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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환 포스텍 교수(물리학과). ⓒ프레시안(손문상) |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네트워크, 뇌
강양구 : 오늘은 뇌과학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뇌과학은 정말 할 얘기가 많아서 어떻게 얘기를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웃음) 일단 뇌과학을 얘기하면서 전통적인 의미의 생명과학자가 이 자리에 없는 이유부터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곳에는 물리학자 두 분과 천문학자 한 분, 그리고 뇌도 과학도 잘 모르는 기자 한 명이 앉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에서 대중적으로 제일 많이 알려진 뇌과학자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정재승 박사잖아요. 정 박사는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어크로스 펴냄)와 같은 책도 냈죠. 그런데 정 박사도 <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어크로스 펴냄) 같은 책을 냈던 물리학자거든요. (웃음)
이명현 : 강 기자가 지적했듯이 뇌과학은 전통적으로 생명과학의 영역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물리학이 뇌과학을 중요한 연구 분야로 간주합니다. 도대체 왜 물리학이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얘기부터 시작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뇌과학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죠.
김승환 : 좋습니다. 그런데 이전에도 물리학자에게 있어서 뇌의 활동인 '의식'은 굉장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였어요. 실제로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물리학자에게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서 10개를 꼽았어요. 그 중 하나가 '의식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물리학자에게도 의식을 이해하는 일은 우주를 이해하는 일만큼이나 흥미로운 주제였던 거예요. 그러니 물리학자가 지금 현재 과학계의 가장 큰 화두인 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구체적인 대상인 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직접적인 계기도 있었지요. 뇌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시스템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 복잡한 뇌를 설명하는 가장 그럴듯한 표현이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입니다. 그러니까 뇌는 기능이 특화된 작은 네트워크인 '모듈'로 나뉘어 있는데, 그 모듈이 또 네트워크로 통합이 되어서 전체적인 기능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뇌를 이해하려면 우선 크고 작은 네트워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물리학자들이 확립해 놓은 '복잡계 과학'이 중요한 역학을 할 수 있어요. 복잡계 과학을 공부하던 물리학자들이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죠.
강양구 : 여기서 또 새로운 용어가 하나 등장합니다. (웃음) '복잡계 과학'은 도대체 뭔가요?
김승환 : 저는 복잡계 과학을 무리 짓기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어떤 개체가 모여서 무리를 짓게 되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통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개체들이 소통을 하면서 무리를 지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나죠. 개체 하나하나가 보여주지 않았던 행동을 무리가 하거든요.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죠.
무리 짓기를 이해하는 방식 중 하나가 복잡계 과학의 한 갈래로 등장한 '사회 물리'입니다. 여러 사회 현상을 복잡계 과학으로 이해해 보려는 시도예요. 아주 민감하고 섬세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무리를 지어서 집단을 이루면 어떤가요? 붉은 악마들이 "대한민국" 하고 외칠 때, 그 집단을 구성하는 특정 개인이 얼마나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인지 그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의미가 없죠. 그런 개인이 집단으로 무리를 지었을 때, 어떤 특정한 행동의 패턴을 보이는지가 오히려 중요하죠.
바로 이게 복잡계 과학의 전형적인 접근입니다. 뇌도 그래요.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 세포를 '뉴런'이라고 부릅니다. 성인의 뇌 무게는 약 1400그램 정도인데, 그 안에는 이런 뉴런이 1000억 개가 들어 있어요. 이런 뉴런 하나하나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스스로 무리를 짓고(조직화), 뉴런 하나만 놓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특정한 기능을 수행합니다(발현).
물리학자는 이렇게 수많은 뉴런이 무리를 지어서 특정한 패턴을 보이는 현상을 바로 뇌 활동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복잡계 과학이 뇌를 자신의 연구 대상으로 삼은 건 당연한 일이죠.
김상욱 : 여기서 딴죽을 한 번 걸어 보죠. (웃음) 복잡계 과학(complex systems science)은 이름부터 '복잡한(complex)'이라는 수식어가 있죠. 그럼, 도대체 '복잡성(complexity)'의 정의는 뭔가요? 아까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뇌"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난지도 쓰레기장도 굉장히 복잡하잖아요.
김승환 : 난지도의 쓰레기는 스스로 조직하지 않죠. 그런데 사회를 이루는 개인 또 뇌를 구성하는 뉴런은 스스로 무리를 짓죠. 무리를 지으면서 상호 소통하면서 특정한 기능을 보입니다.
강양구 : 김상욱 선생님 질문을 제 식으로 약간 바꿔 볼게요. 방금 복잡계 과학의 대상이 되는 무리의 특징을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로 요약하셨어요. 그러니까 개체(사람, 뉴런 등)가 상호 작용하며 스스로 다양한 패턴을 엮어내고, 복잡계 과학은 바로 그 패턴에 주목하는 거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무리면 이런 특징을 나타내나요?
