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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22구간(도래기재-화방재)산행기
평소 백두대간 산행 때가 되면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나섰는데 이번에는 갈까 말까 망설이다 나섰다. 오늘 아침 이청준 선생님의 빈소에 다녀오면서 내일 장례식에 참가해야 되지 않나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몇 년전 그 분을 모시고 가진 문학기행 행사에서 뵌 후로 몇 년새 가끔 편지를 주고받았었다. 그 때 그 분의 고향이자 문학적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장흥 일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분의 생가를 비롯해 천관산, 학산 그리고 눈길에 나오는 정류장 등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온자서 그분 고향마을을 홀로 산책했었다.
그 후 내가 ⌜한국전통건축의좋은느낌⌟이라는 졸저를 발간하고 보내 드렸을 때 답장이 온 것에 고무되어 안부 인사나 전시 소식 등을 알려 드렸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 때마다 길지 않은 답장과 자신의 책 등을 보내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나에 대한 친분 표시이기보다 평소 가지신 어진 인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엄두를 갖지 않았다. 그런 의식으로 전시 때도 특별히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전시장에 없는 사이 전시장에 비치된 방명록에 그 분의 글이 남겨진 것을 보고 황급히 감사 편지를 드리기도 했었다.
그러다 작년에 언론을 통해 병이 생기셨다는 기사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 빨리 나으시라는 편지를 드렸다. 요새는 암도 초기에 발견하면 낳는 확률도 높아졌다. 기사 인터뷰에서 소설을 한권 더 써서 다시 인터뷰를 갖고 싶다고 하시는 등, 의욕을 내비치셔서 병을 털어내실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힘이 되시라고 올해 첫 날 해맞이 산행 때 그린 스케치를 편지와 함께 보내 드렸다. 그 후 답장에서 선생님은 병조리 잘해서 좋은 소식을 전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더 의욕을 갖게 하시기 위해 내 사무실 옥상의 작은 서재인 일매헌에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전했다. 그런데 3월 하순 마지막으로 소식을 편지가 아닌 팜프렛 안쪽 여백에 적어 보내셨다. 편지로 전하지 않고 그렇게 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의 건강을 화제로 편지를 받고 싶지 않으신 마음을 담아 보내신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내가 보내드린 일매헌의 매화 사진을 보시고 60번 백번 마음 안에서 피어날 거라고 써 놓으셨다. 좋은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심정이 담겨져 있는 듯 했다.
나도 위로한다고 괜한 말을 하게 될까 보아 더 이상 편지를 드리지 않았다. 그 대신 한번쯤 짬을 내어 찾아뵐 때를 생각 했지만 망설이다 가지 못했다. 나야 평소에 가장 존경해온 분이라서 그러고 싶지만, 그분에게 그만한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 들어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다 어제 언론매체를 통해 부음을 들었다. 이번 장례절차에서 장흥에서 노제를 지낸다고 들었다. 그로써 선생님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은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산행에 나서면서는 마음이 어수선했다. 내일 장지를 다녀올까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역시 그렇게 나설 입장일지 망설여졌다. 선생님과는 편지로 마음을 주고받았듯이 그분의 소설속의 선학동 나그네처럼 문득 그리움 속에 연이 닿는 것이 정서에 더 맞을 듯 했다. 그리고 언젠가 홀로 묘소에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1시 15분 강동역을 출발했다. 11시에 가는 것을 모르고 더 일찍 나선다는 것이 늦고 말았다. 기다리던 이 대장이 일찍 왔다고 했다. 근황을 이야기 하고 잠을 청하고 갔다. 1시 20분 단양휴게소에 도착해 식사를 했다. 카운터 앞에서 뭘 먹을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쉽게 눈에 띠는 것을 시켰다. 김치찌개를 시키려다 시간이 너무 걸릴 듯 하여 열무김치 국수를 시켰다. 여름철 별미로 여기고 잇다. 최회장은 송이버섯 육게장을 시키고 이대장은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최회장이 음식이 짜다고 했다. 나도 짜게 느껴져서 별로 맛있는 줄 모른 채 먹고 나왔다.
3시 5분 도래기재에 도착했다. 비교적 너른 국도상이어서인지 지난번 그곳으로 내려오면서 별다른 산행길 감각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단지 출발 구간이라는 것만이 의식되었다. 하지만 오늘 오를 곳은 신비스런 구간으로 들어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 설렘을 갖게 되었다.
