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먼 옛날에는 드녜프르 분지에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지금은 발트해연안에 살면서 라트비아인과 더불어 오이로피데에 속하며 우리들만의 언어 리투아니아어르 쓰는 이들이 사는 나라.. 13세기 리투아니아공국을 세워서 15세기까진 번성하였지만 계속된 주변국의 침략으로 나라를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 제정러시아의 지배하에서 금기된 민족주의. 율리아는 리투아니어어를 천시하는 상류집안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금지된 리투아니아어를 배웠으며 가난한 농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열여덟살때 일어난 1월혁명속에서 그들의 마을을 이해했으며 실패로 끝나버린 서글픈 민족주의혁명의 협조자가 되어 그 속에서 남편을 만나고 결혼했습니다.. 서른 여덟되던 해 지우지네나이 지방으로 이주해서 20년간 농장을 가꾸며 작품활동을 한 율리아는 3년전 우쳰티스로 이주했습니다. 크리스티요나스 도넬라이티스의 시 메타이를 읽으며 리투아니아어로 쓰여진 그의 서사시 4계절에 심취해보던 시간.
그리고 이곳에서 작가로서의 활동과 국가 계몽운동 참여를 후원하는 폴비라스 비신스키스와 친교를 맺게 되었고 마침내 1895년 나이 오십에 첫 작품집 [가을밤]을 출간합니다. 그가 함께 한 조국 우크라이나의 농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얘기로.
24장 (달산 ,농민,술한잔 들이킨다 서파 유필영의 의병지휘서를 읽는다) 하늘은 푸르르지만 벗은 이제 곁에 없습니다. 황토현 길목에서 당신들을 다시 봅니다. 의병운동이 시작되고 이제 우린 또다른 세상을 그립니다.
하인 화(花)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얼굴빛이 검더라고 하니 몸이 피로해서 병이 난 것은 아닌가 걱정이다. 일전에 청송 사람에게 들으니 너희들이 지경을 통과하면서 군졸들이 민폐없이 조용히 지나갔다는 遠近 주민의 칭송이 자자하니 참으로 기쁘고 다행한 일이다. 이 곳에서 생각하니 너희들이 주둔한 지역은 험준하고 산으로 처지고 길마저 좁은 곳이니 잘 생각하여 작전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길 바란다. 네가 외지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을 것을 생각하니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급히 두어 조목을 써서 보내니 이 염려하는 말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무슨 일이든 남을 무시하는 언행은 삼가고 상대방의 일이 비록 맞지 아니하더라도 반드시 사연을 들은 후 천천히 말을 하여 설득을 하며 남의 앞에 나아가 언성을 높이지 않도록 하여라. 客陳에서는 절대로 자주 출입하지 말고 귓속말로 속삭이는 말은 삼가도록 하여라. 장수가 부임한 후에는 禮에 따라 한두 번 問候를 드리는 외에는 자주 친밀히 하지 않도록 명심하여라. 營中에서 軍官과 軍卒에게 한결같이 誠信으로 接待하여야지 혹이라도 지혜와 기교로서 다스려서는 안 된다. 무릇 다른 진영에 들어갈 때에는 먼저 군법을 물은 후에 主將을 대함에는 각각 예에 합당하게 하여 더욱 공경하고 言語 또한 자세하게 진술하여 誠意로서 남을 감동시키도록 힘쓰길 바란다. 군졸이 行軍하는데 禁할 것은 절대로 농민을 侵掠하지 말며 旅舍에서 宿泊할 때는 인원수를 기준하여 비용을 나누어 주고 조금도 민폐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 府에 들어가 邑을 지날 때는 먼저 군졸에게 명하여 발포를 하여 주민을 놀라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前程에서 留宿할 때에는 반드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먼저 路程에 보내 관사를 정하는 등 절차를 밟고 크게 위세를 부려 소란을 피워 놀라게 하지 말라.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군졸을 위문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으로 감복하게 하며 병든 군졸에게는 더욱 긍휼을 더하여 옛사람이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죽을 힘을 다하는 것과 같이 하여라. 유숙할 때에는 마땅히 더욱 신중하고 치밀하게 하여 예상치 않은 재난에 대비하여야 한다. 이것은 兵家에서 이르는바 머무를 때는 반드시 견고하게 하라는 뜻이다. 공문 왕래는 절대로 나에게 쓰게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나이 젊어서 여러 가지 일을 겪지 아니하여 군대를 이끌고 지경을 나섬에 있어 내가 拙하고 심약하다 하여 편안하게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가. 천만 경계하고 삼가서 군기를 패하게 하지 말자며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말게 하는 것을 깊이 바라는 바이다. 이때 삼가지 않으면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이 곧 지극히 짧은 순간이다. 이에 간략히 조목조목 지시하니 때때로 살펴보아 명념을 더할 지이다.