이명현 : 도대체 몇 개냐? (웃음)
김승환 :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는 외롭죠. (웃음)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는 비교적 명확히 해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셋부터는 복잡해집니다.
'삼체문제(the problem of three bodies)'가 단적인 예죠. 그러니까 태양과 지구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서 어떻게 궤도를 그리는지는 수학적으로 풀 수가 있어요. 그런데 태양, 지구, 달이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서 어떻게 상호 작용하며 궤도를 그리는지는 풀 수가 없어요. 셋부터 복잡해지는 거죠.
우리가 연애할 때 보면 삼각관계가 있잖아요. 삼각관계가 얼마나 복잡해요? (웃음) 이렇게 셋 이상이 되면 우선 '복잡성'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뇌 같은 경우는 1000억 개의 뉴런이 상호 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네트워크니 얼마나 복잡하겠어요. 더구나 평면적인 네트워크도 아니에요. 뉴런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그 네트워크가 또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복잡성은 더욱더 커지죠.
김상욱 : 다음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짚고 가죠. 그 동안 물리학을 지배하는 유력한 관점은 환원주의였어요. 그런데 복잡계 과학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물리학의 환원주의적 시각은 거의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러니까,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김승환 : 솔직히 말하면 몰라요. (웃음) 그러니까, 뉴런이 뇌 속에서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할 수가 있어요. 한 10만 개 정도의 뉴런이 상호 작용하는 모습을 시뮬레이션해서 거기서 나타나는 패턴을 확인한 다음에, 그것으로 뉴런 전체의 패턴을 짐작해 보는 거죠.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의적이에요. 10만 개의 뉴런에서 어떤 특정한 패턴이 나타났다고 해서, 1000만 개, 1000억 개의 뉴런이 상호 작용하는 무리에서 그런 패턴이 똑같이 나타나리라고 아무도 보장할 수 없거든요. 1000만 개의 단계에서 또 1000억 개의 단계에서 어떤 새로운 패턴이 발현될지 모르는 일이죠.
김상욱 : 동감입니다. 저 역시 환원주의에 회의적인데요. 흔히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물질의 가장 작은 구성 요소인 쿼크의 구조를 안다고 해서, 물의 끓는점을 확인할 수 없거든요.
이명현 : 제가 한 번 비유를 해보죠. 야구장에서 응원할 때 파도타기를 하잖아요. 우리가 관심이 있는 건 그 파도타기 모습, 그러니까 파도타기 패턴이거든요. 그러면 실제로 야구장에서 파도타기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거든요. 원숭이 심지어 닭이 되어도 상관없죠. 복잡계 과학도 바로 이렇게 무리가 보이는 패턴에 관심을 보이잖아요.
그렇다면, 실제로 각각의 뉴런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죠. 복잡계 과학이 환원주의적 관점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요. 각각의 뉴런, 혹은 10만 개의, 100만 개의 뉴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파악하는 게 1000억 개의 뉴런이 서로 엮여서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를 설명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요.
김승환 : 맞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뇌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거죠. 뉴런이 정확하게 어떤 메커니즘으로 신호를 전달하는가, 복잡계 과학의 입장에서는 이런 질문은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하죠. 마치 캐리커처를 그리듯이 뉴런이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는지에만 초점을 맞춰도, 뉴런의 집단이 자기 조직화를 통해서 어떤 패턴을 발현하는지를 연구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복잡계 과학의 힘이죠.
▲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천문학자). ⓒ프레시안(손문상) |
과학자, 의식의 비밀을 엿보다
강양구 : 우선 복잡계 과학자가 도대체 뇌를 어떻게 연구하는지 그 구체적인 방법도 소개해 주시죠. 특히 기존에 생명과학 그러니까 생물학 또는 생화학의 연구 방법과의 차이점에 주목해서요.
김승환 : 뇌를 다시 말하면 '마음의 집'이잖아요. 그런데 뇌를 생물학 또는 생화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당장 커다란 장애물을 만나요. 왜냐하면, 생화학 또는 생물학은 기본적으로 뇌의 하드웨어에 관심을 가지거든요. 하드웨어의 구조를 해명하면 그 소프트웨어의 실체까지 알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거죠.
그런데 이런 접근으로는 뇌의 실체를 확인할 수가 없어요. 소프트웨어가 변하면서 시간이 지나면 하드웨어가 바뀌거든요. 우리가 경험을 하고 기억을 하면 하드웨어가 재구성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재구성된 하드웨어가 또 소프트웨어의 내용에 영향을 주고요. 그러니까 하드웨어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는 뇌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죠.