3시 7분 산행을 시작했다. 예보에 비가 많이 온다고 했는데 아직 공기가 건조해서 다행이었다. 천둥 번개와 함께 많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듣고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 쏟아질지 불안하였다. 시간 차이가 있을 뿐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각오를 갖고 임했다. 비는 맞을 만큼 맞고 걸어보아서 별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낙뢰는 위험에 당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도래기재에서 태백산 방향으로 가는 대간 길 입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 터널의 정상부까지 올라가는 동안 나무 계단이 놓여 있어 그것을 딛고 터널 위쪽으로 돌아 올라갔다. 그리고 그 다음 산길로 접어들었다. 계단이라 그런지 산행을 시작하는 발걸음이 팍팍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걸음이 편해지겠지 하고 생각했다.
한동안 오름길에 이어 완만하고 평평한 길에 접어들었다. 길 가에 잡풀 무성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윽고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기어코 직면하는구나 하고 긴장이 되었다. 하지만 금새 빗줄기가 세차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생각한 바대로 염려하는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단시 시야가 뿌해지고 공기에 습기가 머금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바람이 시원했다.
3시 20분 완만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도상 고도표에서도 이번 구간은 크게 힘들 것 같지 않았다. 앞에 남은 구간의 몇 곳을 다녀 본 이대장이 남은 구간 가운데 두타-청옥과 설악산 구간이 가장 어려울 거라고 했다. 길을 가는 동안 가끔 큰 금강송 소나무도 보였다. 그 인근에 자라는 나무를 춘양목이라고 부르는데 춘양이 가까워 그런 나무들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3시 25분 출발지점으로부터 500m 지난 지점을 지났다. 우측 능선 너머로 가까이 마을 불빛이 보였다. 일제 시대부터 금광 등이 개발 되면서 탄광촌을 이루게 된 곳들이 있는데 이 곳도 그런 계기로 형성된 마을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3시 37분 완만한 길을 걸었다. 산책길 같이 편안했다. 비도 흐지부지 그쳐 있어서 공기도 비교적 건조했다.
3시 53분 도래기재에서 1.62km 온 지점에 당도했다. 거기서 구룡산은 3.92km가 남았다.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하자 첫 번째 임도가 나타났다. 그 곳에 잘 만들어진 벤치가 몇 개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안개 비 나무 잎 물기가 맺혀 떨어졌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물방울이 소낙비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다시 오르막길을 걸어 4시 10분 봉우리 정상에 닿았다. 그 곳은 작은 헬기장인데 길은 좌로 방향이 꺽여 있었다. 주변의 숲이 무성한 길을 걸어가니 5분후 3-7 벤치가 나타났다.
4시 20분 완만한 내리막 길을 걷는 동안 우측에 마을 불빛이 보였다. 안개가 자욱해진 떡갈나무 숲을 지났다. 4시 23분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정자가 나타났다. 구룡산이 1. 56km 남은 지점인데 근처에 인근 지도와 구룡산 이름의 유래를 적은 글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백두대간이 신선봉-지리산까지 683.15km라고 적혀 있었다. 거기에는 뱀이 용이 되어 승천할 때 물동이를 이고 가던 아낙이 뱀 보라며 꼬리를 잡아내려 용이 떨어졌다고 했다. 지난번 식사를 위해 찾아든 정자가 무척 살가웠지만 이번에는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위치여서 그런지 지난번보다 소중한 느낌이 덜했다.
4시 32분 정자를 출발해 오름길 계단을 걸어 올랐다. 안개비에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비처럼 떨어졌다. 4시 54분 다시 벤치가 놓인 곳을 지났다. 앞쪽을 바라보니 어둠 속에서 정상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나무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져서 신발 등을 적셨다. 앞에 보이던 봉우리를 오르니 다시 내림길이 이어지고 그 너머로 봄 더 큰 봉우리가 보였다.
5시 3-1 팻말을 지나 다시 오르막길을 걸었다. 우측 빨간 동자꽃이 보였다. 거리로 보아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구룡산일 것 같았다. 안개비가 자욱이 내려 마치 이 산 이름을 지은대로 용의 승천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였다.
5시 7분 구룡산 (1345.7)에 도착했다. 도래기재까지 지나온 거리가 5.54km인 지점이다. 그리고 앞으로 갈 부소봉까지는 14.2km이다. 막상 오른 구룡산은 신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표지에 그 구룡산부터 산불확산저지 방화선을 설치했던 구간이라고 소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길 주변이 밋밋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날이 좋으면 시야가 확 트일 것 같았다. 그리고 인근의 마루금과 태백산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쉬면서 랜턴을 껐다. 다시 훤해진 새벽을 맞았다. 안개 옆으로 날리며 나뭇잎에 물방을을 맺게 했다. 뒤에 도착한 최회장 부부가 종아리부근에 비에 신발이 젖지 않게 하려고 공업용 고무장갑을 가공해 두르고 있었다. 지난번 홀대모에게 예기를 듣고 준비해온 듯 했다.
