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 2.
◉ 비엔티안(Vientiane)
라오스의 현재 수도이고, 도시에는 약 78만 명이 거주한다(2013년 기준).
라오어로 '비앙'은 '도시'를 의미하고, 티안은 '달'이라는 뜻이다. 비엔티안은 '달의 도시'라는 뜻이다. 라오스 국기에는 비엔티안을 상징하는 달이 새겨져 있다.
라오스의 수도는 1560년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옮겨졌다. 비엔티안은 불교사원의 도시이다. 에메랄드 불상과 파방이 있던 ‘호 파깨우’, 초기 크메르 왕국의 6,840개의 불상이 있던 ‘왓 시 사켓’, 라오스의 대표적 상징물 위대한 탑인 ‘탓 루앙’, 불상공원인 ‘왓 씨앙쿠앙’ 등 유적들이 가득하다.
(사진 - 승리의 탑에 올라서 본 비엔티안 시내)
[ 3일 (2017. 1. 9. 월요일) ]
◌ 탓 루앙(That Luang)
08:30. 1566년 셋타티랏(Setthathirat) 왕 때 지어진 ‘위대한 탑’이라는 뜻으로, 라오스의 상징이자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불교유적이다. 45m의 높이의 꽃봉오리를 형상화한 황금탑으로, 지금의 탑은 도금을 해서 재건축한 것이란다. 정면 광장에는 셋타티랏(Setthathirat) 왕의 동상이 있다.
라오스 인은 라오(Rao) 인이라고 하는데, 원래 중국의 윈난성 지역에 거주하다가 몽골의 쿠빌라이 칸의 침략으로 인도차이나 반도로 남하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기에 라오스의 첫 번째 통일국가 란상(Lan Xang)왕국이 세워졌다. ‘백만 마리의 코끼리’라는 의미를 지닌 란상 왕국은 루앙프라방에 수도로 삼았다. 미얀마, 시암(타이)과의 전쟁을 겪으면서 서서히 쇠퇴해 갔고, 1560년 셋타티랏 왕은 미얀마의 침공을 피해 수도를 현재의 비엔티안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오늘날 라오스의 상징이 된 탓 루앙을 건축했다.
(사진 - 탓 루앙)
‘탓 루앙’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에 사원이 있는데, 남쪽은 왓 탓 루앙 따이(Wat That Luang Tai)이고, 북쪽 사원은 왓 탓 루앙 느아(Wat That Luang Neua)이다. 북쪽사원에 들린다. 여러 건축물이 보이는데, 그 색감이 참 예쁘다. 웅장한 건물 중 한곳이 불교연구소인데, 내부에 있는 불상도 퍽 의젓하고 고상하다.
정원에는 여러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멀찍이 누워있는 와불상은 엄청 크다.
공중화장실 사용료는 4인이 1달러라는데, 이곳은 2인이 1달러를 내야한다고 우리 싸모님들이 용변도 참고 의기양양 되돌아오다. 한국의 힘, ‘아줌마의 기개’를 이곳 라오스까지 드높이다.
(사진 – 탓 루앙의 와불)
◌ 빠뚜사이 (Patuxai)
09:30. ‘승리의 문’이라는 뜻의 빠뚜사이는 프랑스로부터 독립 쟁취를 기념하기 위해 1956년에 세운 것인데, 프랑스 개선문을 본떠서 만든 것이 흥미롭다. 7층 높이의 시멘트 구조물인데, 내부 계단을 올라서면 건물 정상에서 비엔티안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주변 모두가 잘 정비 정리되어 있다. .
여기 저기 찌아(종이꽃)가 각종 색깔로 요염한 자태를 자랑한다.
(사진 - 승리의 문)
19세기 중반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식민지화한 프랑스는 라오스 지역에 관심 갖고, 당시 메콩 강 지역을 관할하던 시암 왕국에 압력을 가해 강변 동쪽 지역을 프랑스 식민 령으로 삼았다. 1899년 프랑스 식민정부는 이 지역을 라오스라고 칭했고, 이 이름이 현재 국호의 시초가 되었다. [* 프랑스인은 모음으로 끝나는 단어에 ‘s'를 붙이되 발음은 하지 않기 때문에 'Rao'를 'Raos'로 표기하고 '라오'라고 읽었다. 그런데 이 표기가 영어식으로 읽히면서 '라오스'라는 국명이 국제사회에 통용되기 시작했다.[이요한, '메콩 강의 진주, 라오스' (한울, 2013년), 33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잠시 프랑스를 몰아내고 라오스를 1945년 4월부터 8월까지 5개월 간 점령하게 된다. 대전 종식 후에도 내전을 거듭하다가 1975년 12월 좌파단체인 파테트라오(Pathet Lao - ‘라오스의 나라’를 의미)가 우파로부터 권력을 완전히 이양 받아 오늘날의 라오인민민주공화국을 세웠다.