복잡계 과학은 소프트웨어 그러니까 뇌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방식 자체에 관심을 갖죠. 그런데 그렇게 뇌에서 처리되는 정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양으로 축적되고 있어요. 바로 병원에서 환자의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서 뇌파를 측정하잖아요. 그런 무정형의 정보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빅 데이터'죠. 바로 이 빅 데이터를 통해서 뇌의 비밀을 파헤칠 수도 있는 거죠.
김상욱 : 자, 그럼 이제 복잡계 과학이 뇌의 비밀, 즉 '의식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소개해 주시죠. (웃음)
김승환 : 좋아요.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면 얘기하기가 더 쉽죠. 지금 제가 한창 연구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얘기해 볼게요. 지금 현재 의식의 비밀을 파헤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접근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시각에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80~90퍼센트가 시각 정보니 당연한 접근이죠.
일상생활에서 '보는 것'은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의식을 하면서 보는 거죠(watch). 다른 하나는 의식을 하지 않고 보는 것입니다(see). 의식의 비밀을 탐구하는 데는 주의 집중해서 볼 때에 관심을 가지죠. 즉, 시각이 의식적으로 포착한 정보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추적할 수 있으면 정보 처리의 메커니즘, 즉 의식의 비밀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으리라는 발상입니다.
강양구 : 또 다른 방법은요?
김승환 : 아무래도 시각에 관심을 가지는 과학자들이 많죠. 그런데 저는 다른 방법을 사용합니다. 장기간 수술을 할 때 전신 마취를 하잖아요. 그러데 전신 마취를 시키려면 중추 신경계를 공격합니다. 그러니까 전신 마취는 근육을 마비시킬 뿐만 아니라, 뇌의 상태에 변화를 줍니다. 즉, 전신 마취를 통해서 환자의 의식을 직접적으로 제어하고, 또 시간에 따른 상태를 추적 관찰할 수 있죠.
이 전신 마취는 뇌과학자가 사람의 의식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죠. 그래서 전신 마취를 통해서 의식의 비밀을 탐구하려는 이들이 많아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현실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병원에서 환자를 전신 마취시킬 때는 환자 상태 모니터링이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전신 마취할 때 뇌파를 비롯한 데이터가 축적되어 있는 상태죠.
현재 서울아산병원 마취통증의학과의 노규정 교수와 공동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당연히 IRB(Institutional Review Board,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허가를 받았고요. 전신 마취 환자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죠. 결과를 소개하기 전에 의식의 실체를 놓고서 제기된 몇 가지 가설부터 소개하죠.
ⓒ프레시안(손문상) |
이명현 : 감질나게 하시네요. (웃음) 가장 고전적인 가설은 전두엽에 난쟁이가 앉아서 의식의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다는 거죠. 전두엽이 일종의 의식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곳이라는 얘긴데요. (웃음)
김승환 : 맞아요. 또 다른 가설은 대뇌피질과 시상 양쪽에 회로가 있는데, 이 두 회로가 만드는 리듬이 만나고 깨지며 의식이 나타난다는 가설이 있어요. 지금 제가 주목하는 가설은 줄리오 토노니와 제럴드 에델먼 등의 '정보 통합 이론(IIT·Integrated Information Theory)'입니다. 이 가설은 뇌가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자 각각의 기능을 특화해 놓았다는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강양구 : 시각, 청각, 후각 등…. 모듈 이론이죠?
김승환 : 네, 그렇게 모듈이 있다는 거예요. 각각의 모듈을 통해서 들어온 정보를 통합해서 처리해야 하잖아요. 이렇게 각각의 정보를 통합해서 처리할 수 있는 역량, 그게 바로 의식의 본질이라는 거죠.
김상욱 : 그 정보 통합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김승환 : 전두엽에 앉아 있는 난쟁이가 그런 정보 통합을 담당하는 건 아니고요. (웃음) 일종의 자기 조직화가 일어나는 거죠. 사실 노규정 교수와의 공동 연구는 바로 이 정보 통합 이론이 의식의 실체라는 주장을 검증해 보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강양구 : 얼른 소개해 주시죠. (웃음)
김승환 : 네, 보통 감각 정보는 뒤쪽에 있어요. 예를 들어, 시각 정보를 입력받는 시각 피질은 뇌 뒤쪽(후두엽)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앞에서 애기한 대로 우리가 머릿속에서 처리하는 정보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시각 정보가 입력이 됩니다. 그런데 그 정보가 통합되려면 전두엽으로 전달이 되어야죠.
거기서 정보 통합이 된 다음에 시각이 반응을 하려면 다시 그 결과가 시각 피질로 전달이 되어야죠. 그런데 마취를 하니까 이 전두엽에서 정보를 통합해서 다시 돌려보내 주는 경로가 막힌 거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시각 피질이 있는 후두엽은 물론이고 그 앞의 전두엽으로도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요.