비가 많이 올거라고 들은 예보를 생각하니 지금까지 별로 비를 맞지 않고 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번에 참가한 일행은 근래 대간 산행중 가장 적었다. 최회장 부부, 이대장, 채총무 그리고 강성택 건축사와 나를 포함해 6명이었다. 이번에 참여 인원이 적은 것은 비소식의 영향도 있을 것 같았다.
5시 27분 구룡산을 출발했다. 좌측 영월군 상동읍을 말발굽처럼 돌아가는 구간이다. 좌측은 강원도 영월땅, 우측은 경상북도 봉화이다. 다행히 비가 오고 있지 않았지만 예보대로라면 큰 고생을 하게 될 판이지라 마음 한편에 부담을 안고 걷고 있었다. 이제 겨우 1/4정도 걸었을 뿐이어서 아직 갈 길의 형편을 가늠할 수 없었다.
길 가에 맷돼지가 파헤진 흔적이 보였다. 뒤집힌 흙의 상태로 보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길가에 5-28이라고 새로운 번호의 팻말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500m 마다 세워 놓는 그 팻말의 숫자가 너무 많게 느껴졌다. 그 숫자가 다 줄어들도록 가려면 14km가 넘는 길을 걸어가야 하는 구간이었다. 이 표시가 끝나는 지점에 부소봉이 있고 그 산봉우리에서 태백산까지는 0.7km 정도 되었다. 그런 만큼 단지 태백산을 목표로 의식하며 걷는 구간인 샘이다. 그 것을 생각하니 너르고 큰 태백산의 품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길은 전체적으로 완만한 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가는 동안 특별한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다. 소백산은 자태가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은 별로 보여지는 것이 없었다. 느릿하게 밋밋한 육산을 걸어가는 과정이었다. 길 가에 비비추, 옥잠화 꿩의 다리 빨강, 노랑꽃이 보였다. 5시 44분 5-27 표지를 지나며 이대장이 “길은 되게 좋네...하며 걸었다. 그 말대로 편안한 길을 걷고 있었다. 갈을 걷는 도중 숲 속에서 모습을 보지 못한 큰 새가 푸드득 날아가고 있었다.
5시 50분 항이동 갈림길에 도착했다. 거기가 고직령인 듯 했다. 항이동 2.0km 곰넘이재 3.63km 로 쓰여 있었다. 다시 길을 나서 노랑색 마타하리 꽃과 잡목숲을 지났다. 그리고 5시 55분 자작나무의 두 줄기중 한 줄기가 무너져 넘어져 있는 곳을 지났다.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우측 산세 너머가 밝아짐이 느껴왔다. 그리고 새소리를 들으며 5-25 표지를 지났다. 길가에 솟아난 버섯이 보였다. 5-24를 지나 6시 7분 길림길 좌측으로 가다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길에 직각되게 줄줄이 띠를 그린 버섯이 몇 번 보였다. 그리고 잔잔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길을 걸어갔다.
6시 15분 곰넘이재에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참새골 입구라는 표지가 눈에 띠었다. 구룡산 5km 차돌배기 6km 남은 곳이었다. 옆에 세워진 표지판에 곰넘이재는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러 오르는 사람들이 다니던 길목이라고 되어 있었다. 문헌 영가지(永嘉誌)에 웅현(熊縣)으로 표기 된 것을 곰넘이재라고 부른다. 이 곳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들어서는 길목이었다.
6시 25분 휴식을 마치고 그 곳을 출발해 계단 오름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쏴아 하고 바람 소리가 들렸다. 길 좌측은 강원도, 우측은 경상도인 경계가 되어 있었다. 이 대장이 “넓은 길이라 방화선 분위기 나네” 하고 말하며 걸었다. 6시 30분 5-22, 6시 38분 5-21 표지를 지나는 동안 나무를 둥글게 깍아 깔아 놓은 레일이 있는 곳을 지났다. 그 레일은 운반 장비등을 운반할 때 쓰였을 것 같았다.