25장 (병상의 노벨,폰슈트너의 편지를 읽는다) 당신은 사색가이며 시적인 능력이 풍부하고 씁쓸한 성격이지만 좋은 사람입니다. 결코 행복을 모르는 당신은 높은 하늘을 날면서도 아주 나쁜 의심의 덩어리로 가득차 잇습니다. 당신은 인간사고의 거대한 수평선과 집요한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너무나 깔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지만 아는 거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나에게 보인 당신모습의 전부요 20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20개나라에 94개의 공장을 가지고 이 사업장 저 사업장을 옮겨 다니며 사는 내게 빅토르 위고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방랑자라고 했지. 하지만 나를 태운 마차는 나의 일인감옥이었어. 슈트너 당신이 그렇게도 반대했던 나의 발명품 다이너마이트는 스티른베르흐의 말처럼 꼬마들의 무기,하층민의 권총이 되었고 매일 평균 3건씩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암살사건이 발생했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악용하는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은 느끼지 않았어. 오히려 무연화약을 만들어내기에 열중했고 군수물자회사를 사들여 무기제조회사를 만들었지. 6년전 당신의 소설 무기를 놓아요 를 읽었오. 점점 무력화되어가는 세계에 대항하며 평화주의 운동의 지침서가 되어준 책.
7년전 남동생 루드비히가 죽었을 때 신문들은 이름이 비슷한 나의 죽음으로 알고 부고기사를 썼었지. 그 제목이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다이나마이트의 왕이 죽다' 였지.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인물 이라고도. 폰슈트너의 말처럼 무기는 평화의 수단이 될 수 없는 것. 평화를 위해 무기를 만든다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던지.
(유언장을 작성한다) .......... 26장 (1895년 11월27일 노벨의 죽음,그리고 유언장의 공개) 7년전, 한 신문의 오보 속에 죽음의 사업가라고 칭해졌던 그가 오늘 정말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이제 파리에서 작성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보관해 두었던 그의 유언장이 공개합니다.
나의 전재산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밝힙니다. 원금은 나의 집행인들에게 맡겨 안전한 곳에 투자해 기금을 조성하게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는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을 선정해서 상을 주는 형태로 매년 지급토록 합니다. 이자는 5개부문에서 공헌한 사람에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합니다. 첫째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둘째 화학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셋째 생리학이나 의학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네째 문학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이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을 쓴 사람. 다섯째 국가간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군대를 폐지 도는 축소시키거나 평화회담을 주장하고 개최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사람에게.
27장 (춘생문이 가까운 성내 어느 곳.여행자) 하지만 지구저편에서 세계의 평화를 향한 한 노 과학자의 유언이 읽혀지던 날 밤. 조선의 춘생문에선 ..
11월 27일. 밤의 거병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군의 거병에 호응한 일부 민간인을 포함하여 군민 약 천 여명이 집결지인 춘생문 앞에 모여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같은 날 27일 자정과 28일 새벽 사이에 대궐 안에 있던 친위대 참령 이진호가 배신하여 문을 열어주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그 창의 사실을 역당들에게 알기전까지는요. 자정이 지나도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윤웅열이 몸소 춘생문 밖으로 나가고, 그의 아들 윤치호가 수십명의 영국군을 데리고 왔다 되돌아 갔습니다. 창의군의 심리는 동요되기 시작했고, 일부 민간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춘생문 안에서 군호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문 안쪽에선 일본군 1개 중대 약 사 오백 명의 병력이 소총을 발사하며 밀려나왔습니다. 창의군은 흩어졌습니다. 이 민족적 거사가 이진호 참령의 배반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