이명현 : 전두엽과 머리 뒷부분 사이의 정보 전달 경로가 차단된 건가요?
김승환 : 그러니까 시각 피질에서는 계속해서 정보를 전두엽으로 보내주는데, 이 전두엽에서 정보 통합이 안 되는 거죠. 이런 상태가 바로 마취를 통해서 의식을 잃은 상태인 거예요. 이 연구 결과는 마취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 잡지인 <마취학(Anesthesiology)> 6월호의 표지 논문으로 실렸습니다.
강양구 : 의식의 실체가 정보 통합 과정이라는 걸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군요. 그런데 의식이 중간에 돌아올 수 있잖아요? '수술 중 각성'이라고 하죠.
김승환 : 조비 해럴드 감독의 호러 영화 <어웨이크(Awake)>(2007년)가 바로 그 수술 중 각성 현상을 소재로 했죠. 마취 상태에서 깬 환자의 귀에 의사와 간호사가 수술할 때 대화가 들리는 거죠. "야, 수술 가위 가져와." 얼마나 무섭겠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전신 마취를 했던 이들을 조사했더니 약 0.1퍼센트가 이런 수술 중 각성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죠.
1년에 전신 마취하는 환자가 미국의 경우에는 약 5000만 명이 된다니까, 무려 5만 명 정도가 이런 수술 중 각성을 경험한다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노규정 교수 같은 분은 마취와 의식의 관계를 규명하는 일이 실용적인 목적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전두엽에서 머리 뒷부분으로 차단되었던 정보가 다시 흘러가기 시작하면 의식이 깬 것, 즉 수술 중 각성이니 곧바로 대응을 할 수 있겠죠.
▲ 조비 해롤드 감독의 <어웨이크>. ⓒ와인스타인컴퍼니 |
꿈을 조작해 자아가 바꿀 수 있다며…
이명현 : 그럼, 이제 의식의 비밀을 밝히는데 한 걸음 다가선 셈인가요?
김승환 : 글쎄요. 그게 그렇게 간단치 않아요. (웃음) (아래) 그림을 한 번 볼까요. 우선 '깨어 있는 정도'와 '의식 정도'를 구분하기로 합시다. 예를 들어,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은 인공호흡기 같은 생명 유지 장치 없이도 거의 모든 신체 기능이 활동 중이에요. 그러니까 분명히 깨어 있지만 의식은 없는 상태인 거죠.
ⓒ프레시안(손문상) |
아래 그림의 가로축을 '깨어 있는 정도', 세로축을 '의식 정도'로 놓고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일단 지금 대화를 나누는 우리의 상태는 오른쪽 상단에 위치하겠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깨어 있으니까요. 전신 마취를 한 상태는 왼쪽 하단에 위치하겠죠. 의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깨어 있지도 않으니까요. 왼쪽 하단 맨 구석에는 '혼수상태'가 있겠죠. (웃음)
반면에 식물인간은 분명히 깨어 있는데 의식은 없으니 오른쪽 하단에 위치할 거예요. 그렇다면, 왼쪽 상단의 경우는 어떨까요? 의식은 분명히 있는데, 깨어 있지 않은 상태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흔히 '루시드 드림(Lucid Dreaming)' 혹은 '자각몽(自覺夢)'이라고 부르는 꿈을 꾸는 상태죠. 의식이 또렷한 그런 꿈이요.
이명현 : 요즘에는 이 루시드 드림을 활용해 보려는 이들의 모임도 있어요. 저도 시험 공부할 때 자기 전에 자기 암시를 통해서 꿈속에서 자기 전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웃음)
김상욱 : 대단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는군요. (웃음)
김승환 : 수면 상태는 한 가운데 정도에 위치하겠죠. 의식 정도도 중간 정도, 깨어 있는 정도도 중간 정도의 그런 상태요. 그런데 수면 상태도 '렘(REM·Rapid Eye Movement) 수면'과 '논렘(NREM·Non Rapid Eye Movement) 수면'으로 나뉘죠. 논렘 수면 단계는 또 얕은 잠부터 깊은 잠까지 네 단계로 나뉘고요.
렘 수면은 대뇌 활동이 활발한 만면에, 논렘 수면은 대뇌 활동이 거의 정지하죠. 그러니 수면 상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분포가 굉장히 다양해 질 거예요. 방금 거칠게 배치를 시켰습니다만, 과학자 이런 각각의 상태를 객관적인 지표로 정량화해서 구분을 해보려고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닌데요, 그게 바로 의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꿈이죠.
강양구 : 과학자의 꿈이 현실이 되면 실용적으로 쓸모가 많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장기간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환자가 과연 다시 깨어날지 여부를 가릴 수도 있잖아요.