6시 45분 평평한 길 산고개 길이 느릿하게 나 있었다. 오늘 대부분의 구간이 이런 느낌이었다. 가장 큰 기운을 지녔다는 태백산을 편한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 급히 높게 오르는 것이 아닌, 혜량할 길 없이 서서히 큰 품 안에 안겨가는 양상이었다. 거대하고 큰 산을 마주하며 느끼는 것과 가른 느낌이었다. 길 끝에 안개 자욱하게 트여 보였다. 계속되는 팻말이 보였다. 산사랑방 꼭지의 표지기가 보이자, 이대장이 그들이 쓴 산행기를 보니 너른 길이 신선봉 20분전에 끝난다고 되어 있다고 했다. 그 길은 경운기가 다닐 만한 만큼 넉넉해 보였다.
6시 47분 5-20 표지를 지났다. 그리고 잠시 후 6시 50분 길 좌측에 묘를 보며 지나 계단길을 올랐다. 거기서 너른 길이 끝나고 좁은 산길이 시작되었다.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길에 꽃과 낙엽에서 흘러 내린 흰 꽃가루가 회가루 뿌려 놓은 듯 자국이 있었다. 산죽밭 길을 걷기 시작하자 이대장이 “아이고 옷 다 젖는다...” 고 했다. 6시 55분 신선봉을 오르는 가파른 오름길을 걸었다. 그 길은 계단이 번갈아 나타났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길가 숲을 보니 농익듯 무성해지고 있었다.
7시 2분 신선봉에 도착했다. 곰넘이재를 1.9km 지나오고 깃대배기봉이 5.1km 남은 지점이었다. 뜻 밖에 정상부에 무덤이 있었다. 묘지석에 ⌜처사경주손공영호지묘⌟라고 쓰여 있었다. 그 표지를 보며 경주 손씨 세거지인 경주 양동마을이 떠올랐다. 일행은 이곳에 어떻게 묘를 썼을까 하고 말들을 했다. 아까 지나온 곰넘이재를 지나오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일 것 같다며 그 쪽으로 올라왔을 것이라고 했다. 일행이 비가 오는지 모르게 부슬비가 내리는 상태라 고추잠자리의 날개에 이슬비가 젖어 있어 일행에 놀라 날아 오른 잠자리의 날개짓이 활달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7시 16분 그 곳을 출발해 우측으로 급히 꺽인 내리막길을 걸어갔다. 좌측에서 거센 바람소리가 들리고 우측은 짙은 안개 바다 같았다. 길 주변에 산죽이 많이 눈에 띄었다. 7시 21분 5-18, 7시 31분 5-17 표지를 지나 떨어지는 내림길을 걸었다. 그리고 7시 41분 5-16, 7시 50분 5-15 표지가 선 안부를 지나 급경사 오름길을 걸어 올랐다.
7시 54분 차돌바위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아갈 방향은 급히 꺽어지는 지점이었다. 지도상으로는 마루금이 시뢰골을 대칭으로 나비 날개 모양처럼 그려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동쪽으로 뻗쳐오던 대간 마루금이 이 곳에서부터 북쪽으로 줄기를 세우고 지나가기 시작하는 지점이었다. 거기서 참새골 입구 6km, 그리고 나아갈 방향에 직각방향으로 석문동이 6km로 되어 있었다.
이대장이 시장하다며 거기서 식사를 하고 가자고 했다. 평소에는 더 가자고 했는데 오늘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지도를 보더니 생각이 바뀌었는지 좀 더 가서 먹자고 했다. 앞서 걷던 우리 세사람은 뒤 일행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하다가 더 가서 10번 표지가 나오는 근처에서 식사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거기서부터 점차 고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8시 3분 5-14 표지가 있는 평지길 같은 완만한 길을 걸어가며 큰 참나무 두 그루루가 있는 곳을 지났다. 길을 걷는 중에 가끔 큰 금강송도 보였다. 8시 50분 5-13 표지가 있는 마루금을 지났다. 좌에서 우측으로 시원한 바람결이 지나갔다. 다시 안개 낀 평평한 길을 걷는 동안 좌우로 시야가 트여 보였다. 그리고 8시 15분 5-12 표지를 지나는 동안 다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 곳을 지나가는 동안 길 가에 핀 나리꽃이 눈에 띠었다. 그 꽃은 마칠 생애가 다가 오기전 가장 화려한 맵시를 보이려는 듯 아름다운 빛깔로 피어 있었다. 그리고 길가의 키 낮은 산죽에서 흘러내리는 물기가 많아서 옷과 신발이 금새 젖고 있었다. 일행이 “길은 좋고만” 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8시 25분 5-11 표지를 보며 지나갔다.