국기는 파테트라오의 기를 바탕으로 1975년 12월 2일 제정되었는데, 빨간색, 파란색, 빨간색 가로 줄무늬 바탕 가운데에는 하얀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빨간색은 혁명 투쟁에서 흘린 피를, 파란색은 나라의 풍요로움과 번영을 의미하며, 하얀색 동그라미는 메콩 강 위에 떠오르는 커다란 달을 의미한다.
(사진 – 국기)
◌ 왓 시사켓 사원(Wat SISAKET MUSEUM)
10:20. 대통령 궁 길 건너편에 있다. 란상 왕국의 마지막 왕 짜오 아누 봉 왕이 1818년에 건립하였고, 1935년 재건된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1828년 씨암(태국)의 공격으로 비엔티안이 점령되었을 때 사찰 본당이 유일하게 불에 타지 않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었다. 본당을 중심으로 박물관의 역할을 하는 회랑에는 120여 개개의 불상과 벽에는 수천 개의 작은 불상이 있다. 목이 잘린 불상이 많은데, 이는 태국이 침공하여 머리에 박힌 보석과 황금이 들어 있는 불상의 머리를 약탈해 갔다는 해설이다.
(사진 - 회랑에 전시된 불상)
사찰 입구 정원에서 초로의 불교화가가 불화(佛畫)를 손수 전시판매 중이다. 일점 구입하는데 즉석에서 해주는 화가의 싸인이 한 멋을 더한다.
(사진 – 불화와 화가)
◌ 호 파깨우
10:40. 1565년 왕도를 루앙프라방에서 비엔티안으로 옮겼을 때, 에메랄드 불상(파깨우)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왕실 사찰이다. 에메랄드 불상은 1779년 시암(태국) 왕국과 전쟁 당시 태국에 약탈 당한 후 지금껏 이곳으로 오지 못하고 있다. 에메랄드 불상은 태국 방콕의 왓 프라깨우(에메랄드 사원)에 안치되어 있다. 불상이 어디에 있건 부처님은 아시지 않을지, 누가 진실한 신심인지를.
사찰의 명칭 표시에는 앞에 ‘왓’을 쓰는데 스님이 기거하는 사원을 의미한다. 호 파깨우의 ‘호’는 불상 또는 스님을 뜻한다.
(사진 – 호 파깨우)
점심은 한식으로 동태 탕을 먹는다.
◌ 왓 씨앙쿠앙(부다 파크)
12:30. 40가지 형태의 불교와 힌두교가 결합된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는 조각공원이다. 제일 먼저 호박탑(사리탑)이 이 눈에 들어오고, 길이 50m, 높이 12m의 거대한 와불상이 백미이다. 호박탑의 입구는 악마의 입 모양인데, 허리를 굽히고 겨우 들어갈 수 있고, 내부는 3층 구조인데 계단을 통해 위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1958년 불심이 깊은 한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약 27㎞ 떨어진 외곽에 있다. 방비엥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리다.
(사진 – 불상공원)
◌ 소금 마을 13:30
◌ 과일가게 14:30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길가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과일가게에 들린다. 마른 과일을 판매하는 곳인데, 시음만 하고 맨손으로 돌아설 수 없게 하는 애교있는 글귀가 벽에 붙어있다.
“지나는 행자 보시오
나 이곳에 빌딩 세우고 싶소
마른과일 몇 봉 팔아 주고 가시오
충동구매 실천하여 후회하며 살아보세“
◌ 방비엥 도착 후 저녁식사 (동태당)
이곳 라오스가 내륙 국가인데도 한국인 식당에서는 동태 탕이 계속 나온다. 모처럼 라오스에 왔는데, 동태가 이곳의 특산품이라도 되는가 보다(?#@$%^&*).
(사진 - 방비엥)
판자집 칸막이 같은 리조트 호텔에 도착하니 이 총장 혼자만 다른 호텔 동으로 배정이 되었다. 일행 중 동반자 없이 혼자 참석하여, 울고 싶은데 뺨이라도 때려주는 시츄에이션이다. 롯데관광 본사에까지 항의하는 등 투쟁으로 겨우 숙소를 본진으로 옮겨 왔다. 라이언 일병도 아닌 이 총장을 구하려고 구 여사께서 혼신의 노력으로 승리를 쟁취하였다. 진정 청아의 ‘잔 다르크’ 이시다. 저녁식사 후에는 일정에 들어있는 마사지를 하다. 마사지 샵 건물은 급조된 대형 판자집 수준인데, 만원사례로 예약이 쉽지 않단다.
굿 나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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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유로운 삶이료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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