김승환 : 그렇죠. 함부로 인공호흡기를 떼면 곤란하잖아요. 만약에 앞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상태를 객관적인 지표로 정량화하는 게 가능해진다면, 각각의 상태의 전조를 확인해서 환자의 회복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방금 꿈이라고 말했잖아요.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Inception)> 보셨죠.
영화에서는 무의식 상태인 '림보' 상태에서 주인공의 기억을 훔치고 심지어 인격을 개조하죠. 그 영화를 보면서 이런 질문도 던져볼 수 있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무엇인가? 또 과연 무의식은 한 가지 상태인가? 무의식에도 여러 가지 단계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뇌의 비밀 즉 의식의 비밀에 한걸음 다가갔다고 선언할 수 있지 않겠어요?
▲ <꿈도둑>(미셸 주베 지음, 이세욱 옮김, 아침이슬 펴냄). ⓒ아침이슬 |
강양구 : 방금 <인셉션> 얘기를 하니까 소설 하나를 언급하고 넘어갈게요. 프랑스의 과학자 미셸 주베가 쓴 <꿈 도둑>(이세욱 옮김, 아침이슬 펴냄)인데요. 주베는 앞에서 언급한 '렘 수면'에 최초로 관심을 가지고 그 특성을 해명한 과학자인데요. 그는 2004년에 쓴 이 소설에서 바로 이 렘 수면 단계에서 꿈을 조작하면 타인의 인격을 바꿀 수 있으리라는 설정을 선보입니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자신의 일관된 정체성, 즉 '자아'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놓고도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더구나 우리는 암묵적으로 자신의 자아가 굉장히 강하고 고정된 것이라고 간주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주베는 그런 가정을 비웃죠. (웃음)
이 소설은 주베가 쓴 두 번째 소설인데요, 그가 1992년에 쓴 첫 번째 소설 <꿈의 성(Le château des Songes)>도 번역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은 18세기에 꿈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했던 과학자(?)의 얘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김승환 선생님 같은 분들의 선구자의 행적을 소설로 기록한 책이라고나 할까요? (웃음)
김승환 : <인셉션>이 주베의 덕을 톡톡히 봤군요. 정말로 의식, 무의식 심지어 자아에 대해서도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아요.
ⓒ프레시안(손문상) |
김상욱 : 대화를 할수록 명확해지기는커녕 머리만 복잡해집니다. (웃음)
김승환 : 그럼, 제가 더 복잡하게 만들어 드리죠. (웃음) 기왕에 자아 얘기도 나왔으니까, 자아의 정의는 뭔가요?
강양구 : 국어사전의 정의요? (웃음)
김승환 :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이라고 나옵니다. "대상의 세계(환경)와 구별된 인식이나 행위의 주체"이며 "체험 내용이 변화해도 동일성을 지속하는 (…) '의식'의 통일체"라는 설명도 덧붙여 있죠. 금방 알겠지만 이런 설명 자체가 일종의 순환 논법의 오류예요.
왜냐하면, 도대체 '의식'이 무엇인지 모르니까요. 이런 상황에서는 "자아는 곧 의식하는 주체"고 "의식하는 주체는 곧 자아"라는 식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죠. 그럼, 의식은 도대체 뭘까요? 1994년에 의식에 관한 국제 학회가 처음 열렸어요. 이 자리에서 철학자, 심리학자, 인지과학자, 뇌과학자, 물리학자, 컴퓨터 엔지니어 등이 다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 전에 거의 20년 만에 다시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주제가 '디파이닝 콘센서스(defining consensus)'예요. 그러니까 다양한 학문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의식을 주제로 얘기를 시작한 지 20년이나 지났지만 도대체 의식이 뭔지를 놓고서 '정의'조차도 합의하지 못한 게 지금의 현실이라는 겁니다.
이명현 : 일단 의식이 뭔지 정의가 되어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도 짓고, 또 아까 언급한 정량화도 시도할 수 있을 텐데요.
김승환 : 그런데 의식이 뭔지 정의를 해도 난점이 생기죠. 예를 들어서, 의식을 일단 정의를 했어요. 그러면 어떤 주체가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판정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이 될 거 아닙니까? 이제 커튼을 쳐놓고 상대방과 '튜링 테스트'를 하듯이 대화를 하는 거예요. 대화 결과 상대방이 '의식을 가졌다'고 판정했는데, 커튼을 열어보니 거기에 컴퓨터가 있으면 어떡할 거예요.
(튜링 테스트는 컴퓨터 과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과학자 앨런 튜링(1912~1954년)이 1950년 고안한 기계와 사람을 구분하는 테스트다. 튜링은 이 테스트를 통과한다면, 그 대상이 (사람이든 기계든)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해도 된다고 믿었다. 튜링은 2000년에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가 나오리라고 예상했지만, 현재까지 이 테스트를 통과하는 기계는 없었다.)
