일한 외출복이자 중학생임을
알리는 자랑스런 표시였다.
어렵게 학교에 입학을 해도 당장 교복을 맞출 수 없는 학생들이 꽤 있었으므로 학교에서는
그런 학생들에게 하복을 입을 때까지 사복을 입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
엄마가 양주 산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여상의 부속 중학교인 문영 여중에 합격을 했을 때
( 그 때는 중학교도 시험제였으니까.) 발표가 나자마자 외할아버지 께서는 지정 교복점이 있는
화신 백화점( 그 당시 종로에 있었음.) 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그리곤 그 당시에 제일 좋은 옷감인 '골덴텍스'로 교복을 맞추어 주시고나서
점심으로 설렁탕까지 사주셨다.
참 그 때는 설렁탕이면 아주 고급 메뉴에 속했다.
그러니 합격의 기쁨에 좋은 교복에 맛있는 점심까지 먹었으니 그 기분을 알만하지 않겠는가?
점심을 먹고 나서 바로 시골 집으로 가자 하셨어도 더 바랄 것이 없이 좋았을텐데
할아버지는 백화점 4층인가에 있는 극장으로 데리고 가셨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야말로 한 턱 거하게 쏘신거지.
영화 제목은 '러브미 텐더.'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고 더구나 외국 영화 였으니 내용이야 기억이 나겠는가?
기억 나는 장면은 딱 하나, 멋있게 생긴 남자 주인공이 바위 뒤에 숨어서 권총을 쏘는 장면.
그래도 그 후에 유명해진 주제음악 '러브미 텐더'를 들을 때마다 난 그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시골 노인이셨지만 손녀의 기분을 헤아려줄 줄 아셨던 멋진 분.
지금은 할아버지가 천국 가신지도 40년이 다 되어가고, 엄마 나이도 그 때의 할아버지
연세인 6학년 4반이 되었지만, 새학기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3월의 바람 냄새와 함께
교복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며 할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 한다.
첫댓글 늦은시간에 안주무시고 어인일이신지요? 몸이 안좋으신지 아니면 마음쓸 일이 생기셨는지요? 어머님 하고 아버님 건강하셔야 합니다.
어머니의 감성 충만이 그당시 귀족 교양인 외할아버지에서 비롯되었나 보군요. 어머니의 외할아버님 이야기는 들을때마다 흐뭇해집니다. 어머니도 많은 손녀 손주들에게 외할아버지 못지 않게 멋진 할머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