길을 가다보니 앞쪽에 의자 3개가 놓여 있는 평평한 곳이 눈에 띠어 거기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이 대장이 이 곳이 식사장소로 지도에 표시한 곳이라고 했다. 옆 나무에 샘을 표시한 표지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아예 나무에도 泉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는데 나무가 자라는 데로 점차 글씨가 커진 듯 했다. 샘이 궁금하여 작은 패트병 3개를 들고 물을 길어 오겠다며 나섰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 미끄러웠다. 길 끝에 다다르니 샘은 보이지 않고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서 그 물을 길었다. 큰 비가 오지 않은 상태라 건수가 아닐 듯 했다. 다시 올라오며 위쪽을 보니 큰 고목이 넘어져 있어서 태고적 분위기를 풍겼다.
다시 식사 장소로 돌아오니 점심 먹을 차비를 하며 펼쳐 놓고 있었다. 이대장이 추운 일행에게 주려고 라면을 먼저 끓였다. 소주를 마셨다. 프라스틱 그릇 뚜껑 바람 막이하다 가스불에 타고 말았다. 강건축사가 사모님께 혼나지 말고 집에 가기 전 사가지고 가라고 했다. 잠시 후 뒤에 오던 최화장 부부와 채총무 일행이 도착해 함께 식사를 했다. 라면, 커피, 황도통조림 오징어 채 오이고추 양파 등 맛있는 식사를 했다. 황도 통조림을 갖고 온 이대장은 그것을 간스메라고 불렀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식사를 마치고 9시 30분 출발했다. 주변의 큰 떡갈나무 숲을 보며 좋다고 했다. 길을 걷는 동안 내려가 물을 떠 온 개울물소리가 들리고 주변이 훤해져 있었다. 앞에 막혀 보이던 능선마루를 지나 완만한 오르내림길을 걸었다. 8시 36분 5-10 좌측 벼락 세로로 나무줄기가 쫙 맞아 갈라진 큰 나무가 보였다.
다시 급경사 오름길을 걸었다. 깃대배기봉을 오르는 구간이었다. 좌로 꺽여진 길을 지나 계속해서 오름길을 오르는 동안 맷돼지가 파헤친 흔적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바람소리가 동해 바다가에서 듣던 소리처럼 들렸다. 앞서 오르는 이대장이 땀이 나자 식사 후 입었던 자켓을 벗었다. 9시 46분 5-9를 지나 오름길을 올랐다. 다시 맷돼지 자국이 보여. 마주치면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9시 49분 작은 봉 넘음 다시 앞에 봉우리를 보며 올랐다. 잠시 후 목재 데크 깔린 곳이 나타나 걸어 올랐다. 잠시 후 지그재그 난 오름길을 걸었는데 경사도는 중간정도였다. 주변에 계속해서 맷돼지 흔적이 보였다. 혼통 파헤친 곳에 정작 먹을 것이 얼마나 나올까 생각이 들었다. 주둥이로 쟁기질 하듯 파헤쳐서 먹을 것을 구하니 참 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구간에서 가끔 산짐승 흔적을 보았을 때는 신기하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너무 흔하게 보이자 그런 느낌이 사라지고 말았다.
10시 깃대배기봉(1370)에 올랐다. 지나온 차돌배기에서 3.6km지나고 부소봉이 3.26km, 남은 지점이었다. 그리고 두리봉이 0.3km 라고 적혀 있었다. 봉화군에서 세운 자연석으로 만든 정상석이 편하게 다가왔다. 지나온 봉우리들에는 매끈하게 깍아 만든 작은 정상석이 더 많았다. 그러나 정상석이 있는 지점이나 주변이 모두 평퍼짐하게 연속되어 있어서 정상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10시 13분 다시 그 곳을 출발해 완만한 길을 걸어겄다. 여기서도 바람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10시 17분 산림청에서 세운 깃대배기봉(1368) 정상석이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여전히 정상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다시 길을 나섰다. 그 곳 길가에도 계속해서 맷돼지 흔적이 보이자 이 대장이 “맷돼지식탁인갑다” 라고 말했다. 방금전에 파헤친 듯한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맷돼지와 맞닥뜨렸을때 어떻게 할거냐고 하자 이대장이 “내가 맨 앞에 있는데 뭘...“ 하며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걸었다. 맷돼지는 저돌적이고 만첩하여 사람이 맨몸으로 대항하기 어렵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새끼를 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나타나지 않으면 먼저 피해 간다고 했다. 10시 19분 5-7을 지나 다시 데크가 깔린 길을 걸었다.