김상욱 : 그것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재미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0부터 1씩 더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 '결과가 음수면 정지하라'고 단서를 달아 놓았어요. 결과는 계속해서 양수가 나올 테니, 이 프로그램은 무한 반복하겠죠. 그럼, 이렇게 무한 반복되는 프로그램을 미리 판별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 수 있을까요? 이게 바로 '정지 문제(Halting Science)'입니다.
▲ <황제의 새마음>(로저 펜로즈 지음, 박승수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펴냄).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1936년에 튜링은 이런 '정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입증했죠. 이 대목에서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등장합니다. 그는 <The Emperor's New Mind(황제의 새 마음)>(박승수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펴냄, 1996년(원서 : 1989년))에서 흥미로운 가설을 제기합니다.
펜로즈에 따르면, 만약 인간의 두뇌가 0과 1의 이진법에 기반을 둔 컴퓨터와 같은 알고리즘이라면, 그러니까 정교한 컴퓨터에 불과하다면 언젠가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튜링이 증명한 것처럼 컴퓨터에는 무한 반복이 불가피한 프로그램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들어서 탑재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그런 폭주 상태에 빠지지 않거든요. 아무리 모호한 상황에서 시간은 걸릴지언정 결국 결정을 내리죠. 펜로즈는 그렇다면 인간의 두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기계, 즉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간주했어요.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결코 인간의 두뇌를 흉내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거죠.
강양구 : 그럼, 펜로즈가 내놓은 대안은 무엇입니까?
김상욱 : 펜로즈는 자기가 보기에는 다양한 상황에서도 의사 결정을 자유자재로 인간의 두뇌가 가능하려면 양자 역학적인 접근이 불가피하다고 여겼어요. 양자 역학은 온-오프(0과 1)와 같은 흑백 논리가 아니라 확률이니까요. 그렇다면, 뇌의 어딘가에 양자 역학이 통용이 될 수 있는 미시 세계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한동안 뇌에서 그런 부분을 찾는데 과학자들이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죠.
그런데 결국에는 양자 역학의 중첩 상태가 가능할 정도로 작은 공간을 뇌에서 찾지 못한 모양이에요. 현재로서는 펜로즈의 주장은 가설에 머물렀죠. 개인적으로는 뉴런과 뉴런의 연결 부위인 시냅스는 원자(이온) 몇 개가 움직이는 상황도 많기 때문에 양자 역학이 작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온도가 너무 높긴 하지만요.
김승환 : 펜로즈의 그런 견해가 한 때 주목을 받았었죠.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입니다. 뇌는 우리가 경험하는 보통의 생태계와 비슷한 환경입니다. 양자 역학이 작동하기에는 너무 두껍고, 잡음이 많아요.
다만 펜로즈의 지적은 의미가 있습니다. 아까도 다수의 물리학자가 사로잡혀 있는 환원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얘기했습니다만, 뇌나 의식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접근으로는 한계가 명백하다는 걸 논리적으로 보여준 거죠. 그러니까 물리학을 비롯한 기존의 과학적 방법론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의식의 비밀에 결코 다가서기 어려울지 몰라요.
▲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
왜 인간인가?
김상욱 : 우리가 너무 인간만 얘기하고 있는 같아요. 사실 뇌 속에 들어있는 신경망은 아메바와 같은 원생생물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그 다양한 생물의 신경망의 분포 가운데 분명히 분기점이 있지 않겠어요? 그 분기점에 주목하면 뭔가 단서가 나오지 않을까요?
김승환 : 좋은 지적이에요. 우리를 괴롭히는 어려운 문제 중 하나가 '인간에게 있는 의식이 과연 동물에게도 있느냐' 이런 질문이거든요. 어쨌든 아메바에는 분명히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쥐의 경우에도 인간과 비교할 만한 의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다시 의식의 정의로 돌아가는데요.
김상욱 : 의식이 없다고요?
김승환 : 네, 저는 의식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의도'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보죠. 쥐 앞에 레버를 두 개를 제시하면, 그 쥐는 의도를 가지고 그 중 한 개를 당기는 게 아니죠. 무작위로 당겨봤다가, 오른쪽 레버를 당기면 먹을 것이 나오고 왼쪽 레버를 당기면 전기 충격이 나오니까, 나중에는 오른쪽만 선택하는 거거든요.
이렇게 학습한 쥐의 뇌를 보면 오른쪽을 당기기 전에 특정한 뇌파의 신호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신호를 과연 의식 활동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저는 각 모듈에서 보내는 정보를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의식의 실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동물의 정보 통합 능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가 관건이겠죠.
