爲己之學위기지학과 爲人之學위인지학
논어 卷紙十四권지십사 憲問章헌문장에 이르기를, “程子曰 爲己는 欲得之於己也오 爲人은 欲見知於人也라” “정자 가로되 爲己之學위기지학은 내게서(내 마음속에서 바름 道도와 德덕을) 얻고자 함이요. 爲人之學위인지학은 남(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라.”
따라서 우리활을 대하는 근본 마음자세는 爲己之學위기지학을 따라 자기 내면의 세계를 바르게 한 이후에 쏘아 맞추는 것(內志正 外體直 持弓矢審固 然後 可以言中(내지정 외체직 지궁시심고 연후 가이언중)을 추구해야 하며, 爲人之學위인지학의 관점에 접근해서 시수를 높이고 상금과 승단에 집착해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전통 정통 활쏘기를 이야기 하면 撇絶별절로 잘 맞출수 있느냐고 되묻거나 효용성을 따져보는 부류들이 대부분이다. 솔직히 이야기 하건데 쏘아서 맞추는 것은 총이 제일 낫고, 그 다음 활로서는 컴파운드 보우이고, 그 다음이 올림픽활 리커브다. 서양활 베어보우보다야 우리활 撇絶별절이 낫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수련을 통해서 가능한 이야기지 처음 활을 배우고 쏘아 맞추는데 있어서 각궁 죽시가 유리할 턱이 없다.
우리활쏘기의 본질을 모르고 접근방식이 틀린 것인데 우리활을 어떻게 쏘는지도 모르고 왜 그리 쏘았는지는 더 모르니 오로지 잡놈들이 기생첩 옆에끼고 모여서 과녁 하나 맞추고 지화자! 니나노~ 지랄하던 천박한 그 물을 못 벗어난 것으로 봐야 한다.
우리시대가 패악으로 점철된 제국주의 끝물에 있기 때문에 많은 사고의 틀이 제국주의적인 사조에 물들어 천박하기 그지없고 道도와 德덕에 멀어져 있어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여지조차 없는 삶을 오랫동안 살고 있다.
왜 국궁을 쏘나? 국궁 자체가 道도와 德덕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도덕에서 멀어진 삶을 도덕적으로 되돌릴려고 국궁을 배우고 쏘는 것인데, 道도와 德덕은 모르겠고 쏘아 맞추어서 시수를 올려서 국궁대회 출전하여 돈을 따고 승단하고 이름자 높이려는 천박함의 극단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爲人之學위인지학의 끝판왕이 지금 국궁장 활터라고 할 수 있다.
예기사의에 의하면 바르게 쏘아 맞추는 것에 한해서 시수를 쳐 주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별절로 똑바로 안쏘면 시수에 안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좀 심하면(활을 개판으로 쏘면) 과장에 나오지도 못하게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道도와 德덕은 엄정해서 節奏절주에 맞게 禮예를 다해서 쏘고 樂악에 맞추어 쏘았는데 난데없이 객강스럽게 과녁을 삐딱하게 서고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았다면 그게 가당키나 했겠는가? 지금 세상이 道도와 德덕이 무너지고 개판이 되니, 국궁도 아닌 족보 없는 턱밑살대 게발각지로 쏘고도 국궁쏜다고 우기면서, 자기 인생을 축내고 남의 인생까지 망칠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몸과 마음을 바로하여(正己之射 立容德 頭容直 色容莊 目容端 정기지사 입용덕 두용직 색용장 목용단. 몸을 바르게 하고 활을 쏘려면 서있는 모양은 덕이 있어야 하고, 머리 모양은 연직으로 반듯해야 하며, 기색은 씩씩해야 하고, 눈은 단정해야 한다.) 비정비팔로 서고, 하삼지를 흘려서 그듯쳐 쥐고, 두 손을 높고 높게 멀고멀게 거궁을 하고 만작해서 발시를 하면, 줌손과 활장이 불거름으로 맹렬히 떨어지고, 각지손이 엉덩이에 찰싹 갖다 붙으며 화살은 줌뒤로 떠서 들어와 맞게 되니, 이것을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道도와 德덕에 합치된다고 인정하고 그리 쏘도록 노력한 것이다. 이름하여 撇絶별절이다.
조선무과급제자 특급무장 이순신 장군이 쏘았던 활법이 撇絶별절이고, 책 조선의 궁술 명궁전에 나오는 송당 박영선생과 일재 이항선생이 쏘아서 道統도통의 경지를 열었던 활법이 撇絶별절이고, 예기사의에서 말하는 循聲而發순성이발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 활법이 撇絶별절인 것이다. 우리조상님들께서 6천년을 발전시켜온 道統도통에 이르는 형이상학적이고 고차원적인 활쏘기를 돗데기 시장판으로 끌어내려 밥내기 연전치기 시수타령을 하고 자빠졌으니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지. 무슨 국궁쏜다고 지랄들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