깃대배기봉을 지나서부터 길가에 많이 보였인 산죽길을 걸었다. 가다보니 줄기가 다섯갈래로 나눠진 자작나무가 보였다. 이어지는 길은 평온한 내리막길이었다. 길가에 등자꽃이 보였다. 그리고 파도소리 같은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차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앞쪽 길에 짙은 안개가 끼어 참나무 가지가 추상화처럼 보인다. 완만하고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동안 다시 얼마 안된 맷돼지 흔적이 보였다. 오늘 아무래도 한번쯤 맷돼지와 맞닥뜨리게 될 것만 같아서 이대장에게 조심하며 가자고 했다.
10시 34분 5-5 팻말 숫자 28이 5로 줄어 있었다. 하나씩 지나치는 동안 남은 거리가 가늠되었다. 10시 43분 5-4 표지를 지났다. 거기서 부소봉까지 2.5km정도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완만한 능선과 봉우리를 넘어 다시 완만한 오름길을 걸었다. 바람이 불고 안개가 더 자욱해진 생태였다. 10시 48분 5-3 표지에서 약간 오름길에 산죽과 굵기가 작은 떡갈나무 숲을 지났다.
잠시 시야가 트인 곳을 가다보니 비 오는 소리가 났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려나 보다 하고 긴장을 했다. 지나는 곳은 바람골인양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좌측 능선에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런데 숲길을 지나가자 바람이 고요해졌다.
10시 52분 안개 낀 내리막 길을 걷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내리는 길을 걸었다. 그 곳 길바닥에는 파편 같은 자갈이 깔려 있어 걷기가 조금 불편했다. 10시 56분 5-2 팻말을 지나치니 우측에 보이는 맷돼지 가 파헤진 흔적이 길처럼 보였다. 계속해 오름길을 걸어 11시 부소봉 갈림길을 지났다. 그 곳에서 부소봉(부쇠봉)0.4km 태백산 1.3km였다. 백현계곡 5km 갈림길이었다. 봉우리를 우로 돌아가는 길이 잡풀로 칙칙했다. 이 대장이 우리가 걷는 그 길이 잘 안다니는 길이라고 했다.
부소봉을 지나면서 온전히 강원도 땅에 들어서 시야가 트이는 길을 걸어갔다. 천재단 0.7km 남은 지점인데 부소봉 정상을 넘어와 만나는 지점이었다. 갈을 가는 동안 이따금 주목의 고사목이 보이자 고산지대 느낌이 들었다. 뒤에 걷던 강 건축사가 “아 이제 태백산 같다”고 했다. 거기서도 맷돼지 흔적이 보였다. 11시 7분 문수봉 2.2km 천재단 0.8km 거리가 쓰여 있었다. 강남 건축사 등산동호회에서 예전에 태백산을 다녀 갔는데 그 때는 오늘과 거꾸로 천재단을 넘어와서 석탄 박물관으로 내려 갔었다고 했다.
11시 15분 하제단에 당도했다. 그 옆에 병조참판 통정대부 밀양박씨 묘가 있었다. 안개가 자욱이 끼어서 소슬한 느낌이 들었다. 하제단은 거친 편마암 돌을 쌓아 만들어 놓았다. 그곳 표지에 중요민속자료 제228호 태백시 소로동및 별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단 천제단, 그리고 장군봉, 그렇게 3곳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다시 정상을 행해 걸어가 11시 25분 천제단(1566.7)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해 흐릿하게 보여 더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안개속에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가늠할 수 없었다. 오르는 길 부근에 천제단을 조성한 유래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정표에 문수봉 3.0km, 유일사 매표소 4.0km, 사갈령 매표소 4.1km라고 쓰여 있었다. 정상부에는 안축(1282-1348 호 근재, 자 당지)이 지은 다음과 같은 시가 쓰여 있었다.