지금 침팬지와 같은 유인원은 물론이고 고양이 등을 놓고도 시각으로 접근하는 의식 연구는 많이 진행 중입니다. 그런 연구 성과가 쌓이면 동물도 과연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또 인간과 어떤 면에서 같고 다른지에 대해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참, 또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경우에 태어난 다음에 언제 의식이 생겨날까, 이런 질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 4월 19일자 <사이언스>에 나온 논문에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어요. 5개월 아기의 뇌파를 분석했더니 어른의 뇌파와 거의 비슷한 의식 수준을 보였다는 거예요. 이전에는 아기의 의식은 15개월 이후에나 발생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기를 무려 10개월이나 당긴 거죠. (☞관련 논문 : A Neural Marker of Perceptual Consciousness in Infants)
강양구 : 어떤 실험이었나요?
김승환 : 아기들에게 얼굴 사진을 보여줬어요. 처음에는 빠른 속도로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천천히 보여주면서 아기들이 좀 더 주의 깊게 사진을 볼 수 있도록 만든 거죠.
실험 결과가 아주 흥미로워요. 처음에 빨리 사진을 보여줄 때는 어른의 무의식 상태에 해당되는 빠른 뇌파가 관찰되다가, 나중에 천천히 보여줄 때는 의식할 때의 성인의 뇌파와 흡사하게 나타난 거죠. 12개월에서 15개월 사이의 아기는 이런 경향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나고요.
강양구 : 그 실험 결과는 경험적으로도 맞는 것 같아요. 우리 아기가 10개월인데 거의 의식이 또렷한 것 같거든요. (웃음)
김승환 : 이런 실험 결과는 그 의미도 남달라요. 왜냐하면, 의식의 형성에서 외부 환경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요. 태어난 아기가 비록 5개월밖에 안 되었지만 환경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습득한 정보를 통합해서 처리하고 그런 속에서 의식이 생긴다는 거니까요. 아기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정보 통합 능력을 키우고 있는 거죠.
강양구 : 오늘 과학 수다를 꿰뚫는 질문은 '왜 인간인가' 같군요.
▲ <왜 인간인가?>(마이클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정재승 감수, 추수밭 펴냄). ⓒ추수밭 |
김승환 : 마침 뇌과학의 '구루(Guru)'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가자니가가 쓴 책 제목이 <왜 인간인가>(박인균 옮김, 추수밭 펴냄)입니다. 이 책에서 가자니가는 인간다움의 특별함이 '뇌의 사회성'에서 온다고 주장합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사회적으로 진화한 엄청난 노하우가 뇌의 회로에 축적되었다고 보는 거죠.
인간은 서로 사회적 행동을 관찰하며 협동과 경쟁의 양면성, 비사회성의 위험 등을 학습하며 우리 뇌의 사회적 본성을 최적화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는 거예요. 이런 가자니가의 통찰은 앞에서 살펴본 연구 결과와도 통하죠. 인간의 의식이 형성되는 데 타인을 포함한 주변 환경과의 상호 작용이 중요하다는 얘기니까요.
그러니까 의식의 비밀을 파헤치는 뇌과학은 곧 '왜 인간인가' 바로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호롱불을 겨우 켠 수준이지만 앞으로 뇌과학이 인간다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러니까 그 생물학적인 기반이 무엇인지 해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봅니다.
김상욱 : 그런데 지금은 앞으로 뇌과학의 성과가 축적되면 심각한 윤리적인 문제를 낳을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아까 인간의 정체성을 조작하는 영화나 소설의 설정을 언급하긴 했습니다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뇌과학이 발전할수록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될 것 같아요.
▲ <뇌로부터의 자유>(마이클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추수밭 펴냄). ⓒ추수밭 |
강양구 : 마침 가자니가가 최근에 낸 책이 <뇌로부터의 자유>(박인균 옮김, 추수밭 펴냄)입니다. 이 책에서 가자니가는 바로 그 문제를 짚고 있죠.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또 한국에서도 살인 혹은 강간과 같은 중죄를 저지른 죄인들이 변호사를 앞세워 이렇게 항변을 한다는 거예요. '내 탓이 아니라, 뇌 탓이다!' 가자니가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서 단호하게 비판하죠.
가자니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사회의 여러 가치는 둘 이상의 뇌가 상호 작용하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범죄자의 형량을 판단할 때 그 사람 뇌의 이상 유무에만 초점을 맞추는 건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하죠. 그는 심지어 요즘에는 이런 식의 주장에 혹하지 않도록 판사나 검사를 교육시키는 일도 하고 있답니다. (웃음)
김승환 : 앞으로 뇌과학이 발달할수록 또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영화 속에서 그려졌던 디스토피아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런 맥락에서 윤리 논쟁도 활발해질 거예요. 저는 과학자들이 그런 논쟁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가나지가처럼 과학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을 경고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죠.
