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당을 나온 암탉 > 이라는 책이 있다.
올초, 5학년인 우리 아이가 학교 권장도서라며 이 책을 읽고는 무척 감명 깊었다고
"엄마도 꼭 읽어봐" 라고는 내 책상 위에 올려 놓고 등교를 했다.
별 기대 없이, 아이의 권유에 대해 성의를 보이는 차원에서 그냥 한 두장 넘겨 보았는데,
왠걸..... 그 자리에서 후딱 읽어 치워버렸다. 그것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건 뭐 세계명작으로도 손색이 없겠다는게 내 평이었다.
그리고 8월, 그 책이 애니매이션으로 극장에서 상영된다길래,
약간의 기대(큰 기대는 안했다, 많은 경우 책이 극장판으로 상영될 때 실망을 주므로)를 안고
오늘 조조할인으루다가 아이 손 잡고 가서 보았다.
그/런/데!!!
시각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 저자와 감독의 차이? 책과 애니의 차이?
쳇.... 한 마디로 실.망.이.다.
닭장 속에서 무정란을 낳는 암탉이 병아리를 부화하고자 하는 꿈을 갖는다.
암탉은 닭장 안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꿈같은 마당 생활을 기대하고 목숨 걸고 닭장을 탈출한다.
그러나 닭장이 암탉을 알 낳는 기계 부속품화 했다면, 뜻밖에도 마당은 온갖 잣대와 서열로 암탉을 멸시하고 조롱한다.
조용히만 지낸다면, 주인의 눈에만 띄지 않는다면 안전하게 목숨은 부지할 수 있다.
하지만 목숨 걸고 닭장을 탈출한 암탉이 그렇게 살 수는 없었다.
결국 암탉이 선택한 길은, 마당을 나.가.는.것.!
마당을 나간다는 것은 안전함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아무런 울타리 없는 거친 삶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목숨을 걸고 현실로 들어서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결국 마당 밖에서 암탉은 포식자인 족제비로부터 여러 차례 위협을 받지만, 용케 살아남는다.
그리고 한쪽 날개를 못쓰는 청둥오리 친구 나그네를 만나게 되고,
족제비의 희생양이 된 나그네 부부가 남긴 오리알을 달걀인줄 알고 품게 된다.
그리고 암탉은 엄마가 된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병아리(사실은 청둥오리새끼)를 부화한 것이다.
족제비로부터, 그리고 마당과 연못에 사는 다른 이들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암탉은 새끼를 보호하며 정성껏 키운다.
그러나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와 다른 모습을 알게 되고, 청둥오리인 아이는 결국 제 모습대로의 삶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아이를 떠나보낸 암탉은 자신과 아이를 끊임없이 잡아먹으려 했던 족제비의 새끼들을 위해
마지막 할 일을 한다. 목을 내어주는 일.. 그리고 암탉은 한 번도 날아보지 못한 하늘로 날아오른다...
암탉이 스스로 붙인 이름은 '잎싹'. 꽃이 피려면 잎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닭장 시절, 문틈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꽃나무는 잎이 지고 나서야 꽃이 피었던 것이다.
자신의 이름처럼 잎싹은 그렇게 졌지만, 짐으로써 생명이라는 꽃을 피우는 듯 했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이야기였는데...
애니에서 암탉은 닭장에만 갇혀 지내 뭘 모르는 몽상암탉처럼 그려졌다. 좋게 말하면 순수하게...
무엇보다 암탉이 치열하게, 처절하게 싸운 것을 족제비와의 대치로만 축소한 것이 가장 아쉽다.
마지막에 스스로 족제비의 먹이가 되었듯이, 진짜 암탉이 치열하게 대항했던 것은 다른 것들이었다.
닭장이라는 생명력 없음, 마당이라는 안전하지만 잣대와 규칙 투성이의 불합리한 구조,
자신과 아이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아이를 떠나보내는 것까지.....
그 모든 상황에 암탉은 수동적이지 않았다. 스스로 선택했고, 그 대가를 스스로 감당해가는 모습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애니에서는 그런 것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다.. 그저 순수한 몽상암탉이 뭘 모르고 세상에 뛰어들었는데,
어쩌다가 엄마가 되어, 주어진 상황에서 열심히 살았다는 정도......?
장면들 중에서는 책에서는 없었던 청둥오리 파수꾼 뽑기 대회 장면이 최악이었다.
꽤나 신경 쓴 것처럼 보이는 짧지 않은 이 장면에서 새끼 청둥오리는 극적으로 1등을 하고 영웅이 되어 무리에 끼게 된다.
암탉이 보잘것 없는 무정란 낳는 닭이라 마당의 닭 무리에서 소외되었던 것에 한이라도 품었을까?
무리에 끼어 엄마 곁을 떠나는 아들에게 애니 속 암탉은 말한다. "넌 꼭 최고의 청둥오리가 될거야"
경쟁하고, 최고가 되라는... 그래서 서열 1순위가 되라는? 암탉은 그런 캐릭터가 아닌데......
그렇다면... 암탉이 마당 밖의 삶을 이렇게 용감하게 택했을 리가 없는데....
아들과의 이별장면도 가관이다.
내 기억으로 책에서는 이 이별 장면은 아주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청둥오리떼를 따라 떠나는 아들,
그 수많은 오리떼가 날아오르는 속에서 아주 잠깐 엄마 얼굴을 보고 인사를 하며 날아오르는 아들을 암탉이 잠시 알아볼 뿐이다.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이별, 찰나적인 이별이었다.
그런데 애니에서는 엄마와 아들이 마주 서서 길다면 긴 이별을 한다. 눈물을 보이며 다음해에 만날 것도 약속한다.
젠장.. 울림이라고는 없는, 눈물샘만 자극하는 흔한 이별 장면으로 완전히 바꿔버리다니.....
감독은 이 책을 완전히 잘못 이해했다고 본다.
어린 아이들이 볼 거니까 이해하기 쉽게 각색했을까?
그렇다면 더 실망이다. 누가 어린 아이들을 맘대로 판단하나? 그것밖에 이해 못할 것이라고...!!!
게다가 이해와 교육이 목적이라면 굳이 예술 매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빌어먹을..
아... 이 애니 때문에 책을 읽지도 않고 사람들이 짐작할 것이 속상하다..
그저 암탉의 슬픈 모성이야기라고 전락할까봐... 짜증난다.
나에게 암탉은, 아니 잎싹은 많은 울림을 주었었다.
모성을 넘어 생명에 대한 용기, 그것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이고, 처절하고, 치열하면서 외로운 싸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운명애..
나는 얼마나 그러고 사나..................................?
첫댓글 아...나도 이 책을 읽어볼 마음이 생겼어 언니...언니 글 덕분에 고마워~@
엥.. 누구심?? 팅커벨이면 피터팬 여친? ㅋㅋㅋ
누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