등천태백
긴 허공 곧게 지나 붉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니
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느꼈네
둥그렇고 밝은 해가 머리 위에 나직하고
사방으로 산들이 눈 앞에 내려 앉았네
몸은 날아가는 구름 쫒아 학을 탄 듯 하고
높은 층계 달린 길 하늘의 사다리인 듯
비온 끝에 온 골짜기 세찬 물 불어나니
굽이도는 오십천을 어떻게 건널까 근심이 되네
다시 일행의 소리 나는 쪽으로 걸어갔다. 가까이 가자 천제단의 모습이 보였다. 안개에 가려진 모습이 그 존재를 더 신비롭게 느껴지게 했다. 검은 돌로 원형으로 담이 둘러쳐 있었다. 그 정상에 잇는 돌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제단이 보였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우비 입은 몸을 가늠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둥그렇게 쌓은 천제단 돌담벽 옆에 서니 그 담이 바람을 막아서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다시 나와 천제단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오늘은 시야가 흐리지만 옆에 부근으로 조망되는 사진이 있어서 상황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천제단 둘레 27.5m, 높이 24m, 좌우폭 7.36m, 앞뒤폭 8.26m 타원형 울타리 자연석 쌓았다. 돌로 아홉단을 쌓아 9단탑이라고도 부르는데 매년 개천절에 제사 지낸다. 그 때 중앙 태극기 칠성기 주변 33천기와 28수기를 꽃고 9종류 재물을 갖춘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곳은 이 영역에 들어선 짐승일지라도 함부로 잡거나 나무도 꺽지 않는다. 그것은 소도와 같은 의미인데 태백산 기슭에는 실제 소도동이 있다.
태백산은 크게 밝은 산이라는 뜻인데, 한자 이름 이전에 우리말로 한배달로 불려왔다. 태백산에 모신 주인공은 한배검이다. 한배검은 환인천제, 환웅천왕, 단군왕검의 삼신일체이다. 환단고기에 태백산에 천제단에서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러나 그 태백산은 백두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곳 태백산은 신령스런 산이라는 인식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산은 무속 신앙의 성지로 여겨지기도 하다. 천제단 바로 아래엔 단종을 산신으로 모시는 산신각이 있다.
태백산은 거대한 육산이다. 그런데 그 산은 우리나라 산 가운데 가장 기가 세다고 들었다. 그 곳이 그렇게 인식해 온 것은 단지 정상부에 제단이 설치되어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그 기운은 빼어난 경관을 보이는 것이 아닌 존재감일 듯 했다. 이 곳은 천지 사방으로 트여 있고 우러를 것은 하늘 밖에 없는 곳이다. 태백산은 북쪽은 큰 산들이 연이어지고 있으면서 남쪽의 낮은 지대 경계에 우쭉 존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세상 사람들이 사는 삶터에 마주쳐 있다. 그리고 그 품이 장엄하게 크고 넓다. 태백산을 성소로 여겨온 선조들의 장소를 보는 감각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산 지대 안에서는 큰 산도 더 빼어나게 인식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11시 50분 하산을 시작해 11시 55분 장군봉을 지났다. 걷는 동안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12시 3분 큰 주목들이 많이 보이는 곳을 지났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말이 있다. 치과 수술받듯이 시멘트 씌운 나무들이 서 있었다. 둘레가 몇 미터 되는 큰 나무도 있었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어서 더 소슬한 느낌이 들었다. 편석이 깔려 있는 너덜길이어서 걷기가 조금 불편했다. 다시 길을 가는 동안 맷돼지 흔적이 보였다.
천제단에서 마루금은 북쪽으로만 뻗쳐 있다. 그런데 내리막길을 걸으며 다시 낮은 지대로 내려가고 있었다. 12시 20분 유일사 갈림길을 지났다. 유일사 경내 100m 유일사 들렀다. 무량수전, 삼성각, 하단에 요사체 등이 있었다. 나는 불전 마당에 서서 불전과 함께 뒤에 산이 어우러져 보이는 장면을 스케치를 하며 독경소리를 들었다. 선한 내용이 음성으로 전해지고 있어서 스케치를 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졌다. 스케치를 마치고 그 곳을 돌아 나왔다. 일행이 멀리 갔을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말 없이 돌아나오는 것이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계단을 걸어 다시 리프트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천제단 1.8km, 사길령 매표소 2.4km, 천제단 1.7km이다. 내려온 지점으로 다시 올라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좌측에 탑이 보여 다가갔다. 3층 석탑이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다시 대간 길을 찾아 한동안 부지런히 갔으나 일행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1시 3분 사길령매표소 1.9km 로 적힌 표지를 지나 앞 봉우리를 넘어서니 좀 더 높은 봉우리 나타났다. 그리고 그 봉우리를 넘어가니 갈림길 표지가 보였다. 지도를 차에 두고 와서 끝 날 지점을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대간 리본만 보고 가면 된다고 생각하고 표지기가 있는 좌측 오름길로 갔다. 그 길은 사길령 휴게소 방향으로 난 길이었다.
1시 10분 다시 앞에 보이던 봉우리에 올랐다. 앞이 막혀 일행의 소리가 더 들리지 않을 듯 했다. 내리막 길을 걸으며 야호 하고 신호를 했다. 두 번째에 응답이 들렸다. 조금 가다보니 뒤에 가던 최회장 부부가 보였다.