ⓒ프레시안(손문상) |
뇌과학, 판도라의 상자인가
김상욱 : 뇌과학이 발달하면 정말로 예측하지 못했던 파국적인 상황이 도래할 것 같아요. 인간이 자기 자신의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했을 때, 심지어 그것을 조작할 가능성이 생겼을 때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요? 생명공학이 가져올 문제보다 훨씬 더 큰 재앙을 낳을지도 몰라요.
김승환 :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하죠. 캐시 허치슨(59)의 극적인 사례가 있잖아요. 작년 4월이었던가요? 뇌졸중으로 15년 동안 팔다리를 포함한 전신이 마비되었던 허치슨이 자기 스스로 모닝커피를 마시는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죠. 그는 자기 팔이 아닌 로봇 팔을 이용해 빨대로 커피를 마시는 데 성공했습니다. (☞바로 보기)
어떻게 했을까요? 허치슨의 뇌를 연 다음에 오른손과 왼손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뇌의 한 부분에 전극을 이식한 거예요. 이 전극은 뇌파를 컴퓨터로 보내서 번역한 다음에 로봇 팔로 보냅니다. 그러니까 로봇 팔은 허치슨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15년 만에 자기 의지대로 모닝커피를 마셨을 때의 짜릿한 기분을 상상할 수 있겠어요?
이스라엘의 한 팀은 프랑스에 있는 로봇을 통해서 입력된 시각 정보를 이스라엘에 있는 사람의 뇌에 연결하는 실험을 했어요. 그런데 분명히 로봇을 통해서 입력된 정보인데, 마치 자기가 진짜로 프랑스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거예요. 영화 <아바타>에서 보여준 현실 공간의 '아바타'와 다를 게 뭔가요?
전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점점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어떤 짓을 했는지 또 얘기해 줄까요? 올해 3월에 쥐 두 마리의 뇌를 연결했어요. 그런데 쥐 한 마리는 브라질에 있고 다른 한 마리는 미국에 있어요. 브라질에 있는 쥐의 뇌파 신호를 미국에 있는 쥐한테 인터넷으로 전송을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브라질에 있는 쥐가 왼쪽 레버를 움직이면 미국에 있는 쥐도 왼쪽 레버를 움직입니다. 행동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같은 행동을 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죠. 이 짓을 한 과학자들은 '자기들이 뇌 2개로 하나의 새로운 뇌를 창조했다'고 주장합니다. 좀 세죠? 하지만 이런 게 가능하면 이거야말로 말 그대로의 '집단 지성' 아닌가요?
강양구 : 정말 모든 사람의 뇌를 연결한다는 SF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현실에서 가능해졌군요. 정말로 레토릭 수준이 아니라 진짜 '집단 지성'이 가능하겠네요.
김상욱 : 그런데 이미 인터넷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요? 유저 한 사람 한 사람이 뉴런이 되어서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식이요. 오늘 얘기를 듣고 보니, 어쩌면 인터넷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의식이 이미 창발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웃음)
김승환 : 사실 SNS(사회 연결망 서비스)를 보면, 뇌의 신경망과 비슷합니다. 서로 모방하고, 협력하고,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정보를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행태가정말로 뉴런의 네트워크와 비슷하죠. 그리고 정말로 SNS에는 집단적인 의식의 흐름이 있는 것도 같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이 인터넷-집단 지성이 자기 스스로 말을 걸어올지도 모르죠. (웃음)
김상욱 : 그러니까요. 우리가 모를 뿐이지 이미 인터넷에는 새롭게 만들어진 자아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김승환 : 그게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스카이넷'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죠. (웃음)
강양구 : 기자들끼리 하는 우스갯소리입니다만, 트위터와 같은 SNS를 열심히 하는 지식인이 하나 같이 비슷한 패턴으로 망가지거든요. 혹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인터넷의 초자아가 그런 쪽으로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SNS를 열심히 하면 자기도 모르게 자아가 바귀는 거죠. (웃음)
김승환 : 그런 일이 있었군요. (웃음) 이제 오늘의 수다를 정리합시다. 마지막으로 물어보죠.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정말 팽이는 돌고 있습니까? (웃음)
이명현 : 우울해지네요. (웃음) 우리가 많이 알았잖아요. 우리 몸의 구성 요소가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생성되었다는 사실도 알았고, 또 지금의 우리가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도 알았죠. 그리고 이제는 자기 자신의 의식이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도 알 듯하고요. 어떻게 생각하면, 이제 생물 종으로서 할 일을 다 했으니 멸종할 일만 남은 게 아닌가요?
김상욱 : 이제 집단 지성이 자살 명령을 내릴 일만 남았나요?
김승환 : 지금 제가 금단의 연구를 하고 있는 건가요? 이거 연구비 받아야 하는데, 오늘 수다는 오프로 하면 한 되나요? (웃음)
ⓒ프레시안(손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