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나물 시루>수필가 구연식
옛날 농촌에서는 섣달그믐쯤이면 정월의 설날이나 보름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지난가을에 거두어들인 곡식들을 이것저것 용도별로 작은 자루에 나누어 광의 시렁에 보관했다가 씨앗과 식품용으로 사용했다. 시골집 장독을 보니 녹슨 가마솥 뚜껑과 아버지가 철사로 요리조리 얽어맨 깨진 콩나물시루가 보였다. 어머니가 설음식을 장만하실 때 사용하셨던 도구들이다.
어머니는 밥상에서 콩나물 콩을 고르셨다. 한 쪽이 떨어진 콩, 벌레 먹은 콩, 발육이 좋지 않은 콩 등 콩나물로 싹이 트지 못할 콩을 고르셨다. 어머니는 사랑방 윗목에 조금 큰 널벅지에 아버지가 만든 Y자형 쳇다리를 올려놓고 그 위에 콩나물시루를 얹어 놓았다. 어머니는 콩나물시루 바닥에 지푸라기를 두툼하게 똬리를 틀어 놓고 싹이 나게 불려 놓은 콩을 조금씩 조심스럽게 부었다. 빛을 차단하기 위해서 검은색 보자기를 두르면 어머니의 콩나물시루 설치는 끝나고 내가 할 일이 시작된다.
나는 하루에 오전 오후로 나누어 콩나물시루에다 물을 주어야 했다. 물은 꼭 샘물로 줘야 하며 3일에 한 번씩은 새로운 물로 갈아 주어야 했다. 물을 주고 나면 콩나물시루에 빛을 차단하는 검은 보자기로 잘 덮어야 했다. 콩나물 물을 줄 때 금기사항은 화장실에 다녀왔을 때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어서 손에 묻은 염기 성분이 콩나물에 닿으면 안 되었다. 콩나물이 머리가 푸르면 검은 보자기를 잘못 덮었다는 증거이며, 잔뿌리가 많으면 물 주는 것을 소홀히 했다는 증거다. 콩나물이 시들하면 화장실 갔다 와서 손을 깨끗이 씻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어찌 생각해 보면 모두 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씀이었다.
이렇게 콩나물 기르기는 설 무렵 보름 전부터 집집이 사랑방 윗목에 콩나물시루가 등장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쪼르르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작은 실개천처럼 정겹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은 방의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도 있었다. 엄동설한에도 안방에서 일거양득의 자연을 즐기는 아름다운 민족문화다.
콩나물은 국거리와 나물로 그리고 구황식품으로 밥에 섞어서 비빔밥으로 먹었던 친근한 식품이다. 콩나물국은 뜨거운데 시원하다고 한다. 콩나물 국물 온도가 아니고 맛이 얼큰하고 담백하며 콩나물의 아삭한 식감에서 붙여진 표현이다. 전주는 대한민국 도시 중에서 콩나물국밥이 제일 유명한 도시다. 먹자골목마다 콩나물국밥집이 즐비하다. 콩나물 뿌리에 함유된 아스파라긴산은 독성이 강한 알코올의 대사 산화물을 제거하고 자연 분해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작용을 해 숙취에 좋다. 그 외에도 다이어트와 변비, 뇌 기능 향상, 감기 예방, 피부미용 등에도 좋다는 영양학적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얼마나 조상들의 현명하고 과학적인 식품인지 모른다.
지금은 가정에서는 별로 콩나물을 기르지 않는다. 시장 골목을 지나가면 명절과 관계없이 식품 가게의 구색을 갖추는 노란 콩나물이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게 시루에 수북하게 꽂혀 있다. 가게 아주머니는 값과 상관없이 시장에서 오가는 흐뭇한 덤 문화의 콩나물을 듬뿍 뽑아 주면서 아낙에게 정답게 다른 식품 구매를 유도한다.
요사이는 명절 음식 대행업체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명절 제사음식을 장만하지 않아도, 할 줄 몰라도 명절 하루 전날 시장만 가면 설날 제사 지내는 데는 걱정이 없다. 나는 7남매의 장남이어서 어머니의 집안일은 물론 부엌일도 딸처럼 도와드렸다. 특히 설 때 부침개 철질 솥에 마른 솔가지로 연기도 안 나고 불티도 나지 않게 불을 조절하는 것은 내 전담이었다. 어머니는 가마솥 뚜껑을 삼발이 위에 거꾸로 올려놓는다. 부침개 참기름을 아끼기 위해 생무를 통째로 잘라서 여러 번 문지르고 돼지비계로 한참을 더 문질러 반질반질하게 윤을 냈다. 드디어 참기름을 빙 둘러 떨어뜨리고 철질을 하셨다. 조상님 제사상에 올릴 제수는 따로 만드시고, 자식들과 먹을 김치전 콩나물전 등을 듬뿍 만드셔서 채반에 올려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전을 호호 불어가며 나와 동생들은 어머니를 에워싸고 앉아서 먹으며 섣달 그믐밤을 보냈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장독 위에 녹슨 철질용 가마솥 뚜껑과 여러 군데 철사로 매어놓은 콩나물시루가 찬 서리에 떨면서 나에게 애절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콩나물국도 부침개도 어디를 가나 먹을 수가 있으나, 그 시절 그 맛이 느껴지지 않아 서운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