1시 15분 사길령 산령각 앞에 도착했다. 거기서 천제단은 3.6km 거리였다. 마주 오던 두 남녀가 산령각 문을 열고 들어가 절을 올린다음 나왔는데, 그들이 문을 열어두고 가려해서 말을 했더니 내부가 건조되게 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그 곳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 같앗다. 그 곳은 사길령 매표소가 0.5km 남은 지점이었다. 표지에 사길령은 경상도에서 강원도 가는 길목으로써 보부상 등이 다니던 길이라고 쓰여 있었다. 높고 험준한 곳을 지나며 무사안전 기원한 곳이다. 그 곳엔 산령각이 있고 그 옆 신목 앞에 정화수 용기가 보였다.
다시 내리막 길을 따라 내려갔다. 사모님이 앞서 걷고 있는 최회장의 모습을 뒤에서 찍으며 가고 있었다. 우측 아래 쪽에 마치 구간이 끝날 것처럼 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숲길 막바지에 세워진 표지판에 “이 지역은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로로 이용되었던 길이니 거동 수상자나 특이사항을 신고 바랍니다.” 라고 써 있었다. 1시 26분 태백산 도립공원 사길령 매표소 도착하니 앞서 걷던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랭지 채소밭에 낮은 지대의 농경지보다 이르게 포기 배추가 탐스럽게 심어 있었다. 그것이 자라면 좋은 상품이 될 것 같았다. 그 밭고랑 사이를 지나 다시 숲길로 들어섰다. 지나는 길에 큰 낙엽송이 쓰러진 곳과 진흙 뻘이 된 길을 지났다. 가다보니 좌측 숲 너머로 집과 학교 등의 건물이 언듯 보였다. 또한 차소리도 들리고 좌우로 트인 게곡 지나가는 길이 느껴졌다. 그 곳 가까이 길을 내려가자 우측 주차장 우리가 타고 온 차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1시 35분 이 구간 종착지인 화방제에 도착했다. 그 곳 휴게소에는 어평제라고 쓰여 있었다. 주차장과 휴게소 건물 그리고 옆에는 고랭지 채소밭이 있었다. 그 주변이 낮고 밋밋하게 느껴졌다. 강원도의 높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선다는 상상과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지날 구간도 사람이 다니고 삶터로 이어진 길이 있는 곳이겟구나 하고 생각되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구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때로 너무 번잡하게 열린 느낌을 갖고 있는 곳을 지날 것처럼, 앞으로 지날 구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될 것 같았다.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자 생기가 돋는 듯 했다. 그 곳에 봍여 놓은 사진에 “고원의 관광태백” 이라고 글씨가 쓰여 있어서 이 지역의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오늘은 그 곳 휴게소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삼겹살에 그 곳에서 나는 배추와 취나물 장아찌 등 독특한 찬거리가 별미를 돋구웠다. 맥주와 소주를 섞은 제조주로 예보와 달리 좋은 날씨에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을 자축하는 건배를 하며 다음 일정 상의했다. 추석 연휴 기간 등을 활용해 예정한 12월 하순 보다 가급적 일찍 대간 산행을 마치기로 했다.
3시 15분 출발 영월 64km 상동 10km 거리가 쓰여 있었다. 지나는 31번 국도는 태백과 영월을 잇는 길이다. 주변에 강원도 특유의 첩첩산중, 비탈진 고랭지 채소밭 등이 보였다. 그리고 많은 산들과 산과 산 사이 깊은 계곡으로 흐르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이 투명하고 맑게 보여 이 곳이 청정한 지역임을 실감케 했다. 내가 한동안 밖을 쳐다보는 보습을 본 “최회장이 산 밖에 안 보이는고만” 이라고 했다. 상동으로 내려오니 상동공군관사, 군민중심희망영월이라고 쓰인 표지들이 보였다. 잠을 자다 4시 45분 제천 박달재 휴게소 들린 다음 6시 30분 서울 강동역에 도착해 해산했다.
(080802)
첫댓글 빗길에 장시간에 걸친 자신과의 싸움에서 잘건져오셨네유...고생하셨습니다
무더운 여름철에 안녕하신지요? 이번에 천둥번개에 150mm의 많은 비가 온다고 예보된 상황을 각오하고 나선 것이 어려운 결심이라 할 수 있지만, 막상 행운인지 부슬비만 맞았습니다. 그래도 나뭇잎에 적신 빗물에 신발까지 다 젓었지만요...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