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소유하려는 것과 영혼을 섬기는 것 - 정원 목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증거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천하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영혼이며,
그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부담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증거하자니 용기도 없고, 쑥스럽고, 안 하자니
뭔가 죄송스럽고... 대부분이 그러한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과 접촉이 있는 비그리스도인들도
전도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잡혀서
교회로 끌려가는 것에 대한 부담을 적지 않게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교회는 별로 매력이 있는 장소가 아닌데
그리스도인들은 집요하게 그들에게 교회출석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문제가 양측의 관계에 어떤 불편함을 주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서로간에 신앙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묵시적인 약속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부담스러워하고, 또 전도에 대한
도전을 받고, 더러 실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증거자들은
많지만 진정 복음을 아름답게, 불편한 긴장을 낳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뜻하게 제시하는 분들은 몹시 드문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복음증거는 따뜻함보다는 강하고 담대하며 적진을
초토화하는 그러한 증거, 그러한 간증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혼 초 우리는 부천에서 살았는데 나는 신학대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나
봉사하는 교회가 없어서 집 근처의 교회를 순례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개척 교회가 참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집집마다 전도하러
다니시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밖에서
누군가 초인종을 누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 복음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소속이 없으니까 가까운 교회와 연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다소 있었지만 전도인들은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기술이나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이 보였습니다.
어느 날인가 우리 집에 찾아왔던 50대쯤의 권사님으로 보이는 할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가까운 교회에서 왔다고 해서 들어오시라고 문을 열어 주자 그녀는
들어오지는 않고 문 앞에 쪼그려 앉아서 비누 한 개를 옆에 다 내려놓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웬지 그녀의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럽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을까요?
우리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면서 무엇을 기도할까요?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일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일어나서는 아무 말 없이 우리 집을 떠나갔습니다.
그녀가 떠난 후 나는 그녀가 놓고 간 작은 비누 한 개를 바라보았습니다.
비누는 아직도 그녀가 기도하던 자리 옆에 그대로 누워서, 부끄러운 듯,
아직 이 집에 적응이 되지 않은 듯, 조용히, 어색하게 누워있었습니다.
저 비누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저 할머니가 산 것일까요?
아니면 전도하라고 교회에서 제공을 했을까요?
그 할머니는 다시 뵙지 못했지만 웬지 그녀의 초라하고 힘든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언젠가 주님의 나라에 가면 그녀는 그녀의
애씀에 대한 보상도 받고 또 우리와도 만날 수 있겠지요.
아무튼 그녀로부터 받은 인상은 진정한 복음 전도의 의미라든지,
영혼에 대한 애정.. 이런 것은 알지 못한 채 단지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고, 그저 순종하여 온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지만, 복음을 위하여 사람들의 집 문과 마음의 문을
두드리지만, 사실 복음의 내용도 잘 모르고, 상대방의 마음도 잘 모르며
오직 자기들이 다니는 교회로 사람들을 데려가려고 하시는 분들..
그들은 과연 왜 전도할까요.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일까요?
진정 그들은 한 영혼의 가치와 의미 앞에서 진정 숙연해지고
사로잡히는 분들일까요?
어떤 교회의 목사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개척교회 목사로서 비교적 빨리 교회를 성장시키신 분입니다.
이분과 개척과 전도의 어려움 등에 대한 주제로 말을 나누다가
이 분이 주변에 있는 유명한 큰 교회에 대한 비난과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자기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어떤 사람을 전도했는데 그 사람을 그만
그 큰 교회가 빼앗아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성도를 도로 내놓으라고
마구 호통을 쳤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도가 물건도 아니고, 도로 내 놓으라니.. 나는 어찌 보면 순진하게도
느껴지는 그 분이 자랑스럽고 또 당당하게 터뜨리는 그 분노에 대하여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 후 나는 그분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진정으로 그 성도님을.. 그 영혼을 사랑하십니까?"
그 목사님은 갑자기 이게 웬 질문인가 의아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성도님이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영적 성장에 지장이 많기
때문에 그 성도님을 위하여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그 성도가 교회를 옮긴 것 때문에 몹시 슬퍼하실 것으로 여겨져서
염려하시는 것인지..?"
그제서야 말뜻을 이해하게 된 목사님은 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한참의 대화를 마친 후 문득 그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정말 목사님 같군요."
나는 애매한 웃음으로 인사를 마치고 그와 헤어졌습니다.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아마 자신은 바른 목회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일까요?
바른 목자의 마음, 주님의 마음.. 즉 자녀의 것을 소유하거나
자녀의 것을 취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주고, 주고, 또 주고, 자녀들이
떠나가도 그저 먼데서 바라보며 사랑하고 자녀들의 행복으로
만족해하는 목자의 마음..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어떤 사역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이사갈텐데 전도는 뭐 하러 해.'
'이 지역은 내가 목회하는 곳이 아닌데 전도를 해야 되나'
물론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소수겠지요.
그러나 만일 사역자들이 이렇게 생각들을 한다면 그것은 바른
복음사역의 동기는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영혼들은 천하보다 귀중한 한 영혼으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하나의 고객으로 취급되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일즈맨이 고객관리를 하듯이 사역자들은 성도관리를 합니다.
세일즈맨이 고객을 얻듯이 사역자들도 성도를 얻으려고 애씁니다.
그리고 교인숫자의 증가는 교회의 능력, 사역자의 지위, 사역자의
급여수준, 이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마케팅이 성공적으로 되어 숫자의 증가가 급속하다면 그것은
좋은 성공의 모델로서 만인에게 칭송되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역자가 개인적인 욕망이나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지 개별교회의 소속으로
인도하는지가 분명하지 않게 됩니다.
많은 전도자들이 전도의 열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순히 사람들을
자기가 다니는 교회로 데려오려고 애쓰는 것은 아마 이러한 사역자들의
혼돈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양육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보상은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그 양들은
주님의 소유이지 목회자나 개 교회의 소유가 아닙니다.
이 시대의 흐름은 점점 모든 것이 대형화됩니다.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작은 것들은 소멸됩니다.
대형 마트나 할인점이 들어오면 작은 구멍가게는 문을 닫게 됩니다.
병원이나 책방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교회에서 영혼을 얻기 위해 애쓰고 성공하더라도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힘에 있어서 월등한 큰 교회로 그들이
가는 것은 일종의 시대의 흐름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작은 교회의 사역자들이 억울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역자의 부르심과 훈련과 인도는 주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그는 단지
주님께 순종한 것으로 만족해야지 성도를 자신이 얻은 전리품과 같이
취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눈물로 기도해주고 어려울 때 도와주고.. 그래서 그들이
어떤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주님의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일 뿐 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영혼들이 거듭나고 변화되고 성장해간다면 이는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며 그들이 어느 교회에 있든지 그것은 우리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이 땅에서는 그 애씀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열심히 수고해서 사람들을 많은 곳으로 파송할 수
있다면 그것이 다른 교회이든 선교단체이든지 간에 자신은 그 수고한
자체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혼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소유하려는 사람은 그로 인하여 어떤 이익을 취하려고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이 아니며 육신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지금 이 순간도 따뜻함과 안식을 진정 찾아 헤매는 영혼들은
도처에 가득한데 진정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안식을 주며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영혼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자기에게로 이끌려 하지 않으며
오직 그들에게 주고 또 주려고 하고 그들을 사랑하고 받아주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진정 복음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또 우리의 영혼이 성장되어 갈 때
우리는 진정 따뜻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의 불꽃을 일으킬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가까이 이끄는 주님의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영성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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